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30화 (130/284)

0130 / 0284 ----------------------------------------------

제5권  프리맨의 귀환

스윽.

김준은 투명화 마법을 시전하고 있다가 다시 더블 캐스팅으로 얼굴만 벽면 속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물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살펴보는 것처럼.

방 안에는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가운데 앉은 사람은 한눈에 보기에도 귀티가 나는 중년인이었다.

‘저자가 메데인 백작이겠군. 으음, 저자가 이곳엔 웬일이지?’

메데인 백작의 좌측에 앉아 있는 자는 예전에 김준에게 당한바 있는 칼리였다. 그 당시 분명 김준에게 공격을 당하면서 한쪽 팔이 잘렸었는데, 지금은 그대로 팔이 붙어 있었다.

그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같이 옆에 서 있었던 로브를 입은 사람(마스터)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잘린 팔을 어떻게 붙였을까?’

칼리의 앞쪽에 앉아 있는 마지막 한 명은 메데인 백작의 우측에 앉아 있었기에 김준에게는 등만 보였기에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들 중에서 그의 기운이 가장 기운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메데인 백작이 칼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사제, 마스터는 아직도 암흑동굴 속에 계시느냐?”

“예, 사형. 1년 정도 지났는데 상처가 남은 모양입니다.”

“으음, 내가 한번 찾아뵈어야 할 텐데 일이 바쁘다 보니 그렇게 하질 못했어.”

“마스터께서도 사형의 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건 그렇고 다섯째 사제는 이번에 많은 성취가 있었던 모양이야? 기운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졌어.”

“최근에서야 겨우 깨달음을 얻어 소드마스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사형.”

“하하하, 정말 대단해. 나도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말이야.”

“사형께서는 큰일을 하고 계시기에 수련할 시간이 없다는 걸 아는데 제가 먼저 소드마스터에 올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사제가 소드마스터에 올랐으니 당연히 축하해야지.”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형!”

“오늘 사제를 보니 나도 한 1년간 수련에만 몰두 했으면 좋겠구만.”

“사형께서도 매일 조금씩 이지만 검술 수련을 하고 계시니까 조만간 소드마스터에 오르실 겁니다.”

“하하하, 사제가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군?”

“아, 아닙니다. 사형, 마스터께서는 늘 사형을 칭찬하시고, 능력을 인정하는 게 저는 너무 부럽기만 합니다.”

“하하하! 그나저나 사제, 암흑군대는 얼마나 준비되고 있나?”

“예, 사형. 이미 4개 사단, 즉 4만 명의 암흑군대가 준비 되었습니다만 마스터께서는 1개 사단을 더 만들어 대업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으음, 다른 사형들은 노예를 얼마나 보내오는가?”

“두 달에 천 명씩 꾸준하게 보내 주시고 계시지만 아직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으음, 그럴 거야. 암흑군대에 필요한 조건을 가진 노예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나도 이번에는 평소보다 조금 적어.”

“가장 많은 노예들을 보내주시는 사형께서 그런 말을 하시니 당혹스럽습니다만,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이번에는 2천 명이네.”

“으음, 두 달 전보다 500명이 적군요.”

“그러나 이번에는 자금을 좀 더 보내주겠네.”

“평소에는 만 골드를 보내 주셨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주실 겁니까?”

“노예가 약간 적으니까 2만 골드를 주겠네.”

“그 정도라면 사형, 마스터께서도 충분히 인정하실 겁니다.”

“그래도 죄송스럽기만 하네.”

“아, 아닙니다. 사형!”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였지만 음모의 냄새가 지독하게 느껴졌다.

‘암흑군대, 마스터, 자금과 노예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마스터라는 자가 비밀리에 암흑군대라는 것을 양성하기 위하여 노예들을 사들이고, 또한 노예들을 암흑군대의 병사들로 만들고, 엄청난 자금도 암흑군대에 필요한 군자금으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마스터라는 자의 제자들이고, 암흑군대를 위하여 비밀리에 자금과 노예를 제공한다는 것 같았다.

