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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다가닥, 다가닥.
화려한 귀족 마차 한대와 말을 탄 기병 50명이 대로를 이동해 블루캐슬에 이르자 도개교가 스르르 내려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블루캐슬은 푸른빛이 나는 돌로 쌓은 성이었기에 외관이 무척 아름다운 성이다. 인공적으로 해자까지 만들어져 있고, 규모는 2천 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 아담한 성이었다. 이 블루캐슬이 이번에 대공의 작위를 받은 아놀드 대공의 성이었다.
레이 황제의 부름에 황궁에 다녀온 아놀드가 마차에서 내리자 시종이 쪼르르 다가와 나직하게 말했다.
“대공전하, 손님이 와 계십니다.”
“손님?”
“예, 페드린 왕국의 마일드 상단주이며 백작입니다.”
“무슨 일이지?”
“이번에 수도에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인사나 드리고 가신다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래? 잠시 만나보는 거야 어려울 것이 없으니 연회실에서 보도록 하겠다.”
“예, 대공전하.”
시종은 아놀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연회실에 아놀드가 들어서자 마일드 상단의 비에드 상단주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공전하.”
“늦은 밤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대단하구려.”
“아니옵니다. 이번에 떠나면 다시 오는데 1년은 넘을 것 같아서 이렇게 돌아가는 길에 인사차 온 것입니다.”
문이 열리고 시녀가 차와 쿠키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놀드가 먼저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자 비에드 상단주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대공전하의 모습을 뵈오니 한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나 말고 마케리안 대륙에 뮤란 대륙인이 귀족으로 있는 사람이 있소?”
“예, 한 분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누구요?”
“대륙의 동부 끝에 있는 바렌 왕국입니다.”
“바렌 왕국?”
“예, 그렇습니다. 바렌 왕국에서도 가장 동부 끝 해안을 끼고 있는 엘도라도라는 영지의 영주인 프리맨 후작입니다.”
“으음, 그래요?”
아놀드는 상의 주머니에서 양피지를 하나 꺼내어 내밀었다.
“혹시 이렇게 생긴 자가 아니요?”
비에드 상단주는 아놀드가 내민 양피지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전하, 어떻게 구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프리맨 후작의 얼굴과 똑같습니다.”
“검술실력이 뛰어나다고 하기에 정보길드를 통해서 입수한 것이오.”
“그렇군요.”
아놀드는 다시 양피지를 돌려받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제야 상단주가 본래 용건을 말했다.
“대공전하, 앞으로 저희 마일드 상단을 잘 봐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시면 부탁하십시오.”
비에드 상단주는 보석함을 내밀었다. 아놀드가 보석함의 뚜껑을 열어보니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각종 보석이 수십 개나 들어 있었으며, 상인길드가 보증하는 1만 골드 전표가 5개나 들어 있었다.
앞으로 잘 봐달라고 뇌물을 준 것인데, 아놀드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것을 받았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것을 꺼내 보이시오.”
“감사합니다. 대공전하.”
아놀드가 내민 것은 대공의 문장이 찍힌 패였다. 그가 일어서자 비에드 상단주도 따라서 일어났다. 아놀드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비에드 상단주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악수했다.
목적은 이루었고 밤이 늦었기에 비에드 상단주는 돌아갔다.
혼자 남은 아놀드는 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비밀리에 정보 길드에 의뢰해 김준을 찾도록 했으나 돌아온 것은 모르칸 제국에는 그런 귀족이 없다는 보고뿐이었다. 현재는 상인이나 용병들까지 조사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비에드 상단주의 도움으로 손쉽게 김준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큭큭큭, 역시 제국에는 없었구나. 이놈, 하지만 바렌 왕국에 있다고 하니 이제 자세한 정보를 입수하는 건 시간문제다.”
콰르르르.
블루캐슬을 나온 비에드 상단주의 마차는 상단이 야영 중인 곳을 향하여 달려갔다. 비에드 상단주는 아놀드 대공을 만난 일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일단 뇌물로 친분을 쌓아 두었기에 앞으로 상단을 운영하는데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노예경매를 통해서 목표로 한 100명의 노예보다 훨씬 많은 250명을 입수했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아놀드는 정보 길드장을 은밀하게 불러서는 대륙의 동부 바렌 왕국의 엘도라도 영주인 프리맨 후작에 대하여 조사를 의뢰했다. 정보 길드장은 아놀드에게 그 결과는 한 달 정도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준의 적은 이렇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디 숲.
그곳은 드라비아 왕국령으로 북부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북으로는 모르칸 제국이 있으며, 남으로는 페드린 왕국이 있었다.
우디 숲은 울창하고 무척 넓었는데, 남북으로 약 950킬로미터, 동서로 약 400킬로미터 정도로 전체적으로 보면 타원형으로 생긴 숲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각종 몬스터가 살고 있었기에 몬스터의 천국이라 알려진 숲이다.
간혹 용병들이나 사냥꾼, 명성을 얻고자 하는 기사들이 몬스터의 가죽을 얻기 위하여 우디 숲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몬스터에게 오히려 당해 돌아오지 못했다.
우디 숲에서 가장 세력이 크고, 무리의 수가 많은 것은 역시나 오크였다. 비록 오크 왕 쿠퍼가 심한 부상을 입어 동굴 속에서 상처를 치료 중이라고는 해도 오크 부족에는 전사들이 많았기에 날로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오크 부족에 있는 한 동굴.
