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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파파팍, 퍽퍽.
“야, 거기 바위를 저쪽 수레에 실어라.”
“예, 알겠습니다!”
“빨리 빨리 서둘러! 어서!”
채찍을 손에 쥔 감독관이 곳곳에서 동원된 사람들을 다그치자 공사에 투입된 이들은 정신없이 돌덩이나 바위를 치웠다. 일부는 수레에 흙을 싣고 와서는 구덩이나 푹 꺼진 땅에 흙을 잘 매워 평평하게 만들었는데, 군막을 손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영주님, 베라스 성주님께서 오십니다.”
루오 남작 옆에서 공사 진척상황을 살펴보던 집사 그랙의 말에 루오 남작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응? 뭐라고?”
“베라스 성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베라스 성주가 도착하여 말 등에서 내렸다.
그는 루오와 작위가 같은 남작이었지만 나이가 5살이나 더 많은 루오 남작이었기에 그에게 친형님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루오 남작님, 여기 계셨군요?”
“베라스 성주, 여긴 어떻게……?”
“부시아 백작령의 연락을 받으셨습니까?”
“연락이라니, 무슨 연락 말이오?”
“아직 모르시는군요. 저도 이곳으로 향하면서 들었습니다.”
“베라스 성주, 무슨 연락인지 말해주시오.”
“예, 수도 모르칸 외곽에 소집된 대군이 드디어 이동을 시작 했다고 합니다.”
“으음, 그렇다면 이곳까지 오는 데 10일이면 충분하겠군.”
“그렇습니다. 이제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는 중이니 걱정을 놓아도 되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사실 그동안 마음이 안 놓여 속을 태우고 있었다오.”
루오 남작과 베라스 성주의 말처럼 공사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있었기에 2~3일 정도면 공사가 전부 끝이 날 듯했다.
“베라스 성주, 바쁘지 않다면 천막에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오.”
“예,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참이었습니다.”
“그것 참 잘되었구려. 갑시다.”
이윽고 그랙 집사가 앞장서 천막으로 향하며 하녀들을 동원해 차를 준비하도록 했고, 잠시 후 이들은 차를 마시면서 잡담을 나누며 대군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프리맨 후작의 영주성.
김준은 하루하루 무척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다. 오전과 밤에는 명상을 하면서 의지력을 수련했고, 오후에는 검술 수련과 아티팩트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와 양부 베일레 자작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리아나가 전격적으로 서류를 처리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김준이나 베일레 자작이 영지를 비우게 되더라도 글리아나가 맡아서 영지의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베일레 자작은 수십 년간 영주로 지내오며 업무를 처리한 경력이 있었기에 엘도라도의 업무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글리아나는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준은 마법과 정보길드를 통해 알아낸 정보로 페밀리어를 만들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 왕국과 드라비아 왕국 간의 전쟁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여 베일레 자작과 글리아나에게 알려주었다.
그와 베일레 자작은 멀지 않은 시기에 참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바렌 왕국은 오크 왕국과 드라비아 왕국이 전쟁 중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곳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김준은 이렇듯 대륙 전역으로 전쟁이 퍼져 나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있는 엘도라도는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대비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특히 식량과 군수물자를 많이 비축한 상태였다.
특히 식량은 농지 개량 사업을 통해 농지를 늘린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세금이 겨우 20%밖에 안 되었기에 농노들은 이곳에서 열심히 일했고 그로 인해 수확량이 예전보다 몇 배나 늘어났다.
이렇게 수확한 각종 농산물을 매입하고 엘도라도로 들어오는 상단이 싣고 온 식량도 대량으로 매입해 지금도 지속적으로 식량 비축량은 늘어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그것을 저장할 곳도 많이 필요했기에 일꾼들을 동원해 식량창고를 신축했는데, 화제에 대비해 돌로 쌓아 만들었으며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도록 했다.
대장간에서는 각종 무기를 생산해 병사들에게 보급했고, 날로 늘어나는 영지민들 중 병사를 모집해 그들을 훈련시켰다. 그로 인해 엘도라도의 영지병은 12만 명을 넘어선 상태였다.
4서클 유저 마법사 알류는 왕성에서 마법통신을 받고는 즉시 김준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똑똑.
“영주님, 마법사 알류입니다.”
“들어오게.”
“예, 영주님.”
마법사 알류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늘 결제해야 할 서류를 모두 처리한 김준과 베일레 자작, 글리아나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성에서 무슨 연락이 온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베일레 자작님께 연락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말이냐?”
“예, 왕성으로 들어오시라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이유도 알려주시던가?”
“예, 베일레 자작님께서 이번에 백작의 작위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예, 영주님. 방금 그렇게 마법통신으로 전갈을 받았습니다.”
“하하하하! 아버지,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아버님.”
김준과 글리아나의 축하한다는 말에 베일레 자작은 잠시 멍한 표정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허허, 이런 날이 올진 몰랐는데… 여하튼 너무 기쁘구나.”
“언제까지 들어오라 하던가?”
“10일 안으로 들어오시라는 전갈입니다.”
“7일이면 도착할 거리이니 아직 여유가 조금 있구나. 알았다, 그만 나가보도록.”
