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34화 (134/284)

0134 / 0284 ----------------------------------------------

제5권  프리맨의 귀환

‘으음, 정말 좋은 차야.’

김준은 이제까지 좋다는 차는 다 마셔보았지만 이 엘프차보다는 못했다. 그만큼 최상의 차라는 게 느껴졌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케르킨 부족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강력한 전사 인간이여, 그동안의 모험담을 우리에게 들려주시오.”

“예, 그럼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김준의 이야기는 한참이 지나도록 이어졌지만 결국 끝났다.

“아, 대단한 모험이었구려.”

“저에게는 좋은 인생경험이었습니다.”

“그럼 벤겔미르를 볼 수 있겠소?”

“예, 많이 기다렸을 테니 당장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준의 말에 케르킨 부족장과 엘프 원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법주머니 속에서 벤겔미르를 꺼내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케르킨 부족장은 긴장하고 있었는지 손을 약간 떨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

“오오, 벤겔미르가 틀림없구려.”

“저, 정말 벤겔미르야.”

“신물이 드디어 우리 월계수 엘프 부족의 손으로 돌아왔어.”

웅성웅성.

엘프 원로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한마디씩 했다.

벤겔미르를 의문의 적에게 빼앗긴 후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회수하지 못하였는데, 그걸 이제야 회수하게 되었으니 케르킨 부족장과 엘프 원로들의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케르킨 부족장은 벤겔미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 원로들의 눈도 벤겔미르를 향해 있었다. 케르킨 부족장은 살펴보았던 벤겔미르를 원로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넘겨받은 벤겔미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에 있는 원로에게 넘겨주었고, 그렇게 원로들 모두거 벤겔미르를 확인하고는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았다.

“강력한 전사 인간이여, 그대의 도움으로 이제 우리 월계수 엘프부족은 몬스터나 다른 무리로부터 위협을 피할 수 있게 되었구려.”

“그렇습니까?”

“그렇다오. 이제 벤겔미르의 생명력으로 세계수 씨앗의 싹을 틔울 수 있게 되었기에 우리 월계수 엘프부족은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종족의 수를 늘리고, 편안하게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소.”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만.”

“그럴 것이오. 그러나 내일 오전에 의식을 시작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오.”

케르킨 부족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드로이안 산맥에 해가 떠올랐다.

숲속의 구석구석에 햇볕이 스며들자 밤새 내려앉았던 어둠이 물러가고 점점 밝아졌다. 월계수 엘프 부족이 설치해 놓은 결계 속으로도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 비추었다.

케르킨 부족장과 모든 월계수 엘프부족의 엘프들이 공터에 모였다. 곧 의식이 시작될 것이었기에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스윽.

케르킨 부족장이 마력을 이용하여 대기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을 강제로 끌어 당겨 공터에 비를 내리게 했다.

쏴아아아!

메말랐던 대지에 촉촉하게 젖어들 정도로 물기를 머금었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곳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오직 공터의 중심에서 동심원을 그리듯이 그렇게 지름 60미터 정도의 땅만 촉촉하게 젖었다.

스윽.

케르킨 부족장이 품속에서 보석상자를 하나 꺼내었고, 그것을 향해 절을 하자 모든 엘프들도 따라서 절을 했다.

딸깍.

케르킨 부족장이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보석상자 속에 든 것은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전부였으며, 그 속에는 복숭아씨 같은 것이 하나 들어 있었다.

‘으음, 저게 세계수의 씨앗인 모양이군?’

김준의 예측대로 그것은 세계수의 씨앗이 틀림없었다.

두둥실.

케르킨 부족장은 마력을 이용하여 유리병 속에 들어있던 세계수 씨앗을 꺼내어 촉촉하게 젖은 땅의 중심에 그걸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는데, 그 거리가 무려 100미터 정도나 되었다.

김준은 이렇게까지 멀리 물러나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스윽.

케르킨 부족장이 벤겔미르를 꺼내어 앞으로 내밀면서 외쳤다.

