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32화 (132/284)

0132 / 0284 ----------------------------------------------

제5권  프리맨의 귀환

김준은 결계를 해제하고는 그곳에서 수백 미터 이동한 뒤 멈추었다. 밤에 너무 멀리까지 이동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할 것 같은 곳에 야영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나무가 있는 곳의 바로 뒤쪽에 게르를 내려놓았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게르가 순식간에 설치되었다. 나무 뒤라 그냥 보아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김준이 결계를 설치하자 완벽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행들은 먼저 게르 속으로 들어갔고, 김준은 주위를 한번 살펴본 후 마지막으로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밤은 그렇게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우우우웅!

메데인 백작의 영주성 집무실의 공간이 이지러졌다. 미약한 마나의 기운도 감지할 수 있는 메데인 백작은 집무실 안에서 일어나는 걸 느꼈다.

공간의 이지러짐만으로도 순간이동 마법을 펼쳐 누군가 이동해온다는 걸 알았기에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롱소드의 손잡이를 잡았다.

츠파파팟!

그때 레드 데빌과 칼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저앉았다.

“끄으으.”

“으으, 사형!”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사제들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메데인 백작은 곧 침입자를 잡아 돌아올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레드 데빌과 칼리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그자에게 당한 모양이다.

두 명의 사제들이 모두 한 팔이 잘려 검붉은 피를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메데인 백작은 급히 책상 서랍 속에서 유리병을 두 개 꺼내어 내밀었다.

“자, 마셔라. 어서!”

“고, 고맙습니다. 사형.”

칼리는 메데인 백작에게서 받은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는 검은색 액체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하지만 레드 데빌은 그걸 마시지 않았다.

“면목 없습니다. 사형.”

“우선 잘린 팔부터 재생해야 하니까 어서 그걸 마셔라.”

레드 데빌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츠츠츠츠.

어둠의 마력이 들어 있는 액체라서 그런지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마치 트롤이 상처를 입고, 재생하는 것처럼 그렇게 두사람의 잘렸던 자리에서 살과 뼈가 다시 스르륵 만들어졌다. 불과 5분도 안 되어서 잘렸던 팔이 원상회복된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지만 이렇게 어둠의 마력은 이들에게는 영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먼저 팔이 재생된 칼리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가 다시 펼치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이 살아있고, 원활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정상을 되찾은 모양이다.

레드 데빌도 재생된 손을 움직여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말해보거라.”

“예, 사형.”

칼리가 메데인 백작에게 김준과 대결한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으음, 소드마스터인 사제가 당할 정도라면 도대체 그자의 검술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다는 것이지?”

“제가 보기에는 소드마스터 2명과 싸워도 될 정도였습니다.”

“뭐? 그 정도란 말이냐?”

“예, 사형. 정말 괴물 같은 놈이었습니다.”

“혹시 그자의 정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낸 것이 있느냐?”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큰 키와 호리한 몸은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누구일 것 같으냐?”

“브라이언 사형의 영주성에 갔었던 때에 저는 분명 그자를 보았었습니다.”

“사형의 영주성에서 말이냐?”

“영주성에서는 아니었지만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에서입니다.”

“그래?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그 당시에 마스터와 함께 브라이언 사형의 영주성에 미스릴 바를 입수하기 위해 갔었는데, 그곳에서 그자가 먼저 미스릴 바를 강탈했었기에 그걸 회수하기 위해서 갔던 겁니다.”

“아… 그럼 그때 마스터께서 부상을 입으신 게 그놈 때문이란 말이냐?”

“예, 분명 그자였습니다. 소드마스터인 다섯째 사형을 보면 겁을 먹어야 정상인데 그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마스터와 대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보통문제가 아니구나. 그런데 그자가 왜 이곳에 왔을까?”

“그것이 저도 의문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도망쳤는데,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바로 싸워도 충분하게 이길 수 있는 실력인데 말이야.”

