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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혼돈의 히민반가르
스윽.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 준은 마도시대의 유물을 연구하기 위해 책상이 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 앉았다.
샤이나의 팔찌는 은색 금속으로 된 평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지만 준은 마도시대의 유물이라고 확신했다.
오랜 세월을 이겨 오느라 팔찌의 겉과 안은 온통 미세한 흠집으로 가득했다.
그는 염력으로 팔찌를 공중으로 떠올린 다음에 마나를 주입했다.
츠츠츠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팔찌가 준의 막대한 마나를 빨아 들였다.
마도시대의 유물은 오랜 세월을 겪어오면서 소비했던 마나를 제대로 보충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준의 도움으로 오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황금색 빛에 휩싸인 마법의 룬문자가 팔찌 속에서 튀어나와 공중에서 빙글빙글 휘돌았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룬문자가 무려 천여 개가 넘었다.
룬문자가 휘도는 가운데 팔찌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온에서 금속이 녹는 것처럼 액체 상태로 변하더니 다시 스르르 변한 형태는 손목 보호대와 같았다.
빙글빙글 휘돌던 마법의 룬문자는 길게 꼬리를 물더니 손목 보호대로 스며들었다.
천여 개가 넘던 룬문자가 모두 사라지자 손목 보호대 전체에서 빛이 번뜩이다 사라졌다.
팔찌에서 손목 보호대로 변한 마도시대의 유물은 새로 만들어진 물건처럼 좋았다.
안과 겉의 표면에는 물결 문양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골렘 같은 것이 가운데 부분에 귀엽게 새겨져 있었다.
“후후후, 내 막대한 마나를 흡수하더니 이렇게 변했군?”
철컥!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자 손목이 갑자기 따끔거렸다.
안쪽에서 바늘처럼 뾰족한 무엇인가가 피부를 찌른 것 같았다.
그런 준의 느낌은 정확했다.
마도시대의 유물은 준의 피를 머금고 공명음을 토해냈다.
우우우웅!
대기가 요동치더니 준의 눈에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졌다.
마법으로 펼친 가상의 세계였다.
꽃들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느낌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이곳이 어디지?”
“이곳은 저 알렉산드라의 아공간입니다.”
스스스스!
그 대답과 함께 하늘거리는 얇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준의 앞에 나타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게 무슨 말이며, 너는 누구지?”
“이곳은 현신의 세계가 아닌 저만의 아공간이며, 저는 알렉산드라입니다.”
“흐음, 그럼 이곳이 마법으로 펼친 세상이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럼 마도시대의 유물이 자아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럼 그동안 왜 침묵했는가?”
“오랜 세월을 지나오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던 마력이 떨어져 지켜만 볼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100년만 더 흘렀다면 저도 소멸했을 겁니다, 주인님.”
“흐음, 그래서 나의 마나를 그토록 많이 흡수했던 것이군?”
“그렇습니다. 이제는 저 스스로도 마나를 충분하게 보충할 수 있게 되었기에 앞으로 주인님을 곁에서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내 수호자가 되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주인님.”
“좋아. 네 이름이 뭐라 했지?”
“알렉산드라입니다, 주인님.”
“좋아, 알렉산드라. 네가 창조된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이야기가 긴데,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 해봐.”
“예, 주인님.”
알렉산드라는 지금으로부터 일만 년 전인 마도시대의 말기 때 창조되었다.
천족과 마족의 대전쟁이 중간계에서 일어나 그야말로 대륙은 혼돈에 빠져 있었다.
마도시대에는 마법사들이 드래곤과 대등하게 실력을 겨룰 정도로 마법 실력이 뛰어났다.
물론 엘프들도 마법 실력이 뛰어났지만 인간 마법사보다는 한 수 아래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라를 창조한 마법사는 그 당시 현자로 불리던 크라이오튼이었다.
마도시대가 멸망할 것임을 이미 예상하고 있던 크라이오튼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보물과 각종 마법서를 비밀의 장소에 숨겼다. 그리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무리를 하면서까지 비밀병기를 만들어 배치해두었다.
지상에 비밀의 장소가 있으면 발견되기 쉬우므로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지하에 묻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자아를 가진 알렉산드라를 창조해 자신의 팔목에 착용하고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은 세월이 흐를수록 치열해져만 갔고, 결국 신들의 개입으로 대륙은 파멸 직전까지 몰렸다.
그때, 주신이 직접 헌신해 전쟁을 중지시켰다.
