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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바렌 왕국뿐만 아니라 마케리안 대륙 전체를 보더라도 평민과 그 이하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나마 좋은 영주를 만나면 소득의 약 60~70% 정도를 내면 되지만 악독한 영주를 만나면 세금이 무려 80%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사실상 굶어죽지 않고 한해를 넘기면 다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준의 엘도라도는 세금이 고작 20%에 불과했다. 거리다 농사 일 외에도 일거리가 다양하고 많아서 언제든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돈을 모으고 잘살 수 있었다. 때문에 엘도라도에서는 어느새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게 정상이 되었다. 그러니 유민들이나 자유민들이 너도나도 엘도라도에 몰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김준 일행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그라드의 영주성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곳은 국왕의 직할 영지이기에 찬드란트 국왕이 임명한 대리인이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데이비스 자작이라는 자로 국왕파의 귀족으로 10년째 이곳 그라드를 관리해오고 있었기에 서류상으로는 국왕의 직할 영지이지만 실상 그곳은 그의 영지나 다름없었다.
데이비스 자작이 대리인으로 부임하면서 기름진 땅뿐인 그저 그런 직할 영지인 그라드를 직할 영지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각종 건설현장에 투입하여 그라드를 열심히 개발했다. 그러다 보니 벌어들이는 수익이 늘어났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찬드란트 국왕에게 한해 보내어지는 돈은 무려 2만 골드. 물론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그보다 많은 3만 골드였다. 때문에 그가 영지를 개발하지 않아도 만 골드 정도의 여유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넓은 직할 영지이기에 영지병들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약간 부족할 정도였고 그래서 그의 욕심은 날로 커져갔던 것이다.
결국 그는 영지개발로도 모자라 상단이나 용병 길드, 노예 시장을 유치하는 일까지 손을 뻗었고 그들에게서 일정한 수익을 받음으로써 재정 상태는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그의 욕심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그가 착수한 사업이 바로 영지의 광산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철광석 광산이 2곳이나 되었지만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아 큰 수익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예 시장 경매에 드워프 노예가 나왔다. 그에 데이비스 자작은 노예 상인을 반 협박하는 식으로 해서 드워프 노예 5명을 싸게 구입했고, 드워프 노예들로 하여금 철광석 광산을 개발하도록 했다.
그의 의중은 그대로 적중했다. 광산을 개발하는 전문가는 바로 드워프들이었기에 그에게 한해에 10만 골드라는 돈이 광산에서 들어왔다.
데이비스 자작의 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드워프가 우연히 철광석 근처에서 미스릴 광맥을 발견한 것이다. 흥분한 데이비스 자작은 드워프를 다그쳐 미스릴 광산을 개발하도록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도 높은 미스릴 원석이 쏟아졌다. 물론 제련을 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미스릴로 인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미스릴 광산은 개발된 지 2년 만에 70만 골드라는 높은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 사실을 왕실에는 전혀 보고하지 않고 비밀로 하면서 모든 수익을 챙겨왔다.
그러다 며칠 전 드디어 날벼락이 떨어졌다. 찬드란트 국왕이 베일레 백작에게 직할 영지를 넘겼다는 통보가 왔던 것이다.
“이, 이런 제기랄!”
데이비스 자작은 너무나 억울했다.
자신이 개발한 영지였다. 거기다 손에 쥔 막대한 부를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이니 미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왕이 결정한 사항을 자신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구명줄이 내려왔다. 바로 귀족파와 중도파가 연합해 반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찬드란트 국왕과 제나 왕비를 비롯해 왕자와 공주들까지 전부 반란군에 의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아직까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소문이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기회였다. 자신이 반란 세력에 가담하면 자신이 이곳 그라드를 계속 다스릴 수 있으며 잘만 한다면 영지를 자신의 자작령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흐흐흐, 차일 후작의 편에 붙어야만 희망이 있어.”
결국 욕심에 눈이 먼 데이비스 자작은 즉시 까브에 있는 차일 후작에게 연락을 취했고, 자신이 반란세력에 가입할 테니 이곳 그라드를 자신의 자작령으로 해달라고 말했다.
차일 후작은 10년 동안 데이비스 자작이 그라드를 운영해 오고 있었기에 영지로 넘겨주는 조건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비밀리에 한해에 10만 골드씩 자금을 지원해준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어 즉시 허락해주었다. 대신 베일레 백작이나 프리맨 후작이 그라드로 들어오면 제거해달라는 부탁을 함께 했다. 물론 데이비스 자작은 순순히 수락했다. 어차피 그들을 제거해야 자신 역시 안심하고 영지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자작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류를 살펴보고 있을 때, 집사가 들어왔다.
“영주님, 베일레 백작이 그라드에 들어왔습니다.”
“으음, 역시 들어왔구나… 생각보다 빠르군.”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무장한 영지병을 동원해 그를 제거해야지.”
“상대는 백작인데 그렇게 해도 뒤탈이 없을까요?”
“어차피 혼란스러운 왕국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베일레 백작이 병사를 얼마나 데리고 왔어?”
“척후병들의 보고로는 기병 200명을 데리고 왔다 합니다.”
“그래? 그럼 영주성에 있는 2천 명으로 충분하겠군.”
“훈련이 잘되어 있는 기병들이지만 일처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병사의 수를 좀 더 늘리는 건 어떻습니까?”
“으음,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병사의 수가 많은 게 좋겠지? 그럼 자네가 천 명을 더 동원해 숨겨둬.”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리고 베일레 백작이 영주성으로 들어오면 즉시 성문을 닫아라. 광장에서 그들을 제거할 것이니 말이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베일레 백작이 그라드로 들어왔다고 하니 서둘러.”
