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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프리맨의 귀환
쿠르르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일단의 무리들이 수도 까브의 외성 문을 나섰다. 이들은 김준과 쥴리아 공주 일행이었다.
호든 기병대장을 포함해 기병 49명과 쥴리아 공주의 호위병 100명은 말을 타고 이동했고, 김준은 쥴리아 공주와 시녀 5명과 함께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또한 이들의 짐을 실은 짐마차 5대를 10명의 하인들이 나누어 타고 뒤따라왔다.
영지까지는 9일 정도 걸리는 길이었지만 공주 일행이 있었기에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으음… 12~15일 정도 걸리겠군?’
서두르지 않은 발걸음에 어느덧 지평선 끝에 해가 사라지면서 대지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석양이 너무 아름다운지 쥴리아 공주는 마차의 창문을 약간 열어 바라보았다.
“아!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
“정말 그러네요, 공주님.”
시녀들이 맞장구를 쳐주자 쥴리아 공주는 소리 내지 않고 화사하게 웃었다. 김준은 그런 공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으음… 글리아나처럼 극상의 미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귀엽고, 여성스럽고 아름답군.’
“공주님, 날이 저물고 있으니 야영을 해야겠습니다.”
“알았어요. 프리맨 경.”
김준은 마차의 창문을 열고선 호든 기병대장에게 말했다.
“호든, 적당한 곳에 야영할 것이니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호든 기병대장은 쥴리아 공주의 호위대장인 호리슨에게 접근해 야영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길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야영을 하게 되었다.
쥴리아 공주 일행 때문에 이동속도가 느려서 이동거리가 보통 때에 비해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모닥불이 타오르면서 주위를 밝혔으며, 모닥불 위에는 냄비가 올라가 있었다. 스프를 끓이려는 것이다.
김준은 한쪽으로 걸어가서는 투명화 마법을 걸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아공간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낸 후 다시 닫은 후 아공간 속에서 꺼낸 것들을 가지고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가 내려놓았다.
그는 이내 자신이 직접 특별요리를 준비했는데, 오늘의 요리는 불고기였다.
기온이 낮은 아공간 속에 들어 있던 소고기라 약간 얼어 있었는데, 칼질하기엔 그편이 더 좋았다. 그는 대패로 깎듯이 소고기를 얇게 썰어서 접시에 놓고, 갖은 양념으로 잘 버무렸다.
양념한 불고기가 준비되자 김준은 숯을 피웠다.
“쥴리아 공주님, 오늘은 제가 마련한 특별요리를 드셔 보시렵니까?”
“프리맨 경이 직접 요리도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알았어요. 먹어보도록 하죠.”
김준은 준비해둔 석쇠에 양념한 불고기를 놓고 숯불에 구웠다. 이내 고기가 구워지며 나는 향기롭고 구수한 냄새에 쥴리아 공주는 절로 침이 넘어갔다.
‘어머, 너무 맛있게 보여.’
“프리맨 경, 이 요리의 이름이 뭔가요?”
“불고기라 합니다.”
“불고기?”
“일단 한번 먹어보시면 이 맛을 못 잊을 겁니다. 자, 다 구워졌으니 드셔보십시오.”
왕성에서 솜씨가 뛰어난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먹고 자란 쥴리아 공주는 입맛이 무척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런 공주가 불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니, 맛있는 것을 넘어 맵지 않고 달콤하면서 구수한 불고기 맛에 그녀는 완전히 반해 버렸다.
질 좋은 소고기에 갖은 양념을 해서 숯불에 바로 구워 먹으니 입 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였다.
‘후후… 불고기 맛에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특히 이런 숯불에 즉석에서 구워 먹는 맛은 무엇도 못 따라와.’
쥴리아 공주는 불고기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맛있었기에 석쇠에 구워진 불고기를 거의 혼자서 다 먹어 버렸을 정도였다.
공주가 워낙 맛있게 먹자 주위에 있던 자들도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맛있으면 공주가 저렇게 맛있게 먹는지 무척 궁금한 것이다.
준비해둔 불고기는 충분했기에 김준은 석쇠에 다시 불고기를 구웠다. 공주는 두 번째 석쇠에 구워진 불고기를 절반 정도 먹고서야 배가 부른 듯 물러났다.