“혹시, 이곳에 중요한 물건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곳에 말이냐?”

“예, 미스릴 바도 강탈해간 놈인데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곳까지 찾아올 자가 아닙니다.”

“으음, 그렇다면 한번 둘러봐야겠군.”

메데인 백작은 집사에게 일러 분실한 물건이 없는지 알아보도록 지시했고, 하인과 하녀들은 이른 새벽부터 영주성을 수색한다고 난리였다.

그들은 벽에 걸어 놓았던 약간 특이한 모양의 보우 하나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다. 엘프의 물건 같아 메데인 백작이 제법 아끼는 물건이었기에 벽에 걸어 놓은 것이었다.

“으음, 사제의 말대로 보우 하나가 분실되었다.”

“그렇다면 그 보우가 보통 물건이 아닐 겁니다.”

“내가 몇 년 전에 우연히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단에서 입수한 것인데 보통의 보우보다는 좋아 보였지만 특별하진 않았어.”

“그렇습니까? 그것 참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냐?”

“미스릴 바를 강탈해간 놈이고, 겨우 보우 하나를 훔쳐 달아날 놈이 아닙니다.”

“보우 말고는 분실된 것이 없어.”

“놈의 행동을 보니 전문적인 도둑놈 같았습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얼굴에 가면을 쓴 것도 그렇고, 싸울 때 보우를 보지 못했었는데 아마도 마법주머니 같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으음, 내가 보기에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놈은 잘 도망치고, 또한 검술도 소드마스터를 능가하는 놈이었어.”

“이곳에는 돈이 될 만한 고가의 물건들이 넘쳐날 정도 입니다. 그런데 겨우 보우 하나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으음, 놈이 물건을 훔치기 전에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도망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놈이 벽에 걸린 보우를 훔치고, 다른 것들도 훔치려다가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는 살펴보다가 달아났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메데인 백작과 칼리가 나누는 말을 듣고만 있던 레드 데빌은 김준과의 대결을 하나씩 자세하게 떠올리면서 분석하고 있었다.

소드마스터에 올랐기에 세상 두려운 것이 없을 것 같았었는데, 정체를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자에게서 처음 보는 수법으로 팔까지 잘렸다는 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나이는 20대로 느껴졌는데, 어떻게 자신보다 더 검술 경지가 높은 건지 이해하려고 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만 하더라도 30대 후반이라 소드마스터에 오른 자 치고는 무척 빠른 성취였다. 그런데 20대의 그자는 자신보다 더 높은 검술 경지에 있었다.

“사제,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아, 죄송합니다. 사형, 그자의 검술실력이 분명 저보다 높았던 것 같습니다. 둘째 사형에게 부탁해 그자를 추격하는 건 어떻습니까?”

“둘째 사형을 말이냐?”

“예, 놈은 검술실력이 뛰어나니 마법을 이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설마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익힌 마검사는 아닐 겁니다.”

레드 데빌의 말에 칼리와 메데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하긴 이런 일로 마스터께 보고한다는 것도 그렇군. 우리 사형제들끼리 이번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게 좋겠어.”

“7서클에 오른 둘째 사형의 어둠의 마법이라면 분명 놈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당장 부탁하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당장 말이냐?”

“예, 놈이 사형의 영지에서 벗어나기 전에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제와 제가 약간의 내상은 남아 있지만 충분하게 지원할 수 있습니다.”

“좋아, 당장 연락해보마.”

스윽.

메데인 백작은 마법통신구를 꺼내어 중얼거렸다.

스스스스.

잠시 후, 마법통신구 안에 후드를 눌러쓴 음침하게 보이는 자가 나타났다.

“켈켈켈, 넷째 사제가 어쩐 일로 날 다 찾았나?”

“둘째 사형,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시간에 날 찾았나?”

“둘째 사형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린 겁니다.”