“예, 영주님.”
알류가 집무실을 나가자 그들은 왕성으로 가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동마법진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갈 수 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말을 타고 가기로 결정을 했다.
예전에는 수도 까브까지 가는 데 10일이 넘게 걸렸는데, 이제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7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각 상단의 짐마차나 짐수레도 많이 왕래했고, 하루 정도의 거리마다 쉬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한 호텔이나 여관들도 많이 생겨났다.
또한 아무것도 없던 길 주변에 마을이 형성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도시라고 할 만큼 그렇게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지간한 영지의 마을 3~4개를 합쳐놓은 것 정도는 되었고 지금도 나날이 마을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이렇게 엘도라도와 수도 까브 사이에 있는 영지들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둠이 대지를 뒤덮은 시각, 수도 까브 리안 공작의 저택.
리안 공작의 집무실에는 차일 후작과 중도파의 루나드 공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귀족파의 수장인 리안 공작은 현재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프리맨 후작이 국왕인 찬드란트에게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주다 보니 국왕파의 힘이 날로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병사를 모집해 늘리고 병사들의 낡은 무기까지 새 무기로 교체해주었다. 이 상태로 1년만 더 지난다면 귀족파보다 더 군사력이 커질 것이었다.
리안 공작은 루나드 공작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루나드 공작, 이런 상태로 1년만 지나면 우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오.”
“으음, 국왕의 자금력이 커지다 보니 이런 상황까지 왔구려.”
그때 리안 공작과 루나드 공작을 쳐다보던 차일 후작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젠 더 기다리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차일 후작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나드 공작은 내란을 일으키기가 망설여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거기다 처음에는 국왕파가 세력이 가장 약해 걱정 안 해도 되었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건 차일 후작이 말이 맞소.”
루나드 공작이 차일 후작의 말에 호응하자 차일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국왕파가 날로 득세를 하고 있으니 멀지 않아 우리를 차례대로 찍어낼 것입니다.”
“서,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소?”
“설마가 아닙니다. 지금도 국왕파 귀족들이 하나둘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왕파의 힘이라 할 수 있는 프리맨 후작의 양부 베일레 자작이 이번에 백작의 작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건 최대의 위기입니다.”
사실 그 일 때문에 이렇게 은밀하게 회합을 한 것이었다.
프리맨 후작의 엘도라도 이웃 영지는 노바야 자작이 영주로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노바야 자작이 갑자기 병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후계자가 없었던 노바야 자작의 영지는 국왕의 직할 영지로 환수가 되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난다면 문제가 없을 터. 하지만 이번에 베일레 자작이 백작의 작위를 받게 되면 노바야 자작령이었던 영지와 이웃의 국왕 직할 영지인 그라드를 하사받을 가능성이 컸다. 이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프리맨 후작의 엘도라도는 영지전을 통해 다른 백작령 정도의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베일레 자작이 영지를 받아 그 영지와 합치면 차일 후작령보다 더 커지게 된다. 전 노바야 자작령과 그라드는 엘도라도보다 배는 넓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프리맨 후작이 왕국에서 가장 부유해 많은 귀족들이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때문에 왕국 제4세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부 베일레 자작이 백작이 되고 그로 인해 프리맨 후작의 영지와 그의 영지를 합치면 사실상 영지까지 넓어지게 되어 앞으로 왕국에서 그를 상대할 만한 힘을 가진 귀족은 없을 것이었다. 그것이 귀족파와 중도파의 고민이었다.
지금 국왕파의 힘은 중도파보다 약간 위였지만 귀족파보다는 아래였다. 하지만 프리맨 후작은 제4세력이기는 하나 사실상 국왕파에 가까웠기에 그가 국왕파와 연합한다면 귀족파와 중도파의 연합과 서로 비슷한 전력이 될 것이었다.
때문에 앞으로 베일레 백작령이 될 영지가 완벽하게 엘도라도와 통합이 된다면 사실상 국왕파가 제1의 세력이 되는 것이고, 또한 귀족파와 중도파가 연합해도 전력이 부족할 것이었다.
한참 고민을 하던 루나드 공작은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으음, 좋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연합하여 그들을 칩시다.”
“하하하하! 루나드 공작, 잘 결정했소.”
리안 공작은 호탕하게 웃었고, 루나드 공작과 차일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힘이 있을 때 쳐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 베일레 자작과 프리맨 후작이 왕성으로 들어오면 그들을 치는 것으로 합시다.”
“예. 하지만 암살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병력을 준비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차일 후작, 그렇다면 내란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국왕파와 프리맨 후작을 이번에 모두 제거하면 우리가 손쉽게 승리할 것이지만 만약 그들을 제거하는 일이 실패한다면 내란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으음, 그럼 이번에 반드시 그들을 제거해야겠군.”
“예, 그래야지요. 그리고 그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엘도라도는 똑같이 나누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좋소, 차일 후작.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차일 후작은 마음속으로 이들을 비웃고 있었다.
‘흐흐흐, 국왕파와 프리맨 후작이 제거되면 다음으로 리안 공작과 루나드 공작 너희들도 내 손에 제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