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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프리맨의 귀환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면서 시종 테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리맨 님, 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음… 안으로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면서 하녀들이 준비해온 식사를 테이블에 차렸다. 왕성이라서 그런지 요리들은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많은 요리들이 테이블에 가득 차려 졌는데, 대략 70여 가지나 되는 고급 요리였다.
‘그래, 일단 차려진 것이니 맛있게 먹고 나서 하자!’
왕의 손님으로 묵고 있는 것이니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그는 차려진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빈 그릇이 치워지자 김준은 떠오른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이제야 어느 정도는 알겠구나. 결국 난 드래곤의 석화마법에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려 지금까지 지내왔었어.”
눈을 감고 심장부근에 있는 마나고리를 느껴 보았더니 9개의 마나고리가 그대로 위치해 있었다.
“간단한 마법부터 시도해보는 게 좋겠군. 라이트(Light)!”
츠츠츠!
횃불 정도의 밝기를 가진 빛의 구가 공중에 생성 되었다. 김준은 빛의 구를 쳐다보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역시 마법 시전이 되는구나. 그럼 이번에는 치료마법으로 손상된 해마를 치료해 볼까, 큐어 라이트(cure light)!”
츠츠츠츠!
가벼운 상처 정도를 치료하는 마법을 머릿속의 해마부분에서 작용하도록 했다.
인간의 뇌는 아주 민감하고, 복잡한 곳이기에 섣불리 건드렸다가 오히려 나쁜 쪽으로 흐를 수도 있었기에 그 역시 매우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치료마법을 펼치면서 지켜보았다.
좀 더 강한 힐 치료마법이나 이것보다 더 강력한 치료마법인 리스토레이션 마법을 펼칠 수도 있었지만 약한 것으로 안전하게 치료하는 게 여러 가지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김준의 의도대로 손상된 해마부분이 천천히 치료가 되었다. 그 영향으로 그동안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들까지 폭포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마구 쏟아졌다.
다시 찾은 기억에 조금 흥분한 김준은 조금 더 강하게 치료를 시도하려다가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생기는 바람에 위기감을 느끼고는 큐어 라이트 치료마법을 중지했다.
“휴우… 자칫 잘못하다가 큰일 나겠어.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음 기회에 시도하는 게 좋겠군. 여긴 그렇게 안전한 곳이 아니니까 말이야.”
처음보다 20% 정도 더 치료가 되었기에 막대한 기억이 쏟아진 상태이지만 작위수여식이 곧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김준은 그동안 그는 되찾은 기억들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휴버트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리맨 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휴버트 시종장이 들어와 말했다.
“곧 작위수여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시다면 저를 따라 오십시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휴버트 시종장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김준의 작위수여식이 열리는 곳은 그랜드 홀로, 고위 귀족들과 중앙 정치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귀족들까지 대거 참석했기에 300여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웅성웅성!
그랜드 홀은 많은 귀족들로 인해서 제법 소란스러웠다. 그들은 모두 최근 떠오르고 있는 신성이라 할 수 있는 김준을 보기 위해서 참석한 것이었다.
귀족들은 국왕파와 귀족파, 중도파로 나뉘어 파벌 별로 모여 소곤거리고 있었다.
덜컹!
그랜드 홀의 문이 열리면서 휴버트 시종장이 앞서고 그 뒤를 김준이 들어섰다. 그보다 지위가 높은 많은 귀족들이 모여 있었지만 김준은 전혀 기가 죽은 모습이 아니었고, 오히려 더 당당해 보였다. 그것이 귀족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스윽.
김준은 그랜드 홀을 살펴보았다.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으며, 벽면에는 아름답고 웅장한 벽화와 대형그림이 걸려 있었다. 또한 곳곳에 아름다운 조각상과 아름다운 꽃이 핀 화분이 놓이고, 한쪽 벽면 앞에는 긴 테이블이 자리해 그 위에 쿠키와 과일, 각종 과자류와 음료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귀족파의 리안 공작과 차일 후작 옆에는 수십 명의 귀족파 귀족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특히 20대 초반의 근육질의 잘생긴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차일 후작의 차남으로 왕립 아카데미 기사학부를 올해 말에 졸업하는 장래가 총망한 기사 후보였다.
