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45화 (14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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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부글부글.

거대한 솥에 걸쭉하고 칙칙한 액체가 끓고 있었다. 질리가 우디 숲을 뒤져서 가져온 99가지의 각종 마법 재료였다.

오크 왕 쿠퍼가 기이한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10분 정도 주문을 중얼 거리자 솥에서 끓어오르는 액체에서 녹색의 빛이 솟아났다. 액체는 검은색에 가까웠는데, 녹색의 빛이 나자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것은 물에 잉크가 번지듯 그렇게 액체 전체로 녹색으로 물들더니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고, 액체는 다시 검은색으로 되돌아 왔다.

“쿡쿡쿡, 이제 금지된 마법의 약물이 완성되었구나. 취익.”

스윽.

오크 왕 쿠퍼의 손짓에 액체가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한쪽에 놓인 투명한 유리병 속으로 들어갔다.

신기한 것은 유리병은 분명 5리터 정도의 용량으로 보이는데, 그 수십 배가 넘는 액체가 들어가도 여전히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유리병에 공간확장 마법이 걸려 있는 모양이다.

쿠퍼는 유리병의 뚜껑을 닫고는 입고 있는 로브의 안쪽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곳에도 역시 공간확장 마법이 걸려 있었기에 짐수레 3대 분량은 넣을 수 있었다.

오크 왕 쿠퍼는 이번에는 수정구를 꺼내었다. 이동마법진으로 대륙 전역으로 흩어진 바실 오크들과 마법통신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바실 오크는 오크 왕 쿠퍼의 피를 이어받아 태어난 오크들이라 머리가 오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고, 2마리만 되어도 오우거에게 지지 않는다는 체력과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동마법진으로 대륙 곳곳으로 흩어진 바실 오크들은 약 75% 정도 살아남아 오크 부족을 장악해 부족장이 되어 있었다. 바실 오크들은 마법도 익히고 있었기에 오크 왕 쿠퍼의 호출에 곧 응답했고, 쿠퍼는 그들에게 부족을 이끌고 우디 숲으로 돌아오라고 일렀다.

바실 오크들의 마법실력으로는 이동 마법진을 그릴 수 없었기에 쿠퍼는 은을 녹여서 은판을 만든 뒤에 다시 마나스톤을 박아 넣어 시동어만 외치면 우디 숲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서 좌표대로 보내어 주었다.

그런 식으로 오크 부족이 대규모로 우디 숲으로 속속 이동해오고 있었고, 오크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원래 우디 숲의 오크 왕 쿠퍼가 보유한 오크의 수는 약 100만 마리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마케리안 대륙의 전역에서 이동해온 오크만 무려 250만 마리기에 현재 약 350만 마리나 되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도 하루에 약 5만 마리 정도의 오크들이 속속 우디 숲으로 이동해 오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뮤란 대륙에 퍼져 있는 바실 오크들과도 마법통신이 가능해지면서 그곳에서도 하루에 10만 마리씩 이동해 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젠 우디 숲은 오크들로 넘쳐나게 되었고,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오크 왕 쿠퍼는 이제 우디 숲을 넘어 오크들이 살아갈 넓은 땅이 필요했다. 인간족이 차지하고 있는 넓은 땅을 빼앗고, 그들을 노예로 삼아야겠다는 야망으로 찬 쿠퍼였다.

오크 왕 쿠퍼는 신속하게 오크 왕국을 개국해 바실 오크들을 소집해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용맹한 오크 전사들에게 무기가 지급되고, 1만 마리씩 부대가 편성되기 시작했다. 머리가 뛰어난 바실 오크들이 대장이 되어 부대를 통솔하게 되었다.

각종 무기들은 오크들의 노예로 살고 있는 드워프들에게서 충당했다. 물론 검과 창, 전투도끼 등의 무기만 만들뿐 방어구는 전혀 만들지 않았다.

오크 전사들은 드워프가 만든 무기로 무장하면서 사기가 높아졌다. 끝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오크 전사들이 도열한 가운데 오크 왕 쿠퍼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한참동안 진행된 연설은 어느덧 그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취익, 가라! 가서 우리 오크들의 위대함을 취익, 인간족들에게 보여주어라! 취익.”

그 말에 수많은 오크들이 한꺼번에 거대한 함성을 질렀다.

쿵쿵쿵쿵.

얼마나 많은 오크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지 땅이 흔들렸다. 바실 오크들이 지휘하는 1만 마리의 오크 부대별로 진군을 시작했다.

