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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사령관님! 도시 바이잔으로 척후활동을 나갔던 병사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뭐라 하던가?”
“그, 그게… 믿을 수 없는 보고였습니다.”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보게, 뭔가?”
“척후병의 보고로는 도시 바이잔에 오크들이 주둔해 있다고 하는데 그 수가 무려 100만이라 합니다.”
“뭐라? 100만?”
“그렇습니다. 아마 그 오크들이 이번 침공의 본진인가 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도시 바이잔으로 오고 있는 후방부대가 또 있다고 하는데 그 수도 50만은 되어 보인다 합니다.”
“마, 말도 안 돼… 어디에서 오크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는 말인가…….”
“척후병을 20명이나 보냈는데 모두의 말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거짓이거나 부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오크들이 이번 침공에 무려 200만이나 동원되었다는 말인데… 큰일이군.”
“그렇습니다. 반면 수도에는 훈련된 5만의 병력과 징집된 병사 10만, 이렇게 15만 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으음, 부관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힘드시겠지만 사실대로 궁왕전하께 보고를 올리시고 동맹국인 페드린 왕국에 병력 지원 요청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흐흠… 이제야 세이트 백작의 지원군이 허무하게 패한 이유를 알겠어…….”
“저도 그렇습니다. 오크들의 대군을 직접 보기 전에는 저도 방심을 했습니다만 이제는 아닙니다.”
“으음, 페드린 왕국이 비록 우리와는 동맹국이라고는 하나 과연 얼마나 파병할까?”
“15만 정도는 지원하지 않겠습니까?”
“부관, 자네는 과연 그것으로 오크들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만약 그 병력이라도 없다면 우리 드라비아 왕국은 끝장입니다.”
“으음, 이번 기회에 궁왕전하께 이 위기를 알리고 켈로 왕국과 러셀 왕국까지 파병을 요청하도록 하는 게 좋겠군.”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르빌 공작은 마법통신으로 리브빌 국왕에서 이 같은 상황을 모두 보고했다.
리브릴 국왕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귀족들을 불러 모아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도시 바이잔이 이미 오크들에게 함락되었고 15만의 바르빌 공작이 이끄는 병력이 오크들의 선봉부대와의 전투에 패하면서 바이나크 언덕까지 후퇴했다는 소식은 귀족들 역시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충격에 빠진 채 허우적댈 수는 없었다. 국왕과 귀족들은 바르빌 공작이 조언했던 대로 동맹국인 페드린 왕국에 파병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켈로 왕국과 러셀 왕국에까지 파병을 요청했다.
한편 리브빌 국왕의 마법통신에 페드린 왕국 역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들도 상단이나 정보요원들의 정보로 오크들이 드라비아 왕국 북부에 있는 우디 숲에서 진군을 해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상이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드라비아 왕국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드라비아 왕국이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분명 자신의 페드린 왕국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30만을 우선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것으로 오크들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즉시 동원령과 징집령을 내려 병사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200만의 오크들이 공격해온다는 리브빌 국왕의 말에 켈로 왕국과 러셀 왕국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켈로 왕국에서는 20만을 파병했고 러셀 왕국도 우선 15만을 파병하는 한편, 전쟁에 대비해 군량과 무기를 확보하려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탄 사람들이 잘 정비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김준 일행으로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수도 까브로 향하는 그들은 하루 정도의 거리마다 마을이 생겨나 있었기에 야영할 필요 없이 그곳에 있는 호텔에 묵으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기서 잠시 쉬었다 간다.”
“예, 알겠습니다.”
김준과 기병들은 그늘진 곳에 말을 멈추고는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기병들 중 일부는 척후병을 세우고 기습공격에 대비했다. 혹시라도 기습을 받더라도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김준과 베일레 자작은 마주보고 앉았다. 김준이 물을 끓여서 차를 타 찻잔을 내밀었는데, 그것은 엘도라도의 특산품인 청화백자 찻잔이었다.
“이런 잔으로 차를 마실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청화백자는 지금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그래, 이런 물건이 영지를 풍요롭게 해주지. 음… 차향이 좋구나.”
“그렇군요. 그보다 아버지, 수도 까브에 다시 좋은 일로 가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러냐? 나도 그렇다.”
“이번에 백작 작위 수여식이 있은 후 영지를 하사받으실 테지요. 제가 듣기로는 국왕께서 엘도라도의 이웃 영지인 노바야 자작령과 국왕의 직할 영지인 그라드까지 하사하신답니다.”
“그게 정말이냐?”
“예, 어젯밤에 궁왕전하와 마법통신을 했는데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엘도라도와 나의 영지가 될 곳을 서로 통합한다면 어지간한 후작의 영지보다 더 크겠구나.”
“그건 그렇지만… 귀족파와 중도파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흠… 하긴, 그들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간에 방해를 하려 들 것이야.”
“그러니 아버지께서 영지를 하사받으시면 일단 엘도라도처럼 영지를 발전시킨 후 나중에 기회를 보아 통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네 말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아버지, 영지 문제는 그렇게 처리하면 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대륙은 지금 전운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드라비아 왕국과 오크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더냐?”
“물론 그것도 있지만 더 큰 위협은 바로… 모르칸 제국입니다.”
“모르칸 제국? 그들이 왜?”
“레이 황제가 불치병을 고치고 다시 국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으음, 나도 그 소식은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정보길드의 정보를 확인해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무슨 정보이기에 놀란단 말이냐?”