“예, 그럼 즉시 나가서 준비해놓겠습니다.”
‘흐흐흐, 베일레 백작, 깔끔하게 처리해주마.’
두두두두.
제법 빠르게 달리던 김준 일행은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라드의 영주성이 보였기에 굳이 빠르게 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마중을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이상한데?”
김준 일행이 그라드에 들어왔다는 게 대리 영주인 데이비스 자작에게 마법통신으로 분명 전달되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마중 나오는 병사들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 뭔가 이상합니다.”
“뭐, 별일이야 있겠느냐?”
“어쩌면… 데이비스 자작에게 반란군 측이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으음, 그렇다면 큰일인데?”
“아버지, 제가 준 별 모양의 브로치를 옷에 달고 계시죠?”
“갑옷 속에 잘 달아두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퀘럴이나 화살이 날아오면 보호막이 순식간에 펼쳐질 테니까요.”
“그래, 그러니 걱정 말거라.”
“분위기가 이상하면 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나서지 마시고 기병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
“아버지, 제가 걱정하길 바라십니까?”
“아들아, 그, 그건 아니다.”
“그럼 제 말대로 절대로 앞으로 나서시면 안 됩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몇 번이나 다짐을 받은 김준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얼마 후 김준 일행은 영주성의 해자 앞에까지 다가가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던 영지병이 크게 외쳤다.
“신분을 밝히시오!”
그 말에 기사 네온이 앞으로 나서면서 대답했다.
“나는 프리맨 후작각하를 뫼시고 있는 기사 네온이라 한다. 앞으로 이곳 그라드를 통치하실 베일레 백작님께서 오셨으니 어서 성문을 열어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던 영지병은 김준 일행이 귀족과 기사라는 걸 모습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에 즉시 성문을 내리도록 조치했다.
그그그긍.
잠시 후, 굉음을 내면서 도개교가 스르르 내려왔다.
다가닥, 다가닥.
기사 네온이 앞장서면서 도개교를 건너가자 그 뒤를 기병들이 줄을 지어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김준은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면서 성벽 위에 은신해 있는 병사들의 수를 감지하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평상시에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20~30명 정도 보초를 서는 게 보통인데, 감지한 병사들의 수가 약 500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자작, 만약 네가 딴마음을 먹었다면 나에게 죽는다.’
“아버지, 아무래도 데이비스 자작이 다른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예, 우리가 들어온 성문이 이미 닫혔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김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벽 위에는 석궁과 활로 무장한 영지병이 사방을 포위했다. 동시에 광장의 끝 사방에서 무장한 영지병들이 쏟아져 들어와 역시 김준 일행을 포위해버렸다.
“으하하하! 베일레 백작, 죽을 자리로 잘 오셨소.”
“데이비스 자작, 이게 무슨 짓이냐!”
“흐흐흐, 무슨 짓이라니? 나의 영지를 빼앗으려고 온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너를 제거해야겠다.”
“흥, 나는 너의 영지를 빼앗으려고 온 게 아니다. 궁왕전하께서 나의 영지로 하사하신 이곳 그라드를 인수받기 위해 온 것이다.”
“하하! 하지만 순순히 이곳 그라드를 너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너만 죽으면 이곳은 나의 영지가 되는 것이지.”
“궁왕전하의 명을 거역하다니, 반역이라도 할 것이냐?”
“흐흐흐, 반역자는 너다. 감히 찬드란트 국왕을 시해하려고 음모를 꾸민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뭐라?”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 저들을 죽여라!”
데이비스 자작의 명령에 영지병들은 공격을 시작했다.
슈슈슈슝.
석궁에서는 퀘럴이 발사되었고 활에서는 화살이 쏘아졌다. 그에 사방에서 포위된 상황이라 기병들은 당황했다. 이때 김준이 크게 외쳤다.
“기병들은 즉시 말에서 내려 원형진을 형성하라!”
“예! 영주님!”
퍼퍼퍽.
이히힝.
기병들은 재빨리 말에서 내려 원형진을 형성하며 팔에 착용한 원형 손방패로 날아오는 퀘럴과 화살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말들은 피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처처처척.
이때 창과 검을 뽑아 든 영지병들이 사방에서 다가왔다.
“후후후, 진정 나를 화나게 하는구나. 매직 미사일!”
츄츄츄츙.
그 순간 김준의 양손가락 끝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은 매직 미사일 30발이 형성되었고 그의 손짓에 그것은 빠르게 영지병들에게 날아갔다.
퍼퍼퍼퍽!
“크악!”
“아아악!”
그로 인해 가까이에 접근한 영지병들부터 매직 미사일을 맞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마법사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는지 다가오던 영지병들은 주춤거렸다.
스윽.
이윽고 김준은 허리에 묶어놓았던 마법주머니 속에서 수정구를 하나 꺼내며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마나여,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매직 배리어!”
츠츠츠츠.
그러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 속에서 엄청나게 눈부신 빛의 기둥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사방으로 휘어지면서 마법의 방어막이 펼쳐졌다. 즉, 튼튼한 방벽이 생성된 것이었다.
슈슈슉!
티티팅!
그로 인해 퀘럴과 화살이 전부 방어막에 가로막혀 튕겨버렸고, 그 모습을 본 영지병뿐만 아니라 김준의 기병들도 눈이 커졌다. 자신들의 영주가 소드 마스터인 줄만 알았었는데 오늘 보니 마법 실력도 대마법사급이었던 것이다.
“후후, 이제 지옥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