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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프리맨의 귀환
김준의 심장 속에서 흘러나온 피는 분명 붉은 피였지만 그 안에 빛의 알갱이 같은 것이 불순물처럼 들어 있었다. 반짝이 가루 같은 것이 피에 섞여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피는 김준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끄으으으윽!”
김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해안가로 파도가 밀려오듯 그렇게 엄청나게 고통이 밀려왔다.
덜덜덜.
춥지도 않은데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마구 떨었고, 이마를 비롯해 전신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온몸이 땀에 절어 탕 속에 들어 있다가 나온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순간 죽을 것 같았던 고통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상쾌함이 느껴졌다.
츠츠츠츠.
김준의 몸이 공중으로 스르르 떠오르더니 땀구멍 속에서 몸속에 들어 있었던 불순물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무인들이 말하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과정을 겪는 것과 비슷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조금은 달랐다.
김준의 뼈와 근육 등 몸 전체가 변화를 보였다.
번쩍!
그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왔다. 개인연무장을 온통 밝게 비출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허물은 벗겨지지 않았지만 그 대신 푸르스름한 빛에 의해 김준의 몸에서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한참을 그렇게 신비한 현상이 계속 일어나더니 떨어져 내리던 가루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더 이상 가루가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츠츠츠츠.
푸르스름한 빛이 점점 줄어들면서 사라지는 듯 하더니 마지막 몸부림일까? 엄청나게 밝은 빛이 화악 내뿜더니 사라졌다.
스르륵.
공중에 떠 있었던 김준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번쩍!
김준이 감았던 두 눈을 뜨자 안광(眼光)이 1미터가 넘게 내뻗어졌지만 눈을 한번 깜빡거리자 거짓말같이 사라져 버렸다.
“후후후, 이게 신의 선물의 작용인가?”
김준은 신의 선물을 복용한 후 관조하면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기에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전에 한 번 환골탈태(換骨奪胎)과정을 겪어보았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마치 환골탈태 과정을 수백 번이나 겪어 완성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으음, 이것이 과연 인간의 몸이라 말할 수 있을까?”
김준이 생각하기엔 이것이 진정으로 인간의 육체를 넘어 입신(入神) 즉, 신의 몸으로 접어든 것이라 생각되었다. 무인들이 말하는 무공의 경지인 입신의 경지와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육체가 없는 신이지만 만약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몸이 신의 몸이었다.
이렇게 김준은 보기엔 인간의 육체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상태이기에 인간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후후후, 아벨이 말한 ‘신의 선물을 복용하면 1만 년쯤 수명으로 늘어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겠어.”
예측하지 못한 기습공격으로 충격을 받아 즉사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을 정도의 육체가 되었다.
심장은 드래곤이 가지고 있는 드래곤 하트처럼 변하였기에 측정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마나가 들어 있었다. 이제 순수하게 마나만 놓고 본다면 드래곤 로드보다 더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니 아벨이 말한 1만 년으로 수명이 늘어난다는 걸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하하하, 뇌의 해마부분의 손상이 이번에 완벽하게 회복 되었구나. 그동안 잃어버렸던 20% 정도의 기억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와 정리가 안 되었지만 이 정도는 하루면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어.”
이렇듯 신의 선물은 김준에게 많은 해택을 주었다.
김준은 눈빛만으로 의지를 일으켜 더러워진 개인연무장을 깨끗하게 치웠다. 그리고 개인연무장을 나가 집무실로 향했다. 그동안 김준이 개인연무장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결재할 서류가 약간 있었지만 1시간 정도 만에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벨리 집사에게서 연락을 받은 베일레 자작이 허겁지겁 김준의 집무실로 달려왔다.
“아들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 저도 보고 싶었어요.”
베일레 자작은 김준을 힘껏 껴안았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베일레 자작은 더욱 늙어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1년도 채 더 살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아버지, 저와 잠깐 같이 갈 곳이 있어요.”
“지금 말이냐?”
“아니오. 오늘 말고 내일 아침에 갔다 오지요.”
“알았다. 오늘 저녁은 같이 맛있는 것으로 먹자구나.”
“예, 저도 그러고 싶어요.”
베일레 자작은 평보보다 입맛이 더 도는지 요리를 아주 맛있게 많이 먹었다. 그동안은 식욕이 없어서 잘 먹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아들이 개인연무장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베일레 자작에게는 김준이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김준은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구나.’
“아들아, 차려진 요리가 아주 맛있구나. 너도 많이 먹어라.”
“예, 아버지.”
베일레 자작과 김준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차려진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벨리 집사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다음날 아침 김준은 베일레 자작을 이끌고 영주성 지하에 있는 개인연무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하고는 신의 선물이 들어 있는 유리용기를 꺼내었다.
“그게 뭐냐?”
“아버지, 이 유리용기 속에 들어 있는 게 신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신의 선물?”
“예, 운이 좋아서 제가 입수할 수 있었어요.”
“그러냐?”
신의 선물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베일레 자작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버지, 비록 이 유리용기 속에는 두 방울 정도의 신의 선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걸로 무엇을 할 생각이냐?”
“아버지께서 복용할 겁니다.”
“내가?”
“예, 이것을 복용하면 분명 수명이 늘어나는 신물입니다.”
그 말에 베일레 자작의 눈이 커지면서 되물었다.
“그, 그게 정말이냐?”
“예,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것만 복용하시면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
“이것을 복용하고 편안하게 눕기만 하면 됩니다.”
베일레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준이 유리용기를 내밀었다.
