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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프리맨
말린 물고기라 상할 걱정이 없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렇기에 말린 물고기도 영지로 들어온 상단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돌아갔는데, 날로 인기가 높아졌다.
그동안 영지민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천일염전에서 일하거나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일에 나가거나 하면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영지의 도로를 정비하거나 새로 건설하는 곳에 일하여도 돈을 벌수 있었기에 이제는 여성들까지 일하러 나갔다.
이렇게 베일레 자작령은 먹을거리가 없어서 걱정하는 일이 없어지고 잘 먹고 잘 지내자 다들 살이 올랐다.
이런 소문은 금방 왕국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유민들이 대거 몰려들게 되었다.
사람이 한꺼번에 많이 몰려들게 되면 각종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기에 이들을 통제할 치안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돈이 있었기에 대거 모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준 덕분이었다. 그의 남다른 생각이 막대한 돈을 끌어 모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쿠르르르.
글리아나는 말을 타고 앞장섰다.
준의 노페르슈롱은 영리했기에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뒤에서 잘도 따라왔다.
헌트와 하그리는 여전히 뒤에서 짐수레를 몰고 무작정 북쪽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처음에는 식량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켐블 남작령에서 식량과 식수를 충분하게 구입하여 이동했다.
준이 행방불명이 되기 전에 주고 간 마법주머니 2개 속에는 1천 골드와 보석이 10개나 들어 있었다.
시세에 어두워 물건을 잘 구입하지 못하는 글리아나보다는 예전에 용병이었던 헌트와 하그리가 나았기에 알아서 골드화로 각종 물건들을 구입했다.
야영할 때 쓸 담요 20여 장과 입을 옷 몇 벌, 가죽신발, 요리할 때 쓰는 냄비와 각종 식기류, 중급의 롱소드와 보우, 가장 중요한 밀과 잡곡, 소고기도 몇 달간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대량으로 구입했다.
마법주머니 속에 저장하면 변질이 일어나지 않기에 각종 과일과 채소도 수레 2대의 분량으로 사두었다.
이렇게 어지간한 것들은 전부 마법주머니 속에 넣어 이동하니 무척 편했다.
짐수레에는 간단히 40kg짜리 밀 3자루와 식수통 2개만 싣고 움직였다.
준이 돌아올 때까지는 이동하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늦추기 위해서 하루 정도 이동하면 5~6일씩 야영한 후 이동했다.
야영할 때면 대부분 검술수련을 했다.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준이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바렌 왕국의 왕성.
이례적으로 국왕인 찬드란트가 고위 귀족회의에 참석했다.
최근 중앙 정치무대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단연 베일레 자작령에 관한 일이었다.
회의를 주체한 차일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잘 알고 있다시피 고령의 베일레 자작에게는 부인과 자식이 없었는데, 5개월 전에 갑자기 양자를 들이더니 영지가 급격하게 발전했습니다.”
차일 후작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베일레 자작령은 낙후된 곳으로, 돈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쯤은 귀족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른 남작령에는 하나 정도는 있다는 광산도 없는 데다 영지의 절반이 온통 야산에 황무지라 농지가 부족했고, 농사를 지어도 자급자족하기도 힘들 정도의 적은 양이었다. 바다가 있다고는 하지만 해양 몬스터들이 살고 있기에 물고기를 잡으러 멀리 나가지도 못했다.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돈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일염이라는 것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생각을 멈추고 차일 후작의 말을 계속 들었다.
“다른 영지에서는 암염광산에서 소금을 채취하지만 베일레 자작령에서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라면 이건 아주 획기적인 방법입니다.”
그랬다. 아무리 암염광산이 크다고 해도 바다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었다.
바다는 매우 거대해 거의 무한에 가깝게 소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귀하기에 가격이 무척 비싼 편이었다.
“베일레 자작령에서는 암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천일염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것은 기존의 암염보다 입자가 곱고 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절반 가격에 팔고 있기에 암염은 이제 경쟁 자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 회의를 하게 된 것도 그 문제 때문이었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던 암염광산은 이젠 더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고위 귀족들도 보고를 받았기에 대충은 알고 있었다.
암염을 취급하던 각 상단들도 이제는 공식적으로 베일레 자작령을 찾았다.
바렌 왕국에서 제법 이름 있고 잘 나간다는 10대 상단에서는 밀이나 생필품을 가득 싣고 베일레 자작령으로 들어가 천일염을 매입해서 팔았다.
그냥 돈만 가지고 영지로 들어가면 천일염을 많이 매입하지 못했기에 상단에서는 식량이나 각종 물건을 싣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돈과 각종 물품이 대거 베일레 자작령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유민들이나 용병, 상단 등 사람들이 대거 몰릴 수밖에 없었다.
각 상단에서는 막대한 이윤이 남는 천일염 장사에 열을 올리는 것도 어쩌면 무리가 아니었다.
암염은 생산량도 그렇게 많지 않고, 영주들에게서 배당받으려면 일정한 양만 가능했다.
베일레 자작령의 천일염은 아니었다.
상단에서 원하는 양만큼 매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암염의 거래는 일시 중지가 되어버렸다.
배짱으로 장사를 하던 암염광산의 영주들도 당황했다.
갑자기 모든 상단에서 암염을 매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영주들은 이 같은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소금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렇기에 배짱을 부려가면서도 팔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는 천일염이라는 것에 밀려 잘 팔리지도 않았다.
누가 가격이 싼 천일염을 두고서 비싼 암염을 사서 먹겠는가 말이다.
