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105화 (10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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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프리맨

“으으, 마력을 너무 많이 소비해 상처를 치료할 마력이 부족하구나. 젠장!”

하체는 이미 석화가 진행되어버렸기에 가부좌를 틀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 있는 상태에서 천왕대심공을 운용해 보았더니 의도한 대로 잘 되지 않았다.

“크으, 이대로 있다간 조각상이 되어버리겠군. 일단은 마력을 회복할 때까지 천왕대심공을 운용하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어.”

츠츠츠츠.

하단전과 심장부근에서 마나고리가 휘돌고 있었다. 하지만 상체까지 전부 석화가 진행되어 결국 돌조각상이 되어버렸다.

베일레 자작은 올해로 64살로, 많이 늙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20대에는 남작가의 여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생활했으나, 몸이 허약했던 부인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죽어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국왕파로, 제법 잘생긴 외모에 능력도 인정받고 있었기에 정략적으로 귀족가의 여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귀족파의 모함에 의해 중징계를 받게 되어 왕국의 중앙 정치 무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자 그를 바라보는 귀족가의 여식은 더 이상 없었다.

그도 사랑하지도 않는 귀족가의 여식을 선택하기보다는 그냥 혼자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낙후된 영지 중 한곳인 이곳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조용히 살아오고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검술에 심취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을 연구ㆍ제작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었다.

그는 지난밤 기이한 꿈을 꾸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예사롭지 않았기에 오늘은 직접 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다가닥 다가닥.

그리 급할 게 없는 일이었기에 3명의 기사와 50명의 영지병을 이끌고 이렇게 해안가로 나와 돌아보고 있었다.

‘으음… 꿈에서 본 것이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난밤 꿈 이야기를 한다면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베일레 자작에게 옆에서 같이 말을 타고 이동 중이던 기사 브레이그가 말했다.

“영주님, 저쪽에 뭔가가 있습니다.”

“으응?”

기사 브레이그의 말에 베일레 자작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말고삐를 움직여 그쪽으로 향했다.

누가 조각했는지 생동감이 넘치는 인물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바닷가에서 불과 3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모래사장인데, 누가 이런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기이했다.

‘으음… 이거였구나.’

“영주님, 주위를 살펴볼까요?”

“아니야! 브레이그, 저것을 일단 성에 가져다 놓아라.”

“불길하게 느껴지는데, 그냥 부숴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야, 누가 조각했는지 대단한 솜씨야. 가져다 놓는 게 좋겠어.”

“음… 알겠습니다, 영주님. 이 조각상을 수레에 실어라, 어서!”

“예, 알겠습니다!”

기사 브레이그의 말에 영지병들이 인물 조각상 곁으로 몰려들었다.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

영주와 기사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영지병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인물 조각상을 들어 수레에 실었다.

쿠르르르.

수레가 먼저 앞에서 영주성을 향해 움직이자, 베일레 자작은 인물 조각상을 쳐다보면서 뒤따랐다.

한편, 글리아나는 오늘도 게르에서 나와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준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라도 난 걸까?’

헌트와 하그리도 걱정되었지만 준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글리아나 님, 주인님의 실력을 잘 알지 않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글리아나 님.”

헌트와 하그리가 그렇게 말하자 글리아나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맞아,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이제 3일이 지났을 뿐인걸?’

“고마워요, 헌트, 하그리.”

“아…아닙니다, 글리아나 님.”

“글리아나 님, 주인님께서 오실 동안 검술수련이나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알았어요. 오늘은 내가 지도를 해줄게요.”

“저…정말이십니까?”

“그래요. 스네이크 검술이 어느 정도인지 볼까요?”

“최선을 다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안 그래, 하그리?”

“예, 그럼요.”

헌트와 하그리는 롱소드를 꺼내어 스네이크 검술을 펼쳤다.

글리아나가 옆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틀린 곳을 지적해 바로 잡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식사시간이 되면 하그리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요리를 차려 같이 먹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온통 스네이크 검술수련에 임했다.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검술수련에 임했더니 하루가 다르게 검술실력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글리아나도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검술수련을 시작했다.

이렇게 이들은 준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면서 검술수련을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준은 돌아오지 않았다.

글리아나의 머릿속에 문득 지난날 준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15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먼저 북쪽을 향해 떠나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돌아와 없으면 뒤따라간다는 그런 말이었다.

그때는 무심코 넘겼는데, 오늘에서야 그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 달이나 지나다 보니 보유하고 있던 식량도 다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만 했다.

“헌트, 하그리.”

“예, 글리아나 님.”

“말씀하십시오, 글리아나 님.”

“우리,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나요.”

“주인님께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말입니까?”

“알아요, 헌트.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서만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우리는 내일 아침에 북쪽을 향해 떠나기로 해요. 나중에 그가 이곳에 돌아오면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거예요.”

“음… 알겠습니다, 글리아나 님.”

날이 밝아오자 아침식사를 마친 그들은 떠날 준비를 했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게르가 접히자 글리아나가 게르를 수거한 후 말에 올랐다.

