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41화 (141/284)

0141 / 0284 ----------------------------------------------

제6권  엘도라도

스윽, 슥슥.

그런 후 9개의 침을 차례대로 뽑아내었다.

“궁녀들은 어서 황제폐하의 몸에서 나온 것을 잘 닦아라.”

“예, 알겠습니다.”

아놀드의 말에 대기해 있던 궁녀들이 서둘러 레이 황제의 몸 밖으로 흘러나와 묻어 있는 탁한 피와 불순물을 닦아내었다.

“황제폐하, 오늘의 치료는 끝이 났습니다.”

“으음, 아놀드 경. 정말 수고했소.”

걱정이 되었는지 폴샤르 대주교가 물었다.

“황제페하, 몸은 어떠하시옵니까?”

“아,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이젠 상쾌하구려.”

“황제페하, 제가 잠시 몸을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대주교, 살펴보시오.”

폴샤르 대주교는 조심스럽게 레이 황제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는 자신이 신성력을 불어 넣어줄 때보다 황제의 몸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는 걸 알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궁정마법사 모로스가 다가와 레이 황제의 몸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생명력이 훨씬 나아졌다.

“황제폐하, 치료 전보다 훨씬 좋아지셨습니다.”

“하하하, 나도 그렇게 느껴지오. 아놀드 경, 수고 많았소.”

“황제폐하, 오늘의 치료만으로는 완치가 되지 않았사옵니다. 앞으로 2번은 더 치료를 하셔야만 불치병이 완치가 되며, 몸보신을 잘 하신다면 앞으로 20~30년은 장수하실 것이옵니다.”

“알겠소. 아놀드 경의 말대로 하겠소.”

“내일 하루는 쉬고 다시 치료를 시작할 것이니 황제폐하께서는 몸보신을 할 수 있는 요리들로 많이 드십시오.”

“안 그래도 모처럼 배가 고프구려. 주방장에게 일러 최고의 만찬으로 가져오라 일러라. 아놀드 경, 짐과 함께 먹읍시다.”

“황공하옵니다. 황제폐하.”

“그냥 가지 말고 대주교와 모로스 경도 함께 먹읍시다.”

“예, 황공하옵니다. 황제폐하.”

모르칸 제국의 수도 모르칸의 남문 밖, 골드 카렌 상단 대창고. 페드린 왕국의 마일드 상단이 야영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20대의 귀족마차와 300대의 짐마차, 50대의 짐수레를 원형대형으로 배치해 혹시라도 있을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도록 조치했다.

3천 명의 용병단은 마차의 바깥쪽을 맡아서 경계근무를 서게 되었고, 2천 명의 상단 일꾼들은 반대로 마차를 세워놓은 원형 안쪽으로 배치하게 했다.

레이 황제는 수도 모르칸에 갑자기 내려졌던 봉쇄명령을 3일 만에서야 전격적으로 해제하고는 황제의 군대가 아니면 고위 귀족 누구의 사병이라도 50명 이상이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이 금지인 준 봉쇄체제로 전환했다.

일단 이 정도만 해도 상단이나 수도민들의 왕래가 자유롭게 되었기에 불편함이 많이 나아졌다.

골드 카렌 상단의 상단주이며 귀족파의 핵심 인물인 코친 후작은 마일드 상단과 대규모 교역이기에 직접 나섰다. 천막 속에는 코친 후작과 마일드 상단의 비에드 상단주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하녀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드셔보십시오. 대륙의 남부 지역에서 최고로 치는 바바네산 누악차입니다.”

“오오, 제국의 황제조차 자주 마시지 못한다는 귀한 차를?”

“후작각하께서 오셨는데 누악차 정도는 대접해야지요.”

“허허허, 손님 대접이 정말 마음에 드는군요.”

제국의 후작이 페드린 왕국의 백작에게 존대를 해주었다. 그것만 보아도 코친 후작이 능력 있는 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코친 후작은 자신보다 작위가 낮은 자에게는 말을 낮추는데, 능력이 있는 자는 이렇게 존대를 해준다.