바렌 왕국의 모든 상행위가 베일레 자작령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고위귀족들이나 중앙귀족들은 자연히 배가 아파 고위 귀족회의를 열게 된 것이고 말이다.
이런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사업이 있다면 당연히 국왕에게 보고를 해야 하며, 또한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는 게 이번 회의 목적이었다.
국왕인 찬드란트도 고위귀족회의에 참석하려고 할 때에서야 그 같은 일을 보고 받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회의를 열게 된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차일 후작은 설명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귀족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베일레 자작령에 대하여 압력을 행사하기가 힘들었다.
오랫동안 교류가 거의 없었고, 자체 개발해서 각 상단들이 앞 다투어 판매를 하고 있는 천일염을 막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그것도 올해에는 이미 거두어들였기에, 내년이 되어야 좀 더 많이 부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몇 배로 올려도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이 고민이었다.
모두들 선뜻 나서지 않자 차일 후작이 말문을 열었다.
“전하, 베일레 자작을 왕성으로 부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제야 국왕인 찬드란트가 차일 후작을 바라보면서 반문했다.
“베일레 자작을 왕성으로 소환한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이렇게 막대한 부를 축척하는 천일염의 제조 방법을 공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으음… 자체 개발한 것을 내어놓겠는가?”
“전하께서 명하시면 신하된 도리로 따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내가 왕이라도 그런 일을 한다면 귀족들이 뭐라고 하겠나?”
“전하께서 하시는 일을 감히 누가 따진단 말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전하?”
“음… 그럼 먼저 베일레 자작과 그 아들을 왕성으로 소환한 후 이야기를 해보는 걸로 하지.”
“현명하신 결정이옵니다, 전하.”
이렇게 베일레 자작과 준을 왕성으로 소환하는 것으로 고위 귀족회의가 끝났다.
왕성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궁정마법사의 탑에서는 즉시 마법통신구로 베일레 자작령에 이 같은 왕명을 전달했다.
영지를 돌아보고 영주성으로 돌아온 준에게 베일레 자작은 왕성에서 온 왕명을 전했다.
“으음…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왕성에서 갑자기 왕명으로 소환한 것은 천일염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위 귀족들이 주시하고 있을 것인데 이제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구나.”
“아무래도 이번에 왕성으로 가는 것은 저 혼자가 좋겠습니다. 아버님은 여기에 남아서 영지 전반에 관한 감독을 하셔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왕성에서는 너와 나를 소환하지 않았느냐?”
“중앙의 귀족들도 아버님께서 고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노환 때문에 치료와 요양을 병행해야 한다고 하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거, 좋은 방법이구나.”
“남들의 이목이 있으니 영주성에 계시면서 모든 일은 9명의 기사들에게 나누어 지시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그리고 제가 왕성으로 가 있는 동안에 아버님께서는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1만 명 정도의 영지병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1만 명이나 되는 영지병을 말이냐? 그렇게 대규모로 준비하는 이유라도 있느냐?”
“앞으로 영지전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때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당장 조치를 취하마.”
“지금 영지에는 젊고 건강한 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좋은 대우로 영지병을 모집한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1만 명이 넘더라도 모두 모집하십시오.”
“알았다. 그렇게 하마.”
“천일염을 판매하고 벌어들인 자금이 엄청나니까 영지병들에게 지급할 말도 매입해두십시오.”
“말도 말이냐? 그럼 기병을 편성할 것이냐?”
“단기간에 영지를 발전시켜두어야 감히 주위에서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힘이 있어야 깔보지 않으니까요.”
“그건 네 말이 맞다.”
“지금 영지의 각 도로를 정비하고, 새로운 도로도 최대한 넓게 만들어두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만 천일염으로 벌어들인 자금이 충분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허허, 그렇구나. 알았다.”
“기사 브레이그에게 지시해서 영지병을 모집하도록 하시고, 나머지 기사들에게 훈련을 맡긴다면 알아서 잘 훈련시킬 것입니다.”
“그동안 자금이 없어서 영지병들을 모집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영지병들에게 좋은 대우와 장비를 새로 보급하고 잘 먹이면 강력한 영지병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버님. 왕성으로 소환되는 일에 너무 신경 쓰시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난 너만 믿을 테니 걱정 말거라. 그래도 항상 몸조심해야 한다.”
“예, 아버님!”
드디어 왕성에서 소환한 날의 해가 밝아왔다.
베일레 자작의 노환으로 몸져누웠다는 것을 알리고, 대신 준 혼자 가는 것으로 보고했다.
왕성에서도 노환으로 누웠다는 그를 죄인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게 소환할 수 없었기에 준 혼자 오는 것을 허락했다.
그렇게 준은 왕성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양부인 베일레 자작은 준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여긴 걱정하지 말거라.”
“예, 잘 처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그만 떠나거라.”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준은 준비되어 있는 말에 올랐다.
말의 옆구리에는 물주머니 한 개만 매달려 있었다.
왕성까지는 9일이 걸리는 거리이기에 준은 여행용 회색 로브를 입고, 허리에는 무기인 롱소드를 차고 있었다.
식량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마법사 리버스가 가지고 있던 마법의 가죽주머니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짐수레 절반 분량을 넣을 수 있는 마법 공간이 있었기에, 그 속에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물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또한 여행 경비로 쓸 1만 골드와 보석 20여 개를 준비해두었다.
준을 왕성까지 따라갈 기병 50명은 이미 말을 타고 대기해 있었다.
기병대장인 호든이 크게 외쳤다.
“출발이다, 출발!”
말들이 길게 줄을 맞추면서 영주성 밖으로 튀어나갔다.
멀어지는 모습을 베일레 자작과 기사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아,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