준이 펼쳐놓았던 결계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파훼하지 못했기에 그대로 두고, 이곳을 떠난다는 편지를 써서 적당한 돌을 올려 날아가지 못하도록 조치해두었다.

그렇게 그들은 야영지를 떠났다.

쿠퍼는 신의 선물이 가지고 있는 권능으로 중상을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깊은 상처였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일단 시간이 흘러 상처가 완치되면 그때 몸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수명이 다시 수천 년까지 늘어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경험을 되새겨 보면 약 3천 5백 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크으… 두고보자, 취익… 상처만 나으면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취익.”

원한이 서린 눈빛으로 동굴의 벽을 노려보던 쿠퍼는 곧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신의 선물을 상처 치료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마르시아도 자신의 레어로 되돌아와 즉시 상처 치료에 들어갔다.

그러나 워낙 깊은 상처라서 그런지 쉽게 잘 낫지 않았다.

“끄으으… 내가 이런 고통을 느끼게 될 줄이야… 젠장, 상처가 낫기만 하면 반드시 놈을 찾아내어 죽여 버리겠다. 두고 봐. 끄으으…….”

이렇게 준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았지만 정작 준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조각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일레 자작은 오늘도 정원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인물 조각상이 된 준이 작은 연못 앞에 놓여 있었다.

이상하게 조각상에 정을 느낀 베일레 자작은 독백하듯이 자신의 지난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의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약 2시간 정도를 이야기한 후 직접 깨끗한 천으로 조각상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런 뒤 밀린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 베일레 자작을 지켜보던 준은 오늘도 어제처럼 천왕대심공을 운용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게 하단전으로 기를 흡수할 수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에는 훨씬 많은 양의 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조만간 내력을 일주천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조각상이 되자 예전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절대마법인 파워 워드 킬을 두 번이나 격중당했고, 다른 공격도 받았기에 몸의 부상은 심각했다. 거기에다가 쿠퍼에게서 강력한 전기의 광선에 옆구리를 맞았고, 마르시아에게서는 석화 광선에 맞아 이렇게 조각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워낙 수련이 깊었기에 죽지는 않았다.

다만 석화가 진행되면서 머리에 충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했기에 단편적인 기억들만 조금씩 떠올랐다.

천왕대심공도 본능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것이 아직까지 준이 살아 있는 이유였다.

그만큼 천왕대심공은 대단했다.

준은 석화 마법에 당한 이후에 전혀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자신에 관해서 관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석화마법으로 인해서 뇌에 충격을 받아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렸지만 순간순간 단편적인 기억들은 떠올랐다.

기억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로, 아픈 것과 각종 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마케리안 대륙어를 배운 것은 기억하고 있었기에 베일레 자작의 독백은 알아들었다.

워낙 미약했던 호흡이라서 그런지 하단전에 있는 내공과 심장부근에 있는 마나고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었다.

이것을 움직이기 위해 지금도 계속적으로 천왕대심공을 운용 중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이렇게 하기 위해 준의 몸은 스스로 무의식이 지배하여 움직였다.

준의 무의식은 이렇게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만 더 지난다면 움직이지 못하던 내공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3일이 더 지나고 이른 아침에 드디어 준은 하단전에 있는 내공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되었다, 되었어! 이제는 내공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일단은 소주천부터 시작하자!’

츠츠츠.

소주천 상의 순행대로 기를 움직여보았는데, 생각대로 잘 움직였다.

각 혈과 팔대맥의 경로대로 기는 막힘없이 잘도 움직여주었기에 정신을 집중하여 계속 소주천을 이루었다.

소주천으로 일단 기가 다시 하단전으로 모이면 잔잔하게 있던 기가 끓어올랐다.

온몸이 돌이 되어 장기까지 굳어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 소주천을 성공하자 석화마법으로 인해 굳었던 몸에 균열이 일어났다.

아직은 운기조식을 한 것처럼 내상의 치유나 피로의 회복을 도모할 수는 없었지만 미세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두를 것 없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침착하게 계속 소주천을 하다가 대주천을 시도해보는 거야.’

준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관조했기에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소주천의 성공으로 희망이 생기자 없던 힘도 생겨났다.

소주천을 처음에는 약 3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한 번 성공하자 두 번째는 20분 정도 시간이 단축되었다.

그러던 것이 세 번째는 또다시 줄어들어 2시간 15분 정도가 걸렸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소주천을 거치면서 점점 빠르게 이루게 되었다.

무인들은 보통 소주천을 한 번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준은 현재 석화마법에 걸려 있기에 이것도 빠르다 할 수 있었다.

츠츠츠.

소주천을 통해서 몸 밖으로 미세하지만 석화 마법의 기운이 빠져나왔다.

그로 인해 주변에 있던 식물들이 그 영향을 조금씩 받아서 시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미세했기에 식물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석화 마법의 기운 중 대부분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소주천을 한 지 50회가 되자 드디어 미루고 있었던 대주천을 시작했다.

소주천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었지만, 대주천은 소주천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주천은 하단전에 있던 기를 운용해서 전신으로 순행시키며 새로운 에너지의 흐름을 일으키게 하는 일주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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