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84화 (8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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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프리맨

준과 그 일행은 ‘제르의 아침’이라는 곳에 들어와 5인실 하나를 잡았다. 203호실이었다.

방에서 식사를 해결한 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준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계속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혼내준 자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게…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어.”

“준, 또 어제 그자들을 생각하는 거야?”

“글리아나, 자꾸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럼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나자.”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겠어. 어차피 필요한 것은 이미 다 준비해두었으니 말이야.”

“야영하면서 먹게 빵을 많이 준비하는 건 어때?”

“빵?”

“응, 이곳에서 먹은 빵이 참 맛있더라.”

“그렇다면 특별주문을 해서라도 아공간 속에 넣어둘게.”

“이봐, 하그리.”

“예, 부르셨습니까?”

“자네는 나가서 주인에게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빵을 준비해달라고 해.”

“얼마나 준비해달라고 할까요?”

“최대한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 글리아나의 말대로 야영을 하면서 먹어야 할 테니 말이야.”

“그럼 200개 정도면 되겠습니까?”

“일단은 주인에게 500개 정도도 가능한지 물어보고, 되는 데까지 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당장 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하그리가 문을 열고 나가자 헌트가 뒤따라갔다.

준은 어제 빼앗은 물건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가죽 갑옷과 무기, 약간의 골드화까지 다양했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2명의 마법사에게서 빼앗은 것들 중에는 마법지팡이와 2벌의 로브가 있었다.

로니의 로브 속주머니에는 공간확장마법이 걸려 있었기에 각종 마법 재료와 포션 2병, 마법서 5권, 50골드가 들어 있었다.

또한 엘린의 로브에서도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션 1병과 마법서 1권, 500골드가 들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철상자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뭔가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철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역시나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같은 양의 황금보다 20배나 비싸며, 귀한 미스릴 1kg이 바(Bar) 형태로 들어 있었다.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았더니 무려 100개나 되었다.

“미스릴이 100kg이나 들어 있다니 엄청나군.”

이 정도의 미스릴을 구입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워낙 소량으로 생산되는 것이라 구하기 힘들었다. 마법사들이 아티팩트를 만들 때나 마법무구를 만들 때, 각종 마법실험에 소량으로 사용되는 물건이기에 수효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다.

이만큼을 모으려면 국왕이나 공작 정도의 영향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니 준이 놀랐던 것이다.

또한 철상자에는 물건 위치 파악(Locate object)마법이 걸려 있었다.

“뭔가 불안하더라니, 이것 때문이었어. 어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일 아침에 당장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준은 즉시 미스릴을 철상자에서 전부 꺼냈다. 그러고는 아공간을 열어 그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는 즉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나여,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매직 이미지(Magic image)!”

츠츠츠츠.

신기하게도 철상자 속에는 조금 전 꺼낸 미스릴 바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모두 마법으로 만든 허상이었다.

일단 한 번 만든 허상은 10일 동안 유지되는데, 그 안에 직접 손을 대보지 않는 한 허상과 실체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후후후, 됐어. 이것으로 한 번은 속일 수 있겠어.”

준은 평범한 가죽으로 된 자루에 로브 2벌과 그들의 소지품을 집어넣었다. 단, 골드화와 포션을 제외시켰다. 그리고 기병들의 가죽갑옷도 별도로 자루에 집어넣어 두었다. 돈과 무기류는 빼두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주인에게 다녀온 하그리는 빵을 500개 준비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후후,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니 내일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나야겠군.”

한편, 엘린과 로니, 기병 28명은 겨우 땅속에서 탈출하여 벨리카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보통은 말을 타고 이동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기에 발바닥은 물집이 생기고 부어올랐다. 태어나서 이렇게 심한 고통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은 오직 준에 대한 원한으로 아픔을 견뎌내며 벨리카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꼭 찾아서 죽여 버릴 거야!”

“엘린 님, 저도 그놈을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팔이나 다리 하나를 자르는 건 허용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거야.”

“그럼 저는 놈의 다리 하나를 자르겠습니다.”

“좋아, 그건 허락할게.”

엘린이 로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걸어가고 있을 때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로, 땅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제법 많은 무리인 것 같았다.

“소리가 상당히 큰 것으로 봐서는 20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럼 혹시 자작님께서 보낸 기병들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어. 그런데 놈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놓은 거지? 마력을 끌어올리려고만 하면 가슴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져.”

“저도 그렇습니다.”

엘린과 로니의 뒤에서 따라오는 기병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횃불을 들고 달리던 기병들은 엘린과 그 일행을 발견하고는 말고삐를 당겨 멈추었다.

“혹시… 엘린 님이 아니십니까?”

“나를 알고 있는 너는 누구지?”

“볼스크 단장님 밑에 있는 기사 제스 입니다.”

“아, 제스 경이로군. 반갑다.”

“그런데 말은 어쩌고 걸어오시는 겁니까?”

“그…그런 일이 있었다. 마법통신구를 가지고 있어?”

“예. 안 그래도 자작님께서 엘린 님을 많이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그러실 거야. 당장 마법통신구를 다오.”

“여기 있습니다.”

제스가 마법통신구를 건네자 엘린은 브라이언 자작에게 마법통신을 시도했다.

수정구 속에서 브라이언 자작의 상체가 보였다.

“엘린이냐?”

“아빠, 늦어서 죄송해요.”

“무슨 일이 생겼느냐?”

“예, 자세한 것은 성에 들어가서 말씀드릴 테니 당장 영지병들을 풀어 오늘 벨리카의 남문으로 들어온 자들을 조사해서 잡아놓으세요. 남자 3명에 여자가 1명인 무리예요.”