오크 왕 쿠퍼는 치밀한 작전을 준비했다. 우선 힘과 세력이 약한 드라비아 왕국부터 점령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북쪽에서 모르칸 제국의 대군이 밀려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고, 남쪽에서 이를 지켜보는 드라비아 왕국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양쪽에서 협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쿠퍼는 빠른 시간 내에 드라비아 왕국을 점령하고, 북쪽의 모르칸 제국을 상대한다면 충분하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 오크 전사를 무려 200개 부대, 즉 200만 마리를 동원한 것이다.

말이 200만 마리지 엄청난 대군을 막을 병력은 드라비아 왕국에는 없었다. 겨우 40만 명 정도의 병사가 있을 뿐이었다. 왕국의 위기에 강제적으로 징병을 한다고 해도 70만 명 정도.

보통 오크 전사 한 마리에 병사는 3~4명은 협공해야 승산이 있기에 사실상 드라비아 왕국은 오크대군에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드라비아 왕국의 북부 호르디오 남작령.

그곳은 6개 마을에 1700명의 영지민을 보유하고 있는 작은 영지였다. 우디 숲이 영지 일부에 속해 있었으며, 몬스터 때문에 숲의 깊숙한 곳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초입에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땔감을 마련해서 겨울을 나는 정도였다.

쿵쿵쿵쿵.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땅이 흔들렸다. 우디 숲의 초입에 있는 밀밭에서 일하던 농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숲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우디 숲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은데요?”

푸드득.

그때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놀라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와지끈.

이번에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무엇인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농노들의 눈이 커졌다.

“우악, 오크들이다! 오크!”

“오크야, 오크.”

당황한 농노들은 농기구를 그대로 둔 채 너도 나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투용 도끼를 손에 들고, 머리에는 양쪽으로 뿔이 달린 투구를 눌러쓴 바실 오크 부대장이 크게 외쳤다.

“취익, 인간들이다! 공격하라, 공격! 취익!”

“공격, 취익!”

엄청난 수의 오크 전사들이 인간족의 마을을 향해서 달려 나갔다. 요란할 정도로 시끄러웠기에 마을에 있던 자경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무슨 일인가 하고 목책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경악했다.

수십 명의 농노들이 겁에 질려 마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그들의 50미터 정도 뒤에는 무장한 오크 전사들이 마치 개미 떼처럼 엄청난 수로 공격해 오고 있었다.

“허억, 오크야, 오크!”

“비상종을 쳐라! 어서!”

땡땡땡땡!

마을 안에 매달아 놓은 종의 줄을 잡아 당겨 비상사태를 알렸다. 우디 숲의 초입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보니 몬스터들이 먹이를 찾아 마을을 향해 공격해올 때도 있었기에 목책은 제법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엄청난 수의 오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종소리에 마을의 집집마다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와 목책으로 달려왔다. 약 200명 정도 되었지만 이 정도로는 몰려오는 오크를 상대할 수 없었다.

목책 위에서 몰려오는 오크들을 본 마을 사람들은 절망했다.

“취익, 화살을 쏘아라. 취익!”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수백발의 화살이 목책 너머로 날아갔다.

“크악.”

“아아악! 커억…….”

일부 마을사람들이 방패로 화살을 막았지만 방패가 없거나 은폐하지 못한 마을사람들은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지능이 떨어지는 오크라 알고 있었는데, 바실 오크 부대장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걸 보니까 아주 조직적으로 잘 훈련된 정규 병사를 보는 듯했다.

바실 오크 부대장이 수신호를 보내자 굉음을 내면서 뭔가가 앞으로 튀어 나왔다. 바로 성문을 부술 때 사용하는 충차였다. 끝이 뾰족한 쇠말뚝이 수레에 실려 있었고, 온통 쇠로 덮여 있어서 목책 정도는 단번에 박살날 것 같았다.

목책 위에서 충차가 달려오는 걸 본 자경대원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으아, 오크가 충차를 몰고 온다!”

“화살을 쏘아라!”

20여 발의 화살이 충차로 날아갔지만 충차를 실은 수레 위에 날개처럼 철판이 뒤덮여 있었기에 화살로부터 안전했다.

티티팅!

자경대원들이 발사한 화살은 전부 철판에 맞아 튕겨나갔고, 점점 달려오던 충차는 결국 목책의 문과 정면충돌했다.

