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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엘도라도
두두두두.
김준과 글리아나는 말을 타고 신나게 바다를 향해 달렸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했다.
둘은 해변에 말을 세워두고는 플라이 마법으로 공중으로 떠올라 바다 위를 날아 다녔다. 서로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최고였다. 바다에는 해양 몬스터도 가끔 출몰하기에 안전을 위해 제법 높이 날고 있었다.
“글리아나, 바다 냄새 어때?”
“응, 조금 비릿한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바다는 좋아.”
“그렇지? 이렇게 탁 트이는 맛에 바다를 바라보는 거야.”
바다에는 고기잡이배가 수십 대나 떠 있었다. 물고기를 잡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고기잡이배가 몇 대 없었지만 지금은 영지의 사정이 나아졌고, 김준이 따로 고기잡이배를 5백여 대나 대량으로 구입했기 때문이다. 저 고기잡이배의 선원들은 모두 김준이 고용한 어부들로, 주급을 받고 일한다.
둘은 한참 바다 위를 날아다니다가 평평한 바닷가의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법주머니 속에서 준비해온 먹을거리를 꺼내어 맛있게 먹으면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김준은 글리아나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 미소 지었고, 글리아나는 그런 김준의 뺨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잘생겼어.”
“고마워.”
“준, 나와 결혼해줘서 고마워요.”
“글리아나, 내가 더 고마워.”
“아, 저기 봐! 너, 너무 아름다워!”
그 즈음 수평선 끝에 석양이 지면서 온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수평선 위에 배들이 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김준은 상체를 일으켜 글리아나에게 키스했다. 아름다운 석양과 어우러지는 달콤한 키스였다.
“준, 사랑해요.”
“글리아나, 나도 사랑해.”
연인은 꼭 껴안은 채 아름다운 석양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모르칸 제국의 황궁 대연회실은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벽면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수백 명의 귀족들이 레이 황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해 있었다. 황자와 공주들도 전부 참석했다.
한쪽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쿠키를 비롯해 과일, 빵, 치즈, 등 각종 먹을거리와 음료가 잘 차려져 있었다.
웅성웅성.
귀족들은 각자 친분이 있거나 아님 파벌 별로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놀드는 잘 차려 입고 테이블에 있는 쿠키와 음료를 마셨다. 귀족들은 그런 아놀드를 힐끔거리면서 아래위를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아놀드는 제법 잘생긴 편이었지만 검은 머리카락에 얼굴이 이국적이었기에 귀족들의 집중적인 호기심을 유발했다.
“저자는 누구지?”
“이번에 검술대회에서 우승한 자 같군요?”
“검술대회 우승자?”
“그렇습니다. 이번에 우승한 자가 뮤란 대륙인으로 검은 머리카락에 이국적으로 생겼다고 하더군요.”
“아, 나도 들은 것 같소.”
건곤신공을 익힌 아놀드는 귀가 아주 밝았기에 모든 걸 듣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큭큭큭, 잘들 떠들어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어떤 표정일지 보자.’
아놀드가 레이 황제의 불치병을 고친 자라는 게 밝혀진다면 고개를 숙일 자들이 많을 것이었다.
대연회실의 정면 벽면에는 황좌와 황후좌가 놓여 있었고, 황제호위기사단이 앞에 도열해 있어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레이 황제가 느닷없이 모든 귀족들과 황족들까지 전부 참석하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모두 참석하게 되었다.
빰빠라빰빠빰.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고, 시종장이 크게 외쳤다.
“황제폐하와 황후마마 드시옵니다.”
레이 황제와 로리안 황후가 대연회실에 들어서자 모두들 침묵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표했다.
저벅 저벅.
경쾌한 발소리를 내면서 레이 황제는 로리안 황후를 이끌고 들어와 황좌에 앉았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도 좋다.”
그제야 귀족들을 고개를 들어 레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고위 귀족들은 모두 한 번씩은 레이 황제가 누워 있는 홀을 찾았었다. 그렇기에 레이 황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살이 없었고, 거친 숨을 내쉬면서 힘들어 하던 레이 황제였는데, 지금은 믿을 수 없게도 혈색도 좋고, 얼굴에 살도 제법 올라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았던 레이 황제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귀족파의 아르크 공작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황제폐하,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을 뵈오니 신께서 아직 우리 모르칸 제국을 버리시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그런가, 아르크 공작?”