그는 검술에 재능이 있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술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소드익스퍼트 중급이었다. 게다가 워낙 출중한 외모와 실력으로 벌써부터 많은 귀족가의 레이디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왕성 안이라 기본적으로 국왕친위대원들이 아니고선 검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백작급과 그 이상의 고위 귀족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 한 명이었다.
물론 그들도 국왕과 10미터 안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국왕친위대원들이 근접 경호를 철통같이 하였기 때문이었다. 차일 후작의 차남인 다비든은 오늘 차일 후작의 호위기사로서 참석한 것이었다.
“아버님, 저자가 바로 프리맨이라는 자입니까?”
“그렇단다. 아직은 애송이에 불과한 놈이지.”
“신장은 제법 큰 편이군요?”
“그러면 뭐하느냐, 호리한 게 검술이나 제대로 펼치겠느냐?”
“하하…그건 그렇습니다.”
“저런 놈에게 내가 귀족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다니…….”
“아버님, 저런 놈은 여기에서 검술로써 망신을 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주위에 국왕친위대원들이 배치되어 있으니 참아야지 별수 있나.”
이들은 소곤거리는 정도로 말했다지만 귀가 밝은 김준은 모두 들었다.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험담을 하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아직 국왕이 참석하지 않았기에 김준은 테이블에 마련되어 있는 것들 중에서 얼음을 넣어 차갑게 식힌 과일즙을 한잔 마셨다. 무슨 과일즙인지 모르겠지만 달콤하면서도 시원하게 갈증해소에 좋았다.
“국왕전하께서 납시옵니다.”
시종의 외침에 웅성거리던 귀족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면서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붉은 망토에 머리에는 왕관을 쓴 찬드란트 국왕과 화려하게 장식된 드레스를 입은 제나 왕비가 나란히 들어섰다.
그 뒤를 이어 왕비를 대신해 제1공주인 쥴리아 공주가 따라 들어왔다. 올해 18살인 쥴리아 공주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매끄러운 미인이었다.
오늘 작위를 받게 되는 김준은 양부가 자작이기에 그도 남작에 봉해질 것이었다. 곧 작위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줄은 귀족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위식의 식전 행사로 귀족파의 차일 후작의 차남인 다비든의 검술 시범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발단이었다.
쉬쉬쉭, 파팟!
롱소드를 꺼내든 다비든은 대륙의 3대 검술의 하나인 스네이크 검술을 화려하게 펼쳤다.
짝짝짝!
검술의 천재로 알려진 다비든이었기에 귀족들은 검술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준은 다비든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한창 신나게 검술을 펼치고 있던 다비든이 그것을 보고 찬드란트 국왕에게 말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곳에 저의 검술을 비웃는 자가 있사옵니다.”
“아니, 누가 다비든의 검술을 비웃는단 말인가?”
“오늘 작위를 받는 프리맨 경이옵니다.”
“프리맨 경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모두의 시선이 김준에게 모아졌고, 김준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저를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대의 검술 실력은 정말이지 너무 형편없지 뭡니까.”
“뭐…뭐라고?”
예상치 못한 김준의 도발적인 말에 다비든은 놀랐다. 이건 다비든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맨 경, 나를 모욕하다니 죽고 싶으냐?”
“하하하하… 정작 모욕을 당한 사람은 나다.”
“뭐…뭐라고? 이자가 감히… 나의 칼에 죽고 싶으냐?”
“후후후, 그것도 검술이라고 펼치느냐?”
일이 이렇게 되고 보자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모두들 검술의 천재라 인정하고 있는 다비든을 김준이 무얼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찬드란트 국왕도 그렇게 생각했다.
“전하, 저에게 모욕을 준 프리맨 경에게 결투를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국왕의 허락이 떨어지면 단칼에 김준의 목을 베어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김준은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국왕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준이 답을 주었다.
“전하, 저런 애송이 정도의 검술은 칼도 필요 없습니다. 저자의 결투 신청을 윤허해 주십시오.”