콰쾅.

굉음이 터지면서 목책의 문이 한 번에 박살나면서 옆의 목책이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취익, 공격하라, 공격! 취익.”

각종 무기로 무장한 오크 전사들이 오크 백부장이나 천부장의 공격명령에 우르르 달려 나갔다.

채채챙, 파팍.

여기저기에서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미약한 방어에 불과했다. 사방이 오크 전사들로 채워질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마을은 순식간에 오크 전사들에게 무너졌다. 오크 전사들은 여자들만 살려주고, 나머지는 전부 잡아먹어버렸다. 이번 전투로 쓰러진 오크는 겨우 십여 마리에 불과했다.

천 마리 정도의 오크 전사들은 마을에 남아서 전리품(여자, 식량, 농기구)을 수레에 실어 후방으로 보내는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9천여 마리의 오크 전사들은 계속 진군했다.

이들 오크 부대는 선봉 중의 선봉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디 숲에서는 오크 선봉부대 50개 부대, 즉 50만 마리의 오크 전사들이 계속 진군해오고 있었으며, 본진 100개 부대와 후방부대 50개 부대가 차례대로 진군해 오고 있었다.

호르디오 남작의 작은 성과 마을만 남고, 나머지 4개 마을은 제대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순식간에 오크 전사들에 의해 무너졌다.

말을 타고 도망쳐온 일부의 사람들이 호르디오 남작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와 오크들의 침공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수십 마리의 오크도 아니고 무려 수만 마리나 되는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몰려오고 있다니. 너무나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았던 사실이 곧 현실로 나타났다. 오크 선봉부대가 드디어 반나절 만에 호르디오 남작이 살고 있는 성 앞까지 진군해 왔던 것이다. 성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호르디오 남작은 경악했다.

“으으, 저…정말이었어.”

“우… 오크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야.”

영지병들은 절망했다. 상대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정도라야 저항이라도 해볼 텐데 이건 절망적이었다. 호르디오 남작의 영지병은 겨우 400명이 전부였다.

콰르르르.

이번에도 충차가 앞으로 나서더니 성문을 향해 달려왔다.

“화살을 쏘아라!”

“오크들이 몰려온다. 화살을 퍼부어라. 어서!”

투투투퉁.

수백 발의 화살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오크들에게 떨어졌다.

“쿠에엑!”

“취익, 아악!”

몇 십 마리나 되는 오크 전사들이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질렀지만 대부분은 방패를 들어 잘 막았다.

거대한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죽에 수저로 한 숟가락 뜬 것 정도밖에 피해가 없을 정도로 화살공격에 입은 오크의 피해는 미미했다.

호르디오 남작은 미개한 오크들이 충차까지 사용하는 걸 보고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왕국의 정규병사보다 훈련이 더 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호르디오 남작에게 기사 에드워드가 재빨리 외쳤다.

“정신 차리십시오. 남작님! 어서 명을 내려 주십시오!”

“이대로는 안 된다. 도망쳐야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진다.”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친단 말입니까?”

“에드워드, 저 오크들이 보이지 않느냐? 어서 나의 말을 대령하라!”

“그럼 남작님께서는 일부 병사들과 빠져나가십시오. 저는 이곳에서 오크들을 막아 보겠습니다.”

“에드워드, 그냥 나와 같이 도망치자.”

“영주님, 저는 기사입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개죽음이다. 오크는 내가 보기에 10만 마리도 넘을 것 같다. 같이 도망치자.”

“남작님.”

“난 에드워드를 잃고 싶지 않아. 이건 명령이다.”

기사 에드워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이미 영지병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오크를 막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콰쾅!

충차가 성문에 부딪쳤지만 쇠로 덧대어 놓아 아직은 버텼다.

“시간이 없다. 에드워드.”

“…….”

그그그긍.

성의 뒷문이 열리면서 호르디오 남작을 비롯해 기사 에드워드, 기병 60명이 먼저 튀어나와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그 뒤를 영지병들이 달려 나와 무조건 도망치기 시작했다.

콰지직, 콰쾅!

결국 성문이 박살나면서 오크 전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크 전사들이 휘두른 무기를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취익, 여자는 사로잡고, 나머지는 다 죽여라. 취익.”

오크 천부장의 외침에 오크 전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명령대로 움직였다.

반나절 만에 호르디오 남작령을 점령한 오크 선봉부대는 베라 자작령을 향해 계속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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