‘으음, 암흑군대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김준이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메데인 백작의 우측에 앉아있던 자의 고개가 약간 움직이면서 옆얼굴이 드러났다.

“허억, 저…저자는!”

김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을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했고, 순간 소드마스터인 그자가 김준의 기운을 느꼈다.

파악!

갑자기 소파에 앉아 있던 자가 등 뒤에 있는 벽을 향해 언제 뽑아 들었는지 롱소드를 휘둘렀다.

슈가각.

벽면이 불꽃을 튀기면서 쩌억 갈라졌다. 롱소드 날에 마나를 충분하게 주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준이 놀란 것은 그자가 바로 아리안느 소공녀의 기사였던 한스였기 때문이다. 죽은 줄 알았었는데 살아 있었고, 또한 마스터의 5번째 제자가 되어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눈으로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레드 데빌의 움직임이었지만 어쨌든 김준은 그보다 한 발 먼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피하였기에 레드 데빌은 상관없는 벽만 파손시킨 꼴이 되었다.

타악!

김준은 바닥을 박차고는 뒤로 튕기듯 공중을 날아 도망쳤다. 적이 가득한 곳에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침입자가 있는 걸 알게 된 칼리와 메데인 백작은 부셔진 벽으로 나오면서 주위를 살폈다. 이 모든 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기에 있다. 잡아!”

메데인 백작이 손짓하면서 소리쳤고, 칼리와 레드 데빌은 어느새 도약해 김준을 추격하고 있었다.

후우웅!

이미 들킨 상황이기에 김준은 내공을 이용하여 경공술을 펼쳤다. 인간의 이동 속도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바람소리조차 그가 지나간 후 일어나고, 얼마나 빠른지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이, 이런 그냥 조용히 빠져나올걸. 괜한 호기심이 문제야, 문제!”

땡땡땡땡.

메데인 백작의 영주성에 비상종 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을 순찰 중이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와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칼리와 레드 데빌은 어둠의 마력을 이용해 최대의 속도로 김준의 뒤를 추격 중이었지만 김준이 조금 더 빨랐기에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때 앞쪽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길을 막아섰다. 그들은 덕분에 김준과의 거리를 곧 좁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악!

그러나 김준이 갑자기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도약했고, 무장한 병사들은 곧 떨어지는 지점을 포위했다. 하지만 새도 아닌 김준은 믿어지지 않게도 공중으로 더 높이 떠올랐고, 새처럼 날아서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머엉.

앞을 가로 막아서던 병사들과 칼리, 레드 데빌은 황당하기만 했다. 저렇게 날아가 버릴 것이면 영주성에서부터 날아가 버리면 될 것을, 이제 와서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날아서 사라져 버리니까 허탈하지 않을 리 없었다.

칼리는 어둠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법을 익히지는 못하였기에 그냥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레드 데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검문소 한쪽에 묶여져 있는 말에 올라타고는 추격을 이었다.

“햐아!”

두두두두.

어두운 밤길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고, 칼리도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의 말을 빌려 추격했다.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김준이 언덕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달려오는 레드 데빌과 칼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결계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스윽!

간단하게 김준은 결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가 김준을 맞이했다.

결계 속에 설치되어 있는 게르는 이미 글리아나가 회수해둔 상태였고, 곧 김준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언제든 떠날 준비를 끝마치고 대기해 있었던 것이다.

“준, 벤겔미르는 가져왔어?”

“그래. 마법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어. 그런데 두 명이 나의 뒤를 추격해 오고 있어.”

“역시 준이 해낼 줄 알았어.”

글리아나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었지만 김준이 벤겔미르를 회수했다고 하니까 마음이 너무 흥분되었다. 당장 벤겔미르를 보고 싶었지만 적들이 추격해 오는 상황이니까 안전한 곳에서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인님, 겨우 두 명이라면 여기에서 처리하고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헌트가 자신 있게 말하자, 김준은 옆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헌트, 추격해오는 자들은 보통 놈들이 아니야. 그들 중에는 소드마스터도 있어.”

“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조심해야 돼.”