일이 이렇게 되고 보자 찬드란트 국왕도 더 이상 망설이지 못하고 결투를 허락했다.
국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주위에 있던 귀족들이 물러나면서 그랜드홀 중앙에 넓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김준과 다비든에게는 롱소드가 주어졌다.
“먼저 롱소드를 뽑아라!”
“후후… 너 정도의 실력으로는 내가 롱소드를 뽑을 자격도 없다. 그러니 그냥 먼저 공격하거라!”
화가 치밀 대로 치민 다비든은 롱소드를 검집에서 뽑았다.
쉬이잇, 파팟!
역시 검술의 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다비든의 검술은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웠다. 그러나 김준은 여유롭게 그의 롱소드를 전부 피해버렸다.
헛칼질을 한 다비든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더 이상 경시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김준이 자신의 3초식을 여유롭게 받아내었기 때문이었다.
햐앗!
기합을 넣으면서 순식간에 김준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는 롱소드를 찌르고는 다시 사선으로 휘둘렀다. 정말 깔끔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그러나 상대인 김준은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히고 좌우로 흔들면서 피했다.
“하하하… 겨우 이것을 가지고 나에게 도발했느냐?”
“이이… 죽여 버리겠어. 받아라!”
쉬이잇, 파팟!
역시 이번에도 헛칼질만 했다.
벌써 세 번이나 공격이 빗나가자 다비든은 당황했다. 하루에 6시간씩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검술에 대하여 자신이 넘치는 다비든이었는데, 오늘은 망신만 당하고 있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말도 안 돼!’
“후후후… 애송아, 네가 자랑하는 스네이크 검술을 펼쳐 보거라.”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다비든은 놀림감이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롱소드에 마나를 주입했다.
스스스!
녹색 빛이 검날에서 흘러나왔다.
“오오… 이제야 제대로 펼칠 모양이군?”
“저…저것이 소드익스퍼트 중급이 펼치는 검기야!”
귀족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환호했고, 다비든은 다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러나 김준에게는 여전히 애송이에 불과했다.
쉬이잇, 퍼억!
보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김준은 검집 채로 내리쳐 다비든의 왼쪽 어깨를 맞추었다. 그는 뒤로 4~5걸음 물러나면서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붙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끄으으… 이럴 수가?”
슈우웅!
바람소리를 내면서 다시 김준은 다비든을 향해 검집 채로 휘둘렀다. 다급해진 다비든은 바닥을 뒹굴면서 피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롱소드로 막았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김준의 공격은 그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걸 예상한 공격이었다.
콰앙!
내력이 실린 김준의 공격을 롱소드로 막은 다비든은 내상을 입고 입에서 검붉은 피를 분수같이 내뿜으면서 뒤로 6~7미터를 날아가 떨어졌다.
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는 두 동강이 나면서 놓쳐버렸다. 그 모습에 귀족들은 입을 쩌억 벌리면서 놀랐다. 검술의 천재라 알려진 다비든이 처참하게 패하면서 부상을 입어 쓰러져 있는 것이다.
이때 한 중년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다비든의 검술 스승으로 현재 왕립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교수였다.
이름은 카디프이며, 올해 43살이었다. 작위는 백작이었으며, 또한 왕국의 5대 기사단이라는 레드 울프 기사단의 명예 단장이었다.
5년 전에 레드 울프 기사단의 단장직에서 물러나 왕립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교수에 재직해 있는 것이다. 검술실력은 10년전에 소드익스퍼트 상급에 올랐지만 아직 소드마스터에는 오르지 못했다.
소드익스퍼트 상급에서 소드마스터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깨달음이 없으면 오르지 못했다. 소드마스터는 소드익스퍼트 상급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오죽하면 이 넓은 대륙에서 소드마스터가 불과 15명을 넘지 않겠는가.
소드익스퍼트 상급도 왕국에 겨우 10~12명 정도밖에 없었으며, 대륙에는 300명 미만이었다. 그만큼 소드익스퍼트 상급도 어려운 경지라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