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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혼돈의 히민반가르
준이 피식거리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선보이자 허공에 떠 있는 얼음이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다.
샤이나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후후후, 무척 신기할 거야.’
준은 그 얼음을 염력으로 움직여 유리잔 속으로 집어넣었다.
끝으로 손을 휘휘 돌리자 유리잔 속에 들어 있는 얼음 조각과 과즙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 잘 섞였다.
“네 것도 만들었으니 먹어.”
“예, 감사합니다.”
준은 시원한 과일주스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그동안 수련하느라 먹지도 못했었기에 배가 많이 고팠던 참이었다.
“어때, 먹을 만한가?”
“예, 너무너무 맛있어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준은 그동안 샤워를 못했기에 몸과 입고 있는 옷이 지저분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마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클리어!”
스스스스.
간단한 시동어만으로 몸이 샤워를 한 듯 깨끗해졌고, 입고 있는 옷도 새 옷처럼 깨끗해졌다.
“아, 마법으로 간단하게 그런 걸 하다니 존경스러워요.”
“너를 보니 2서클 유저인 모양인데 앞으로 노력하면 나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도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나는 게르를 철거하고 여길 떠날 건데, 넌 어떻게 할 거야?”
“저도 이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로베르타 자작령 기병들이 주위를 포위한 상태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처리해주마.”
“정말 그렇게 해주실 거예요?”
“그래. 나를 만난 기념으로 약간 도와주마.”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고개를 끄덕인 준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샤이나는 입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고 빨아두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겉에는 갈색 로브를 걸쳤다.
준이 먼저 게르 밖으로 걸어 나가자 샤이나도 따라 나갔다.
스윽.
준이 게르를 향해 손짓하자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게르가 순식간에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 손바닥 정도 크기까지 줄더니 스르르 허공에 떠올라 준에게 날아왔다.
준은 그것을 허리에 묶어놓았던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후작님, 그거 너무너무 신기해요.”
“그런가? 내가 만들었지만 아주 편리하긴 하지.”
샤이나도 그건 인정했다.
처음 보는 욕조를 사용했을 때 얼마나 편하고 좋았던가?
결계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로베르타 자작령 기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결계 밖에서는 절대 안을 볼 수가 없었다.
“저들을 내가 처리할 테니 넌 여기에 있거라.”
“혼자서는 무리예요.”
“나는 절대로 허튼 소리할 사람이 아니다. 잠자코 지켜보거라.”
“예, 알겠어요.”
저벅저벅.
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결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갑자기 결계 속에서 준이 걸어 나오자 주변에 있던 로베르타 자작령 기병들이 달려와 포위했다.
기병대장인 파르코가 소리쳤다.
“넌 누구냐!”
“너희는 그것을 물을 자격이 없다.”
준의 건방진 대답에 파르코는 화가 치밀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갑자기 결계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한다는 대답이 그것이었으니 건방진 것을 넘어 오만하게 느껴졌다.
“네 이놈, 너는 우리가 누군 줄 아느냐?”
“후후후, 로베르타 자작령의 기병들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단 말이냐? 어서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후후후,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저놈을 잡아라!”
“예, 대장님!”
대답한 두 명의 기병이 준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들이 정말 가소롭게만 느껴졌기에 준은 다가오는 자들에게 파리를 쫓듯 손바닥을 흔들었다.
“커억!”
“아아악!”
그들의 몸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이내 비명을 지르면서 훨훨 7미터 정도를 날아가 처박혔다.
기병대장 파르코를 비롯해 누구도 준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날려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이 본 것은 손바닥을 가볍게 흔든 것뿐이었다.
겨우 손바닥을 한 번 흔든 것으로 기병 두 명이 날아가 떨어 졌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이게?”
“마, 말도 안 돼!”
기병들이 공황상태에서 미처 빠져나오기도 전에 준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펼쳐졌다.
짜짜짜짝!
경쾌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기병들의 한쪽 뺨에 붉은 손도장이 찍혔다. 그러자 그들은 훨훨 날아가 떨어졌다.
얼마나 손속이 빠르고 정확한지 나머지 56명이 전부 순식간에 당해 쓰러졌다.
기절한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끄응.”
잠시 후, 큰 볼일을 보는 건지 입에서 힘겨운 소리를 내뱉으며 기병들이 하나 둘씩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상대가 무시무시한 무력을 가진 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 손에 죽기 전에 어서 돌아가라, 어서!”
“…….”
