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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프리맨의 귀환
모르칸 제국의 3황자 르네프의 대저택.
제국의 황자가 살고 있는 곳이니만큼 수십 개의 룸과 회의실까지 갖추어져 있는 대저택으로 온갖 화려한 실내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 와중에도 중요한 회의는 늘 소회의실에서 열리곤 하였는데, 그곳은 화려함이 전혀 없는 빈 창고 같은 분위기였다. 천장에는 마법등이 하나 걸려 있었고, 가운데에 원형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그 소회의실에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이 놓여 있었다.
한 의자에는 금발에 초록색 눈,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잘생긴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이자가 바로 3황자 르네프였다. 올해 나이 22살로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50대 중반의 중후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모르칸 제국의 최상위 권력자 중 한 사람으로 귀족파의 수장인 아르크 공작이었다. 모르칸 제국의 3대 세력 중 하나인 귀족파의 수뇌 두 사람이 비밀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아르크 공작이 3황자 르네프를 쳐다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황자 저하,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으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나 아르크 공작의 말대로 추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황자 저하. 참으로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3황자 르네프의 결정에 아르크 공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르크 공작이 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모르칸 제국의 남부 국경과 마주보고 있는 드라비아 왕국의 제1공주인 제니아 공주와의 결혼문제였다. 사랑이 없는 정략결혼이었지만 제니아 공주는 18세로 아름답고, 머리가 좋은 공주로 알려져 있었다.
얼마 전에 드라비아 왕국 측에서 아르크 공작에게 비밀리에 정략결혼을 제의했는데, 며칠간 고민하던 3황자 르네프가 오늘 드디어 정략결혼을 승낙한 것이다.
“아르크 공작, 정말 잘하는 결혼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살펴보아도 우리 측에 이득인 결혼입니다. 드라비아 왕국에서 3황자 저하께 힘을 지원해드릴 테니 말입니다.”
“음, 그래도 아직 황태자에게 맞서기엔 명분이 부족한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입니다. 현 황후는 전하의 친모이십니다. 병상에 계신 황제께서 누굴 의지하고 있는지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황제파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어요?”
“우리 귀족파가 비록 황제파보다 제국 전체적으로나 수도에서 세력이 적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황제가 돌아가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황제께서 중병이라 올해를 넘기기 힘드시니 내가 불안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황후님의 말씀으로는 폴샤르 대주교가 신성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기에 황제께서는 1년을 다 채울 정도로 살아 계실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으음, 나도 폴샤르 대주교의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알고는 있지만 그래봐야 겨우 5개월에 불과한 시일이니 불안합니다.”
“황자 저하와 제니아 공주와의 정략결혼만 성사되면 당장 10만 명의 병력을 지원해 준다고 하니 지역에 퍼져 있는 우리 측 병력을 수도로 끌어 모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수도에서 황제파와 비슷한 전력이 되는 것이기에 전혀 걱정할 것이 없겠어요.”
“그렇습니다. 다음번 황제는 황자 저하께서 되셔야지요.”
“내가 황제가 된다면 귀족파의 부귀영화는 지속될 것이오.”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황자 저하.”
“으하하하!”
“축하드립니다. 황자 저하.”
아르크 공작과 르네프 3황자는 드라비아 왕국의 제니아 공주와 정략결혼으로 세력이 커지게 되었기에 자축했다.
한편, 황태자 엘루스는 중도파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2황자 라파르는 황태자 엘루스와 같은 황후에게서 태어났기에 형제의 정은 남달랐다.
그는 다음 황제의 자리에 가장 근접해 있었기에 중도파의 수장인 빈스크 공작과 중도파의 귀족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파보다는 세력 면에서 떨어지기에 지금도 병사의 수를 늘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르칸 제국의 황제파는 황제의 열렬한 추종자들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황제의 말은 절대적이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거역하게 되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었고, 황제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 세력이 세 곳이나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능가하는 세력은 제국에서는 존재하지 못했다.
모르칸 제국 역사상 그 누구도 반역으로 정권을 잡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모르칸 제국은 황제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제국이었다. 그렇기에 황제가 병상에 누워 있더라도 감히 반역을 꿈꾸지 못하는 것이었다.
