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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권 골렘
‘기사에게 수고비를 얼마나 줘야 하나?’
셔면호의 선장은 기사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기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이 배의 선장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셔면호의 선장인 배건이라 합니다.”
“배건 선장, 나는 엘도라도의 기사 잭슨이라 하오.”
“아, 그러셨군요. 잭슨 기사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스윽!
선장은 기사 잭슨에게 돈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돈주머니를 사양했다.
‘적어서 그러나?’
선장은 엘도라도가 처음이라 수고비를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좀 더 주려고 마음먹은 순간 기사 잭슨이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 엘도라도엔 처음 온 것 같은데 알려줄 게 있소.”
“말씀만 해주신다면 새겨듣겠습니다, 기사님.”
“우리 엘도라도에서는 절대 이런 수고비는 받지 않으니 넣어 두시오. 그리고 모든 배들이 일단 해안으로 들어서면 예외 없이 검문과 수색을 받게 되오. 특별히 의심스러워서 그러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관행적으로 수고비를 받는데 이곳 엘도라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기에 선장은 약간 당황했다.
스윽!
기사의 손짓에 무장한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배를 수색했다.
“선장, 배의 검문과 수색은 금방 끝이 나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예, 기사님.”
“셔면호는 어느 왕국의 영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오?”
“대륙의 남부에 있는 라우 왕국의 핸리 백작령에서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호오? 라우 왕국이라면 엘도라도와는 상당히 먼 거리인데 어찌 이곳까지 온 것이오?”
“예, 저희들도 처음에는 이곳 엘도라도까지 항해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었지만 대륙 전역에 퍼진 엘도라도의 소문을 듣고는 이번에 작정하고 오게 된 것입니다.”
기사 잭슨은 선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셔면호와 같이 소문을 듣고 무역을 하기 위해 이렇게 오는 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해가 갔다.
엘도라도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 일단 무역을 하기만 하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에 각 왕국의 화물선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일로 인해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는 있었지만 엘도라도가 점점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화물칸까지 수색을 마친 병사들이 다시 갑판에 모였다.
“이상 없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선장!”
“예, 기사님.”
“어쨌든 엘도라도에 잘 왔소. 우리가 해안까지 안내를 할 테니 뒤따라오시오.”
“예, 알겠습니다.”
셔면호는 갤리선의 뒤를 따라 해안가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배건 선장은 선착장으로 향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엄청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대형 갤리선도 수십 척으로 다른 곳보다 많이 정박해 있었기에 놀라운데 이제까지 수십 년간 바다를 항해하면서 저렇게 큰 배는 처음 보았다.
대형 갤리선의 열 배나 되는 초대형 증기 갤리선 프리맨 1호를 보고는 놀란 것이다.
선원들도 프리맨 1호를 쳐다보고는 입을 쩌억 벌렸다.
정말 압도적인 크기의 프리맨 1호였다.
“선장님, 저길 보십시요.”
항해사의 말에 배건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항해사, 이미 보았다. 정말 저렇게 큰 배는 처음이군?”
“대형 갤리선의 열 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으음, 저런 배가 과연 항해를 할 수나 있을까?”
“가장 발전된 엘도라도라면 충분히 가능하기에 저런 배를 건조한 것 아닐까요?”
“저런 배 한 척만 있으면 어떤 배가 공격해 와도 걱정 없겠어.”
“배의 측면에 매달아 놓은 배들만 해도 열 척은 되는 것 같습니다. 대형 발리스타가 곳곳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휴우, 정말 대단하군.”
“대형 갤리선 몇 척이 한꺼번에 덤벼도 이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보이는 무장상태만 해도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래. 정말 대단한 배야.”
셔면호의 선원들도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프리맨 1호를 구경하느라 정신들을 차리지 못했다.
엘도라도 상업지구.
엘도라도 영지의 동부 해안가 선착장에서부터 영주성까지 타원형의 길게 이어진 구역이었다.
이곳 상업지구에서는 엘도라도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품이 거래가 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대륙의 각 왕국의 상단이 대거 몰려와 있었다.
하루 유동인구가 7만 명이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는 주로 육로를 통해 상단이 들어왔었지만 작년부터는 바다를 이용해 화물선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육로보다는 배로 이용한 무역의 규모가 더 커졌다.
상업지구에는 수천 개의 상점이 길 양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상단의 사람들이 묵을 호텔과 여관도 대거 들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암염이 대륙 전역으로 거래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엘도라도에서 천일염이라는 것이 발명되어 팔리게 되었다.
천일염은 암염의 오분의 일에 불과한 가격이기에 주로 평민들이나 농노들이 싼 맛에 많이 구입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천일염이 더 싸고 품질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암염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반면에 천일염의 거래량은 반대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젠 마케리안 대륙 전역에 천일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버렸다.
다른 왕국에서는 엘도라도의 천일염전을 보고는 모방해 천일염을 생산해 보려고 했지만 핵심적인 기술을 잘 몰라서 그런지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케리안 대륙의 남부 카라 왕국에서는 계속된 연구로 인해서 천일염과 유사한 브라운염이라는 것이 올해 초 개발되었다.
브라운염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일염의 백색보다 갈색에 가까운 소금이었다.