“공주님, 불고기가 맛있었습니까?”
“아, 너무 맛있었어요.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
“맛있게 잘 드시니 저도 보기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프리맨 경.”
공주의 칭찬에 김준의 마음도 흐뭇했다.
그는 남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었고, 영지 기병들과 공주의 호위병들도 숯불에 불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들은 모두 불고기의 기막힌 맛에 반해 서로 먹으려고 난리였다.
식사를 마친 후 밤이 깊어지자 김준은 천막 속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음… 글리아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봐야겠구나. 로케이트 오브젝트(Locate Object)!”
츠츠츠츠!
낯익은 물건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마법이다.
김준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마케리안 대륙전도가 나타났으며, 붉은 점이 깜빡거렸다. 물건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능이었다.
글리아나가 가지고 있는 마법주머니는 러셀 왕국의 데카 호수에서 9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김준이 실종된 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멀리 이동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스!
그는 아공간을 열어 마법약물을 꺼내었다. 그리고 마법수식을 계산한 후 룬문자와 도형을 새겨 마법주문을 중얼거렸다. 심부름을 시키기에 안성맞춤인 페밀리어를 생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15분 정도 주문을 외운 김준이 마력을 이미 그려놓은 마법진에 불어 넣었다.
번쩍!
검은빛이 일어나면서 주먹 정도 크기의 검은 덩어리가 생성되었다.
스윽!
룬문자와 도형이 그 검은 덩어리 속으로 스며들었고, 검은 고무인형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머리와 팔, 다리가 형성되자 김준은 자신의 손가락에 마력을 불어 넣자, 붉은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똑. 똑. 똑.
검은 생명체에 김준의 피가 떨어져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이제 깨어나거라. 나의 페밀리어여!”
츠츠츠츠!
김준의 기이한 목소리에 검은 페밀리어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고개를 숙여 김준에게 인사했다.
“후후…성공이군. 너를 이제부터 블랙이라 부르겠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김준의 머릿속에 텔레파시로 블랙이 인사를 해왔다. 김준에게서 이름을 부여 받은 블랙은 주인의 인장인 별모양의 문신이 이마에 새겨졌다.
“블랙,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예, 주인님.
스윽!
김준은 아공간 속에서 상급의 마나석을 꺼내어 이동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그것을 블랙의 몸통에 붙이자 이동마법진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너 블랙은 나의 명에 따라 이동해 본 것을 나에게 보고하거라. 가랏!”
-예,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츠파파팟!
블랙은 이동마법진을 시전해 사라져 버렸다. 그 후 김준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들을 다시 정리하여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정신력을 제법 많이 사용했기에 몸과 머리가 무거워 졌기에 가부좌를 틀고 천왕대심공을 운용했다.
새벽이 될 즈음 피로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3시간 정도 남았기에 그동안 잠깐이라도 잠을 자기 위해 김준은 깔아두었던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뾰로로롱!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내지르면서 작은 새 두 마리가 야영지를 가로질러 날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귀가 밝은 김준은 그 새소리에 눈을 떴고, 상체를 일으켰다.
“음… 벌써 아침이 되었군?”
김준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절반 정도의 기억을 되찾았기에 자신의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공간을 열어 그 속에서 금속으로 된 욕조를 꺼낸 그는 다시 거대한 나무통을 하나 꺼내었다. 그 통 속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주르륵!
김준은 욕조에 물을 붓고는 마력을 일으켜 물을 따뜻하게 데웠다. 그리고 욕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농축된 장미 오일을 적당히 넣고는 다시 말린 꽃잎도 꺼내 뿌렸다.
“흠흠… 역시 장미의 향기가 가장 좋아. 이제 목욕해볼까.”
옷을 벗고 욕조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야영지에서 이런 목욕은 참으로 호화스러운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마법을 이용하니까 이런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룰루루… 역시 마법은 잘만 사용하면 이렇게 편하고 좋다니까.”
그는 이어 타월에 비누를 묻혀서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이 탁해졌지만 정화 마법으로 금세 새 물같이 만들어서 목욕을 끝마칠 수 있었다.