“벤겔미르여, 그 생명력으로 세계수의 씨앗을 싹틔우게 해주소서.”

우우우웅.

보우에 박혀있는 에메랄드에서 빛이 일어나면서 공간이 일렁였다. 그리고 에메랄드에서 빛이 점점 크게 일어나자 엄청난 기운에 근처에 있던 엘프들이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파지지직!

눈부시게 빛나던 에메랄드 보석에서 내뻗어진 빛이 세계수 씨앗으로 날아가 흡수되기 시작했다. 약 1분 정도 기이한 빛이 내뻗어지더니만, 그걸 모두 세계수 씨앗이 흡수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에메랄드에서 내뻗어진 빛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세계수 씨앗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수 씨앗이 넘쳐나는 벤겔미르의 생명력이 깃든 기운을 흡수하면서 갑자기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땅 위로 나무줄기가 치솟더니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세계수라는 게 얼마나 거대한 지 김준은 처음 보았고, 그 놀라움에 경악했다.

세상의 그 어떤 나무도 이것보다는 크거나 굵지 못할 것이다. 굵기만 해도 50미터는 되는 것 같았고, 나무의 크기는 그 끝이 안보일 정도로 높았는데, 대충 잡아도 수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이런 나무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조차 불가사의했다.

‘으음, 이래서 엘프가 세계수라고 했었구나. 그 이름에 걸맞게 정말 대단하구나.’

김준 일행뿐만 아니라 엘프들까지 전부 이 놀라운 현상에 눈이 커져 있었다.

번쩍!

갑자기 온 세상이 빛으로 둘러싸인 듯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의 강력한 빛이 일어났다가 순간 거짓말 같이 사라져버렸다.

“그, 그 빛은 뭐였지?”

샤라라랑.

하늘에서 초록색의 세계수 잎이 기이한 빛에 휩싸여서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신기한 현상에 김준도 입을 벌리면서 사방을 쳐다보았다.

스스스스.

주위에 나무와 꽃들이 마구 생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의 환상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온 세상이 숲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변했다.

“고맙네, 강력한 전사 인간이여.”

케르킨 부족장에 말에 그제야 김준이 정신을 차렸다.

“이것이 정말 세계수의 기운입니까?”

“그렇다네. 이제 우리 월계수 엘프부족은 세계수의 영향으로 공간을 형성하였기에 이곳에서 만큼은 안전해졌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이네. 여긴 이전의 세계가 아닌 세계수의 영향에 있는 공간이라네.”

“그, 그럼 마법의 아공간 같은 공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네.”

“아, 이래서 벤겔미르가 필요하셨던 것이군요?”

“그렇다네, 강력한 전사 인간이여.”

“그럼 이 공간에는 허락된 것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설사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이곳으로는 세계수의 허락이 없으면 침범하지 못한다네.”

“그렇군요. 이 공간이 제가 보기엔 무척 넓은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잘 보았네. 비록 세계수의 권능으로 탄생한 공간이지만 엄연히 미치는 범위가 있어.”

“그래도 제가 보기엔 하늘과 땅도 존재하는군요?”

“물론, 그렇다네. 대지에는 현재 산이 하나 있으며, 호수도 하나뿐이지만 점차 늘어날 것이네.”

“예?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겁니까?”

“쉽게 말한다면 그렇다네. 이 공간은 현재 약 20킬로미터 정도 되지만 세계수가 앞으로도 계속 마나를 흡수하면서 성장하게 될 것이고, 그럼 숲도 자연적으로 넓어질 것이네. 따라서 이 공간도 더 커지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 될 것이네.”

“아, 그렇다면 월계수 엘프부족은 자손을 번창시키면서 살 수 있겠군요?”

“그렇다네. 이제 우리 월계수 엘프부족은 세계수가 다 하는 날까지는 위험 없이 안전해졌네.”

“이제 새로운 터전이 마련되었으니 당분간 할일이 많으시겠습니다.”

“그거야 행복해 하면서 모두들 열심히 일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숲의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갈 것이네.”

