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64화 (16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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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잠시 후 군막 앞으로 베리스 남작과 루와 남작이 도착하자 경비대원인 기사 바도르가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느라 무려 16번의 검문소를 통과했기에 이젠 자동적으로 목걸이를 내보였다. 바로 그때, 루오 남작이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고는 눈이 커졌다.

“아, 아니 클리툰 자작님!”

“어? 자네는 루오 남작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클리툰 자작님. 그런데 이곳에서 뭐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나는 제국군의 총사령관 군막을 철통같이 지키는 경비대장이라네.”

“예? 경비대장이라고요?”

“그렇다네.”

“으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허허허… 자네, 말이 좀 심하군.”

“예? 제가 말입니까?”

“그래, 생각해보게. 무려 400만 명의 제국군을 지휘하시는 총사령관님의 군막이네. 그런 곳을 일개 기사나 병사들이 지켜야 한다고 보는가?”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어허! 이 사람아,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말게. 이 경비대장은 락샤 백작님께서도 하시려 했어. 나름 경쟁이 치열했다구.”

“예? 그게 정말이십니까?”

자작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경비대장이라니, 베라스 남작과 루오 남작은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렇듯 자부심이 대단한 걸로 보아 보통 자리가 아닐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긴, 대공전하이신데 가까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알린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쩌면 큰 연줄이 될 수도 있겠군.’

베라스 남작과 루오 남작이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경비대장인 클리툰 자작이 말했다.

“그런데 자네들은 여긴 어쩐 일인가?”

“루오 남작은 이곳의 영주시고 전 시온 성의 성주이자 국경수비대장을 역임하고 있는지라 대공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렇군. 자네들의 신분은 확인되었으니 들어가 보고, 떨거지들은 여기에서 기다리게.”

“예, 감사합니다.”

호위해온 기사들은 떨거지라는 말에 불쾌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모욕을 준 자들이 자신들이 모시는 사람보다 신분이 더 높은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일개 지방영지의 귀족의 호위인 기사가 제국의 실세 중 실세라는 대공의 군막 안으로 들어가서 뭘 할 수 있겠는가.

대공을 만나러 군막 안으로 들어갔던 루오 남작과 베라스 남작은 10분 정도 만에 밖으로 다시 나왔다. 그에 기사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대공을 만나러 왔는데 겨우 10분이라니…….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인지 두 사람은 아까보다 훨씬 밝은 얼굴이었다.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클리툰 자작이 말했다.

“대공전하는 만나보았나?”

“예, 군막 안에 계셨습니다.”

“자네들을 만나주다니, 대단한 영광이라 생각하게.”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뭐라 하시던가?”

“저희들의 신분을 말했더니 간단하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수고 많았어, 라고.”

“오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예, 분명 그 한마디였습니다.”

“으음, 그러다면… 돌아가서 기다리면 아마도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예? 그게 정말입니까?”

“대공께서 늘 그렇게 말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더라고.”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클리툰 자작님.”

“내가 뭐 한 게 있나? 자네들이 복이 많은 게지.”

“언제 시간이 나시면 시온 성이나 루오 남작의 영주성에 들러주십시오, 꼭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좋아, 그 말 잊지 말게.”

“예,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허튼소리를 하겠습니까?”

“하하하, 알았네. 그럼 다음에 보세.”

“알겠습니다. 그럼.”

이윽고 루오 남작과 베라스 남작은 자신들의 기사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기사들은 왔던 만큼 다시 걸어가야 했기에 한숨이 나왔지만 루오 남작과 베라스 남작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프리맨 후작의 영주성.

김준이 영지를 잠시 비우고 있었기에 글리아나는 후작부인의 자격으로 엘도라도의 업무를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 그녀는 글리아나 성을 시찰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져 있어 헌트와 하그리를 대동하고 영주성의 광장으로 나왔다. 이미 광장에는 헌트와 하그리가 기병 200명을 대기시켜 놓고 서 있었다.

“헌트와 하그리 경, 일찍 나왔네요?”

“예, 그렇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나요?”