“너무 적은 양이라 약간 민망하시겠지만 혀로 핥아서라도 깨끗하게 마셔야 합니다.”
“알았다. 그건 걱정 마라.”
김준은 혹시라도 민망해할까 봐 고개를 돌려주었고, 그런 기특한 마음을 느낀 베일레 자작은 뚜껑을 열고 신의 선물을 마시고, 용기가 깨끗해질 정도로 핥았다.
비록 두 방울 정도의 신의 선물이었지만 대자연의 농축된 기운이라 영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간 신의 선물은 의지를 가진 것처럼 베일레 자작의 심장을 향해서 이동을 시작했다.
소드익스퍼트 초급의 기사라 마나를 느낄 수 있는 베일레 자작은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느꼈다.
스르르륵.
결국 신의 선물은 베일레 자작의 심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두근두근.
베일레 자작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하더니 김준이 거쳤던 과정처럼 베일레 자작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에 푸르스름한 알갱이가 섞인 것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베일레 자작의 몸이 갑자기 두둥실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끄으으, 왜 이러지?”
“기운이 분명 심장 속에 스며들어서 그런 겁니다. 고통스럽겠지만 조금만 참아 주세요. 그 고통만 지나가면 상쾌함을 느끼실 겁니다.”
김준의 설명에 베일레 자작은 고통스러웠지만 참았다. 그렇게 20분 정도 고통이 느껴지다가 고통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상쾌함이 느껴졌다.
“아들아, 고통이 줄어들고 상쾌함이 느껴지는구나.”
“그럼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
김준의 자세한 설명에 베일레 자작은 안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땀구멍 속에서 몸속에 들어 있었던 불순물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번쩍!
이제는 베일레 자작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왔다. 김준보다는 약했지만 제법 밝은 빛이었다. 베일레 자작의 몸에서 김준이 그랬던 것처럼 신비하게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김준도 무척 신비하게 느껴졌다.
‘아, 이렇게 진행되었었구나.’
한참을 그렇게 떨어져 내리던 가루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더 이상 가루가 떨어져 내리지는 않았다.
번쩍!
엄청나게 밝은 빛이 화악 내뿜어지더니 다음 순간 사라졌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베일레 자작의 몸이 보였는데, 이전보다 훨씬 젊어져 있었다. 마치 40대 중반처럼 보였다.
스르륵.
공중에 떠 있던 베일레 자작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다. 눈을 뜬 베일레 자작의 안광이 30센티미터 정도 뻗어 나왔다.
“아, 이런 상쾌함은 처음이구나.”
베일레 자작도 신의 선물을 복용하고, 엄청난 기운을 느꼈다.
김준의 말처럼 어쩌면 수명이 늘어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은 베일레 자작의 몸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았다.
‘으음, 내 것보다는 못하지만 저 정도면 천 년 정도는 문제없겠어.’
“아들아,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럴 겁니다. 이 세상에 그것이 다시 생성되려면 만 년이 지나야 하니까요.”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이것을 입수하려고 드래곤과 대결하다 부상을 입었습니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어?”
“예, 역시 드래곤의 마법은 무섭더군요.”
“하하하, 정말 대단하구나. 인간이 감히 드래곤과 싸우려고 할까? 아마 그런 사람은 너뿐일 것이다.”
“어쨌든 그 일로 신의 선물을 어렵게나마 입수하게 되었고, 아버지께서 복용하신 아주 적은 양의 신의 선물만으로도 수명이 약 천 년 정도는 더 늘어났을 겁니다.”
“뭐? 그, 그게 정말이냐?”
“예, 정확하게 말씀 드리기는 어렵지만 신의 선물이 심장에 스며들어 피 속에 그 기운이 스며들어 전신으로 퍼져나가 몸이 훨씬 젊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스윽.
김준은 말로써 설명하기보다는 거울을 내밀었고, 그것을 들여다본 베일레 자작은 눈이 커졌다.
“이, 이게 정말 나의 얼굴?”
베일레 자작은 40대 중반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몸도 40대의 몸으로 변한 것 같았다.
“아버지, 강력한 공격을 받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는 이상에는 지금의 상태로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으음, 그게 정말이냐?”
“예, 만약 다시 노화가 진행되면서 늙게 되면 신의 선물의 약효가 다 되어서 그런 줄 알면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상태로 천 년 정도 유지될 겁니다.”
“으음,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그건 그렇고 혹시 너도 그걸 복용 했느냐?”
“예, 제가 먼저 복용해 효과를 보았기에 아버지께 권한 겁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정말 고맙구나.”
“심장에 대자연에 농축되어 있던 막대한 마나가 심장에 스며들어 있을 테니 다시 검술을 수련하시면 소드마스터에 오르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말 그렇겠구나. 안 그래도 늙어서 검술을 접었었는데, 이제부터라도 수련을 해보련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 이제 20년 넘게 젊어졌으니 삶이 더 활기차겠구나. 밖으로 나가자.”
“예, 아버지.”
지하의 개인연무장에서 베일레 자작과 김준이 걸어 나오자 벨리 집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어 보였던 베일레 자작의 모습이 다시 20년 정도나 젊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하하, 아들이 구해준 영약을 먹었더니 이렇게 젊어졌어.”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벨리 집사.”
“영주님, 오늘같이 기쁜 날 축제라도 열면 어떻겠습니까?”
“그것 좋겠군요. 벨리 집사가 한번 준비해보세요.”
“예, 영주님.”
벨리 집사는 김준과 베일레 자작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기쁜 마음으로 저쪽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