“저는 이제 그만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래야겠지. 강력한 전사 인간이여, 이것을 받게.”

케르킨 부족장이 벤겔미르를 김준에게 내밀었다.

“정말 저에게 벤겔미르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이전의 약속도 그렇고, 이젠 세계수가 우리에게 있으니 이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네.”

“으음, 그, 그렇다면 잘 받겠습니다.”

김준이 케르킨 부족장에게서 벤겔미르를 건네받자 갑자기 스르륵 형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마냥 움직여 김준의 팔목에 감기면서 팔찌로 변했다. 에메랄드 보석이 박힌 은색 팔찌였다.

“이, 이럴 수가?”

“허허, 벤겔미르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군. 아마 의식에 사용된 마나가 엄청나다 보니까 이렇게 변한 듯하네.”

“신의 아티팩트라는 건 정말 놀랍군요.”

“나도 이런 것은 처음이라네. 어쨌든 벤겔미르의 사용된 마나는 자체적으로 충전이 되는 것이니까 아마 며칠 정도면 될 것이네.”

“으음, 잘 알겠습니다.”

“벤겔미르의 숨겨진 힘을 사용하려면 그대와 서로 의지가 통해야 할 테니까 당분간 이곳 우리의 옛 마을에서 수련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걸세.”

“예, 저도 그러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글리아나가 강력한 전사 인간인 그대를 따라 간다고 하더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풍요롭고 안정된 이곳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따라 간다고 하니 마음이 허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잘 부탁하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네. 강력한 전사 인간이여, 이제는 정말 작별이구려.”

“케르킨 부족장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드로이안 산맥의 이곳으로 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네.”

“음, 하긴 이 공간이 엘프 부족의 마을과 이어져 있으니 이해가 갑니다.”

“잘 보았네. 글리아나, 이리로 오거라.”

“예, 부족장님.”

글리아나가 김준 옆으로 걸어왔으며, 헌트와 하그리도 짐수레를 이끌고 김준의 곁으로 다가와 멈추었다.

“글리아나, 잘 살아야 한다.”

“예, 부족장님.”

“자, 그럼 모두들 원래의 세상으로 돌려보내주겠네. 밝은 빛으로 인해서 눈이 잠시 동안 안 보일 수도 있으니까 눈을 감는 게 더 좋을 걸세.”

케르킨 부족장의 말에 김준과 그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동마법진처럼 김준과 일행들이 순간 빛에 휩싸이더니 사라졌다.

스스스스.

공간이 이지러지면서 김준과 그 일행이 나타났다. 그들이 있는 곳은 월계수 엘프부족의 공터였다. 세계수가 싹트기 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 몇 가지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결계와 마을은 그대로인데 월계수 엘프부족의 엘프들이 하나도 없었으며, 공터에서 치솟았던 세계수도 보이지 않고 원래의 공터만 남아 있었다.

이곳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계수 엘프부족의 마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부족의 모든 엘프들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에 대하여는 오직 김준과 일행들만 알고 있었다.

“후후, 글리아나. 이제 월계수 엘프부족은 평화를 되찾았어.”

“응, 이게 모두 준이 벤겔미르를 되찾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이제 케르킨 부족장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가 돼.”

“어떤 것 말이야?”

“지금 월계수 엘프부족이 살고 있는 공간은 이곳이 아닌 또 다른 공간이기에 그곳에서 이끌어주기 전에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어.”

“응, 그렇기에 위험으로부터 부족이 안전해진 거지.”

“자, 이곳에서의 일을 모두 처리했으니 이젠 나의 영지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네?”

“준,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어?”

“그건 아니야.”

“호호, 그렇다면 이곳에서 당분간 지내다가 가면 어때?”

“음, 하긴 영지를 나선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으니 당분간 이곳에서 수련하다가 가는 게 좋겠군. 헌트와 하그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희들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님.”

헌트가 그렇게 대답하자 김준도 당분간 이곳에서 수련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