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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108화 (10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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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프리맨

베일레 자작은 처음부터 준이 마음에 들었는데, 소드마스터라는 게 밝혀진 이상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으음… 오늘 밤에 은밀하게 불러서 말해봐야겠어. 20대 초반의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높은 수준의 검술을 익힌 건지 불가사의하군. 혹시 드래곤일까?’

베일레 자작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분명 드래곤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준은 벨리 집사의 안내를 받아 긴 복도를 걸어서 베일레 자작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들어서는 준에게 자리에 앉도록 손짓했다.

“저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겁니까?”

“그렇다네. 그동안 자네를 지켜보다가 오늘 말하기로 결정했네.”

“그게 무슨…….”

“자네도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부인이나 자식이 없다네.”

“그건 하녀들이 말하는 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의 양자가 되어볼 생각이 없나?”

“제가 자작님의 양자를요?”

“그렇다네. 자네가 인물 조각상일 때부터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사람이 되었지.”

“…….”

“자네는 기억을 잃어 자신의 신분도 모르는 상황이고, 난 자식이 없었기에 자네를 유심히 지켜보았어. 그래서 자네를 나의 양자로 삼았으면 하네. 어떤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약간 당혹스럽습니다.”

“그럴 테지. 난 이제 늙어서 몇 년 살지도 못해.”

“…….”

“내가 죽으면 영지민들은 누가 돌보겠는가? 그래서 자네를 양자로 삼으려는 것이네.”

“…제가 자격이 있습니까?”

“물론 자네는 충분한 자격이 있어.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 있는 검술 실력을 가졌기에 왕궁에 알려지면 백작의 작위를 받을 수도 있어.”

“전 기억을 잃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절대로 자넬 높게 평가하지 않았어. 지금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런데 만약 제 기억이 돌아오면 그때는 어쩌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게 어떤가? 지금으로선 그게 언제가 될지 장담 못하지 않는가? 내 말이 틀렸나?”

“아…아닙니다, 맞습니다.”

“그것 보게. 자네, 내 양자가 되어서 앞으로 이 영지를 잘 다스려주게.”

준은 베일레 자작의 진실한 눈을 보고는 결국 양자가 되겠다고 결정했다.

벨리 집사도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준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베일레 자작은 자신의 기사 9명에게 준이 자신의 양자가 되었다고 알렸다.

검술실력이 소드마스터에 올라 있는 준이기에 기사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이렇게 준은 베일레 자작의 양자가 되면서 성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카라 베일레 폰 프리맨이라 불리게 되었다.

왕성에도 이 같은 사실을 마법통신구로 왕립 수석 행정관에게 알려주었다.

약 2일 정도만 지나면 왕궁의 마법사가 세긴 신분패도 이동마법진으로 받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식이 없었던 베일레 자작에게 양자가 생겼다고 중앙 귀족들에게 알려졌지만 낙후된 지방의 영지의 일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중앙 귀족들에게 베일레 자작은 잊힌 인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멀지 않아서 그들은 놀라게 될 것이었다.

준은 비록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었지만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영지를 관리하는 실무자인 월터 행정관에게서 영지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각종 서류를 살펴보고는 2일 만에 영지를 전부 파악해버렸다.

“영지민은 3만7천여 명 정도 되며,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는 게 8천 골드 정도 되는군.”

영지민에는 농노와 평민, 기사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노예 6천 명과 유민 1만2천 명 정도가 빠져 있었다. 보통은 그들을 인구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까지 전부 포함하면 약 5만5천 명 정도 되는구나.”

한 해에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고작 8천 골드밖에 안 되었는데, 그중에서 국왕에게 보내는 게 3천 골드였다.

나머지 5천 골드 중 3천 골드 정도가 기사들과 영지병들의 비용으로 충당되고, 일 년 동안 먹을 식량을 구입하는 데 1천 골드 정도가 들어갔다.

그러면 나머지 1천 골드 중 5백 골드는 베일레 자작의 개인재산으로 보관하고, 나머지 5백 골드로 영지의 각종 낙후된 것들이나 도로 보수공사에 썼다.

베일레 자작의 개인재산은 총 3만 골드 정도 되었지만 다른 영지의 남작들보다 훨씬 적은 것이었다.

이런 실정이니 영지가 발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뭔가 획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준은 베일레 자작을 따라서 영지 순시를 하게 되었다.

영지는 상당히 넓었지만 쓸모없는 야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농사를 지을 땅도 많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돈이 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으음… 정말 가난한 영지군.’

영지에 있는 각 마을을 둘러보고는 비위생적인 것들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영지를 둘러보다가 베일레 자작은 준을 발견한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준은 특별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 짠 바다냄새가 느껴지자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소금이었다.

영지에서 돈을 만들어낼 만한 것은 바다뿐이었고, 고기잡이 배는 해양 몬스터들 때문에 연안에 머물면서 고기잡이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물고기는 넘쳐나고 있었기에 나가기만 하면 제법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후후후, 그래, 천일염을 생산하면 막대한 부를 이룰 수 있겠구나! 해보자!’

영주성으로 돌아온 준은 천일염을 생산하는 방법을 지난날 읽었던 책에서 떠올려보았다.

소금은 암염광산에서 캐내어 판매하는 게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준처럼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든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일찍 준은 영지민 5백 명을 동원하여 바닷가로 나갔다.

그곳에서 직접 작업지시를 해서 해안 근처에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를 만들었다.

염전은 처음이라서 적게 만들었으며,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 순으로 단계적으로 배치했다.

저수지에 담은 바닷물을 증발지로 보내고, 그곳에서 농축된 바닷물을 다시 결정지로 보내어 소금을 석출하려는 생각이었다.