“예, 황제페하께서 병마를 이겨내신 것 같사옵니다.”
“잘 보았다. 아르크 공작. 난 이제 불치병을 이겨내고 완치 되었느니라. 이 모든 것은 아놀드 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웅성웅성.
귀족들은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오, 짐의 은인 아놀드 경이 거기에 있었구려.”
레이 황제는 황좌에서 일어나 아놀드가 서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앞쪽에 서 있던 귀족들이 좌우로 물러났다. 아놀드가 절을 하려고 몸을 숙이자 레이 황제가 그를 말렸다.
“아놀드 경은 이제 짐의 은인이니 절을 할 필요가 없소.”
“황공하옵니다. 황제폐하.”
레이 황제가 아놀드의 손을 잡으면서 중앙으로 이끌었다. 모든 귀족들이 놀라면서 레이 황제와 아놀드를 쳐다보았다.
“짐은 아놀드 경에게 직접 작위를 내리겠노라. 시종장은 즉시 작위식을 준비하라.”
“예, 황제폐하.”
시종장은 미리 언질을 받았었기에 작위식은 순식간에 준비를 마쳤다.
“짐의 불치병을 완치시켜준 아놀드 경에게 대공의 작위를 내린다.”
“허억, 대공?”
“이, 이럴 수가?”
제국의 공작도 아니고 대공이라는 작위를 레이 황제가 내리자 모든 귀족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르칸 제국에서 대공은 아놀드가 최초였다. 대공은 레이 황제 다음으로 작위가 높다. 대공과 같은 급으로 황후와 황태자가 있었지만 황제의 가족이었기에 사실상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놀드가 작위가 가장 높게 되는 것이었다.
원래 제국에서 대공은 황제의 동생이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작위였지만 모르칸 제국의 황제에게는 형제가 없었다. 모두 불치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기 때문이었다.
“황제폐하, 대공이라니요?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아르크 공작의 말에 레이 황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닥쳐라! 짐의 황명을 감히 누가 참견하고 나선단 말이냐?”
“황제폐하, 그래도 대공은 너무 과한 은혜이옵니다. 선례를 보더라도 아직 이런 적은 없었사옵니다. 통촉해 주시옵소서.”
“닥쳐라. 아무리 아르크 공작이라도 더 이상은 짐은 참지 않겠노라. 짐은 황제이니라. 황제!”
레이 황제의 무시무시한 안광에 모든 귀족들이 겁을 먹었다.
“이제부터 짐의 황명을 감히 거역하는 자는 설사 황자라고 하더라도 반역자로 다스리겠노라.”
레이 황제의 단호한 말에 모든 귀족들이 경악했고, 이후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최고의 죄가 반역죄였으니 잘못하면 가문이 끝장날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었다.
스르릉.
시종장이 가져온 롱소드를 뽑아든 레이 황제는 아놀드의 양쪽 어깨에 롱소드를 대면서 말했다.
“아놀드 대공은 앞으로 짐과 제국의 검이 되어 충성하겠는가?”
“예, 황제폐하.”
“아놀드 대공에게는 수도 모르칸 인근에 있는 짐의 직속 영지인 카라 호수 지역을 아놀드 대공의 영지로 하사하노라. 또한 황궁 인근에 있는 블루캐슬도 내리노라.”
귀족들은 레이 황제가 대공의 작위를 내린 것만 해도 깜짝 놀랄 일인데, 거기에다가 가장 기름지고 좋다고 알려진 카라 호수 지역과 블루캐슬도 준다고 하자 입이 쩌억 벌어졌다.
“또 이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황궁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 중 절반을 줄 것이며, 공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공주와도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하노라.”
“황공하옵니다. 황제폐하.”
갑자기 모르칸 제국에서 레이 황제 다음으로 영향력이 커진 인물이 생겨났기에 귀족들의 관심이 아놀드에게 집중되었다. 공주들도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아놀드를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레이 황제가 불치병을 완치하고, 아놀드가 대공의 작위를 받은 소식이 모르칸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 소식이 마케리안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에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귀족들과의 마법통신 때문이었다.
