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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혼돈의 히민반가르
마법지팡이 하나만 팔아도 수만 골드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도 준은 그리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라비나가 관심을 보이거나 유혹해 넘어오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관심을 보여도 넘어가지 않는 남자를 만난 것이다.
‘호호호, 이 남자를 한번 유혹해봐?’
잠시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 라비나는 준의 질문에 정신을 차렸다.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소?”
“아, 아니에요. 잘생겨서 본 거예요.”
“주문하지 않을 거요?”
“아, 그렇군요.”
스윽.
라비나가 손을 치켜들자 직원이 다가왔다.
“샐러드와 노릇하게 구워진 송아지 스테이크, 허브티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주문을 마친 라비나는 준을 힐끔거렸다.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데다 식사하는 예절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 저렇게 예법에 맞게 식사할 정도면 분명 귀족이야.’
두 사람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양이었지만 준은 그것들을 전부 먹고 허브티까지 마셨다.
라비나가 주문했던 요리가 테이블에 차려지자 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리가 맛있던데, 맛있게 드시오. 난 이만 가봐야겠소.”
라비나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준이 먼저 저쪽으로 걸어가 버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쳇, 나를 무시했어. 두고 봐!’
계산을 한 준이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자 귀족들의 시선이 그제야 그쳤다.
주위에 숨어 있던 자들이 다시 준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준이 골목길로 접어들자 미행자들이 골목길의 입구를 가로막았다.
준이 들어간 골목길은 막힌 곳이었다.
미행자들은 모두 5명이었다.
“흐흐흐, 가진 것 다 내놓아라.”
“너희는 누구냐?”
“우리의 정체는 알 필요 없고, 가진 것만 다 내놓으면 살려주마.”
“강도냐?”
“흐흐흐, 그렇다고 해두지.”
“가져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해봐.”
“순순히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공격해!”
두 명의 강도가 허리에서 롱소드를 뽑더니 사선으로 내리쳤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검술에 당할 준이 아니었다.
그는 여유로운 보법으로 칼날을 피했다.
“허엇, 제법이구나.”
쉬이잇, 파팟!
제법 날카롭게 칼날을 휘둘렀지만 옷깃조차 베지 못했다. 화가 치민 강도들은 신경질적으로 칼날을 휘둘렀다.
그조차도 여유롭게 피한 준이 마법지팡이로 강도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퍽퍽!
“아이고, 머리야!”
“아악!”
머리에 혹이 난 두 명의 강도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강도 두목의 눈짓에 구경만 하고 있던 두 명의 강도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롱소드를 뽑기도 전에 준이 그들의 뺨을 때렸다.
짜짝!
“커억!”
“아아악!”
순식간에 뺨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로 인해 화가 치민 두목이 중얼거렸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저놈 하나를 처리 못해?”
강도 두목은 롱소드를 뽑아 자세를 잡으려는데 어느새 접근한 준이 앞차기를 시전했다.
퍼억!
“우우욱!”
배에 발자국을 남긴 강도 두목은 3미터 정도를 훨훨 날아가 떨어졌다. 잠시 후 그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여기서 그만 끝내는 게 어때?”
“이, 이놈, 죽어라!”
화가 치민 두목이 날카로운 칼질을 해댔다. 하지만 준이 튕기듯 뒤로 물러나자 그만 헛칼질이 되고 말았다.
“으아아, 죽여 버리겠다!”
두목이 흥분해 달려오다가 그만 준의 발차기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이번에는 충격이 상당한 듯 일어나지 못했다.
간단하게 5명의 강도를 혼내준 준은 태연하게 골목길을 벗어났다.
‘호오, 제법인데?’
레스토랑에서 준과 합석한 라비나가 어느새 숨어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준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면서 상점가로 향했다.
저벅저벅.
막힌 골목길로 들어온 준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구입했던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좌표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주문을 중얼거렸다.
스스스슷!
갑자기 준의 모습이 허공에 흩어지듯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준이 사라진 곳에 5분도 안 되어서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조금 전 준에게 당했던 강도 일당이었다.
준이 사라진 곳을 수색했지만 준을 찾을 수는 없었다.
“놈이 어디로 갔지?”
“여기로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여긴 막다른 골목인데, 여기가 분명해?”
“분명합니다.”
“그럼 왜 놈이 없어?”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희들 나한테 거짓말하는 것 아냐?”
“아, 아닙니다.”
“으음, 그럼 놈이 마법으로 사라졌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준을 찾을 수 없자 그들은 저쪽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후 건물 옥상에서 라비나가 스윽 일어났다.
“호호호,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어. 그자가 어디로 이동했을까?”
정보 길드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그녀 역시 그곳에서 사라졌다.
스스스슷!
기니아 백작령의 도시 누빅 외곽 10킬로미터 허공의 한 지점이 이지러졌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준이 수도 세일렘에서 이동해온 것이다.
스르르, 처척!
가볍게 땅에 내려선 그는 이미 날이 저물었기에 도시 누빅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인근의 적당한 장소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길에서 제법 떨어진 평지에는 자잘한 돌멩이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야영을 하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여기가 가장 적당하겠어.”
스윽.
