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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106화 (10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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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프리맨

츠츠츠.

드디어 천왕대심공의 대주천이 시작되었다.

준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되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제법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결국 대주천에 성공했다.

소주천을 20회 한 것보다 더 막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대주천 한 번으로 몸속에 있는 석화마법의 기운이 많이 빠져나갔다.

그렇기에 돌처럼 굳어 있던 장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후후, 역시 천왕대심공은 대단해.’

대주천도 시작하기가 힘들 뿐 그 다음은 조금 더 운용하기 쉬웠다.

대주천을 하면 할수록 점점 시간이 단축되었다. 게다가 몸속에 있던 석화마법의 기운도 대부분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아직 몸의 바깥 부분은 그대로였다.

츠츠츠츠.

대주천이 10회가 넘어가면서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심장부근의 마나고리가 서서히 움직였다.

마치 녹슨 수레바퀴가 다시 돌아가는 듯 힘겹게 움직였다.

9개의 마나고리 중 한 개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하나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9개가 전부 휘돌고 있었다.

우우우웅.

외부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준은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마나고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의지로 석화마법의 기운을 완벽하게 몸 밖으로 배출할 수 있었다.

준이 석화마법에 걸린 지 52일 만의 쾌거였다.

9개의 마나고리가 휘돌기 시작하면서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던 막대한 마나를 끌어당겼기에 정원의 식물들이 마나의 축복을 받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꽃들이 만개하고, 각종 식물들도 생기가 넘쳤다.

최근에 베일레 자작은 정원으로 나와 있을 때면 왠지 아주 행복해졌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기분이 좋고 행복했다.

이는 비단 베일레 자작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영주성에 머물고 있던 하인과 하녀들, 기사들과 영지병들도 검술훈련을 할 때면 컨디션이 좋아져 훈련도 잘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준의 몸 밖은 아직 석화마법의 영향으로 돌이지만 몸속은 아니었다.

그래서 의지로 석화마법을 파훼하려고 했으나, 그동안 손가락에 끼고 있던 두 개의 반지의 기운이 움직임을 보이자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눈과 얼음의 기운을 가진 빌헤임 수정 반지와 바람의 기운을 가진 벤뵤르그 사파이어 반지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9개의 마나고리가 유혹하는 것일까?

반지의 기운이 천천히 움직여 심장부근까지 접근하자 갑자기 9개의 마나고리가 엄청난 흡입력으로 그 기운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두개의 반지에서 막대한 기운이 뻗어 나와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9개의 마나고리는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잡아 당겼다.

그렇게 서로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형태가 되었다.

이때, 갑자기 심장 부근에 잠자고 있던 혼돈의 기운이 깨어났다.

이 혼돈의 기운은 준이 차원을 넘어오면서 일부 흡입한 기운으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막대한 신의 능력에 버금가는 기운이 갑자기 먹잇감을 발견했기에 꼭 붙들고 흡수를 시작했다.

츠츠츠츠.

자아를 가진 것처럼 빌헤임과 벤뵤르그의 기운들은 각각 당황하다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기운을 끊어버렸다.

그대로 있었다면 두 기운이 전부 혼돈의 기운에 흡수되어버렸을 것이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벨헤임과 벤뵤르그는 각각 가지고 있던 힘의 1/3을 혼돈의 기운에게 강제로 빼앗겼다.

막대한 힘을 흡수한 혼돈의 기운은 절반 정도 더 커졌고, 흡수한 힘의 일부를 마나고리가 받아 흡수했다.

마치 어미 새가 어린새끼에게 먹이를 나누어준 듯한 형태였다.

우우우웅.

9개의 마나고리에서 황금색의 빛이 엄청나게 뿜어지면서 힘차게 휘돌기 시작했다.

엄청난 황금빛의 기운은 준의 전신을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입었던 상처들을 일시에 치료했다.

베일레 자작은 보통 오전에 정원으로 나와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은 밀린 업무를 모두 처리했기에 저녁식사를 하려면 아직 2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비록 오후이지만 이렇게 정원으로 나와 인물 조각상 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물 조각상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놀라면서 이를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은은하게 뿜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눈부실 정도로 황금빛이 찬란하게 뿜어졌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구나.”

날은 이미 저물었지만 아직도 황금빛은 계속 인물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왔다.

베일레 자작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식사도 벨리 집사에게 일러 정원에 차리도록 했다.

그는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눈은 인물 조각상에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현상이었다.

쩌쩌쩍.

갑자기 인물 조각상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놀란 베일레 자작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금이 생겼어.”

미세하게 균열이 많이 간 인물 조각상은 이제는 다른 변화를 보였다.

후두둑.

인물 조각상의 표면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더니 갑자기 한꺼번에 와르르 부서진 것이다.

완전히 박살나버리는 줄 알았는데 인물 조각상은 잘생긴 준의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황금빛이 일순간 사라지자 준도 정신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풀썩.

“저저…저럴 수가!”

황당한 상황에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던 베일레 자작은 뒤를 돌아보았다.