적들 중에서 한 명이 소드마스터라고 했으니 헌트와 하그리는 무척 긴장되었다. 지독하게 검술수련을 하고, 깨달음이 없이는 절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지였다.

그렇기에 모든 검사들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도 도달하려고 하는 꿈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

어두운 밤길을 두 마리의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말채찍이 말의 엉덩이를 때리자 고통을 느낀 말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으며, 전혀 속도가 줄지 않았다. 메마른 땅이라 흙먼지가 지독하게 일어났지만 레드 데빌과 칼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제법 어두운 밤길이었지만 레드 데빌과 칼리에겐 전혀 지장을 주지 못했다. 레드 데빌은 소드마스터였고, 칼리는 소드익스퍼트 상급이라 밤눈에도 밝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태우고 달리는 말은 결국 너무 지쳐서 속도가 점점 떨어졌다. 아울러 말의 입에서는 거친 숨이 내뿜어졌다. 이런 상태라면 얼마 가지 못하고 말은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말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계속 달릴 것을 요구했다.

이히히힝!

결국 말은 구슬프게 울음소리를 내지르고는 고꾸라졌다.

휘리리릭, 처척!

레드 데빌과 칼리는 말이 고꾸라지는 순간 말 등을 박차고 공중으로 도약해 공중제비를 시전하면서 멋지게 땅에 착지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이 멋진 장면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스윽.

레드 데빌과 칼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허리에 묶어 놓았던 마법주머니 속에서 부츠를 꺼내어 신었다. 마스터가 직접 재작한 마법이 걸려 있는 부츠 아티팩트였다.

보통사람이 달릴 때보다 약 10배 정도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마법의 부츠였다.

후우웅.

마법의 부츠에 어둠의 마나를 약간 불어 넣자 레드 데빌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고, 칼리도 역시 마찬가지로 뒤따라 달렸다.

마나가 소비되는 마법의 아티팩트이기에 약 1시간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다. 그 이상 사용시간이 넘어가면 사용자의 몸에 무리가 따르고, 아티팩트에도 역시 무리가 생긴다. 그래서 최고 사용시간이 1시간 이내였고, 하루에 한 번 사용이 가능했다.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레드 데빌과 칼리가 10분 정도 달리다가 멈추었다. 레드 데빌의 발달된 감각에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는 게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사형, 무슨 일입니까?”

“전방에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

“예? 결계라구요?”

칼리는 결계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레드 데빌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자 그제야 미약하지만 결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 정말 결계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결계를 보니 보통 놈이 아니다. 조심해라.”

“예, 사형.”

김준은 결계 속에서 레드 데빌과 칼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는 김준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글리아나가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김준이 팔을 내밀어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글리아나, 보통 놈들이 아니야. 내가 상대한다.”

“알아, 하지만 나도 8서클의 마법사야.”

“놈들은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자들이니 자칫하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어.”

“적이 두 명인데 혼자서 상대하려고?”

“그래. 아직은 저들은 나의 상대가 아니니까 걱정 마.”

스윽.

김준은 결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레드 데빌과 칼리는 갑자기 나타난 김준을 쳐다보고는 긴장했다. 검은색 야행복을 입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강하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깊은 호수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지가 높아 보였기에 레드 데빌은 더욱 긴장했다.

그와 달리 칼리는 김준을 쳐다보고는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

“네놈의 정체가 뭐냐?”

“그걸 알려줄 것 같았으면 이렇게 가면을 쓰지도 않았다.”

“흐흐흐, 어차피 상관없어. 널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너희들의 어설픈 실력으로 과연 날 죽일 수 있을까?”

“뭐, 뭐라? 이놈이?”

차앙.

칼리가 먼저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어 들고는 자세를 취했다. 그제야 레드 데빌도 허리에서 롱소드를 뽑았다.

“후후후, 제법 검술을 익힌 모양이다마는 나의 상대는 아직 아닌 것 같군.”

“뭐, 이놈이?”

“사제, 흥분하지 마.”

레드 데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흥분한 칼리가 먼저 튀어 나가면서 바스타드 소드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