엘도라도 산 천일염과 품질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까 평민들이나 농노들이 주로 사먹었다. 가격이 천일염에 비해 삼분의 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카라 왕국에서 브라운염이 개발에 성공했기에 조금씩 수익이 발생하고 있었다. 브라운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지금도 계속 연구 중에 있었다. 머지않은 세월에 품질 좋은 브라운염이 생산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엘도라도 산 천일염이 대세였다.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엘도라도에 들어와 상업지구의 특급호텔 ‘프리맨’에 묵으면서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상업지구에는 특급호텔이 현재 세 곳이 있었으며, 프리맨과 글리아나, 엘도라도였다.
상업지구의 상점들 중에서도 특급호텔의 이름처럼 이 세 개의 이름이 붙은 곳이 가장 고급상점이었다.
마르시아는 수백 년 만에 유희를 나왔지만 이제까지 이렇게 발전된 영지는 처음 보았다.
마차가 큰 진동 없이 부드럽게 잘 달릴 수 있는 넓은 길과 잘 계획되어 지어진 집들, 거기에다가 치안대가 순찰을 돌면서 치안유지가 잘 되어 있었다. 또한 영지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그냥 흙으로 만든 집이 아니라 벽돌을 이용해 신축했기에 튼튼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엘도라도의 평민이라면 대부분 이런 벽돌집에서 살고 있었다.
엘도라도에는 노예들이 다른 영지보다 훨씬 많았다. 40만 명이나 되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는데, 이들 노예들은 각종 공사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각종 공사현장에서 오 년 간만 열심히 일하면 면천되어 노예 신분에서 평민으로 수직 상승할 수 있었다. 일하면서 질 좋은 식사를 하루에 세 번 먹었으며, 간식도 한 번 있었다.
거기에다가 일했다고 돈도 받았다. 그러니 노예들도 큰 불만 없이 맡은바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
다른 영지에서 엘도라도에 쳐들어올 수도 있었기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어김없이 성이 축성되어 있었다.
큰 성만 해도 열 개가 넘었으며, 지금은 노예들이나 인부들을 동원해 5천 명의 병사가 주둔할 수 있는 작은 성들도 축성하고 있었다.
마르시아가 엘도라도의 상업지구에 들어와 특급호텔 프리맨에 묵으면서 엘도라도를 비밀리에 돌아다니면서 조사한 것들이었다.
마르시아가 생각하기엔 엘도라도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맨 후작이라는 영주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싶었다.
첫날 마르시아는 처음 먹어보는 진귀한 요리들과 도자기라는 것에 흠뻑 빠져 상점에 나오는 도자기는 대부분 사버렸다.
그래서 상인들에게 마르시아는 돈 잘 쓰는 귀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르시아는 도자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은 드워프제 보석이나 쥬얼리가 최고라 생각했었는데 도자기를 보고 난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어떤 예술적인 면에서는 더 수준이 높은 도자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엘도라도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도자기 마을에도 들러서 도자기를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막대한 자금이 지출되었지만 자신의 아공간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기에 그걸 일부 처분하면 충분히 충당되었다.
그러니 마르시아에게는 쇼핑 자금이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현재 프리맨 후작 영주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기에 그의 부인이 영주대행으로 엘도라도를 다스리고 있었다.
마르시아는 글리아나를 은밀하게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글리아나는 마법으로 인간의 귀로 변하게 했지만 인간이 아닌 엘프라는 걸 알았다.
드래곤인 마르시아가 몰라본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흐음, 어떻게 엘프가 영주의 부인이 되었지? 속인 건가?’
확실한 것은 영주인 프리맨 후작이 엘도라도로 돌아와 봐야 알 수 있었기에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열흘 정도 엘도라도를 구경했지만 아직도 구경할 곳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기다리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새롭고 흥미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짹짹짹!
프리맨 영주성의 정원 나뭇가지에 산새 두 마리가 날아와 지저귀더니 저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글리아나가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팔을 옆으로 움직이면서 남편인 준을 찾았지만 만져지지 않았기에 눈을 살며시 떴다.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준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그때, 글리아나의 코에 향긋한 장미향이 느껴졌다.
준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두 잔 들고 침대로 다가왔다.
“깨어났어?”
“응, 그건 뭐예요?”
“장미꽃차인데 내가 준비했어.”
“어머, 고마워요.”
글리아나는 준이 내민 장미꽃차를 받아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향긋하고 정말 좋은 차였다.
“같이 아침식사하자.”
“응,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영지의 귀족들을 전부 호출하면 번거로우니까 간단하게 헌트와 하그리와 아침식사를 같이 하는 게 어때?”
“그래요. 영주가 돌아왔으니 그게 좋겠어요.”
“그럼 이제 일어나 샤워하시죠, 부인.”
“어머, 부끄럽게 부인이 뭐예요.”
“부인을 부인이라 부르지 뭐라 불러?”
“그, 그건 그렇지만…….”
글리아나는 부끄러운지 뺨이 붉어졌다.
준은 그런 글리아나를 사랑스런 눈길로 안아 들고는 샤워장으로 향했다. 글리아나는 부끄러웠지만 행복하기도 했다.
욕조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준과 글리아나는 함께 욕조에 들어가 서로 껴안더니 키스를 나누었다. 또다시 둘이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기에 아무래도 아침식사는 늦어질 것 같았다.
스윽, 슥슥!
소연회장의 긴 테이블에는 준과 글리아나, 헌트와 하그리가 자리했다.
준은 접시에 담긴 안심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자르고는 글리아나에게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