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99화 (19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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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혼돈의 히민반가르

레츠 산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이곳에도 곧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준은 손쉽게 얻은 바나리르를 손에 들고 석양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산속이라서 그런지 해가 빨리도 지는군.”

그러고는 허리에 매달아 놓았던 마법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평평한 곳에 가볍게 던졌다.

촤르르르!

그것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곧 천막으로 변했다. 몽골식 천막인 게르였다.

준은 야영을 할 때면 항상 게르를 이용했다. 아주 편리하기 때문이다.

게르 속에 필요한 야영 장비가 모두 들어 있었기에 도시의 호텔보다 더 아늑하고 좋았다.

바나리르를 찾아냈던 노상온천 저수지에서 불과 15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게르가 설치되었다.

그는 몬스터나 누군가 접근하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알람마법과 결계를 설치한 뒤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자, 게르도 설치되었으니 모처럼 요리나 한번 만들어 먹어볼까?”

바나리르를 한쪽에 놓아두고 먼저 모닥불부터 피우기 위해 한쪽에 쌓아두었던 장작을 가져와 불을 피우기 좋게 놓았다.

츠츠츠.

그런 뒤 마나를 손끝으로 끌어 모아 장작을 가리켰다.

화르륵!

그러자 순식간에 장작에 불길이 일어나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게르의 천장의 마법등 옆에 모빌처럼 매달려 있는 주먹만 한 고깔 모양의 장신구로 빨려 들어갔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모습과 유사했다.

놀라운 것은 매운 연기가 고깔 장신구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가 다시 나오자 신선한 공기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공기청정기와 같은 기능을 가진 고깔 장신구였다.

공기의 오염 물질이 신선한 공기로 정화되어 다시 내뿜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원래 공기 청정기는 먼지와 꽃가루, 애완동물의 털, 곰팡이 포자, 집먼지진드기의 배설물 같은 것들을 제거해주는 물건이다.

이런 오염물들은 기관지나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준이 개발한 고깔 장신구는 마법의 아티팩트로, 공기 청정기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이다.

이것은 대기의 각종 오염 물질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며, 신선한 공기로 바꾸어주기 때문에 게르안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더라도 언제나 신선하고 좋은 공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마치 깊은 산속에 있는 것처럼 신선한 공기로 정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인 것이다.

활활활.

모닥불이 타오르자 게르 안이 훈훈해졌다.

스윽.

준은 룬문자가 빼곡히 새겨진 정사각형 금속판을 3개나 테이블에 차례대로 내려놓았다.

좌측 금속판 위에는 냄비를 올리고 물을 부었다.

불길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금속판에서 고열이 내뿜어지고 있었기에 충분하게 요리가 가능했다.

중앙 금속판 위에 씻은 쌀의 양에 맞게 조절한 물을 담은 냄비를 올리고 뚜껑을 덮었다. 마지막 우측 금속판 위에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념한 소고기를 넣었다.

치이이이.

듣기에도 맛있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양념 소고기를 맛있게 잘 볶아 접시에 담았다.

과일과 야채를 넣은 샐러드에는 특제소스를 뿌리자 더욱 상큼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 다음으로 예전에 잡아 아공간 속에 저장해 놓은 물고기를 꺼내 칼집을 내고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어 찜솥에 넣었다. 맛있는 생선찜 요리를 해먹으려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칼집을 낸 생선에 천일염을 뿌려 석쇠에 올리고, 모닥불에서 숯불을 몇 개 꺼내어 노르스름하게 잘 구웠다.

이렇게 혼자서 요리를 해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준은 전혀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겼다.

그렇게 모든 식사가 준비되자 테이블에 잘 차렸다.

“자, 이제 마음껏 먹어야지.”

후루룩, 쩝쩝.

고위 귀족인 후작의 작위를 가진 준이었지만 지금은 게르 속에서 혼자 야영을 하고 있었기에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귀족의 식사 예절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는 게걸스럽게 잘 구운 생선을 양손으로 잡고 맛있게 뜯어 먹었다.

서너 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한 양이었지만 식성이 좋은 그는 혼자서 다 처리했다.

그런 뒤 입 안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 입가심으로 녹차를 마셨다.

“커억, 아, 잘 먹었다!”

잘 먹은 요리를 소화시키기 위해 직접 설거지를 했다.

마른 천으로 깨끗해진 접시의 물기를 제거한 후 한쪽에 놓고는 아공간을 열어 그 속에 집어넣었다.

“이젠 연구 좀 해볼까?”

식사 후 마무리를 모두 끝낸 그는 한쪽에 놓아두었던 불의 기운을 가진 바나리르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은빛이 번뜩이는 창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전체가 미스릴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대단한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창 자루에 온통 룬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음? 분명 처음에는 룬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스윽.

창을 잡고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바나리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츠츠츠츠.

이내 창에 새겨져 있던 룬문자가 다시 드러났다.

“후후후, 그럼 그렇지.”

준은 정밀하게 룬문자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을수록 눈이 점점 커졌다.

