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36화 (136/284)

0136 / 0284 ----------------------------------------------

제5권  프리맨의 귀환

‘큭큭큭, 비록 이계의 대륙이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의 세상이야.’

건공신공을 익힌 아놀드의 상대는 이 대륙에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방심해 일격을 당한 일이 잊히지 않아서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이 모르칸 제국에서 기반만 확실하게 잡는다면 복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걸 위안으로 삼으려고 참고 인내하고 있었다.

덜컹.

휴게실의 문이 열리면서 환관이 들어섰다.

“황제폐하께서 윤허 하셨으니 저를 따라 오십시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윤허가 빨리 내려왔군요?”

“황제폐하께서 조금 전에 잠에서 깨어나셨습니다.”

아놀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환관의 뒤를 따라 복도를 한참이나 걸어갔다. 평범해 보이는 복도였지만 아놀드는 은신해 있는 자들의 기운을 똑똑하게 느끼고 있었다.

‘큭큭큭, 은신술이 제법이지만 2류에 불과해.’

아놀드의 생각대로 복도에는 어세신의 은신술을 익히고, 마법까지 익힌 자들이 은신해 있었다. 놀랍게도 한두 명이 아닌 무려 100여 명이나 되었다.

‘역시 황제가 살고 있는 황궁이라는 건가?’

무림에서는 겨우 2류의 수준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1급을 넘어 거의 특급에 이르는 실력이었기에 은신해 있는 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들은 아놀드가 자신들이 은신해 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그그긍.

두꺼운 거대한 문이 열리고 환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곳은 황제가 누워 있는 거대한 홀이었다.

가운데에 있는, 10명이 한꺼번에 누워도 될 것 같은 거대한 침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거대하면서 웅장한 조각과 장식이 되어있는 황금기둥이 3개씩 모두 6개나 세워져 있었다. 황제의 침상 뒤편의 벽면과 좌, 우측의 벽면에도 각종 벽화와 화려한 조각상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홀의 천장에는 아놀드 체구의 약 30배 정도 되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대명 황제의 자금성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레이 황제가 있는 이곳의 홀은 웅장 하면서도 거대하며, 온갖 화려함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황제의 침상을 중심으로 좌, 우측에는 황금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황제호위기사단의 기사들 30명씩 모두 60명이 도열해 있었으며, 침상의 뒤쪽에도 10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동시에 황제의 침상 전면 20미터 앞에도 역시 무장한 기사 50명이 10명씩 5열로 경호를 위해서 서 있었다.

“황제폐하께서 계신 곳이니 바닥에 엎드리시오.”

홀에 들어서기 전에 아놀드는 환관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몇 가지 전해 들었었다.

황제폐하의 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고개를 들지 말고 엎드려 있을 것, 묻는 말에만 대답할 것, 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기사의 30미터 앞(황제로부터는 50미터)으로 다가가지 말 것 등이었다.

“헉헉, 그대가 검술대회의 우승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황제폐하.”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뮤란 대륙 출신이군.”

“그렇습니다.”

“허허, 올해의 검술대회 우승자는 뮤란 대륙 출신이라? 대단해. 고개를 들어도 좋다.”

“황공하옵니다. 황제폐하.”

레이 황제의 명에 아놀드는 엎드린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아 황제의 용안을 쳐다보았다. 황제의 침상 앞에 서 있던 50명의 기사들이 그제야 바닥에 앉았다.

아놀드는 비무장이었다. 50명의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경호를 뚫고 절대로 황제를 기습공격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닥에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다.

‘큭큭큭,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제를 죽일 수도 있는데 그걸 이들이 알까?’

“그대는 소드익스퍼트 중급인가?”

레이 황제의 말에 아놀드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면서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황제폐하.”

“중급이 아니라고?”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허허, 그럼 그대의 검술경지가 상급인 모양이군?”

“그것도 아니옵니다. 황제폐하, 저의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저의 상대는 없사옵니다.”

“하하하하, 그건 자신감인가? 아님 허풍인가?”

“황제폐하, 저는 오직 진실만 말했사온데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대는 나의 침상 뒤에 서 있는 10명 중에서 2명이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라는 걸 알고 있는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이미 느끼고 있었사옵니다.”

“하하하하, 그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가?”

“여기에 있는 2명의 소드마스터라고 하더라도 저의 5초식을 받아낼 수 없사옵니다. 황제폐하.”