“예, 주모님. 떠나시기만 하면 됩니다.”

“좋아요, 그럼 가죠.”

글리아나가 말 등에 오르자 헌트와 하그리도 말에 올랐다고 200명의 기병들도 재빨리 말 등에 올라탔다.

다가닥 다가닥.

이미 영주성의 도개교가 내려져 있었기에 그들은 천천히 말을 몰아서 영주성을 벗어났다.

그렇게 10분 정도 말을 타고 이동하자 목책이 나왔고, 그곳을 통과하자 길 양쪽에 잘 형성된 마을이 보였다. 그곳 역시 멈춤 없이 바로 통과하니 다음으로는 길 양쪽으로 잘 조성된 농지가 나왔다.

농노들이 밭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글리아나는 천천히 말을 몰았다. 급할 것 없는 시찰이었고, 한나절 정도면 충분하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이번에는 평지가 나왔고 그제야 그들은 말의 속도를 높여 달렸다.

어느덧 해가 머리 위에 머물자 글리아나 일행은 말을 멈추고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길가에 듬성듬성하게 나무들이 있었기에 그늘에서 말을 멈추었다.

하그리가 마법주머니 속에서 둘둘 말아놓은 담요를 바닥에 깔자 그 위에 글리아나가 앉았다. 그러자 헌트의 손짓에 기병들은 동심원을 그리듯 글리아나 주변을 둘러싸더니 넓게 자리를 잡고는 편하게 앉았다.

언제 기습공격이 있을지 모르기에 10명은 경비를 섰으며 20명은 타고 온 말을 돌보았다.

그런 이들과 500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에 엎드려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로 지난밤 영주성을 공격하려고 했던, 차일 후작의 차남 다비든이 의뢰한 어세신들로 모두 100명이었다.

“대장님, 놈들이 저기에서 쉬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으음, 우리는 기습해야만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 저놈들이 이곳을 통과할 때 기습하는 게 좋겠다.”

“그럼 저번의 의뢰 때처럼 길 양쪽의 땅을 파고 숨어 있다가 놈들이 이곳을 지나칠 때 기습공격을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저놈들을 보니 검술을 제법 익힌 기병들 같다. 그러니 석궁으로 일단 기선제압을 하면서 동시에 각자 주특기 무기로 공격하도록 한다.”

“예, 좋습니다. 놈들도 방심하고 있을 테니 무난하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뢰비가 높으니 실수 없이 처리해야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병들을 제압하고 후작부인을 납치하는 간단한 일입니다, 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흐흐흐, 그래야지.”

스윽.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세신 대장이 수신호를 펼치자 어세신들은 각자 맡은 자리의 땅을 파고 은신했다. 그리고 흔적이 남으면 안 되기에 한 명이 땅의 상태를 확인해보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숨었다.

한편 그늘에서 쉬고 있던 글리아나는 나직하게 외쳤다.

“나오너라, 아공간이여.”

스스스스.

그러자 공중의 공간이 쩌억 갈라지면서 글리아나의 아공간이 나타났고, 글리아나는 그곳에서 영주성을 출발하기 전 주방장에게 부탁해 준비해놓았던 것을 꺼냈다.

그 모습에 기병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은 은밀하게 소문이 났었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그녀의 마법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거기다 아공간은 적어도 6서클 마스터는 되어야 가질 수 있다는 걸 상식으로 알고 있었기에 더욱 놀란 것이었다.

글리아나는 빵의 가운데 부분을 자르고 그곳에 불에 구운 다진 고기와, 소스와 야채를 섞은 재료를 넣어 포개 만든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와 과일을 갈아 얼음을 넣은 시원한 과일주스를 건네며 말했다.

“헌트와 하그리 경은 이것들을 기병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세요.”

“기병들이 200명이나 되는데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충분해요. 주방장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들었으니 맛있을 거예요.”

“주모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이윽고 헌트의 눈짓을 받은 기병 일부가 다가와 샌드위치와 과일주스를 받아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기병들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지만 그 맛에 금방 반해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샌드위치도 맛있었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얼음이 들어간 달콤한 과일주스가 훨씬 더 맛있었다.