천연 에너지를 이용하여 소금을 석출하기 때문에 값이 싼 것이 큰 이점이었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 비추는 날씨를 가지고 있으며, 바람도 제법 많이 불었기에 천일염을 생산하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그러나 준의 생각과는 반대로 인부들은 준이 미친 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10일 만에 목표로 한 염전이 만들어졌다.

베일레 자작도 처음에는 준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처음으로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는 일에 자신이 나서서 방해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둔 것이었다.

그날 저녁식사 시간에 준은 이제 아버지가 된 베일레 자작에게 천일염전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너무나 획기적인 방법에 눈이 커졌지만 아직은 반신반의했다.

그렇게 천일염전 작업이 마무리되자 인부를 동원해서 천일염을 생산하도록 했다.

첫 천일염이 나올 때까지 준이 모든 작업을 직접 지시했다.

채염(採鹽) 일은 보통 100일 정도 걸리게 될 것이지만 이곳은 햇볕이 아주 강렬하고, 일단은 시험 삼아 생산하는 것이기에 이보다는 훨씬 걸리는 기간이 적었다.

준은 천일염을 불과 한 달 만에 채염할 수 있었다.

40kg 밀자루로 8자루가 생산되었다.

준은 천일염을 베일레 자작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서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염과 비교해서 질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암염 덩어리보다 결정이 더욱 작고 일정했기에 보기에도 훨씬 좋았다.

바렌 왕국에는 암염광산이 모두 11개였으며, 고위귀족인 백작급 이하의 귀족들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암염광산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낙후된 베일레 자작령에서 막대한 부를 거둘 수 있는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것이다.

“허허, 역시 내 아들은 대단해!”

“아버님, 천일염을 생산하는 일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대대적으로 천일염전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알았다. 필요한 것은 전부 지원해줄 테니 그렇게 하거라!”

“예, 그럼 내일부터 당장 착수하겠습니다.”

다음날 오전.

준은 영지민을 대거 차출했는데, 무려 8천 명이나 되었다.

이들에게는 돈을 지급하지는 않았지만 빵과 스프, 고기를 마련해 나누어주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불만이 있다고 해도 귀족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준은 직접 이들에게 천일염전의 작업을 지시했다.

일부는 천일염전 창고를 신축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인지 불과 10일 만에 거대한 천일염전을 만들 수 있었다.

천일염전 창고의 규모는 영지민들의 집과 비교하면 10배 정도로 넓었으며, 지붕의 높이도 3배 정도였다.

그런 천일염전 창고가 모두 20동이나 신축되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본격적인 첫 천일염이 생산되었다.

그날은 베일레 자작과 9명의 기사들, 마법사 리버스, 월터 행정관까지 전부 나와서 구경했다.

40kg의 천일염 자루가 차곡차곡 창고에 쌓여갔다.

그것이 전부 돈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즐거웠다.

40kg 밀 한 자루는 3실버였지만, 같은 양의 암염은 무려 1천 배인 30골드였다.

보통 4인 가정에서 소비하는 밀은 2달에 40kg 정도였는데, 천일염을 팔고 밀로 바꾼다면 1천 가구가 2달을 먹고 살수 있다는 말과 똑같았다.

그런 상황이니 얼마나 천일염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3일 후 베일레 자작령에 크레이튼 상단이 밀과 생필품을 싣고 들어왔다.

짐마차가 무려 50대였다.

크레이튼 상단주는 베일레 자작의 호출에 영주성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자신이 들여온 밀 1천 2백 자루와 각종 생필품을 풀어놓고는 달랑 천일염 3자루를 짐마차에 싣고 영지를 빠르게 떠나갔다. 그래도 크레이튼 상단이 이익이었다.

그들도 천일염이 암염과 비교해도 전혀 질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입자가 더 고와서 사용하기 편리했으며, 암염보다 더 좋은 가격에 매입해 돌아간 것이었다.

크레이튼 상단주는 직접 천일염전 창고를 구경하고, 그곳에 저장되어 있는 천일염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안 그래도 크레이튼 상단은 최근 사업이 되지 않아서 고민이었는데, 확실한 상품을 발견하고는 기회라 여겼다.

10일 만에 크레이튼 상단이 다시 베일레 자작령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밀을 가득 실은 짐마차가 6백 대나 되었다.

크레이튼 상단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동원해서 이렇게 밀을 가지고 영지로 들어온 것이다.

이전의 상행과 비교하면 밀의 규모가 무려 15배나 늘어난 교역량이었다.

그래봤자 천일염 45자루의 값어치밖에 안 되었지만 베일레 자작이 5자루나 더 주었기에 모두 50자루였다.

그러나 크레이튼 상단주는 일단 천일염을 가지고 가서 팔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천일염을 매입했다.

2촌 7백 골드를 주고 1백 자루의 천일염을 더 구입하여, 모두 150자루였다.

크레이튼 상단은 신이 나서 돌아갔다.

이들은 이번의 상행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준은 양부인 베일레 자작과 의논해서 영지의 길을 정비하고 새로운 길도 만들었다.

여기에 동원된 영지민들에게는 하루에 밀 20kg을 지급했기에 서로 일하려고 난리였다.

어쨌든 크레이튼 상단이 가지고 간 천일염이 판매되자 소문을 듣고는 각 상단에서 엄청난 양의 밀을 싣고 베일레 자작령으로 들어와 천일염을 구입해 돌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일레 자작령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천일염의 가격을 20골드로 낮추고 판매하기 시작했고, 천일염전도 추가로 더 만들었다.

준은 천일염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는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생산된 것이 바로 소금에 약간 절여서 통으로 말린 물고기였다.

해풍으로 말린 것이라 구워 먹으면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게 맛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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