“뭐야, 이놈이?”

2명의 소드마스터 중에서 우측에 서 있는 다혈질의 데라치 백작이 참지 못하고 외쳤고, 그의 옆에 있는 소드마스터 가레반 백작도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호응했다.

“그럼 그대는 소드마스터인가?”

“아니옵니다. 황제폐하.”

“그런데도 소드마스터를 5초식 안으로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제가 그들보다 두 단계 위의 경지이기 때문 이옵니다.”

“뭐, 뭐라?”

아놀드의 말에 레이 황제도 약간 호기심어린 눈빛을 했다.

소드마스터 위에는 그랜드마스터라는 최후의 경지가 있었지만 그건 신마대전 이전에나 있었던 전설의 경지였고, 그랜드마스터 위의 경지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황제폐하, 저 무례한 놈을 제가 훈계할 수 있도록 윤허해 주시옵소서.”

얼굴을 찡그린 레이 황제는 데라치 백작을 쳐다보다가 눈동자를 돌려 다시 아놀드에게 말했다.

“그대는 황제를 능멸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잘 알고 있사옵니다. 황제폐하.”

“지금이라도 말이 헛나왔다고 하면 용서해주마.”

“황제폐하, 신은 분명 진실로 말씀 드린 것이옵니다.”

“하하하, 나는 이제껏 소드마스터보다 위의 경지인 그랜드마스터보다 높은 경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또한 마케리안 대륙에 그랜드마스터조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대의 말을 믿으라고?”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

“저저! 황제폐하, 신이 저자의 버릇을 고칠 수 있게 윤허해 주시옵소서.”

“짐의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오직 죽음뿐이노라.”

다혈질인 데라치 백작의 말에 레이 황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말 아놀드의 말대로 그가 그런 경지에 있다면 실력을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만약 아놀드가 데라치 백작의 검에 죽더라도 황제 앞에서 감히 불경하게 황제를 능멸한 죄를 지었으니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데라치 백작은 가볍게 공중제비를 시전해 40미터 공중을 날아서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아놀드와는 불과 10미터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이다.

“검술대회의 우승자라 귀엽게 봐주려고 했더니 너무 버릇이 없더구나. 내 오늘 너에게 진정한 소드마스터의 실력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마. 누가 저놈에게 칼을 주어라.”

데라치 백작의 말에 우측 벽 쪽에 서 있던 기사가 롱소드를 던져 주려고 하자 아놀드가 말했다.

“소드마스터 정도는 그냥 맨손으로도 충분하니 그것은 필요 없소.”

“크크크, 허풍이 센 건지 아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모한 놈인지 알아보면 알게 되겠지. 3초식을 양보할 테니 공격해 보거라.”

“하하하하, 내가 공격에 나선다면 1초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테니 먼저 공격하시오.”

“이이, 도저히 못 참겠다. 너의 한 팔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버릇을 고쳐주겠다.”

슈아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데라치 백작은 특유의 현란한 검술로 선공을 선보였다. 이를 구경하던 기사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었다. 그러나 아놀드는 믿을 수 없게도 두 손을 등 뒤로 돌리고 보법인 미허신보(彌虛神步)로 바닥을 밟으면서 데라치 백작의 공격을 피했다.

소드마스터의 검술이라서 그런지 눈이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빨랐지만 아놀드는 마치 유령처럼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벌써 데라치 백작은 10초식이 넘어가고 있었기에 기사들도 눈이 커졌고, 소드마스터인 가레반 백작은 믿을 수 없었는지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하하, 소드마스터라고 하더니 겨우 이 정도로 날 이길 수 있겠소?”

“이익, 죽여 버리겠다.”

슈가각, 파팟!

데라치 백작의 검술이 더욱 빨라졌다. 그러나 아놀드의 미허신보도 이전보다 두 배나 빨라져 이젠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퍼억!

“크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훨훨 날아가 떨어진 자는 아놀드가 아니라 데라치 백작이었다. 데라치 백작이 사선으로 휘두른 검을 아놀드가 상체를 흔들어 피하면서 우측 어깨로 데라치 백작의 가슴을 받아 버렸었다.

