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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권 골렘
스윽!
준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마르시아를 가리키면서 콕 찍었다.
백여 미터 떨어진 곳을 향해 단순히 점을 찍듯이 그렇게 한 것뿐인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퍼엉!
갑자기 마르시아의 가슴의 피부가 강력한 기운에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드래곤 본체로 변신했다면 아무것도 아닌 상처였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 있는 상태였기에 모든 면에서 본체보다는 능력이 떨어졌다.
어쨌든 살점과 피가 사방으로 튀자 그제야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드래곤으로 살아오면서 두 번째로 고통을 당하는 마르시아였다 예전에 우디숲에서 준과 싸우면서 부상을 입을 때와 지금이었다.
“크워어어어. 이, 이놈!”
지독한 고통에 마르시아의 두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 마르시아에게서 뿜어지기 시작했다.
“태워 죽여 버리겠다. 헬파이어!”
화르르르!
붉은 불꽃이 아닌 검은색의 불꽃이 이글이글거렸다. 절대 마법 중 하나이며, 화염계 공격마법의 최고봉으로서 대상이 완전히 전소할 때까지 절대로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는 지옥의 불길이었다.
츄우웅!
공중에 지옥의 불길이 주욱 이어지면서 빠르게 준에게 날아왔다. 맞서지 말고 당연히 피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준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의 불길이라는 헬파이어에 맞서 자신도 불의 기운을 머금은 바나리르의 권능을 일으켰다.
“지옥의 불길이 강한지 아님 바나리르의 권능이 강한지 보자.”
불의 기운을 끌어 올리자 주위의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의 기운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기운이었다. 그런 걸 인간의 몸속에 흡수한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준은 양팔을 앞으로 느리게 내뻗었다.
콰콰콰콰!
파공음이 엄청나게 크게 일어났다.
결국 지옥의 불길이라는 헬파이어와 준이 펼친 바나리르의 불의 기운이 서로 공중에서 충돌했다.
쾅!
충돌해서는 안 될 절대적인 두 개의 기운이 서로 충돌했다.
폭음이 일어나면서 주위 1킬로미터 정도의 대기에 분포되어 있는 수분이 일시에 증발해버렸다. 또한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갑자기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스파크가 일어났고, 바다는 분노한 듯 파도가 출렁거리면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도 먹구름이 일어나면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르시아와 준은 절대 방어막이라는 앱솔루트 배리어를 펼쳤지만 폭발력에 의해 금이 가면서 깨져버렸다.
츠파파팟!
순간 준과 마르시아는 동시에 각자 텔레포트 마법으로 수 킬로미터를 벗어났다.
수면 위에는 죄 없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 배를 내보이면서 둥둥 떠 있었다.
스스스슷!
해안가에 낚시하던 곳으로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한 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떠나기 전과 비교해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색에 빠졌다.
이번에 처음으로 신의 아티팩트의 기운을 일부 흡수했던 것을 사용해 보았다. 짐작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드래곤과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일부의 권능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이었다.
‘후후후, 칠보파천을 시전했다면 간단하게 드래곤을 이겼겠지만 신의 아티팩트 권능만으로도 충분했어.’
신의 아티팩트의 파괴력이 소형 핵폭탄의 폭발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절대 방어막이라는 앱솔루트 배리어도 견디지 못하고 깨어지면서 소멸되었으니 말이다.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도망친 모양이구나.’
준은 다시 바위에 앉아 낚시를 시작했다.
스스스스!
망망대해의 공중이 이지러지면서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가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해왔다.
플라이 마법으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지만 상체를 숙이면서 괴로워했다.
“우욱!”
입에서 주르륵 피를 내뿜었다.
가슴에 입었던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했었는데 그걸 바로 치료하지 않았기에 내상이 악화되었다.
한 움큼 정도의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갔으며, 아직도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리스토레이션!”
츠츠츠츠.
가슴의 상처 부분에서 기이한 빛이 나면서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버렸다. 몇 초 만에 상처자국까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긴 힐보다 강력한 치료마법이니 외상 정도는 이렇게 순식간에 치료가 되는데 당연한 현상이다.
예전에 우디숲에서 준과 한 번 싸워 보았기에 비록 인간이지만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보니 그때 선보였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그가 공격한 바람의 기운과 불의 기운은 정령계의 정령왕이나 마계의 마왕들이 선보이는 기운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런 파워였다.
그런 엄청난 두 가지 기운을 어떻게 몸에 지니고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가 본체로 변신해 싸웠다면 훨씬 강력한 위력을 가진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드래곤의 전유물이라는 피어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런 것을 사용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남는 싸움이었다. 그래도 준과의 싸움에서 승리만큼은 장담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준은 강한 인간이었다.
“으음, 어쩌면 그자가 신의 아티팩트를 입수해 그 기운을 흡수한 건지도 모르겠어.”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정령왕이나 마계의 마왕급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 같은 걸 사용하는 준을 떠올리자 공포가 스멀스멀 밀려왔다. 다시 싸운다고 생각하니 공포감이 밀려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레드 드래곤의 체면을 생각하니까 더욱 참담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일단은 숙소인 특급호텔 프리맨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으음, 그곳에서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일까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텔레포트!”
츠파파팟!
