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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권 공포의 암흑군대
“이…이게 어찌된 일이지?”
아직까지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점점 더 어지러웠다.
“흐흐흐, 그만해도 충분해, 홀드 퍼슨!”
츠츠츠츠.
보이지 않는 마법의 영향으로 글리아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흐흐흐, 빠져나올 수 없으니 그만해.”
“이익, 이까짓 것쯤이야.”
쩌쩌쩡, 파삭!
믿을 수 없게도 제압된 몸의 마력이 깨져버렸다.
“우우, 믿을 수 없군. 슬립!”
츠츠츠.
비에드가 이번에 펼친 것은 깊은 잠에 빠뜨리는 마법이었다.
그녀는 눈꺼풀이 무거워지자 정신력으로 이겨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흐흐흐, 정말 대단해. 슬립, 슬립!”
츠츠츠츠.
연속으로 시전된 수면 마법에 글리아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니, 쓰러지려고 하는 것을 비에드가 붙잡아 안아 들었다. 완전히 수면 마법에 빠져버린 것이다. 마법과 검술 실력이 뛰어난 그녀였기에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리 없었지만 약물에 중독되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흐흐흐, 너무 아름다워.”
비에드는 글리아나의 뺨을 만지작거리더니 품속에서 팔찌를 하나 꺼내었다. 전체가 은색이었으며 뿔이 두 개나 돋아난 마왕의 얼굴상이 있는 독특한 팔찌였다.
찰칵!
팔찌가 글리아나의 손목에 채워졌다.
번쩍!
팔찌에서 빛이 번쩍이다가 순간 사라졌다.
“흐흐흐, 이제 내가 팔찌를 풀어주기 전에는 절대로 마법을 펼칠 수 없다. 이동!”
영주 집무실에서 비에드는 글리아나를 안아들고는 순간이동으로 사라져버렸다. 마력장이 펼쳐져 있었기에 아무도 글리아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똑똑.
“주모님, 헌트입니다.”
노크와 함께 헌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상한 느낌에 헌트가 즉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글리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책상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는 흩어진 서류들과 찻잔이 놓여 있었다.
“응? 이…이것은?”
찻잔에 약간 남아 있는 찻물에 미세한 냄새가 맡아졌다.
땡땡땡땡!
즉시 비상이 내려지자 조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글리아나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쌔신이나 누군가 들어온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 찻잔 속에는 약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침통한 표정이 된 헌트와 하그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헌트 형님, 주군께 보고를 올려야겠습니다.”
“으음, 누군지 모르지만 주군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걸까?”
헌트와 하그리는 준을 떠올리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보통 때에는 다정다감한 주군이지만 분노하게 되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헌트는 품속에서 마법통신구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문을 중얼거리자 마법통신구 속에 준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헌트, 무슨 일이냐?”
“주군,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무슨 일인지 말해보거라.”
“주모님께서 실종되셨습니다.”
“뭐? 글리아나가?!”
“그렇습니다, 주군.”
“너희들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냐!”
“죄…죄송합니다, 주군. 저희의 불찰입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자세하게 설명해보거라.”
“예, 주군.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헌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전부 보고했다.
“10분 이내로 그곳으로 갈 것이니 현장을 그대로 보존시켜놓아라.”
“예, 주군.”
파파파팟!
그 말을 끝으로 마법통신구에서 준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우우우웅.
공간이 심하게 요동치며 이지러지더니, 공간 속에서 튀어나온 그것은 순식간에 형체를 이루었다.
“주군!”
헌트와 하그리가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엘도라도 영주성의 영주집무실. 갈색 로브를 입은 준은 그들과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안의 공기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준이 약간의 마력을 내뿜었을 뿐인데도 헌트와 하그리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주군!”
“크으으, 죽여주십시오. 주군!”
“됐느니라. 내가 처리하겠다.”
영주집무실을 두리번거리던 준은,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자세히 살피자 헌트가 발견한 대로 찻잔에 약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후후후, 넬가르의 즙과 수면가루가 섞여 있군.”
넬가르의 즙은 마법사들의 마법을 일시적으로 펼치지 못하도록 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었고, 수면가루는 말 그대로 잠에 빠지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는 가루였다.
“시간의 정령이여, 내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소서.”
츠츠츠츠.
준의 두 눈이 붉게 물들면서 혈광이 내뻗어지더니, 영주집무실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의 눈앞에 자세히 펼쳐졌다.
