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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209화 (20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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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혼돈의 히민반가르

스윽, 슥슥!

피터가 수정구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자 수정구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그녀는 준이 수도 세일렘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라비나였다.

“라비나 님, 그자가 조금 전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그래요? 무엇을 묻던가요?”

“밴코밸리에 관한 것들을 물었습니다.”

“밴코밸리라면 언덕에 석상 같이 생긴 암벽이 있는 곳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자가 왜 그곳에 관해 물었는지 모르겠지만 피터 전부 털어놔 봐요.”

“밴코밸리에 관한 전설도 물어보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인데 최근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묻더군요.”

“최근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예, 지진이 일어나 언덕 하나가 푹 꺼져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다른 건 묻지 않던가요?”

“나가면서 마시장과 보석 상점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마도 그자가 말을 구입해 밴코밸리에 가보려는 것 같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먼저 보석 상점에 들러 보석을 처분해 그 돈으로 용병대와 식량과 말을 구입해 가려는 것 같습니다.”

“그자는 분명 용병대는 고용하지 않을 거예요.”

“예? 혼자서 밴코밸리를 간단 말입니까?”

“분명 그렇게 할 거예요.”

“으음, 하긴 마법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혼자서 충분히 갈 것도 같습니다.”

“내가 오후에 그곳으로 갈 것이니 일단 그자를 은밀하게 미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수정구에서 라비나의 모습이 사라지자 피터가 잠시 생각하다가 외쳤다.

“로지, 잠시 들어오게.”

“예, 피터 님.”

피터의 부름에 로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나간 그자를 두 명의 정보원을 동원해 은밀하게 미행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자는 마법사인 것 같으니 가까이 미행하지 말고. 보석 상점과 마시장에 들를 것이니 미행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충분하게 거리를 두고 그자가 또 어디에 들르는지 정도만 알아도 돼.”

“예, 알겠습니다.”

로지가 밖으로 나가자 피터는 창문을 통해 길을 걸어가는 준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으음, 수도에 계신 라비나 님까지 관심을 보이는 자인 걸 보니 뭔가 있는 것 같군.”

준은 피터가 알려준 대로 걸어갔다. 그랬더니 마시장이 나왔다.

아직 오전이지만 수백 마리의 말들이 있었으며, 말을 팔거나 사려고 많은 사람들이 흥정 중이었다.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한번 구경하고 가십시오.”

준은 한창 호객 행위를 하는 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다가오는 준에게서 지독한 돈 냄새를 맡았다.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야.’

“어서 오십시오.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준은 말들을 살펴보았다.

상인은 준의 옆을 따라다니면서 말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 말은 클라이 종인데, 보시기에도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것보다 더 좋은 말은 없나?”

“하하, 손님께서는 말에 대해 좀 아시는군요. 그럼 해크 종은 어떻습니까?”

준이 고개를 흔들자 상인이 옆에 있는 말을 가리켰다.

“우수한 품종이라 알려진 샤이어 종입니다. 어떻습니까?”

“난 브라운 종을 보고 싶네.”

“으음, 샤이어 종으로도 만족하지 못하시는 손님은 처음입니다. 제가 보유하고 있는 브라운 종이 딱 한 마리 있긴 합니다만.”

상인이 안내한 곳에는 척 보기에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말이 있었다.

상인은 말의 입을 벌려 보여주고, 말발굽과 다리, 말의 엉덩이까지 세세하게 보여주었다.

“상태가 좋은 브라운 종인데,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는군.”

마시장에서 우수한 품종이라 알려진 샤이어 종도 있었지만 준은 최고 품종 중 하나인 브라운 종을 선택했다.

브라운 종은 체질이 튼튼하고 지구력이 강하며, 걸음걸이가 웅장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달리는 속도가 빠른 명마였다.

또한 승용마로 최적이며, 빛깔은 검은색이 많았지만 간혹 갈색이나 흰색도 있었다.

준이 선택한 말은 검은색 브라운 종이었다.

“100골드만 주시면 안장을 얹고 말을 깨끗하게 목욕시켜서 드리겠습니다.”

“좋아, 바로 목욕을 시켜주게.”

“예, 알겠습니다.”

상인이 손짓하자 한쪽에 대기해 있던 3명이 다가오더니 말의 고삐를 잡고는 한쪽으로 끌고 갔다.

역시 상인은 준의 재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보통 클라이 종은 5골드 선, 해크 종은 10골드 선, 샤이어 종이 30~40골드 선, 어쩌다가 한 마리가 나오는 브라운 종 말이 80~100골드 정도의 가격에 거래되었다.

상인은 처음에는 90골드를 불러 흥정을 하려고 하다가 100골드를 불렀다. 하지만 준은 전혀 깎지도 않고 바로 구입해버렸다.

때문에 상인은 처음에 브라운 종을 60골드에 구입했기에 40골드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40골드는 샤이어종 5마리를 팔아야만 올릴 수 있는 수익이었다.

말을 목욕시킬 동안 상인의 직원이 과일주스를 가져와 준에게 내밀었다.

“시원하니 마셔보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준은 과일주스를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이내 다 마시고 내려놓자 어느새 목욕시킨 말을 끌고 왔다.

“손님, 다음에도 찾아주십시오.”

“그러지.”

스윽.

준은 말에 올라타자 상인이 말고삐를 준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준은 곧장 천천히 말을 몰아 보석 상점으로 향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를 감시하던 자가 다시 미행을 시작했다.