“오늘 들어온 자들 중 남자 3명에 여자 1명?”

“예, 그놈들이 물건과 말을 탈취해 가버렸어요. 벨리카에 들어갔으니 도망가지 못하도록 당장 영지병들을 풀어서 잡아야만 해요.”

“알았다. 당장 영지병들을 풀어 잡아보겠다. 그런데 넌 언제 벨리카에 올 수 있느냐?”

“그놈이 어떻게 한 것인지 마법이 봉인되어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일단 마중 나온 기병들과 돌아가야 되니 3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아요.”

“알았다. 최대한 빨리 오너라.”

“아빠, 벨리카에서 뵐게요.”

스스스.

마법통신구에서 브라이언 자작의 모습이 사라지자 엘린은 즉시 말에 올랐다.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 전속력으로 벨리카를 향해 달려 나갔다.

기사 제스는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말없이 따라가기만 했다.

마법통신을 끊은 브라이언 자작은 로도스 집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집사는 당장 가서 볼스크 단장을 오라고 하게.”

“예, 자작님. 당장 모셔오겠습니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낀 마스터는 옆에 앉아 있는 칼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칼리야, 이번에는 네가 나서야겠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것을 가져가거라.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을 찾아서 나에게 가져오너라.”

“예, 마스터.”

마스터라는 자는 품속에서 해골 모양의 은반지를 내밀었다.

반지를 받아든 칼리는 자신의 왼쪽 약지에 끼었다.

스스슷!

순간이동을 한 것인지 칼리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 중이던 준의 이목에 대기가 이지러지면서 무엇인가 이동해온 것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라!]

번쩍!

준이 감았던 눈을 뜨자 푸르스름한 안광이 뻗어 나왔다.

‘후후, 나를 찾아온 모양이군.’

침대에 누워 있던 글리아나가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준, 느꼈어? 강력한 암흑의 기운을 가진 자가 이 근처로 이동해왔어.”

“기분 나쁜 기운을 가진 자로, 제법 강력해 보이는군.”

“7서클인 내 마법실력으로도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닌 것 같아.”

“단기간에 암흑의 기운을 흡취한 자라서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내 상대는 아니야.”

“정말?”

“정말이고말고. 나를 찾아온 것 같으니까 내가 나가볼게.”

“도와줄까?”

“아니, 조용히 지켜보기만 해.”

준은 창을 열고는 그대로 허공으로 도약해 날아갔다.

이미 준의 기운을 느낀 칼리는 100m 정도 떨어진 집의 지붕위에 서 있었다.

처척.

30m 정도 거리를 두고 지붕 위에 내려선 준은 칼리를 바라보았다.

스르릉!

칼리는 바스타드소드를 꺼내 가슴 앞으로 들어 올리더니 칼날을 사선으로 잡고 자세를 잡았다.

‘후후, 얼마나 검술이 뛰어난지 볼까?’

날이 겨우 30cm 정도밖에 안 되는 대거를 꺼내든 준은 가볍게 한 번 휘둘렀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엄청난 기운이 칼리에게 밀려나갔다.

처음 보는 강력한 검술에 칼리의 눈이 커졌다.

파팍.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한 그는 공중제비를 하면서 준을 향해 날아왔다.

준은 칼리를 향해 또 한 번 가볍게 대거를 휘둘렀다.

칼리는 몸을 비틀어 강력한 검기를 피하면서 바스타드소드를 사선으로 내리쳤다.

가가각.

암흑의 기운을 담아서 휘두른 검술이었기에 아주 강력했다.

‘흐흐, 베었어.’

하지만 그것은 칼리의 착각일 뿐이었다.

준이 이미 몸을 순간적으로 날려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는 경신법을 펼친 뒤였다.

칼리가 베어버린 것은 준의 잔상이었다.

‘후후, 역시 이형환위(以形換位)의 경공술은 대단해.’

슈가각.

이번에는 가로로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지만 준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버렸다.

콰쾅!

엉뚱한 집이 날벼락을 맞고 지붕 일부가 와르르 무너졌다.

“이이…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준은 내력을 손바닥에 모은 뒤 내뻗었다.

슈아아앙!

묵직한 기운을 머금은 장력이 빠르게 칼리에게 날아왔다.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칼리는 몸을 비틀어 피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했기에 그 일부가 스쳐지나갔다.

“크으… 젠장!”

스친 자리의 피부가 검게 물들면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것만 보아도 준의 장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었다.

칼리는 뒤로 튕기듯 물러나면서 우측 손바닥을 오므려 암흑의 기운을 끌어 모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준을 향해 내밀었다.

츄츄츄츙!

검은 액체 덩어리가 준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준은 일정한 방위를 움직여 적의 공격을 피하는 보법(步法)의 일종인 능파미보(凌波迷步)로 가볍게 모두 피해버렸다.

준이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너무나 쉽게 모든 공격을 피해버리자 칼리는 입을 쩌억 벌렸다.

이제까지 칼리가 두려워한 자는 마스터가 유일했다. 그러던 차에 오늘 마스터와 동급인 준을 만나니 공포심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난 거지?’

“후후후, 제법 암흑의 기운을 끌어 모으면서 수련했겠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해.”

“이놈이!”

흥분한 칼리는 바스타드소드를 휘두르면서 준에게 접근해왔다.

준은 뒤로 몸을 활처럼 휘게 한 뒤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이동했다.

최상승의 경신법 중 하나인 궁신탄영(弓身彈影)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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