영지병들과 기사들, 하인과 하녀들까지 전부 지켜보고 서 있었다.

베일레 자작의 방 중 한곳에 옮겨진 준은 침대에 눕혀졌다.

영주성의 한곳에 머물고 있는 4서클 마스터의 마법사 리버스는 베일레 자작의 호출에 연구를 중단하고 즉시 달려왔다.

그제야 마법사 리버스는 베일레 자작의 의문점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영주님, 이자는 석화마법에 당했던 것 같습니다.”

“석화마법?”

“그렇습니다. 이 마법에 당하면 돌이 되어버리는 아주 무서운 마법입니다. 5서클 마법 중에 석화마법이 있습니다.”

“그럼 이자가 그 마법에 당한 것이란 말인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르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이자를 살펴보니 6서클급의 마법사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대마법사급인 8서클이거나 그 이상의 경지를 가진 자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으음… 이자가 대마법사가 펼칠 만큼 중요한 왕족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음… 저도 그게 의문이지만, 제 소견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자는 언제 깨어나는가?”

“이미 석화마법에 걸린 자가 주위의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이 마법을 해제하는 것은 저도 처음 봅니다.”

“그건 자네도 잘 모르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마 이자도 마법에 상당한 경지를 이룬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이자의 심장에 있는 마나고리를 살펴보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음… 자네가 4서클 마스터인데, 이렇게 젊은 자가 어떻게 자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단 말인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그건 이자가 깨어나면 알 수 있겠군.”

“지금으로썬 그 방법이 유일합니다.”

“으음… 알겠네. 그만 돌아가게.”

“저도 이곳에서 이자를 지켜보면 안 되겠습니까?”

“자네가? 그렇게 하게.”

“고맙습니다, 영주님.”

준은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고 있었다.

우주를 날고 있었는데, 한없이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이대로 조금 더 있다가는 육체와 영혼을 잇는 끈이 영영 끊어질 것 같았다. 육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끌어당겼다.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육체로 돌아왔다.

꿈을 꾼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9일 동안이나 잠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몇 번 깜빡거리자 사물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 여기가 어디지?”

하녀 메리는 걸레질을 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커진 눈으로 외쳤다.

“깨…깨어났어요! 깨어났어!”

“…….”

하녀 메리의 외침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법사 리버스는 잠시 소변을 보러 나갔다가 하녀 메리의 외침에 허겁지겁 달려왔다.

벨리 집사는 하녀 메리의 말을 듣고는 즉시 영주집무실로 향하여 그곳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던 베일레 자작에게 보고했다.

잠시 후, 모두 방으로 모였다.

준은 여기가 어디인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베일레 자작은 서서 준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자네의 정체가 뭔가?”

“정체라니요?”

“인간인가?”

“당연히 인간입니다.”

“음… 그럼 인물 조각상이 된 건 뭔가?”

“그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

“제가 어떻게 여기 있는 겁니까?”

“으음…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자네는 얼마 전까지 조각상이었네.”

“제가 말입니까?”

“그렇다네, 마법사 리버스의 말로는 누군가에게 석화마법을 당한 것 같다더군.”

“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약간의 단편적인 기억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당분간 이곳에 머무는 게 어떤가?”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그렇게 하게. 나의 성에는 빈 방이 많거든.”

“고맙습니다.”

“자네의 이름은 뭔가?”

“이…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음… 그럼 내가 당분간 사용할 이름을 지어 주는 건 어떤가?”

“제 이름을요?”

“그렇다네.”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프리맨(Freeman)이 어떤가?”

“프리맨? 좋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프리맨은 자유인이라는 뜻이지.”

“프리맨이 마음에 듭니다. 그럼 앞으로 저를 프리맨이라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자네는 인물 조각상에서 인간으로 변한 후 9일 동안 잠에 빠져 있었으니 배가 고플 거야. 일단 스프를 먹고 기력을 회복하면 빵과 고기를 먹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벨리 집사는 프리맨에게 스프를 가져다주게.”

“알겠습니다, 영주님.”

벨리 집사의 눈짓을 받은 하녀들이 서둘러서 주방으로 향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하녀가 김이 피어오르는 따끈한 크림 스프를 가져왔다.

구수한 크림 스프 냄새를 맡았더니 갑자기 배가 고파왔기에 준은 숟가락으로 천천히 스프를 떠먹었다. 예상했던 대로 맛있었다.

잘생긴 준의 얼굴을 훔쳐보던 하녀들도 얼굴이 밝아졌다.

하녀들은 준이 마케리안 대륙인과는 약간은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뮤란 대륙인이 준과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준의 얼굴을 보고는 확신했다. 또한 약간 다르게 생겼지만 잘생겼다는 건 인정했다.

키가 190cm에 이르고 호리호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사들처럼 근육질이 아닌 귀족가의 자제처럼 보였다.

비밀을 간직한 듯한 신비로움과 어딘지 모르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은 하녀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준은 당분간 영주인 베일레 자작의 은혜로 영주성에 머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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