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7 / 0284 ----------------------------------------------
제9권 골렘
저벅저벅!
스켈레톤 10마리가 2마리씩 조를 이루면서 지하 10층으로 내려왔다. 대리석 통로가 나왔는데, 길이가 겨우 30미터 정도였고, 통로 끝에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통로 끝까지 걸어가서 철문을 열어야만 다음 통로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함정이 있는가 싶어 스켈레톤 한 마리를 시험으로 보내 보았다. 스켈레톤은 언데드이기에 전혀 두려움을 모르고 앞으로 걸어갔다.
결국 통로의 끝 철문 앞까지 걸어가 멈추었다.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기에 나머지 스켈레톤들도 한 마리씩 3미터 정도 간격으로 보내었다.
스켈레톤 10마리가 모두 통로의 끝까지 걸어가 멈추자 준도 안심하고 걸어갔다. 준은 혹시라도 있을 기습공격에 대비해 보호막을 이중으로 펼쳤다.
저벅저벅!
공허한 통로에 준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으음,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이상한데?”
약간의 의심은 들었지만 스켈레톤이 이상 없이 걸어갔기에 의심을 접었다.
스스스스!
통로의 끝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마치 순간이동으로 다른 곳에 이동된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건 아니었다. 만약 텔레포트 마법이나 워프 마법이었다면 준이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기에 혹시 환상을 보는 건가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켈레톤 10마리도 주위에 서 있었다.
휘이이이!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저편으로 사라졌다. 환상은 결코 아니었다.
“이, 이럴 수가?”
준은 이제야 이곳이 어떤 곳인지 떠올랐다.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분명 마법진으로 형성된 마법의 세계였다. 쉽게 설명하자면 마법주머니의 마법 공간이나 좀 더 큰 대마법사의 아공간처럼 공간의 틈에 마법으로 세상을 창조한 그런 세계였다.
이 마법 공간의 세계는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 세계였다.
10서클의 창조마법으로 드래곤들조차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런 수준의 창조마법은 신만이 펼칠 수 있다는 그런 마법이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현실 세계의 시간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준이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마법서에서는 여기에서의 일 년이 현실 세계에서는 겨우 하루에 불과하다고 했다.
준은 예전에 드래곤 레어에 방치되어 있던 ‘모순의 마도시대 마법서’를 읽었다.
10서클의 창조마법이라 제대로 증명이 되지 않았기에 드래곤들조차 인정하지 않은 마법서였다. 그러나 그 마법서에서 이런 마법 공간의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다.
최상급의 마나석이 무려 10개나 필요할 만큼 막대한 마나를 소비하는 마법이기에 함부로 펼쳐 볼 수조차 없는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마도시대 현자 크라이오튼이 이곳에 펼쳐 놓았으니 준이 놀랄 만도 했다.
“후후후, 마지막 관문이 설치되어 있는 지하 10층이니 이 정도 마법은 되어야 날 만족시킬 수 있어.”
공간의 틈새에 펼쳐진 마법 세계는 평지에 초록색의 풀들로 채워져 있었다. 지평선의 끝이 사방으로 보이는 것만 5킬로미터가 넘었다. 땅은 온통 모래였기에 어떻게 이런 메마른 곳에 풀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것 역시도 아마 풀들이 마법의 영향으로 살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태양도 없는데도 대낮처럼 밝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조차 없었기에 조화롭지 못했다. 푸른 하늘과 모래, 녹색의 풀들,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준과 스켈레톤 10마리가 이곳의 전부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통로의 바닥이나 천장에 마법진이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곳으로 이동되었을 리 없었다.
쿠워어어어!
갑자기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대지의 진동이 느껴졌다.
두두두두!
마치 천여 명의 기병들이 무리를 이루면서 달려오는 듯한 대지의 진동이었다.
츠츠츠츠!
준의 눈이 기이한 빛에 일렁였다. 이글 아이 마법을 펼쳤기에 독수리의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는 것이다.
키메라 같은 몬스터 무리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뿔이 양쪽으로 돋아난 황소의 머리와 몸통에 오우거의 근육질 팔이 무려 6개나 달려 있는 괴물이었다. 말보다는 속도가 느리지만 황소보다는 배는 빨랐다. 양쪽 팔에 방패를 쥐고 있었으며, 나머지 4개의 팔에는 배틀엑스와 철퇴, 창과 검을 들고 있었다. 힘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보이며, 싸워보면 알게 되겠지만 전투력도 상당할 것으로 보였다.
몬스터총람이나 그 어떤 책에서도 저런 괴물은 나와 있지 않았다. 키메라일 가능성이 많았다.
지평선 끝에서 달려올 때는 점 같이 보였는데, 어느덧 수백 미터 앞까지 달려와 있었다. 콧김이 심하게 나오며, 두 눈이 붉게 이글거리고 있었기에 맹수의 눈을 보는 듯하다. 대략 보이는 것만 해도 만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으음, 만만치 않겠어. 용아병과 스켈레톤은 나의 소환에 응하거라!”
스스스스!
준의 소환에 용아병과 190마리의 스켈레톤이 소환되었다.
“즉시 전투대형으로 펼치고, 적들을 막아라!”
용아병이 준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손짓으로 스켈레톤을 지휘했다.
스켈레톤들은 재빨리 전투대형으로 변했다. 아무리 언데드 스켈레톤이라고는 하지만 적들은 수적으로 대략 50배 이상 되었기에 얼마나 잘 싸울지 걱정되었다.
부우웅!
플라이 마법으로 공중으로 떠오른 준은 투명화 마법도 펼쳐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곧 있을 전투를 편안하게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콰쾅!