이때의 영향으로 중간계는 천족이나 마족이 절대로 헌신할 수 없었으며, 정령들까지 모두 정령계로 돌아와 중간계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신들이 사라지자 대륙은 크게 두 개로 나뉘어졌다.
마케리안 대륙과 뮤란 대륙이었다.
두 대륙은 그때부터 대해양 때문에 거의 서로 교류가 없이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서로 다른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케리안 대륙과 뮤란 대륙에는 각 종족들이 겨우 20% 정도만 흩어져 살아남았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드래곤이었다.
그들은 채 100마리가 안 될 정도로 살아남았다. 그 다음이 인간족 마법사들이었다.
고위 마법사들은 전쟁에서 모두 죽고 겨우 5서클 이하의 마법사들만 일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세월이 흐르면서 명맥이 끊어져버렸다.
엘프는 숲으로 돌아가 버렸으며, 드워프들도 광산을 개발해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때, 어둠의 마력 때문에 각종 동물들이 영향을 받아 돌연변이 몬스터가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들은 몬스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뭉치면서 부족 형태로 변했다.
그 이후 8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륙의 지배자는 몬스터였다.
인간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몬스터들 때문에 그 수가 쉽게 늘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대륙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부족 형태로 살아가던 인간족이 스스로 발전을 거듭해 첫 왕국을 건국한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대륙에는 우후죽순으로 왕국이 난립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족과 몬스터의 전쟁이 대륙 곳곳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패한 왕국은 멸망했지만 반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왕국은 계속 발전했다.
몬스터를 밀어내고 점점 세력과 지배하는 땅을 넓혀나갔다.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마케리안 대륙의 65~70% 정도는 인간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몬스터와 소수 종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마 뮤란 대륙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오게 되었다.
마도시대의 현자 크라이오튼이 창조한 알렉산드라는 대전쟁 시기에 크라이오튼이 마족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전사할 때 강력한 공격마법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었다.
창조주 크라이오튼과 같은 마법 실력을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크라이오튼이 죽고 알렉산드라도 이름 모를 땅에 묻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알렉산드라가 보유하고 있던 마나도 점점 줄어들었다.
천 년 전 폭우로 인해 알렉산드라가 땅에 들어나게 되었을 때에는 마나 보유량이 채 10%가 안 되었다.
알렉산드라를 우연히 발견한 대상이 골동품 상점에 팔았다.
그 이후 알렉산드라의 주인은 수십 번이나 바뀌었다.
마도시대의 유물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흥분하면서 알렉산드라를 소유하게 되었지만 실망한 나머지 다시 팔아버렸던 것이다.
소유자의 마나를 흡수해 보호막을 펼치는 게 전부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만 해도 마법의 아티팩트는 돈만 주면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효율성도 훨씬 좋은 아티팩트도 많았기에 굳이 마도시대의 실패작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거치면서 한 골동품 상점에서 알렉산드라를 구입해 보관하다가 세월이 흘러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
그걸 우연히 샤이나가 상점의 구석진 곳에서 발견해 구입했던 것이다.
2서클 유저인 샤이나에게서 마나를 일부 흡수한 알렉산드라는 샤이나가 위험할 때 보호막을 펼쳐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러다가 결국 준이 선물 받게 되었고, 그의 막대한 마나를 흡수한 알렉산드라가 예전의 손상된 기능을 전부 마력으로 회복하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라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난 준은 현자 크라이오튼이 모든 것을 숨겨 두었다는 비밀의 장소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라, 그럼 너를 착용했을 때 따끔거렸던 것이 주인인식이었나?”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럼 네 창조주인 크라이오튼이 숨겨 두었다는 비밀의 장소를 찾을 수 있나?”
“예, 주인님.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별자리를 보면서 작성한 지도가 아공간 속에 들어 있기에 찾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네 아공간에도 보물이 있나?”
“비밀의 장소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제법 들어 있습니다.”
“그걸 보여다오.”
“예, 주인님.”
츠츠츠츠.
알렉산드라는 준에게 보물창고를 보여주었다.
마도시대 때 사용되었던 금화와 은화, 각종 보석이 수십 톤은 되어 보였다.
또한 각종 서적과 마법서, 무기류와 갑옷도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마법의 아공간 속에 잘 보관되어 있었기에 녹도 슬지 않아 새 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준은 예전에 드래곤 레어를 턴 적이 있었다. 이 아공간이 그곳보다는 못해도 약 오분지 일 정도는 되었다.
마도시대의 물품은 지금도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만약 경매에 마도시대의 보물을 내놓는다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