3백 년 전 데이비스 공작이 반역을 시도하다가 황제의 비밀 세력 중 한 곳인 피닉스 기사단 200명에 의해 멸족당하는 일이 있었다. 겨우 황제의 비밀 세력 세 곳 중에 하나에 불과했는데도 그걸 넘지 못하고 반역은 실패로 끝나 버렸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황제의 비밀 세력 세 곳 중 한곳이 밝혀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피닉스 기사단은 반역자를 처단한 후 다시 신분을 숨기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는데, 지금도 신분을 위장해서 살고 있었다. 황제의 나머지 비밀 세력 두 곳도 신분을 위장하여 살고 있었기에 누가 황제의 비밀 세력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어느 귀족도 두 번 다시 반역을 시도하는 이는 없었다.
모르칸 제국의 역사는 1132년이나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현재 모르칸 제국의 황제는 라쿠르스 피코 드 운즈 레이라는 풀 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황제를 레이 황제라 불렀다.
황제에게는 첫째 황후가 황태자와 2황자, 제1공주를 낳으면서 일찍 죽었고, 현재는 두 번째 황후인 로리안이 3황자와 2공주, 3공주를 낳았다.
그 외에도 5명의 후궁이 있었으며, 그들에게서는 황자는 전혀 없고, 오직 6명의 공주를 나누어 낳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레이 황제는 3명의 황자와 9명의 공주가 있었다.
역대 황제들은 이상하게도 황자가 귀했다. 또한 역대 황제들은 유전적으로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보통 40대가 되면 갑자기 발병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고위 신관의 신성력이나 어떠한 영약을 써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모르칸 제국의 황제는 언제나 단명했다.
제국 역사를 되짚어 보면 어떤 황제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발병하기도 했었는데, 일단 발병하면 한 달부터 길게는 1년이 지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
제국의 건국 시조인 마리우스 황제만 유일하게 50세를 넘어 53세에 죽었을 뿐,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50세가 되기 전에 죽었다.
현 레이 황제도 49세가 되면서 50세를 넘겨보나 기대를 했었으나, 역시나 그도 7개월 전에 갑자기 발병하여 병상에 누운 것이었다. 다행이 발병 초기부터 대지의신 하이드론 교단의 폴샤르 대주교가 황궁에 상주하면서 신성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기에 지금껏 버티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와아아아!”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서 휘어진 검을 손에 든 자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자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자는 2미터가 넘는 장신으로 온몸이 근육질로 되어 있어 오우거를 방불케 하는 위협적인 자였다.
그에 비해 휘어진 검으로 방어하고 있는 자는 이국적으로 생겼으며, 검은 머리칼을 보아 마케리안 대륙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구경꾼들은 그를 뮤란 대륙인으로 보고 있었다.
뮤란 대륙인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눈동자도 갈색이었다. 그렇기에 머리카락 색깔도 제각각에, 눈동자도 녹색이나 파란색의 마케리안 대륙인과는 확연하게 다르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신마대전 이전에는 검은 머리카락은 마족으로 오인받기도 했었지만 신마대전 이후 주신께서 중간계에 강력한 결계를 친 이후에는 신족이든 마족이든 절대로 나타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제 마케리안 대륙인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을 뮤란 대륙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채채챙, 파팍!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는 자는 연신 맹공격을 퍼부었지만 휘어진 검을 가지고 방어하고 있는 뮤란 대륙인은 여유로워 보였다.
“헉헉헉, 젠장.”
“큭큭, 이젠 그만 물러나는 게 어때?”
“헉헉, 무슨 소리. 받아라!”
채채챙, 파팍!
뮤란 대륙인의 정체는 아놀드였다.
그와 마주보고 있는 근육질의 장신 바르드는 소드익스퍼트 초급을 넘어 거의 중급 수준이었기에 타고난 신력까지 더하여 소드익스퍼트 중급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 그이기에 1년에 한 번 열리는 검술대회에 출전하여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모르칸 제국에는 남작의 작위와 영지만 있어도 기사단을 만들 수 있었다. 기사단은 최소 50명에서 최대 200명까지 다양 했으며, 제국에 알려진 것만 해도 200백 개가 넘었다.