“제국의 남부국경 쪽으로 모르칸 제국 400만의 대군이 이동 중이라 합니다.”
“그곳은 드라비아 왕국의 북부국경이 아니냐? 하지만 오크들이 이미 드라비아 왕국을 점령 중이지 않느냐.”
“그렇긴 합니다만 제국의 남부국경과 마주하고 있는 왕국이 드라비아 왕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 그럼 네 말은 모르칸 제국이 버크 왕국이나 노스 왕국을 침공하기라도 한단 말이냐?”
“이건 저의 앞일과 관련하여 쓸데없는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국의 레이 황제의 야심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으음, 네 말대로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아버지, 이런 점 때문이 아니더라도 엘도라도에 병력을 최대한 늘려두어야만 귀족들이 엘도라도를 노리고 감히 영지전을 일으키지 못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 적들이 공격해 와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으음… 하긴, 무력을 보유해야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지를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예, 오크나 모르칸 제국이 우리 바렌 왕국까지 침공하기까지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는 영지를 하사받으시면 신속하게 행정력과 영지병을 장악하시고 병력을 대대적으로 모집하셔야 합니다.”
“알았다, 너의 말대로 하마.”
“당분간은 제가 자금을 충분히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알았다. 영지병과 군량, 무기를 충분하게 보유할 테니 걱정 말거라.”
“저는 아버지만 믿겠습니다.”
“네 말대로 미래를 위해 대비를 한다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아버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미리 대비를 하는 것과 자신의 무력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이제 충분하게 쉰 것 같으니 다시 출발하시죠.”
“그래, 가자꾸나.”
김준과 베일레 자작, 기병들은 신속하게 말 등에 올라타고는 다시 수도 까브를 향해 달려 나갔다.
바이나크 언덕.
바르빌 공작의 병사 8만 명은 전열을 정비하고 이곳에서 오크 선봉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지평선 끝에서 자욱하게 흙먼지가 일어나더니 그전과 마찬가지로 검은 점이 생겨났다. 검은 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졌고, 동시에 지축도 흔들렸다. 바로 오크 선봉부대가 진군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바르빌 공작과 병사 8만은 얼굴이 심하게 굳어졌다. 또한 긴장했는지 귓가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닦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지평선을 가득 채운 오크 선봉부대는 점점 다가오면서 전열을 정비했다.
“우리는 결코 이곳에서 물러설 수 없다. 그러니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워라!”
“공격하라! 공격!”
뿌우우우.
이윽고 고동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준비해두었던 발리스타와 투석기가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거대한 화살과 돌멩이가 오크 진영에 떨어졌다.
“취익, 저 인간병사들을 전부 죽여 버려라. 가랏!”
“취익, 공격하라!”
바실 오크 선봉부대장의 공격명령에 준비하고 있던 오크 전사들이 함성을 크게 지르면서 달려 나갔다.
“오크들이 몰려온다. 화살을 퍼부어라!”
“화살을 쏴라, 쏴!”
그에 병사들의 수천 발의 화살이 일제히 쏘아졌고 소낙비 같은 소리가 나며 순식간에 달려오는 오크들에게 떨어졌다.
티티티팅!
“크악!”
“케에엑!”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오크 전사들은 화살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손에 원형 손방패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들어 화살을 막으면서 달렸다.
그렇지만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화살이 많이 날아왔기에 그것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오크 전사 일부는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큰 가마솥의 밥을 그저 한 숟가락 뜬 것밖에는 안 되었다. 즉 아직까지 오크는 미미한 수준의 피해밖에 입지 않았다.
채채챙!
파팍!
“으아악!”
달려온 오크 전사들과 바르빌 공작의 보병들이 드디어 충돌하였지만 힘과 전투력, 사기 면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는 오크 전사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한 바르빌 공작의 병사들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싸웠고, 그러다보니 오크 진영의 피해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컸다.
“취익, 공격하라! 공격!”
“물러서지 마라! 공격하라!”
“밀어붙여라! 어서!”
그러나 여전히 보병들이 밀리고 있었다. 바르빌 공작 진영은 마법사가 없는 반면, 오크 진영에는 마법병단이 있기에 그들이 날린 파이어볼이 보병들에게로 수시로 날아들었다.
역시 화염계 공격마법은 무서웠다. 파이어볼이 전장 곳곳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바르빌 공작의 부관이 외쳤다.
“사령관님,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후퇴해야만 합니다!”
“후퇴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부관, 우리가 밀리면 수도는 어찌한단 말이냐!”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한 전투였습니다.”
“…….”
“사령관님, 어서 후퇴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부관의 다그치는 말에 바르빌 공작은 어쩔 수 없이 후퇴명령을 내렸다.
“…부관, 후퇴의 고동소리를 울려라.”
“예, 사령관님. 후퇴의 고동소리를 울려라! 어서!”
뿌우우우우!
이윽고 사방에 후퇴의 고동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이미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병사들은 신속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크 전사들은 계속 따라붙으면서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이날의 전투로 바르빌 공작의 병사들은 무려 5만 명이 넘게 죽었고 살아남은 병사는 고작 약 3만 명 정도였다.
그에 비해 오크의 피해는 4만 마리에 불과했는데, 이 정도의 피해는 바실 오크 선봉부대장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 선봉 부대가 30만이 넘게 남아 있었고, 도시 바이잔에는 본진 100만과 후방부대 50만이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