허리에 묶어두었던 마법주머니 속에서 게르를 꺼내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포물선을 그리면서 땅에 떨어졌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주먹만 하던 게르가 순식간에 펼쳐지면서 설치되었다. 사람들이나 몬스터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결계도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알람마법도 설치한 후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이곳에서 푹 쉬고, 내일 오전에 도시 누빅에 들어가는 게 좋겠군.”
사르륵!
준은 입고 있던 갈색 로브를 벗었다. 그러고는 욕조에 물을 채우는 동안에 옷까지 벗었다.
큰 키에 알맞게 발달된 근육들이 보기 좋았다.
환골탈태를 겪었기에 이런 최상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가능했다.
스윽.
욕조에 들어가 등을 기대면서 상체를 젖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에어풀 기능 버튼을 누르자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물 위로 올라왔다. 파도처럼 물살이 움직이면서 몸에 마사지를 해주었기에 피로를 회복하기에 좋았다.
버튼을 누르자 상자의 뚜껑이 열리면서 와인병과 와인 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유리 제품으로, 드워프만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드워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준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유리의 재료와 제조 과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마법과 염력을 동원했기에 이런 멋진 명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쪼르르!
잔에 레드와인을 부었다. 그런 뒤 잔을 흔들자 레드와인이 출렁거렸다.
일단 냄새를 먼저 맡아보고는 한 모금 입에 넣어 혀로 굴리면서 목으로 넘겼다.
“아, 맛있어. 좋아!”
스윽.
아공간 속에서 과일과 포크, 과일칼과 청화백자 접시를 꺼냈다.
기후가 따뜻한 곳이기에 대체적으로 열대과일이 많았다.
과일의 껍질을 깎은 후 청화백자 접시에 담았다. 그러고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 입에 넣었다.
와사삭!
딴 지 하루도 안 된 과일이기에 싱싱하고 당도가 높아 달고 아주 맛있었다.
준은 그렇게 모처럼 만에 찾아온 휴식을 취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와 함께 지평선 끝에 말을 탄 무리가 나타났다.
밤이었지만 하늘에 블루문이 떠 있었기에 그렇게 많이 어둡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밤에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을 이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이들은 모두 8명이었다.
갈색 로브를 입은 자가 2명에 나머지는 가죽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는 걸로 보아 용병 같았다.
선두에서 달리던 자가 손을 치켜들면서 외쳤다.
“날이 너무 어두워졌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한다.”
“알았어, 대장!”
가죽갑옷을 입은 자들 중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들은 길에서 벗어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말에서 내렸다.
가죽갑옷을 입은 용병 두 명이 일행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한 사람은 쇠말뚝을 세웠고, 나머지 한 명은 전투용 도끼의 면으로 내리쳐 쇠말뚝을 박았다.
따땅땅!
쇠말뚝 두 개를 땅에 박고는 고리를 끈으로 연결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타고 온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쇠말뚝에 잘 묶었다. 그런 다음 말에게 먼저 물을 먹이고는 말먹이를 주었다.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말들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스윽.
갈색 로브를 입은 두 명 중 한 명이 후드를 벗자 16~18세 정도의 귀엽고 예쁜 소녀의 얼굴이 나왔다.
그녀는 허리에 착용하고 있는 마법주머니 속에서 장작을 꺼내 쌓더니 나직하게 시동어를 외쳤다.
“파이어!”
화르르르.
모닥불이 피어오르자 호리호리한 용병이 모닥불로 다가와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준의 게르와 불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욕조 속에서 목욕을 하던 준은 눈을 번뜩이면서 게르 밖을 살펴보았다.
“팀을 이룬 용병들인 모양이군.”
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눈을 감았다.
따뜻한 욕조의 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용병들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모포를 깔고는 휴식을 취했다.
식사 당번은 냄비 속에 콩과 고깃덩이와 각종 채소를 집어넣고 푹 끓였다.
한참을 그렇게 끓이니 걸쭉해졌다.
“대장, 스프가 다 되었습니다.”
“폴, 수고했다.”
모두 모닥불 곁으로 모이자 폴이라는 자가 국자로 스프를 덜어 쇠그릇에 담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용병들은 옆의 동료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모두들 쇠그릇을 하나씩 손에 들고 빵을 스프에 찍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양이 적었는지 용병들은 스프를 한 그릇 더 먹었다.
모두들 스프와 빵을 다 먹자 이번에는 로브를 입은 소녀가 마법주머니 속에서 과일을 꺼내 용병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과일을 받아든 용병들은 아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귀여운 소녀의 옆에 앉아 있던 로브를 입은 자가 후드를 벗자 은색 머리가 불빛에 반짝거렸다.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60살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눈썹도 서리를 맞은 듯 하얗게 보이는 게 얼굴의 주름과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노인이 과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제리야, 블레이즈 마법은 이제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느냐?”
“예, 스승님. 아직은 연속으로는 무리이지만 한 번은 언제든 펼칠 수 있어요.”
블레이즈 마법은 회전하는 칼날을 생성해 공격하는 마법이었다.
“허허허, 열심히 하는구나. 우리 같은 전투마법사들은 사방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명심하고 있어요, 스승님.”
“허허허, 그래야지.”
이들은 서로 잡담을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잠자리에 들었다.
야영을 하면 몬스터나 누군가 접근할 수도 있었기에 불침번을 세웠다.
가장 먼저 불침번을 서게 된 사람은 식사를 준비했던 폴이었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야 하기에 동료들이 배려를 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