뺨빠라빰빰!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귀족들이 가운데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1공주인 빅토리아는 아놀드에게 먼저 다가가서는 춤을 신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잡아 주었다.
아놀드는 10년 넘게 춤을 배운 사람처럼 아주 춤을 잘 추었다. 그는 시종에게서 반나절 동안 여러 가지의 춤을 배웠는데, 무공의 고수이다 보니 리듬을 타면서 금방 춤을 배운 것이다.
요령을 알게 되니 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놀드는 빅토리아 공주를 잘 리드하면서 멋지게 마무리했다.
짝짝짝짝.
아놀드와 빅토리아 공주가 춤을 아름답게 잘 추었기에 귀족들은 절로 자리를 비켜 주었었고, 춤이 환상적으로 끝이 나자 너도나도 박수를 쳐주었다.
아놀드는 빅토리아 공주를 시작으로 나머지 공주들과도 모두 춤을 추었다.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공주들과의 춤이라서 그런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결국 9명의 공주들과 모두 춤을 추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음료를 마시고 있자 이번에는 귀족파, 중도파, 국왕파, 할 것 없이 귀족들이 너도 나도 인사해 왔다. 무공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기에 아놀드는 제법 피곤함을 느꼈다. 오늘의 연회는 레이 황제가 주최했지만 주인공은 아놀드였다.
아놀드는 다음날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레이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작위 증명서와 롱소드, 황실보관소에 문장을 등록하고, 블루캐슬도 인도 받았다. 그리고 레이 황제의 재산 절반을 계산하여 받았는데, 무려 20억 골드였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이제 아놀드의 대공령이 된 카라 호수 지역은 비옥한 토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영지의 규모는 비록 백작령 정도에 불과했지만 굶어죽는 영지민이 없을 정도로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다. 농노와 유민을 포함해서 영지민은 약 40만 명 정도였다.
프리맨 후작의 영주성.
김준은 집무실에 앉아서 밀린 서류를 한창 검토하고 결재 중이었다. 엘도라도에서 수도 까브까지의 도로 정비 공사는 끝이나 하루에도 수십 곳의 상단에서 물건을 싣고 와 교역을 했다.
엘도라도에서는 천일염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현재는 도자기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천일염을 뿌린 생선이나 말린 생선도 날로 교역량이 늘어나고 있었으며, 각종 차나 치즈도 생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농지도 개간사업을 통해서 내년에는 생산량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영지 곳곳에 버려진 땅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곳을 인력을 대량으로 동원하여 논이나 밭으로 만들어 씨를 뿌려 두었었다. 그 땅을 농노들에게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게 했다. 땅에 대한 애착이 지독한 농노들은 생산량의 30%만 세금을 내고 나머지는 전부 가질 수 있다는 김준의 획기적인 방침에 농노라면 너도나도 신청했다.
각종 작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저수지도 몇 곳이나 신설하여 농수가 부족하지 않도록 했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더욱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모든 사업이 잘 돌아가고 있는 엘도라도였다.
하지만 최근 엘도라도는 다른 이유로 더 활기찼다. 그것은 바로 영주인 프리맨 후작의 결혼식 준비 때문이었다. 그의 신부가 될 여인은 글리아나였는데,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성녀처럼 성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청순하기도 섹시하기도 하여 마치 카멜레온이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글리아나의 아름다움도 그러했다.
베일레 자작은 아들 프리맨의 결혼식을 위해 왕실과 왕국 전역의 귀족들에게 결혼식 초청장을 발송했다. 국왕을 비롯해 왕실과 수도 까브에서 살고 있는 고위 귀족들도 김준이 이렇게 갑자기 결혼을 할 줄은 몰라 놀랐고, 그중에서도 쥴리아 공주가 가장 놀랐다. 올해가 가기 전에 김준으로부터 청혼이 들어올 줄 알고 있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누가 신부가 되는지 꼭 보아야겠다 생각한 쥴리아 공주는 엘도라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