충돌음이 터지면서 황소 괴물 무리가 스켈레톤을 그대로 받아버렸다. 체중이 열 배 이상 많이 나가는 황소 괴물은 가볍게 스켈레톤을 날려버렸다. 안 그래도 스켈레톤은 뼈다귀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보기에도 연약해 보였는데, 너무나 쉽게 나가떨어져 박살나 버렸다.
하지만 언데드이기에 박살났던 뼈들이 한곳에 뭉치더니 재조립되었다. 스켈레톤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를 휘둘러 황소 괴물을 베었다.
그러나 황소 괴물은 강력한 오우거의 근육질 팔이 무려 6개나 되었기에 스켈레톤의 검술 공격을 손쉽게 방어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방패로 공격을 막고, 나머지 4개의 팔로는 무기를 휘둘러 스켈레톤을 공격했다. 간혹 강력한 뒷발차기 공격으로 스켈레톤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전투력이 대략 3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스켈레톤이 모든 것에서 상대가 안 되었지만 딱 한 가지 장점이 있었기에 지금도 버틸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스켈레톤은 언데드이기에 공격을 받아 박살나도 죽지 않고 재조립 된다는 것이다.
워낙 수가 많은 황소 괴물들은 스켈레톤을 포위해 공격을 퍼부었기에 재조립되기 무섭게 다시 박살나 뼈들이 주위로 흩어졌다.
스켈레톤이 소유한 마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멸할 것이었다.
“으음, 황소 괴물의 무력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저것들을 그냥 키메라 오우거 군단으로 쓸어버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고작 이런 일로 키메라 오우거 군단을 동원한다는 것도 우스웠다.
“어디 황소 괴물이 얼마나 질긴 가죽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에어 스피어!”
츠츠츠!
공기가 마법의 영향으로 압축되면서 창으로 생성되었다.
스윽!
준이 황소 괴물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창이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 가슴에 격중되었다.
퍼억!
팔이 6개나 있고, 방패도 2개나 들고 있었지만 준의 공격마법이 워낙 빨라서 막지 못했던 것이다. 공기로 뭉쳐진 창이 황소 괴물의 가슴을 손쉽게 관통했다.
주르륵!
구멍 난 상처에서 녹색의 피가 흘러 나왔지만 황소 괴물은 쓰러지지 않고 약간 비틀거렸다.
스스스스!
놀랍게도 구멍 난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버렸다. 트롤의 재생력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았다.
“으음, 힘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기에 전투력도 상당하지만 재생력까지 뛰어나니 상대하기 까다로운 괴물이야. 타오르는 손!”
화르르르!
공중에 10미터나 되는 거대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손이 하나 생성되었다.
황소 괴물들도 갑자기 공중에 생성된 불길에 타오르는 손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들도 타오르는 손 마법을 처음 보는 모양이다.
츄우우욱!
공중을 사선으로 날아간 타오르는 손은 피하려는 황소 괴물의 목을 그대로 움켜쥐면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고열을 동반한 것이기에 손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치이이이!
쿠워어어!
고기 타는 소리에 이어 황소 괴물이 비명을 지르면서 심하게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순간 재가 되어 공중에서 흩어졌다. 아무리 재생력이 좋아도 순간 재가 되어버릴 정도로 타버리자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의 황소 괴물은 이렇게 소멸되었지만 아직도 수만 마리나 있었다.
처음에는 만여 마리로 보이더니만 지금도 황소 괴물은 계속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에 수만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으음, 일단 화염계 마법이 통하는 것 같으니까 강력한 것을 펼치는 게 효과가 있겠어. 파이어 스톰!”
콰아아아!
거센 바람이 생성되어 황소 괴물에게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불의 폭풍 마법이었다.
화르르, 활활!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재로 만들 수 있는 화염의 폭풍이었다. 준의 앞을 가로막는 황소 괴물은 몸에 불이 붙으면서 활활 타올랐다. 아무리 가죽이 질기다고 해도 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쿠워어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도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온몸이 불에 타면서 결국 쓰러졌다.
황소 괴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려고 해도 워낙 수가 많았기에 피할 곳이 없었다.
스윽!
준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마법 시동어를 외쳤다.
“후후후, 강력한 걸로 한 방 먹여주마. 플레임 레인!”
츠츠츠츠!
갑자기 하늘에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콰아아아아!
반경 5백 미터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무시무시한 불덩이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고열을 동반한 화염의 비였기에 물로도 꺼지지 않는데다가 하급의 마법방어조차 태워버리기 때문에 대량살상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쿠워어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보아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황소 괴물들은 대규모로 불에 타 재가 되어 흩어졌다. 플레임 레인마법은 지속시간이 30분이나 되었기에 황소 괴물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 주었다. 정확하게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2~3만 마리 정도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10만 마리 넘게 남아 있었다.
“으음, 어디에서 이 황소 괴물이 끝없이 몰려오는 것일까?”
재생되기 무섭게 다시 박살나던 스켈레톤들은 준의 플레임 레인 마법으로 근처에 있는 황소 괴물이 전부 불에 타 죽었기에 재생할 수 있었다.
준은 스켈레톤들에게 공격명령을 다시 내리기보다는 강제 소환시켰다.
“으음,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
잠시 고민하던 준에게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왜 그 방법을 생각 못했었지?”
스윽!
준은 양팔을 옆으로 벌리고는 천천히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마력장을 엄청나게 끌어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강력한 마력장이 온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퍼져 나갔다.
황소 괴물들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우왕좌왕했다.
“어디 너희들끼리 마음껏 싸워 보거라. 군중현혹!”
츠츠츠츠!
강력한 마력장이 뒤덮은 가운데 군중현혹 마법이 펼쳐지자 황소 괴물들의 붉은 눈빛이 검은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