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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프리맨의 귀환
“조금이 아니다. 왕국의 모든 상단이 암염 매입을 중지하고, 오로지 천일염만 취급하려고 한다 하니 말이야.”
“그것 보시옵소서. 그동안 귀족들이 암염으로 얼마나 폭리를 취하였으면 저의 천일염만 취급하려고 하겠사옵니까? 귀족들도 암염가격을 천일염처럼 낮추면 될 일이옵니다.”
“으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짐이 관리하고 있는 암염광산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제가 개발한 천일염을 생산하여 판매한 지가 겨우 5달도 안 되었사옵니다. 안 그래도 날로 수익이 높아지고 있기에 전하께 기부금을 준비했사옵니다.”
“자네가 기부금을 말인가?”
“예, 전하. 우선 다음 달에 전하께 10만 골드를 기부하겠사옵니다.”
“음… 다음달에 10만 골드를 말이냐?”
“예, 전하. 그리고 내년부터는 100만 골드를 기부하겠사옵니다.”
“음… 100만 골드라고 했느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허허… 정말 대단하구나. 100만 골드라니…….”
“귀족들은 자신의 부가 늘어도 전하께 진상하지 않지만 저는 제가 판매하는 천일염의 수익이 늘어나면 전하께 더욱 많은 자금을 지원해 드릴 수 있사옵니다. 저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매년 수백만 골드씩 바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당장 내년부터 100만 골드의 자금이면 충분히 친위세력을 키우실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하하하하… 정말 대단하구나. 100만 골드라니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천문학적인 돈이구나.”
“전하, 그게 꿈은 아니옵니다. 지금도 염전을 추가로 신설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왕국을 넘어 대륙의 각 왕국과 제국에 판매를 한다면 지금보다 수십 배의 부를 거둘 수 있사옵니다.”
“으음… 생각만 해도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해!”
국왕은 이제 김준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든 듯했다.
“귀족들이 어떤 말로 전하를 현혹한지는 모르겠사오나 전하께서 저희 영지를 뒤에서 조금만 밀어 주시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실 수 있사옵니다. 그 자금으로 군대를 늘리면 그게 다 전하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으음…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구나. 내가 어떤 것을 도와주면 되느냐?”
“저희 영지에서 수도 까브까지 오는 길을 좀 더 넓히고, 노면을 고르게 하는 공사만 허락해주시면 되옵니다. 그리하여 천일염의 수송이 빨라지면 그만큼 이익이 될 것이고, 또한 영지로 들어오는 마차에는 식량이나 인력을 충원할 수도 있으니 모든 면에서 좋아지옵니다. 물론 그 자금은 제가 전부 부담하겠사옵니다.”
“하하하… 그럼 내가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만 하면 된다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아울러 전하께서는 재정적으로 든든한 신하를 두시는 것이기에 모든 면에서 이익이옵니다.”
찬드란트 국왕은 김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턱을 괴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결론이 나왔다. 그의 말에는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지금도 자신의 세력보다 귀족들의 세력이 더 강하다. 그러나 베일레 자작령을 자신이 끌어 들이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아울러 그 막대한 자금력으로 군대를 조성할 수도 있다.
베일레 자작은 고령이라 몇 년이나 더 살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김준이 영지를 물려받게 될 것이니 수십 년간 안정적인 자금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 무엇도 이것보다 매력적이지 않았다.
국왕으로서는 그의 제안이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하하하… 내일은 경에게 작위를 수여해야겠구려.”
마음의 결정을 한 찬드란트 국왕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김준에게 ‘경’이라는 호칭을 건네며 대우를 해주었다. 또한 내일 공식적으로 왕성으로 입궁을 하면 작위를 내려 준다 말했다. 김준은 걱정과는 달리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찬드란트 국왕은 김준과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국왕이 퍼뜩 그의 체류가 지체된 것을 깨닫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하하… 경과의 대화는 아주 유익했느니라. 이만 물러가도 좋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기에 김준은 시종장의 뒤를 따라 왕성을 빠져 나와 아젤리아 호텔로 되돌아 왔다.