“켈켈켈, 나의 도움이 절실한 일이 뭘까 궁금하군?”

“둘째 사형, 마법실험 때문에 바쁘시겠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어주십시오.”

“내가 조금 바쁜데 어쩌지?”

“둘째 사형께서 시간만 내주신다면 상급의 마나스톤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오오, 상급의 마나스톤을 나에게 말이냐?”

“그렇습니다. 둘째 사형.”

“켈켈, 그렇다면 내가 도와 줘야겠군. 당장 그곳으로 가지.”

스스스.

마법통신구에서 그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둘째 사형께서 도와주신다고 했으니 기다리자.”

“예, 사형!”

우우웅.

잠시 후, 갑자기 집무실의 공간이 이지러졌다. 그리고는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눌러쓴 자가 순간이동을 해왔다.

“둘째 사형 벌써 오셨습니까?”

“켈켈켈, 바쁜 일인 것 같은데 내가 바로 와야지 어쩌겠어?”

스윽.

둘째 사형이라는 자가 후드를 벗자 얼굴이 드러났는데, 다시 보고 싶지 않을 그런 얼굴이었다.

머리는 다 벗겨져 몇 가닥의 흰 머리카락만 듬성듬성 나 있었고, 눈썹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얼굴에는 수박씨만 한 둥글고 검은 반점이 나 있었다.

이것만이라면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얼굴에는 피부병이라도 생긴 것인지 아님 화상을 입은 것인지 피부가 벗겨져 붉으면서 진물이 흘러 나와 있었기에 혐오감이 생길 정도였다.

또한 얼굴에는 살점이 거의 없어서 해골이 연상될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그 가운데 녹색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절로 공포가 일어날 정도였다. 보통사람이라면 이 모습만 보더라도 겁을 먹고 도망쳤을 그런 얼굴이었다.

이자가 바로 마스터의 두 번째 제자인 스톡이었으며, 어둠의 마법을 익힌 7서클 마법사였다. 외모는 이래도 그 실력만큼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독에 관한 마법은 독보적이었다. 어쩌면 독의 영향으로 모습이 저렇게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넷째 사제, 그래 무슨 일인지 말해봐.”

“예, 둘째 사형.”

메데인 백작이 넷째인 스톡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으음, 소드마스터인 다섯째 사제의 팔을 잘랐다면 검술 실력이 엄청난 놈이군?”

“예, 저도 그렇게 생각되어 둘째 사형을 모셔온 겁니다.”

“켈켈켈, 재미있겠어. 놈의 검술실력이 그 정도라면 나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겠어. 오랜만에 좋은 적수를 만난 것 같아.”

츠츠츠.

스톡의 두 눈에서 더욱 짙은 녹색의 안광이 흘러나오자 앙상한 몸에서 내뿜어지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었다.

‘허억, 둘째 사형의 실력이 더 높아졌군? 이젠 거의 마스터의 기운에 필적할 정도군.’

메데인 백작은 속으로 무척 놀랐다. 칼리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다만 레드 데빌은 소드마스터라 어둠의 마력으로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만큼 소드마스터는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켈켈켈, 역시 나의 기운에 버티는 걸 보니 소드마스터에 오른 다섯째 사제가 가장 높은 수준이군?”

레드 데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날이 밝을 테니 서두르는 게 좋겠어.”

“예, 알겠습니다. 둘째 사형!”

땡땡땡땡.

종소리가 울리면서 메데인 백작의 영주성 주변에 비상령이 내려졌으며, 무장한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대기했다.

활활활.

영주성의 봉화탑에서는 붉은색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면서 피어올랐고, 메데인 백작령에 비상령이 내려졌다.

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했다.

메마른 땅이라 흙먼지도 엄청나게 일어났다. 마스터의 제자 4명이 선두에서 달렸고, 전원이 소드익스퍼트 초급 이상으로 이루어진 100명의 스톰 기사단이 뒤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