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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202화 (20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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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혼돈의 히민반가르

활활활.

모닥불이 타오르자 천막 안이 훈훈해졌다.

연기는 신기하게도 천장에 매달려 있는 고깔 모양의 장신구 속으로 스르르 들어가더니 사라져버렸다.

원래는 천막속이 온통 연기로 가득차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게 만들어주는 이런 시설도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꼬르륵!

갑자기 배에서 소리가 나자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조리 기구가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걸어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제법 큰 상자가 있었기에 열어보니 채소와 과일, 고기 등 식자재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상자가 냉장고라는 것을 그녀가 알 리 없었다.

이렇듯 식칼과 조리 기구, 식자재 등 모두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불이 없었다.

그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선반에 놓여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사각형의 금속판을 발견했다.

“혹시 이게 불을 일으키는 물건이 아닐까?”

여자는 혹시나 하면서 냄비를 금속판 위에 올려놓고 두 개의 버튼 중 하나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금속판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불은 없었지만 열기가 제법 높았기에 충분히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옆의 버튼을 누르자 열기가 점점 약해졌다.

그것으로 버튼의 용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열기를 일으키는 것이고, 나머지 버튼은 열기를 줄이는 것이었다.

크게 보면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놀라운 것들뿐이었다.

그녀는 요리를 만들어 배불리 먹었다.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 쉬고 있다가 갑자기 기병들이 궁금해져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결계 밖에서는 기병들이 주변을 포위한 채 모닥불을 피워 스프를 끓이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계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호호호, 역시 대단한 결계였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다시 천막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목욕도 하고 음식도 배불리 먹었더니 졸음이 밀려왔다.

대형 침대도 마련되어 있었기에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포근하고 편해 금방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렇게 이상한 천막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게르의 천장 부분에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와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침대에서 잠을 자던 여자가 햇볕이 얼굴을 비추자 눈을 떴다.

“으하암, 벌써 아침이야?”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여자, 아니 샤이나는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은 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욕조로 걸어가 간단하게 세수부터 하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룰룰루, 아침은 어떤 것으로 만들어 먹나?”

콧노래를 부르면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붉은색의 타원형 조각상에서 공명음이 터져 나왔다.

우우우웅!

워낙 강력한 기운이라 대기가 요동쳤다.

“허억, 이게 무슨 현상이지?”

요리를 하다가 당황한 그녀는 조각상으로 달려왔다.

붉은색 타원형 조각상의 표면이 갑자기 휘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샤이나는 깜짝 놀랐다.

기이한 조각상이라 생각은 했지만 신기한 현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붉은색 연기가 조금씩 허공으로 흩어지면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아, 눈부셔!”

그녀는 너무 눈이 부셔서 팔을 들어 눈을 막았다.

게르 안이 온통 강렬한 빛에 휩싸이다가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붉은색 타원형 조각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준이었다.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던 스피어 바나리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나리르의 아공간 속에서 수련을 해 바나리르의 기운을 일부 흡수했던 것이다. 때문에 신의 아티팩트 바나리르는 그의 몸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언제든 의지력을 끌어올리면 그의 손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다.

번쩍!

준이 눈을 뜨자 안광이 순간적으로 2미터나 튀어 나왔지만 눈을 한 번 깜빡거리자 거짓처럼 사라져버렸다.

굳게 다물려 있던 준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강인한 남자의 느낌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은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저, 그게 말이죠…….”

샤이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었다.

또한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으며, 양 볼도 붉게 물들었다.

“…….”

준은 황당한 상황에 멍한 표정이 되었다.

드래곤이 아니고서는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결계를 설치해두었는데 어떻게 여자가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준의 눈에 들어온 것이 흰 목욕 가운이었다.

목욕 가운은 준이 목욕을 끝마치고 입는 것이었다.

스윽.

준이 샤이나의 전신을 순간적으로 살펴보다가 팔목에 착용하고 있는 은색 팔찌를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고 특이할 것 없어 보이던 은색 팔찌였지만 준은 마도시대의 아티팩트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제야 결계를 통과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었다.

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샤이나가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마도시대의 아티팩트를 차고 있다니 놀랍군.”

“허억, 그, 그걸 어떻게?”

샤이나는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멈추었다.

이제까지 자신의 팔목에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가 마도시대의 물건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그녀도 우연한 기회에 찾아내어 착용한 것이었다.

두리번두리번.

준은 우선 주위를 살펴보았다.

게르와 결계가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

의지력을 일으키면 물체를 투과해 원하는 것을 전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계 밖에는 가죽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검을 찬 무장한 병사들이 있었다.

아침을 준비하는지 모닥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은 것도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결계를 포위한 상태였다. 인원을 세어보니 58명이었다.