“후후후, 네놈이 나의 글리아나를 납치해갔단 말이지? 좋아, 얼마나 능력이 있는 놈인지 볼까? 킹레이븐아 나오너라!”
스스스스.
그의 부름에 까마귀와 흡사하지만 독수리만한 크기의, 커다란 부리를 가진 검은 새가 나타났다.
“나의 글리아나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라.”
푸드드득.
영주집무실의 창문을 벗어나 하늘로 순식간에 날아오른 킹레이븐은, 하늘을 빙글빙글 돌더니 남쪽으로 날아갔다.
그것을 확인한 준이 앞으로 몇 발짝 떼자, 엎드려 있던 헌트와 하그리가 동시에 말했다.
“주군, 저희들도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너희들은 그냥 영주성이나 지키고 있거라.”
“아, 아닙니다. 주군, 이번만큼은 저희들도 꼭 따라가고 싶습니다.”
“으음. 좋다, 따라와라.”
“감사합니다. 주군!”
말을 마친 그들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편, 영주성에는 비상이 내려져 무장한 영지병들은 순찰을 강화했다.
하늘 높은 곳을 날아가는 킹레이븐의 두 눈은 붉게 물든 채로, 글리아나의 기운을 느끼면서 빠르게 남쪽으로 날아갔다.
마일드 상단으로 돌아온 비에드는 글리아나를 침대에 눕혔다. 잠에 빠져 있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잠시 감상하던 비에드는 서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스윽, 슥슥!
그는 글리아나의 뺨을 만지면서 세상을 다가진 듯 행복한 표정이었다.
“흐흐흐,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정도군.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야.”
킹레이븐은 마일드 상단을 찾아냈고, 비에드의 마차가 바라보이는 곳의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뚫어지도록 비에드가 타고 있는 마차만을 바라보았다.
스스스스.
곧 공간이 이지러지면서 준과 헌트, 하그리가 나타났다.
“수고했다. 킹레이븐, 나중에 부를 테니 그만 돌아가거라.”
고개를 끄덕인 킹레이븐은 흩어지듯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워낙 은밀하게 나타났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한 사람만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흠칫!
글리아나의 아름다움을 감상 중이던 비에드는, 눈썹을 꿈틀 거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준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흐흐, 대단한 실력을 가진 모양인데 그만 정체를 드러내라.”
“네놈이 주모님을 납치했구나.”
“호오? 이게 누구신가?”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온 하그리를 발견한 비에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으음, 어떻게 이곳까지 추격해 온 거지?”
비에드가 글리아나를 납치해온 것은 불과 1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영주성과 족히 15킬로미터는 떨어진 이곳까지 어떻게 추격해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려온다 해도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으음, 어떻게 이곳까지 추격해 온 것이지?”
스르릉.
하그리는 대답하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는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강한 기운이 내뿜어지는 하그리를 쳐다본 비에드는 긴장했다. 사제인 소드 마스터 레드 데빌과 비교해도 전혀 약하지 않은 강자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꿀꺽!
비에드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쉬이잇, 파팟!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하그리는 번개의 검술로 비에드를 세 번 찔렀다. 눈 한번 깜빡할 만한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비에드가 상체를 뒤로 젖힌 뒤 다시 좌우로 상체를 흔들어 그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는 것이었다.
“흐흐, 정말 대단하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날 어쩌지 못해.”
“이놈, 죽여 버리겠다. 핫!”
하그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면서 롱소드를 휘둘렀다.
쉬이잇.
날카로운 롱소드의 검날이 파공음과 함께 비에드의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파앗.
비에드는 발뒤꿈치로 땅을 박차고 튕기듯 뒤로 물러나면서 하그리의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양손을 앞으로 주욱 내밀었다. 그러자 비에드의 양손바닥에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들려져 있었다.
슈아아앙.
파공음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불덩이가 하그리의 가슴 앞으로 날아왔다. 시기적절한 공격이었다.
슈가가각!
하그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롱소드를 휘둘러 날아오는 불덩이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마나에 수식과 의지가 담겨있는 마법의 불덩이가 겨우 칼질 한 번에 두 동강 나자 비에드의 눈이 크게 뜨였다. 보통 불덩이가 폭발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냥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으음,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 블레이즈!”
회전하는 거대한 마법의 칼날 하나가 허공에 생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