깊게 뚫려 있는 동굴이라서 그런지 입구에만 햇볕이 약간 스며들 뿐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나 동굴의 벽에는 기름이 묻어있는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에 앞을 분간할 정도는 되었고, 무장한 오크 전사들이 무언가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런 동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는 곳이 나온다. 철문 안 동굴 속에는 사방 20미터 정도의 공동이 나왔고, 천장은 10미터 정도로 높았다. 천장에는 마법등이 매달려 있어서 대낮같이 환했다.
돌로 된 바닥에는 15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 위에 앉은 것은 믿어지지 않게도 오크였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있으며, 마법사들이 이용하는 스테프를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 오크가 바로 우디 숲의 지배자인 오크 왕 쿠퍼였다. 그는 마법진 위에 앉아서 마나를 몸속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번쩍.
오크 왕 쿠퍼가 눈을 뜨자 안광이 무시무시했다.
“취익, 조금만 더 치료하면 완치가 되겠구나. 취익.”
오크 왕 쿠퍼는 신의 선물을 김준에게 강탈당하고, 부상까지 심하게 입어 동굴 속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다행이 신의 선물을 흡수해 몸이 재구성되면서 앞으로 3500년 정도는 더 수명이 늘어났다.
또한 신의 선물의 영향으로 인해서 내상도 많이 치료 했지만 완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마법을 사용하는 것과 거동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취익, 이제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당하지는 않겠다. 취익, 동굴을 나가서 오크 왕국을 세워야겠어. 취익.”
그는 스테프를 집어 들면서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수정구에서 빛이 나면서 오크의 상체가 나타났다.
“취익, 부르셨습니까, 왕이시여, 취익.”
“취익, 질리(Zili) 동굴로 오너라. 취익.”
“예, 왕이시여. 취익.”
오크 왕 쿠퍼가 동굴 속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에 오크 부족을 다스리는 오크는 질리라는 바실 오크였다.
그그그긍.
동굴의 두꺼운 철문이 열리면서 질리가 안으로 걸어 들어와 엎드렸다.
“취익, 왕이시여, 부르셨사옵니까? 취익.”
“그렇다. 취익, 질리 너는 전사들을 이끌고 숲을 뒤져서 이것을 나에게 가져와라. 취익“
오크 왕 쿠퍼는 양피지를 하나 내밀었고, 질리가 그것을 받아 들으며 대답했다.
“예, 왕이시여. 취익.”
질리가 동굴을 나가자 쿠퍼는 동굴의 철문 밖에 대기해 있는 오크 전사에게 명했다.
“취익, 배가 고프구나. 물소를 한 마리 대령하라. 취익.”
“예, 왕이시여. 취익.”
오크 왕 쿠퍼가 잠시 기다리자 오크 전사들이 다리를 묶은 물소를 들고 와 내려놓고 나갔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크 왕 쿠퍼는 살아있는 물소의 살을 뜯어 먹기 시작했고,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물소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웠다.
바렌 왕국의 프리맨 후작령인 엘도라도. 그곳은 하루가 다르게 영지가 발전하고 있고, 지금도 각종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준은 글리아나와 결혼한 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비록 지금의 능력으로는 차원을 넘어가지는 못했지만 차원을 들여다 볼수는 있었다. 김준이 이 세상으로 차원 이동한지가 겨우 몇 년에 불과한데, 지구의 시간은 어느새 100년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차원이 다르다 보니까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지구로 차원이동 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가족들과는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은 벌써 모두 죽고 없기 때문이었다. 희망이 사라지자 김준도 침울했다.
불현듯 어렵고 힘든 차원이동이 가능하다면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과 차원이동은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가지 가능성은 신의 아티팩트 3개를 보유해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 남은 2개의 신의 아티팩트도 자신이 보유한다면 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김준이 생각하기에 분명 신은 존재했다. 신의 아티팩트만 보더라도 설사 드래곤일지라도 이런 것은 창조할 수는 없다. 창조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이었다.
신은 이 세계의 멸망이나 우주의 법칙이 어긋나는 것, 시간의 뒤틀림, 차원의 균열 같은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큰일에는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간섭하거나 나서지 않았다. 신은 모든 만물을 관조만 할 뿐이었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김준은 오랜만에 노페르슈롱을 타고 나와 사색에 빠져 있었다. 글리아나는 김준의 옆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가끔 저렇게 김준이 사색에 빠져 있는 걸 볼 때면 마음 한곳이 찡하게 아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준, 무슨 생각해?”
“아, 아냐. 아무것도. 가자.”
김준은 글리아나의 말에 순간 사색에서 깨어나 노페르슈롱의 고삐를 잡아당겨 빠르게 달려 나갔고, 글리아나도 환하게 웃으면서 뒤따라 달렸다. 모처럼 밖으로 나온 노페르슈롱은 기분이 좋은지 마음껏 소리를 내지르면서 빠르게 달렸다.
글리아나와 같이 해변을 돌던 준은 잠시 후 말을 멈췄다.
고운 모래사장에 둘은 다리를 뻗으면서 앉았고, 글리아나는 김준에게 머리를 기대었다. 향기롭고 부드러운 글리아나의 머릿결을 쓰다듬던 김준은 나직하게 속삭였다.
“사랑해, 글리아나.”
“준, 나도 사랑해.”
“엘도라도를 앞으로도 내가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응, 준이라면 분명 그럴 거야.”
“고마워, 글리아나. 내 곁에 있어줘서.”
“준이 오히려 내 곁에 있어줘서 난 너무 너무 행복해.”
김준은 글리아나의 턱을 약간 들어 올려 키스했고, 글리아나는 두 눈을 감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키스가 두 사람의 가슴에 행복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