장미 오일의 영향으로 목욕을 마친 몸에서 은은하게 장미향이 나는 게 기분까지 상쾌하고 좋아졌다. 그는 입었던 옷들은 전부 아공간 속에 집어넣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가장 위에는 사고를 당하기 전에 사용했던 회색 로브를 꺼내어 입었다. 마법주머니와 무기까지 다양하게 수납할 수 있는 다목적 로브였기에 편리했다.
“자… 아침을 먹고 다시 영지로 가야겠지?”
-김준, 이젠 날 풀어 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누…누구지?”
-나를 벌써 잊었는가? 나는 아벨이다.
“아벨?”
-으음… 보통일이 아니군? 어떻게 날 몰라볼 수 있는 것이지?
“너는 어디에서 말하는 것이냐?”
-난 너의 마법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아벨의 말에 김준은 자신의 로브 안에 있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마법주머니를 꺼내어 입구를 열었다.
주르륵!
마법주머니 속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더니 페밀리어 블랙과 유사하게 인간 형태로 변신했는데, 크기가 손바닥만 했다.
“음… 네가 아벨이냐?”
-그렇다. 김준, 내가 아벨이다!
“너는 왜 마법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이냐?”
-네가 신의 선물이 생성되는 게 확인되면 날 풀어준다고 약속했지 않느냐?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록 날 풀어주지 않는 이유는 뭐냐?
“으음… 난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렸었다. 그래서 너에 대하여 잘 모른다.”
-음… 어쩐지 날 풀어주지 않는다고 했어. 이제라도 날 풀어다오.
“어쨌든 기억이 없지만 내가 한 약속이라고 하니까 지금 당장 풀어주마. 떠나거라!”
김준이 풀어줘도 아벨은 지금 당장 떠날 수는 없었다. 그건 지금 자신의 상태가 가장 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떠나도 좋다. 아벨, 어서 떠나라!”
-음… 지금은 떠날 수 없다.
“아니 왜?”
-나는 지금의 상태가 가장 취약하다. 적당한 생명체의 몸속에 들어갈 때까지는 떠날 수 없다.
“음… 그것까지 내가 구해줘야 하나?”
-그래도 난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적당한 생명체를 구해줄 의무가 있다.
“그건 그렇고 신의 선물이라는 것은 뭐냐?”
-으음… 확실히 기억상실증이 맞는가 보구나. 누군가 접근하고 있으니 나중에 알려주겠다. 나는 당분간 이 마법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겠다. 나와 이야기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벨이라고 불러라. 그럼 텔레파시로 대화할 수 있다.
“음… 알았어. 그렇게 할게.”
스스스!
아벨은 마법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김준은 그것을 다시 로브속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천막밖에 호든 기병대장이 다가와 말했다.
“프리맨 님, 일어나셨습니까?”
“그래. 무슨 일인가?”
“아침식사가 준비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쥴리아 공주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하더냐?”
“날씨가 좋다고 하시면서 천막 밖에 테이블을 놓고 그곳에서 드신다 하셨습니다.”
“음… 그럼 나도 같이 그곳에서 식사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주게.”
호든 기병대장이 멀어지는 걸 느낀 후 서둘러서 욕조와 나무통을 아공간 속에 집어넣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이미 주변은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영지까지 가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어.’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가자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쥴리아 공주는 먼저 나와 앉아 있었다.
“편안하게 잘 주무셨습니까, 공주님?”
“그래요. 프리맨 경, 아침에 목욕했어요?”
“예, 그렇습니다.”
“아… 어쩐지 향기로운 장미향이 난다고 했어요.”
쥴리아 공주는 김준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젯밤에도 그가 구워준 불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과 같이 유심히 바라보지는 않았었다.
잘생긴 얼굴에 키도 크고, 이렇게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깨끗하게 목욕하고, 몸에서는 장미향이 향기롭게 났다. 또한 새 옷으로 갈아입어서 깔끔했기에 빛이 나는 듯했다.
그러니 쥴리아 공주의 방심이 흔들리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김준은 맛있게 식사를 하였지만 쥴리아 공주는 김준을 힐끔 거리면서 빵을 뜯어 먹을 뿐이었다. 약간 어색해진 식사 시간이었지만 김준은 의식하지 않고 먹는 데만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