혼자서 중얼거리던 마르시아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사라져버렸다.
촤촤촤촤!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두 척의 배가 엘도라도 해안에 접근했다. 한 척은 화물선 롱팔마호였고, 나머지 한 척은 중형급 갤리선으로 엘도라도 A-97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해안에서도 대형급 갤리선 1척과 중형급 갤리선 3척, 소형급 갤리선 5척이 접근했다.
엘도라도에서는 초대형 증기 갤리선인 프리맨 1호를 SS-1 이라고도 불린다.
이 배를 제외한 군용선들은 이렇게 나누어져 있었다.
대형급 갤리선은 배의 규모도 크지만 무장한 영지병 300명이 승선하며, S와 번호가 붙는다.
중형급 갤리선은 보통 150명 정도 승선했으며, A와 번호가 지정되며, 소형급은 100명 이하의 영지병들이 승선하는데 B와 번호가 붙는다.
소형급 갤리선의 호위를 받으면서 롱팔마호와 중형급 갤리선인 엘도라도 A-97호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는 화물선의 선적이나 하역을 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배를 붙일 수 있는 접안시설이 15곳으로 한꺼번에 15척의 배가 들어와 하역을 하거나 선적할 수도 있었다.
최근에는 화물선들의 입항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기에 제2의 선착장을 건설 중에 있었다.
롱팔마호가 선착장에 들어서면서 닻을 내리자 선착장에서 일하는 하역책임자가 200명의 인부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준은 물건의 하역이나 선적을 보다 손쉽게 하기 위해 선착장에 기중기를 하나씩 설치했다. 간단한 수동식 선회 기중기였지만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하역이나 선적을 할 수 있었다.
도르래 장치의 밧줄이나 쇠사슬은 몸체에 부착되어 있는 핸들을 돌리면 감거나 풀어지게 된다.
짐수레가 하역장에 도착해 멈추면 그곳에 기중기로 하역한 물건을 내려놓는다. 그럼 그걸 선착장 인근에 있는 거대한 ‘화물보관소’라는 창고 건물에 옮겨 보관하면 된다.
그곳에서 행정사들이 화물을 직접 확인하고 기록해둔다.
물건을 보관한 지 하루가 지나면 엘도라도 상업지구에 있는 각 상점으로 물건이 배달된다.
하루에도 화물선 백여 척 이상이 엘도라도 선착장에 도착해 물건을 하역한다.
이 화물선들이 떠날 때는 엘도라도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선적해 떠나게 된다.
해상에서는 이렇고, 육상에서도 엘도라도 경계지점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해 들어오게 되면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로변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다.
보통 이런 곳을 다섯 차례나 통과해야만 엘도라도의 상업지구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각 검문소에는 뇌물이 전혀 통하지 않으며, 천 명 정도의 무장한 영지병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함부로 무력을 행사할 수도 없었다.
상인들은 뇌물도 전혀 통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 엘도라도 검문소의 영지병들을 보고는 크게 신뢰했다.
그들은 프리맨 후작이라는 영주로부터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었기에 자긍심 또한 대단했다.
엘도라도에서만큼은 영지병들이 영지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영지병이 되어 있다면 그 가정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만약 훈련을 받다가 죽거나 전쟁터에 나가 죽더라도 그 가족들은 연금이라는 걸 영주로부터 지급 받았는데, 평소 영지병이 받던 돈과 똑같이 지급을 받았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안심하고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엘도라도에서 살고 있는 영지민의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영지병이 되는 게 꿈이었다.
영지병들은 다른 영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대우를 엘도라도에서는 이렇게 받고 있었다.
그러니 영지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으며, 자긍심도 대단한 게 이해가 되었다.
엘도라도에서는 영지민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 자유민들이나 농노, 유민들까지 가리지 않고 간단하게 조사한 후 다 받아들였다.
엘도라도에서는 이주민들이 정착할 때까지 1년간은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영주가 내리는 돈으로 먹고살 수가 있었다.
이주민들은 4인 가정을 기준으로 벽돌집 한 채와 1년 정착비로 60실버라는 큰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이들의 자립을 위해 ‘정착 도우미’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 있어서 이들이 이주민들을 옆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주해온 자들은 한 달도 안 되어서 근처에 있는 건설 현장에라도 나가서 돈을 벌었다.
일거리는 넘쳐날 정도로 많았으며, 어디를 가든지 간에 좋은 대우를 받았기에 집에서 놀고먹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하루를 일하면 1실버라는 돈을 버는데 누가 가만히 놀겠는가?
이주해오기 전만 하더라도 1실버라면 한 달 생활비였다. 그런데 엘도라도에서는 하루 만에 그런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니 굶주리는 자는 없었다.
다른 영지에서는 평민들이 잘 먹어야 하루에 두 끼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 한 끼가 고작이었다. 자유민들이나 농노들은 하루에 두 끼를 먹긴 먹는데 질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빵 없이 스프가 식사의 전부였다. 고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였고, 빵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먹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엘도라도에서는 기본이 하루에 세 끼였으며, 그것도 빵과 고기, 스프, 우유와 야채, 과일까지 푸짐하게 먹었다.
공사현장에 인부로 가더라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잘 먹었다. 잘 먹어야 일도 잘한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