제국민들이 모두 인정하는 기사단은 황실의 3대 기사단과 고위 귀족들의 10대 기사단이었다.
지금 아놀드와 싸우고 있는 자는 바르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검술대회의 결승전이었다.
슈아악.
바르드가 바스타드 소드를 사선으로 휘두르자 아놀드는 즉시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빙그르르 회전하면서 주먹으로 바르드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퍼억!
“크으윽.”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비틀 거렸지만 바르드는 쓰러지지 않았다. 맷집도 보통이 넘었다. 그러나 내공을 수련한 아놀드에게는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무림에서는 바르드 정도는 겨우 2류 무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2류 무사라고는 해도 그냥 무사가 아니라 외공을 익힌 2류 무사라 생각하면 비슷하다.
“큭큭, 이제 가지고 노는 것도 지겹다. 그만 끝내자!”
파아앗, 빠악!
“크아아악.”
7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순식간에 줄인 아놀드는 내공을 불어넣은 손바닥으로 바르드의 가슴에 살짝 미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뿐인데도 불구하고, 바르드는 공중을 훨훨 10미터 정도를 날아가 떨어졌다.
그는 고개를 약간 들어 아놀드를 한번 쳐다보고는 주르륵 검붉은 피를 내뿜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기절한 것이다. 검술대회에서는 상대를 고의적으로 죽이면 탈락이었기에 심한 내상만 입힌 것이다.
후다닥.
신관이 달려와 기절한 바르드에게 치유력을 불어 넣어 내상을 일시적으로 치료했다. 잠시 후, 다행이 기절에서 깨어난 바르드는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쓸쓸하게 퇴장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검술대회의 결승전을 관람하던 구경꾼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쳐주었고, 아놀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답했다.
‘큭큭큭, 이제 모르칸 제국의 기사단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당분간 기반을 잡은 뒤 정보길드에 의뢰하면 그놈을 손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찾아서 내손으로 사지를 잡아 뜯어서 죽여 버리겠어.’
저벅 저벅.
아놀드는 검술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황제를 알현하러 가는 길이었다. 검술대회의 우승자는 특권으로 황제의 알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며, 이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전통이었다.
그는 긴 복도를 환관의 뒤를 따라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레이 황제의 황궁이었다.
“황제폐하께서는 지금 병상에 계시기에 잠시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허락이 내려지는 대로 알현(謁見)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환관이 휴게실의 문을 열어주자 아놀드는 그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대기했고, 환관은 즉시 황제의 허락을 구하기 위하여 사라졌다.
아놀드는 대기하면서 지난날을 회상했다.
실버 드래곤 나르시스의 레어에서 정체를 알 수없는 불청객(김준)과 첫 대면한 아놀드는 믿을 수 없게도 그가 자신과 같은 이계의 인물이라는 것에 순간적으로 방심하다가 일격을 당했다.
거기에다가 더욱 어이없는 건 그에게 손가락에 끼고 있던 사파이어 반지, 즉 바로 바람의 기운을 가진 벤뵤르그를 빼앗긴 것이다.
그는 이후 아이스랜드와 경계를 이루는 모르칸 제국의 북부 국경에 지도에도 없고,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웬디 마을의 근처 동굴 속에서 건곤신공으로 내상을 치료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어이없이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때의 상황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동안 불청객(김준)의 실력이 보통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동안 동굴 속에서 곰곰이 생각하여 결국 모르칸 제국으로 스며들었다. 모르칸 제국은 병사와 기사들의 대우가 좋은 곳이었기에 일단 이곳에서 아놀드는 자신의 기반(基盤)을 닦은 뒤 복수를 결심했다.
정보 길드에 알아보았더니 레이 황제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했다. 일단 발병하면 짧게는 한 달, 대신관의 신성력으로 치유 하더라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유전병이었다. 제대로 된 병명도 없었기에 그냥 황제의 불치병으로 불리고 있다 했다.
이런 정보부터 각가지 모르칸 제국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는 제일 먼저 검술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아놀드는 회상에서 깨어나 소리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