피터가 알려준 보석 상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마리메이슨 보석 상점에서 준이 말을 멈추자 직원이 나와 고삐를 잡아주었다.

마리메이슨 보석 상점에는 주로 기사나 귀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에 말을 관리해주는 마부가 있었다.

저벅저벅.

상점 안으로 들어가자 허리에 검을 찬 기사 하나와 드레스를 입은 귀족 부인이 보석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이 준을 보면서 말하자 기사와 귀족부인이 준을 쳐다보았다.

“금괴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있소?”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여기에선 1킬로그램 금괴 하나가 얼마나 하오?”

“100골드입니다, 손님.”

“그럼 78개만 주시오.”

“허억, 그렇게나 많이 말입니까?”

주인이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금괴 78개는 7,800골드였기 때문이다.

기사와 귀족 부인도 놀라면서 쳐다보았지만 준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보유한 금괴가 없소?”

“아, 아니 있긴 있습니다만.”

“그럼 주시오.”

“아, 알겠습니다.”

주인이 금고에서 금괴를 꺼냈다.

준은 그 금괴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법주머니 속에서 골드화를 꺼냈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내민 골드화를 세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손님.”

스윽.

준은 금괴를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뒤돌아 그곳을 나왔다.

기사와 귀족 부인은 준의 엄청난 재력에 놀라면서 문 앞까지 나와 쳐다보았다.

하지만 준은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마부가 끌고 온 브라운 종 말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다가닥, 다가닥.

얼마 후, 도시 누빅의 외성 서문으로 그가 다가왔다. 하지만 경비병들은 척 보기에도 준이 귀족 같아 보였기에 제지하지 않고 그냥 쳐다만 보았다.

경비병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밖으로 나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는다.

한편 바로 서문을 통과하고 있는 준을 쳐다보는 것은 경비병들뿐만 아니었다. 용병길드에서 피터의 지시로 미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서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중에 아침에 마주친 용병팀도 있었다.

이때 제리가 서문을 통과하는 준을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스승님, 아침에 보았던 그자예요.”

“으음, 그렇구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글쎄다. 서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니 밴코밸리로 가는 게 아닐까?”

“밴코밸리요?”

“그래. 며칠 전에 그곳에 지진이 일어나 언덕 하나가 푹 꺼졌다고 하더구나.”

“그것 때문에 저자가 거길 가겠어요?”

“그거야 모르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우리도 서둘러 용병길드로 가자꾸나.”

“예, 스승님.”

세이먼의 말에 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멀어지는 준을 향해 있었다.

두두두두!

한편 준은 말의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품종이 좋은 말이라서 그런지 달리는 속도가 빨라서 마음에 들었다.

다가닥, 다가닥.

전투마법사 세이먼과 제리가 포함된 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가르시아는 팀원들을 이끌고 도시 누빅의 외성 서문을 통과했다.

그는 현재 사람들이 길에 많이 다니고 있었기에 말을 천천히 몰아서 용병길드로 향하고 있었다.

팀의 대장인 가르시아는 B급 용병으로, 용병 경력이 12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용병대를 운영하지는 못했기에 한 달 전에 결성된 팀으로 첫 의뢰를 맡아서 잘 처리하고 이렇게 도시 누빅에 있는 용병길드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팀원인 전투마법사 세이먼은 5서클 마스터, 제리는 세이먼의 제자로, 3서클 마스터의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 중에서 딕스 포함 4명은 C급 용병으로 6년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폴은 제리와 같은 나이였지만 제리보다 5개월 늦게 태어나 팀의 막내였다.

어쨌든 폴은 D급 용병으로 용병 경력이 겨우 2년에 불과했다.

가르시아 팀이 이번에 맡았던 의뢰는 기니아 백작령의 낙후된 마을 중 하나인 케르쥬 마을을 자주 습격하는 오크와 고블린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뢰에서 전투마법사 세이먼과 제리가 큰 활약을 했다.

물론 팀원들도 시기적절하게 협공을 했기에 무사히 몬스터를 전부 소탕할 수 있었다.

가르시아 팀은 어느새 용병길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용병길드 건물 앞에는 20여 명의 용병들이 서로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가르시아를 쳐다보는 그들 중에서 건장한 체격에 등에 전투용 도끼를 멘 용병이 반갑게 소리쳤다.

“여어~ 가르시아, 오랜만이야!”

“마르스, 넌 여기 어쩐 일이야?”

“킬킬킬, 짭짤한 일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그의 말에 가르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에서 내렸다.

마르스라는 자도 가르시아처럼 B급 용병으로, 둘은 경력이 비슷했다. 다만 아직 용병대를 만들지는 못하고 20명으로 팀을 만들어 맡은 의뢰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만간 팀원이 30명으로 늘어나면 그도 용병대를 운영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르시아는 마르스를 지나쳐 용병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의 팀원들은 건물 밖에서 대기하기로 하고는 한쪽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가르시아는 길드 안으로 들어가 여직원 소피아에게 맡은 의뢰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이미 의뢰자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의뢰 잔금 5골드를 가르시아에게 주었다.

그런 다음 새로운 의뢰서를 벽보에 붙이려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에 가르시아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소피아, 그건 뭐야?”

“아, 새로 들어온 의뢰인데 해볼 생각 있어요?”

“의뢰비만 많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

“그렇다면 한번 해볼래요? 의뢰비가 무려 100골드예요.”

“100골드?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요.”

“어디 봐.”

가르시아는 소피아에게서 의뢰서를 건네받아 내용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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