데라치 백작은 벌떡 일어났지만 입가에 흐른 실핏줄이 보이고, 몸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비틀거렸다. 그것만 보아도 데라치 백작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레이 황제도 아놀드가 허풍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데라치 백작을 가볍게 물리치는 것을 보고는 이제까지 한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데라치 백작은 황제호위기사단의 부단장으로 레이 황제는 평소 그의 검술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놀랐다.

이젠 참을 수 없게 된 가레반 백작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황제폐하, 신이 싸울 수 있도록 윤허해 주시옵소서.”

“가레반 백작이 진정 나서겠단 말인가?”

“예, 황제폐하.”

다혈질인 데라치 백작보다 약간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가레반 백작이었다. 그는 침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평소 서로 대련하면 7할 정도로 승리하곤 했었다. 그런 가레반 백작도 황제호위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좋다, 허락하노라.”

“황공하옵니다. 황제폐하.”

저벅저벅.

가레반 백작은 침착함을 유지 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놀드는 양손을 가슴 앞에서 팔짱 낀 채 허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가레반 백작은 선뜻 공격에 나서지 못했다.

모르고 보면 아놀드는 허점이 많은 것 같았지만 팔 하나만 움직여도 즉각 방어를 할 수 있는 자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사들은 경지가 낮았기에 그렇게 보지 않았다.

“으음, 자세만 보아도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마.”

“고맙소. 오래 끌 것 없이 바로 내가 공격할 테니 막아보시오.”

“으음, 알았네. 오게.”

스윽.

가레반 백작이 롱소드를 사선으로 취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아놀드는 양손바닥을 활짝 펼치면서 좌우로 흔들더니 번개같이 앞으로 내뻗었다.

꽈르르릉.

천둥치는 듯한 굉음이 터지면서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은 사람 크기 정도의 거대한 손바닥이 공중을 가로 지르며 날아갔다. 혼원벽력장(混元霹靂掌)이라는 장법이었다.

“허억, 이…이게?”

가레반 백작은 처음 보는 수법이었지만 오러 블레이드보다 더 위력적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대로 막기보다는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콰쾅! 움푹, 와르르.

폭음이 터지면서 한쪽 벽면이 손바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가면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경이적인 장법에 기사들과 레이 황제까지도 깜짝 놀라버렸다.

가레반 백작은 혼원벽력장을 보고는 더 이상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검도 없이 오직 가볍게 내뻗은 손바닥 공격에 석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아놀드가 검을 손에 든다면 결과는 해보지 않아도 뻔했다.

“으음, 이런 수법이 있었다니? 내가 패한 것으로 인정하고, 물러나겠소.”

가레반 백작이 롱소드를 밑으로 내려 버렸다. 순순히 인정하기 힘들었을 테지만 가레반 백작은 아놀드의 실력을 인정했다. 아놀드는 가레반 백작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황제폐하 저의 실력을 더 보고 싶으십니까?”

“허허허, 처음에는 아놀드 경이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실력을 보니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구려.”

레이 황제는 아놀드의 실력을 반 존대의 ‘경’이라는 말로써 대우해 주었다. 그만큼 아놀드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가레반 백작, 아놀드 경의 실력을 똑똑하게 보았으니 어느 정도의 작위를 내려야 하는가?”

“소드마스터만 되어도 백작의 작위를 내릴 수 있사온데, 그것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아놀드 경이라 후작의 작위가 어떠하시옵니까, 황제폐하?”

“아놀드 경은 들었는가?”

“예, 황제폐하. 하지만 이왕 내려주실 것이라면 공작의 작위를 받고 싶사옵니다.”

“허억, 공작?”

“하하하하, 아놀드 경은 정말이지 그 원대한 포부(抱負)만큼은 인정할만하구려.”

“황제폐하, 그냥 공작의 작위를 바라는 것은 아니옵니다. 저에게 공작의 작위를 내려 주신다면 황제폐하께서 앓고 계시는 병을 낫게 해드리겠습니다.”

“뭐라?”

레이 황제는 아놀드의 말에 눈이 커지면서 입을 벌렸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놀라운 말이었다. 홀에 있는 모든 기사들과 가레반 백작, 데라치 백작까지도 충격적인 말에 놀랐다.

이제까지는 그런대로 인정해줄 만했었다. 하지만 황제는 불치병으로 몇 개월 살지 못하는데, 그런 황제의 진노를 어찌 감당하려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으하하하하!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레이 황제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우렁찬 목소리에 홀 안이 쩌렁 쩌렁 울릴 정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