9서클 마스터에 오른 그였기에 마법에 관해서는 정점에 올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여기에 새겨져 있는 룬문자를 해독해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바나리르에 새겨져 있는 룬문자는 대단했다.

“으음… 신의 아티팩트는 정말 대단하구나.”

준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3개의 신의 아티팩트보다 이 바나리르의 수준이 한 단계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괴되거나 죽어가는 것을 소생시키는 기운을 가진 벤겔미르가 가장 낮은 수준이고, 그 위의 것이 바람의 기운을 가진 벤뵤르그였다. 다음이 눈과 얼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빌헤임, 그 위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불의 기운을 가진 바나리르였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혼돈의 힘을 가진 히민반가르가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수준이 높은 신의 아티팩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현재 준이 가진 것 중에서는 바나리르가 가장 뛰어난 물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준은 모닥불을 먼저 끈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의 기운을 가진 바나리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먼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준은 마력을 끌어올려 물리적인 충격에도 끄떡없는 강력한 마력장을 펼쳤다.

츠츠츠츠.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보호막보다 수십 배는 더 견고한 마력장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두 눈을 감고 호흡을 하던 그는 바나리르를 양손으로 잡고는 창대에 새겨져 있었던 마법주문을 중얼거렸다.

우우우웅.

갑자기 공간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엄청난 마력과 공명한 마법주문의 영향 때문이었다.

붉은빛의 안개가 공중에 생성되더니 스르르 준의 곁으로 이동했다.

츠츠츠츠.

붉은빛의 안개는 그를 중심으로 회오리를 일으켰다.

콰콰콰콰!

붉은빛의 안개가 회오리바람처럼 주위를 휘돌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강력하게 휘돌던 회오리바람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추었고 그 자리에는 붉은빛의 안개막이 생성되어 있었다.

준의 몸은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지만 정신은 육체를 벗어나 바나리르의 마법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으음, 여긴 어디지?”

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기둥이 세워진 웅장하며 거대한 신전 같은 곳이었다.

지름이 5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대리석 기둥은 무려 100미터가 넘게 솟아 있었다.

표면에는 불꽃 형상의 무늬와 바나리르의 창대에 새겨져 있는 것과 유사한 룬문자가 거대한 크기로 새겨져 있었다. 이런 것이 무려 12개로, 원을 그리듯이 배치되어 있었다.

천장은 없고 바닥도 불꽃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전 가장자리에는 투명한 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전 밖을 바라보니 신전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인지 세상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공간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고열로 인해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같은 것만 보였다. 마치 지옥 불로 이루어진 세상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난 열기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아 아마 투명한 막이 열기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저벅저벅.

준은 신전의 가장자리로 걸어가 보았다.

스윽.

투명한 막에 손을 대보니 마치 물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투명한 막 밖으로 미처 손이 빠져나가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투명한 막 밖의 공간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열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역시 이 투명한 막이 열기를 막고 있었구나.”

우우우웅.

공간이 이지러지는 것을 보니 엄청난 것이 나타나려는 모양이었다.

스스스슷.

얼마 후 신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이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2미터 정도 되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신이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전설 속에 나오는 불 속에서 산다는 불도마뱀, 살라만드라와 유사해 보였다.

그 존재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준을 쳐다보았다.

“너는 누구지?”

“나는 신들로부터 자아를 부여받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불의 기운을 가진 존재다.”

“그래? 이름은 없어?”

“있다, 소유자여. 신께서 나에게 주신 이름은 바나리르라 한다. 나를 소유한 자가 그대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소유자의 이름은 뭐지?”

“난 준이라 한다. 허나 주로 프리맨이라고 불리지.”

“그렇군. 나의 소유자 프리맨이여, 너에게서 아주 친숙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바나리르, 그게 무엇인지 알겠어?”

“당연히 알고 있다. 파괴되거나 죽어가는 것을 소생시키는 기운을 가진 벤겔미르, 바람의 기운을 가진 벤뵤르그, 눈과 얼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빌헤임이 그것이다.”

“역시 대단해.”

“인간족이 어떻게 하나도 아니고 신의 아티팩트를 무려 3개씩이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

“그거야,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으음, 그럴 수도 있겠어. 수많은 소유자들 중에서 네가 가장 뛰어난 것 같군.”

“내가 정말 그렇게 뛰어난 거야?”

“그렇다. 나를 소유하려고 했던 자들 중에는 드래곤도 있었고, 마족도 있었다. 물론 인간족의 인간들도 있었지만 네가 단연 최고다.”

“칭찬 고맙다, 바나리르.”

“이곳은 나의 공간. 너와 나는 이제 하나로 묶이게 된다. 그 증표로 너의 몸에 불꽃의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질 것이다.”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소유자여, 먼저 권능의 증표가 몸에 새겨지면 불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과 그 힘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

준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왼쪽 가슴이 화끈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츠츠츠츠.

피부는 멀쩡했지만 엄청난 뜨거움이 느껴졌고, 그렇게 불꽃모양의 문신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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