준의 귀로 샤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정체가 뭐예요? 인간이 맞아요?”

“후후후, 네 눈에는 내가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가 보군?”

“그, 그건 아니에요.”

“나는 바렌왕국의 프리맨 후작이라 한다. 이제 너의 정체를 말해봐.”

준이 말을 놓았지만 아주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위엄까지 느껴졌다.

“아, 엘도라도!”

“엘도라도를 알고 있나?”

“예, 살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으음, 하긴 이곳에서 엘도라도까지는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니 소문을 들을 수도 있었겠구나.”

샤이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신의 정체를 말하기 시작했다.

“예, 후작님. 저는 로타스 왕국의 팔레인 남작의 딸인 팔레인 폰 샤이나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귀족처럼 느껴졌다. 팔레인 남작령은 이곳에서 먼 곳인가?”

“아니에요. 이곳 레츠 산은 로베르타 자작령에 속해 있지만 아빠의 영지는 바로 옆 영지로, 정확하게는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로베르타 자작령의 영주성이 있는 도시에 인근에서 가장 큰 서점이 있어요. 거기에 들러서 3서클 마법서 한 권을 사가지고 돌아가다가 로베르타 영지 기병들에게 쫓기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고요.”

“로베르타 자작령에는 혼자 온 건가?”

“아니에요. 호위병으로 기병 20명을 데려왔었는데, 로베르타 영지 기병들과 싸우다가 죽었어요. 겨우 살아남은 저만 기회를 틈타 도망쳐 이곳까지 온 거예요.”

“그렇군. 그런데 로베르타 자작의 영지 기병들이 너를 왜 사로잡으려는 거지?”

“최근 로베르타 자작과 아빠와의 사이가 좋지 못해요. 어쩌면 영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시기인데, 마법서를 한 권 구입해서 그날 바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에 그만.”

“으음, 로베르타 자작이 너를 인질로 사로잡으면 영지전에서 유리하겠군?”

“예, 그런 것 같아요.”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보지. 두 영지 간에 왜 사이가 좋지 못한 건가?”

“두 영지의 경계 지점에는 펠라 강이 흐르는데, 그 지역의 땅은 비옥해서 농사가 잘돼요. 그런데 석 달 전에 마적단이 습격해와 로베르타 자작령의 마을에 큰 피해를 입혔어요. 아빠의 영지는 다행히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로베르타 자작이 우리를 의심해요.”

“으음, 그거야 조금만 조사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억지를 부리는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샤이나에게서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작님, 어디 가세요?”

“배가 고파서 요리를 만들어 먹으려고 해.”

샤이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요리 만드는 곳에는 샤이나가 아침을 만들어 먹으려고 꺼낸 식자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곳이 왜 이렇지?”

“죄송해요. 제가 요리를 만드느라…….”

샤이나는 고기와 야채를 넣고 볶으려다가 대기가 요동치기에 달려왔던 것이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그는 프라이팬을 집어 들고 기름을 두른 뒤 한쪽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허공에서 소고기를 꺼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양념과 향신료까지 하나씩 꺼내더니 손짓했다. 그러자 고기와 양념이 서로 뒤섞였다.

염력을 일으켜 버무린 것이다.

그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샤이나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후작님은 마법사세요?”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법은 펼칠 수 있지.”

“정말 대단하세요.”

샤이나가 대답하는 동안 준은 소고기 주물럭을 프라이팬에 넣었다.

치이이이!

듣기에도 정말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났다.

금방 소고기 주물럭을 볶은 그는 이번에는 다른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른 뒤 식빵을 넣고 살짝 구웠다.

샤이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나리르의 기운을 일부 흡수했기에 준은 그만큼 더 성장해 있었다.

이제는 의지력만으로 아공간을 직접 열지 않고 이렇게 가볍게 손짓만으로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샤이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에는 염력으로 야채를 순식간에 잘게 잘라 특제소스로 버무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스르륵!

두 가지 과일을 허공에서 꺼냈다.

허공에 떠 있는 과일이 스스로 옷을 벗는 것처럼 그렇게 껍질이 벗겨졌다.

준이 손가락을 움켜쥐는 모습을 취하자 과일이 압축되면서 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한 장면에 샤이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다.

손짓 한 번만으로 유리잔에 과일즙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후후후, 그냥 마시는 것보다는 시원하게 마시는 게 좋겠지?”

“예? 그, 그럼요.”

츠츠츠츠.

갑자기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이 허공의 한곳으로 뭉치면서 주먹만 한 크기의 거대한 물방울로 형성되었다.

쩌쩌쩡!

그 물방울이 갑자기 얼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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