“헌트 경, 빈 그릇은 한쪽에 모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빈 그릇은 여기로 가져와라.”

빈 그릇은 청화백자로 만든 머그잔이었다.

잠시 후, 빈 그릇이 모아지자 글리아나는 마력을 이용해 공중에 수분을 강제적으로 끌어 모으더니 청화백자 머그잔을 물에 잘 씻은 후 아공간 속에 넣었고, 그것이 신기한 듯 기병들은 그 모습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구경했다.

마법은 공격마법이 대부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데다 실생활에서 이런 마법을 펼치는 건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글리아나도 처음에는 기병들처럼 마법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김준을 통해 잘만 이용하면 실생활에서도 아주 유용한 것이 마법이란 걸 알게 되었고, 오늘 마법을 응용해본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아주 대만족이었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깜깜한 저녁이 되었다. 그러자 글리아나가 헌트와 하그리 경에게 말했다.

“헌트와 하그리 경, 어느 정도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떠나볼까요?”

“예, 주모님.”

“우리는 다시 출발할 것이니 기병들은 서둘러라.”

기병들은 신속히 50명씩 4개조로 나누어 다시 출발을 했다. 그리고 4개 조의 가운데 부분에는 글리아나, 헌트, 하그리가 있어 앞뒤, 좌우로 기병들이 호위하는 대형이라 할 수 있었다.

한편 글리아나는 평소 김준에게서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에 기병들 모르게 투명한 보호막을 펼쳐두고 있었다. 이것은 기습공격에 부상을 입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그녀는 이미 마법이 8서클 마스터에 올라 있었기에 그에게 지금 쓰는 마력의 양은 미미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나가 고갈되더라도 보호막을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해 김준이 준 별 모양의 아티팩트를 옷 속에 달아놓았다.

글리아나는 김준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했었지만 그는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다가올지 모르니 철저하게 준비해놓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김준의 말이 맞았다. 영주성 안에 있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야외로 나왔을 때 언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가 나타날지 몰랐기에 조심이 제일이었다.

그런 그녀의 감각에 무언가 감지되었다. 전방의 땅속에서 미세하게 감지된 거라 잘못 감지되었나 했지만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헌트와 하그리 경.”

“예, 주모님.”

“전방의 땅속이 이상한 것 같은데 혹시 감지했나요?”

흠칫!

헌트 역시 글리아나의 말을 듣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주모님, 확실히 뭔가 이상합니다. 누군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헌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그리도 감지했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글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헌트가 앞으로 튀어나가면서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고 그 모습에 기병들은 그 자리에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10미터 정도 앞으로 나선 헌트는 말 옆구리에 메달아 놓았던 활을 꺼내어 겨누었다.

투웅.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면서 빠르게 날아간 화살 한 발은 길가의 땅에 꽂혔고, 화살대가 절반 정도나 땅속에 박혀 잔 떨림을 보였다.

부르르!

바로 그때였다! 화살이 땅속에 박힌 순간 땅속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주위의 땅을 붉게 물들였다. 누군가 땅속에 은신해 있었던 것이다.

“숨어 있지 말고 이제 그만 나오너라.”

그 모습에 헌트가 외쳤지만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땅속에 은신해 있던 어세신들은 그대로 숨어 있었다.

씨익.

헌트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는 줄에 화살을 걸더니 땅속을 향해 마구 쏘기 시작했다.

퍼퍼퍽!

땅속에 은신해 있는 어세신의 기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의 화살은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모두 명중되었다.

그로 인해 15명이 넘게 죽임을 당하자 그제야 참지 못한 어세신들이 일제히 땅속에서 튀어나왔고, 어세신 대장의 공격 수신호에 어세신들은 일제히 헌트를 향해 달려왔다.

“큭큭. 감히 우리를 공격하다니, 모두 죽여주마.”

그들의 공격에 헌트는 즉시 활을 다시 말의 안장에 끼우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뽑아 들어 말을 몰아 달려 나가면서 달려오는 그들을 번개의 검술로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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