“그래 이번에는 얼마나 가져온 것이오?”

“저번의 교역량의 2배 정도 됩니다.”

“그래요?”

“예, 후작각하. 먼저 차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대륙의 남부 샬럿 지역의 베슨차 50톤, 레나호수 지역의 발슈차 30톤, 엘프호수 지역의 푸르아차 20톤을 가져 왔습니다.”

“작년보다는 조금 늘어났군요?”

“그렇습니다. 25% 정도 늘어난 규모입니다.”

“다음으로 넘어 갑시다.”

“예, 이번에는 제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한산 치즈 30톤을 가져 왔습니다.”

“작년에는 20톤이었는데, 신경을 많이 썼군요.”

“일찍부터 물량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향신료 15톤과 카라유 50톤 입니다.”

“안 그래도 카라유(샐러드에 넣는 올리브유와 유사함.)재고가 얼마 없어서 걱정했는데, 20톤이나 더 가져왔군요.”

“부탁하신 세일럼산 양탄자 2천 장도 준비했습니다.”

“안 그래도 귀족들의 독촉이 여간 아니었는데 잘되었구려.”

“그리고 이번에는 바렌 왕국의 엘도라도라는 곳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20톤 가져 왔습니다.”

“천일염?”

“암염과 비슷한 것인데 특이하게 바다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허허, 바다에서 소금이 생산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가격은 암염의 절반 수준입니다.”

“오오, 멋지군요.”

“그렇습니다. 일단 한번 써 보시고, 만족하신다면 다음번에는 좀 더 규모를 늘려 보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일단 암염의 절반 가격이니 제국민들이 좋아 하겠습니다.”

“저번에 부탁하신 스카르(마약)10톤을 어렵게 구했습니다.”

“요즘 스카르의 재고가 부족해 귀족들이 난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선물로 가져온 것은 천일염으로 염을 한 말린 생선 100박스(한 박스에 20마리)입니다. 구워서 드시면 고소한 게 아주 맛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바렌 왕국의 엘도라도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허허, 별미일 테니 잘 먹겠소.”

“대금은 어떤 것으로 지급하실 겁니까?”

“저번처럼 미스릴 500킬로그램, 금괴 10톤, 각종 몬스터의 가죽 5만장, 철광석 100톤, 나머지는 골드화로 주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노예경매는 언제 열립니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지만 3일 뒤 이번에는 수도 모르칸의 동문 밖 임시 경매장에서 열리게 될 것이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오면서 소문을 들었는데, 황제폐하의 불치병을 누가 고치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허허허, 나도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인 것 같소. 아직 결과는 며칠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오.”

“아무도 고치지 못한 불치병을 과연 고칠 수 있을까요?”

“글쎄. 나도 그건 장담을 하지 못하겠소. 목숨을 내어놓고 하는 치료이니 말이오.”

“어차피 식량을 보급해서 돌아가야 하니까 며칠 여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결과나 보고 돌아가야겠습니다.”

“원래는 나의 저택에서 묵어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이 그렇지가 못하니 미안하구려.”

“아, 아닙니다. 후작각하. 저는 그냥 여기에서 야영하면서 지내는 게 좋습니다.”

레이 황제가 누워있는 홀 밖에는 황제호위기사단 500명이 배치되어 그 누구의 접근도 불허했다. 황후조차도 방문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황제의 절대명령이었다. 그러나 시녀들이나 내관의 은밀한 정보로 인해서 레이 황제의 불치병을 치료 중이라는 정보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퍼졌다.

귀족파와 중도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이 급하게 각자 회의를 열어 대책에 들어갔다. 바로 레이 황제의 불치병을 누가 고치고 있다는 바로 그 정보 때문이었다.

황제파는 황제의 불치병이 악화된 게 아닌가 걱정했다가 크게 안도했다. 제국 역사상 아무도 황제의 불치병을 치료하지 못 했는데, 누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외부의 누구도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바렌 왕국의 엘도라도. 프리맨 후작의 영주성.