* * *
찬드란트 국왕은 자신의 침실에 누워 깊은 생각에 빠졌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일이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동안 찬드란트 국왕은 자금의 여유가 없었기에 매번 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에 군사를 늘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 했었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베일레 자작령에서 자신에게 100만 골드를 지원해 준다고 한다.
말이 100만 골드지, 그 정도의 자금이라면 당장 막강한 군대를 양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라 매년 최소 100만 골드씩 지원해 준다고 한다.
자신은 수도 까브에서 베일레 자작령까지 대로만 건설하도록 왕명을 내리면 모든 것은 그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전적으로 베일레 자작령에서 책임지기로 했으니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대로만 잘 건설되면 앞으로는 수백만 골드씩 지원될 것이니 그만큼 자신의 세력이 강력해지는 것이기에 더 이상 귀족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흥분되어 잠이 오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국왕은 그날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다음날 오전. 아젤리아 호텔 앞에 왕궁에서 나온 시종과 호위병들이 도착했다. 김준은 기병들을 이끌고 그들의 뒤를 따라 왕성으로 향했다.
이미 고위 귀족들은 왕성에 들어와 있었고, 김준도 어느덧 도착했다. 그는 전날과 같이 시종장 휴버트의 안내를 받았고, 이번에는 대연회실로 들어갔다.
찬드란트 국왕을 비롯해 왕비 제나, 제1왕자인 앤드류, 조르단 2왕자, 3왕자인 케빈, 제1공주인 쥴리아, 2공주 베로니카까지 모든 왕족이 참석해 있었다.
또한 이번에 김준을 직접적으로 소환하게 만든 귀족파의 차일 후작과 리안 공작, 귀족파의 고위귀족 6명과 국왕파의 월리엄 공작과 5명의 고위 귀족, 중도파의 수장인 루나드 공작과 중도파 귀족 7명이 각각 이번 고위 귀족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그들은 대연회실로 들어서는 김준을 쳐다보았다. 이들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김준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김준이 뮤란 대륙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신상정보에 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가볍게 볼 자가 아니란 게 느껴졌다.
‘으음… 애송이가 아니란 말인가?’
김준은 국왕인 찬드란트에게 절을 하고는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직사각형 형태의 긴 테이블의 양쪽에는 귀족들이 자리해 있었으며, 김준의 정면에는 국왕과 왕비를 비롯해 왕자들과 공주들이 자리해 있었다.
찬드란트 국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베일레 자작의 양자인 프리맨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이번에 베일레 자작이 노환으로 자리에 누웠다고 하던데, 괜찮은가?”
“예, 다행이 요양을 하고 있기에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될 정도 이옵니다.”
“으음… 병이 빨리 나아야 할 텐데… 프리맨이 왔으니 경들은 어서 질문들 해보시구려.”
찬드란트 국왕의 말에 귀족파의 차일 후작이 말문을 열었다.
“나는 차일 후작이라고 한다. 물을 테니 성심성의껏 대답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최근 왕국에는 천일염이라는 것이 판매되고 있는데 그게 베일레 자작령에서 생산되는 게 맞는가?”
“그렇습니다.”
“음… 그걸 누가 개발했느냐?”
“천일염은 제가 개발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째서 너는 그런 것을 개발하고서도 전하께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냐?”
“제가 알기로는 사소한 식품을 하나 개발한 걸 가지고 전하께 일일이 보고를 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라? 그게 무슨 소리냐? 사소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소한 것입니다.”
차일 후작은 그가 꼬박 꼬박 말대꾸를 하는 게 몹시 거슬렸지만 김준의 말대로 고작 천일염을 가지고 국왕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그를 탄핵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다시 말했다.