기병대장 파르코를 비롯한 나머지 기병들은 재빨리 말에 올랐다.
두두두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그렇게 도망쳐버렸다.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기에 가볍게 훈계하고 보내준 것이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샤이나는 준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샤이나가 자신의 말을 이끌고 결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저, 죄송하지만 영지까지만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데려다만 주신다면 이것을 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그녀가 팔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보여주었다. 마도시대의 유물이었다.
“귀한 물건인데 나에게 줘도 괜찮겠느냐?”
“예, 영지까지만 데려다주시면 드릴게요.”
영지까지 돌아가려면 적어도 말을 타고 3일은 달려야 했다.
그녀는 영지로 가는 동안에 준에게서 마법에 관해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팔찌는 우연한 기회에 얻은 것인 데다 큰 효용 가치도 없어 보였기에 그렇게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준은 마도시대 유물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이 이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니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좋다. 영지까지 데려다주겠다.”
“정말이에요?”
“그렇다.”
샤이나는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스윽.
준은 허리에 묶어두었던 마법주머니 속에서 양피지 지도를 꺼냈다. 그런 다음 그것을 펼쳐 들고 샤이나에게도 보여주었다.
“이곳이 영지가 맞느냐?”
“예, 맞아요.”
“알았다. 그럼 눈을 꼭 감아라.”
“왜요?”
“너를 바로 데려다주려고 그러는 것이다.”
“제법 먼 곳인데 가능해요?”
“나를 믿고 눈을 감아라.”
“예, 알겠어요.”
그녀는 말의 눈을 손으로 가린 뒤 자신의 두 눈도 꼭 감았다.
이를 확인한 준은 샤이나의 손과 말을 잡고 시동어를 외쳤다.
“순간이동!”
번쩍!
준과 샤이나는 빛에 휩싸이더니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곳은 양피지 지도에서 본 그 장소로, 영주성에서 불과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한 가지 의외의 상황이라면 땅이 아니라 100미터 높이의 공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준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스스!
손짓 한 번에 그들은 가볍게 땅으로 내려섰다.
“자, 이제 눈을 뜨거라.”
준의 말에 샤이나는 눈을 떴다.
“아, 여긴?”
“그렇다. 네가 말한 그 영지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그녀가 서 있는 땅은 팔레인 남작령이었다.
“이렇게 바로 이동하다니…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는 각별히 조심해서 다니거라.”
“예, 알았어요. 아! 그리고 약속한 팔찌, 받으세요.”
스윽.
샤이나는 팔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벗어 준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대로 팔찌를 받았으니 나도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마.”
“선물이요?”
“그래. 이것을 받거라.”
준이 내민 것은 3서클 마법서였다.
“이건?”
“그래. 3서클 마법서다.”
“이걸 정말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래. 열심히 익히거라.”
“예, 감사해요. 꼭 익힐 거예요.”
“이제 그만 가보거라. 나도 이곳을 떠나야겠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구나.”
샤이나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잠시 후 준의 모습이 먼지가 흩어지듯 흩어져버렸다.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던 샤이나는 뒤돌아 말에 올라 영주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
사실 준은 순간이동 마법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투명화 마법으로 모습만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샤이나를 쳐다보던 준은 하늘로 떠올라 북쪽을 향해 새처럼 날아갔다.
북쪽은 자신의 영지인 엘도라도가 있는 곳이었다.
쉐에에엑!
북쪽 하늘을 새처럼 날아가던 준은 날이 저물어오자 대지에 내려섰다.
처척!
주위를 살펴보니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엘도라도에 바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샤이나에게서 얻은 마도시대의 유물이 자꾸만 신경 쓰여 그것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게르가 순식간에 설치되었다. 몬스터나 불청객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결계도 설치했다.
“흐음, 이 정도면 오늘밤은 방해를 받지 않고 연구할 수 있겠군.”
결계의 영향으로 게르가 설치된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법 실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면 절대 이곳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샤이나처럼 혹시 마도시대의 아티팩트라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것만 보아도 마도시대의 유물이 얼마나 마법적으로 뛰어난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저벅저벅.
게르 속으로 들어간 준은 먼저 요리를 만들어 배불리 먹고는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배불리 먹고 목욕까지 했더니 몸이 나른해졌다.
오늘밤에는 연구할 것이 있었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왕대심공을 운용했다.
대주천을 한 번 시전한 것으로 몸의 피로도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후후후, 역시 천왕대심공은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