수도 까브까지의 도로가 정비되면서 날로 급격하게 천일염의 교역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바렌 왕국 전역으로 천일염이 거래가 되면서 암염의 교역량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천일염은 이제 바렌 왕국을 넘어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또한 엘도라도에서 생산되는 간생선이나 말린 생선도 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각 왕국이나 제국의 상단이 수도 까브로 몰려들고 있었다. 수도 까브에는 이미 수백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었으며, 하루에 10여 개씩 상점이 신설되고 있었다.

이렇게 경제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되자 지방의 영주들도 수도 까브까지의 도로를 서둘러서 정비하기 시작했다. 도로가 잘 정비되면 상단의 이동이 편리하여 그만큼 각종 무역의 물량이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김준은 천일염으로 막대한 부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개발한 상품이 바로 도자기였다. 도자기를 생산하기 위하여 이미 토기를 제작하는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해 두었다.

토기는 보통 평민들이나 유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그릇이나 생활용품이었지만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부족했었다. 그러나 김준이 개발한 도자기는 유약을 발라서 구운 백자이기에 귀족들의 반응이 폭발적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먼저 접시류를 만들어 문양을 넣고, 유약을 발라 구워보니 반들거리는 게 고급스러웠다. 접시의 뒷면의 낮은 굽에는 생산자 표시인 엘도라도라는 대륙어와 프리맨 후작의 문장인 별모양, 생산년도를 표시했다.

처음 백자 접시가 수도 까브에 선보였을 때 귀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접시 하나에 10골드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매진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백자 접시는 잘못 운반하면 깨어질 수도 있었기에 안전한 운반을 위해서 마법주머니를 이용했다. 마법의 공간속에 넣어서 이동하면 그만큼 충격이 전달되지 않기에 안전했다.

백자 접시는 원형과 사각형 형태 두 가지로만 만들었지만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발적이자 다양한 형태의 접시로 만들었다. 또한 시험적으로 찻잔 4개와 손잡이 티포트, 다기세트를 출시하자 이것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법 많은 물량에도 불구하고, 귀부인들이 앞을 다투어 사제기를 하면서 다기세트와 접시를 구입해갔다. 이런 귀한 제품은 과시를 좋아하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물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생산된 다기세트와 접시 등은 언제나 물량이 부족했고, 고위 귀족들의 가문에서는 예약을 해두고, 물건이 들어오면 상점에 진열하기도 전에 팔려 나갔다.

베일레 자작과 김준, 글리아나는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다기세트는 엘도라도에서 생산된 백자 도자였다.

“아들아, 이번에도 도자기가 품절되었구나.”

“귀족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물건이니 이런 반응은 당연합니다.”

“나도 이 다기세트가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여기에 차를 만들어 마시면 더 맛과 향이 좋으니까 말이다.”

“이번에 신상품이 나왔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번에도 도자기더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것과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김준이 꺼내어 놓은 것은 산화코발트를 유약에 섞어 넣어 만든 청화백자였다. 그런데 실생활에 쓰는 것이 아닌 장식품이었다. 그림과 조각처럼 이제는 이 청화백자 항아리가 귀족의 저택이나 성에 장식될 것이었다.

청화백자 항아리에는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그림이나 각종 꽃문양을 그려 넣었다.

“이 도자기 항아리는 예술품으로, 귀족들의 저택이나 성에 장식하는 것이기에 하나에 최소 100골드는 받을 겁니다.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100골드가 아니라 200골드라도 서로 사려고 난리일 테니까요.”

“으음, 하긴 나라도 돈만 있다면 구입하고 싶을 정도구나.”

“잘 보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엘도라도는 천일염과 함께 도자기를 생산해 왕국에서 가장 발전된 영지가 될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너의 결혼식이 10일 앞으로 다가왔구나. 식은 내가 책임지고 가장 성대하게 치러주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글리아나가 김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미소 지었다.

“글리아나, 모처럼 바다나 보러갈까?”

“응, 좋아요. 가요.”

“아버지, 바다에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그래. 좋은 시간 보내고 오거라.”

김준과 글리아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베일레 자작은 둘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무척 흐뭇한 표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