“좋다,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천일염을 판매해서 막대한 부를 올렸으면서도 너는 어찌하여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올해에 낼 세금은 이미 낸 것으로 아는데요?”
“그냥 내는 세금 말고, 천일염으로 거둔 부에서 일정한 세금을 내야 하는 게 아니냐?”
“하하하… 그것 참 이상한 말씀이십니다. 후작님께서는 전년보다 조금 더 밀이 생산된다고 하여 세금을 대폭 올려 전하께 내고 계십니까?”
“그…그건!”
“제가 알기로는 매년 전하께 올리는 책정된 세금 말고는 영지에서 생산한 것은 모두 영주가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닙니까?”
“…….”
김준의 조리 있는 말에 차일 후작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김준의 말에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그럼 왜 천일염은 암염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절반 가격에 팔아서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냐? 말해보거라.”
“그것 참 이상한 말씀이십니다. 암염은 제가 알기로는 분명 땅에서, 그것도 암염광산에서 채취해 판매를 하는 것이고 저의 천일염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생산하는 것이기에 전혀 다른 물건인데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 팔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번에도 차일 후작은 대답을 못 했다. 김준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생산하는 방법 자체가 완전히 달랐기에 똑같이 취급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일이 이상하게 꼬이자 결국 차일 수작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를 궁지로 몰아서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역공을 당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지 않아도 저의 천일염을 각 상단에서 많이들 사가면서 부가 늘어났기에 전하께 기부를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전하께 올리고 안 올리고는 저의 결정이지 귀족 분들께서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김준의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말에 귀족들은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국왕에게 기부를 한다는데 반대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 정도가 되자 찬드란트 국왕이 말했다.
“으음… 오늘 프리맨 경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전혀 경우에 어긋나는 것은 없구려. 경들은 프리맨 경에게서 설명을 들었기에 의문점이 해결되었으리라 보오. 그러니 더 이상 천일염에 대해 따지지 마시오.”
찬드란트 국왕의 말에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예, 알겠사옵니다. 전하.”
“아참, 그리고 이번에 베일레 자작이 너무 늙었기에 후계자인 프리맨 경에게 영지를 물려준다고 청해 왔으니 그렇게 처리할 것이니 오늘 오후에 작위식을 할 것이오.”
찬드란트 국왕의 폭탄 발언에 귀족들은 놀랐지만 이치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기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이건 마치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었다.
저벅, 저벅.
휴버트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김준은 왕성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복도에는 국왕친위대원들이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서 있었는데, 지나치면서 순간 살펴보니 제법 강하게 수련한 것이 느껴졌다.
‘기사 브레이그보다 한 단계 정도는 더 강하겠어!’
그가 안내된 곳은 다른 왕국의 사신들이 오면 묵는 곳이었는데, 그에 걸맞게 크고 화려한 룸이었다.
특별히 할일이 없었던 김준은 그냥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천왕대심공을 운용했다. 그는 우선 하단전에 있는 기를 운용하여 바로 대주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천왕대심공을 운용하다가 머리 부분에 기가 이동하게 되었다.
김준은 석화마법에 걸리면서 기억을 담당하고 있는 해마(hippocampus)부분에 손상을 입어 기억상실증에 걸렸었다. 후에 석화마법은 해제되었지만 손상된 해마는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정순한 김준의 기가 이번에 뇌 속을 이동하면서 그 일부가 해마에 스며들었다.
츠츠츠!
원래 손상된 뇌세포는 치료가 거의 되지 않는데, 치유력을 함유하고 있는 정순한 기는 곧 손상된 뇌세포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김준은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한다면 완치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일부만이라도 이렇게 치유가 되면서 상실했던 기억의 30% 정도가 떠올랐다.
‘아! 내가 그동안 기억을 잃어 멍청이가 되어 있었구나!’
그의 눈빛이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보다 훨씬 깊어졌다. 워낙 방대한 기억이라서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상황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