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81화 (8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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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헌트, 벨리카까지는 얼마나 남았나?”

“오늘밤은 이 근처에서 야영한다고 생각할 때, 내일 이 시간 정도면 벨리카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음… 그럼 그리 먼 곳은 아니군. 좋아. 야영하기 적당한 곳을 알고 있나?”

“이 주위는 풀밭과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덕 위가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군. 그럼 저 언덕 위에서 야영하는 걸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언덕 위로 올라서니 주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영하기엔 좋은 곳인데?”

“그리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자, 그럼 게르를 설치해볼까?”

노페르슈롱에서 내린 준은 허리에 차고 있는 마법주머니 속에서 게르를 꺼내어놓고는 중얼거렸다.

촤르르륵.

언제나 보는 것이지만 신기한 물건이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게르가 설치되었다.

준은 게르 주변에 결계를 설치하고 결계 안쪽에 알람마법이 새겨져 있는 아티팩트를 놓았다. 100m 이내로 접근하면 게르 안에 요란한 알람소리가 들리도록 한 것이다.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는 앞으로는 내가 만들어준 별모양의 브로치 아티팩트를 꼭 달고 다녀. 저번처럼 패트릭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하는 것에 당하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꼭 달고 다닐게.”

“명심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무얼 만들어먹나 생각하다가 치즈 퐁듀를 생각해내었다.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는 처음 보는 새로운 요리를 많이 알고 있는 준이 신기하기만 했다. 검술과 마법에 능한 준이 요리까지 잘 만들자 그게 너무 부러웠다.

준은 먼저 감자의 껍질을 벗긴 뒤 냄비에 넣고 푹 삶았다.

기사부터 그 이상의 계급인 귀족들은 감자를 먹지 않았다. 평민이나 그 이하의 계급에서 식량이 떨어질 때쯤 삶아서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천한 것들이 먹는 감자를 고귀한 귀족들이 먹을 수 없다는 뜻에서 그리하는 것이었다.

그런 감자를 준이 삶자 헌트와 하그리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황한 하그리가 준에게 말하였다.

“준 님, 감자를 삶아서 드시려구요?”

“그래, 문제 있어?”

“기사 분들이나 귀족들은 절대 감자를 드시지 않습니다만…….”

“이 맛있는 걸 먹지 않는다니 웃기는군. 감자는 영양이 많아서 몸에 좋아.”

준의 명쾌한 대답에 헌트와 하그리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하였다.

준은 먼저 치즈 덩어리를 곱게 갈아서 감자 전분을 섞었다.

그런 다음에 바닥이 두꺼운 냄비를 달군 뒤 와인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와인이 기포를 만들면서 끓기 시작하자 치즈와 감자 전분을 조금씩 넣어서 녹였다.

치즈가 거의 다 녹자 소금과 향긋한 향이 일품인 허브 식물을 조금 넣어 잘 저었다.

한입 크기로 썬 호밀빵과 찐 감자를 곁들여내고는, 나무꼬치를 내밀었다.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는 준이 내민 나무꼬치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먹는 것인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후후, 내가 먹는 걸 보고 따라하면 돼.”

먼저 호밀빵과 찐 감자를 끼우고 녹아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치즈 속에 푹 담갔다가 꺼내어 먹었다.

간단한 식사법에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는 준을 따라서 치즈를 듬뿍 찍어서 먹어 보고는 그 고소한 맛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이런 고소한 맛은 처음입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습니다.”

“준, 이것 너무 맛있어.”

“딱딱해진 빵을 이렇게 부드러운 치즈에 적셔 먹으면 부드럽고 고소한 게 아주 맛있지. 여기에 와인까지 곁들이면 더 일품이야.”

준은 얼마 전에 만들어 놓았던 유리병에 채운 와인과 유리잔 4개를 꺼내더니 와인을 부었다.

쪼르르.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붉은색 와인이 정말 보기 좋았다.

“식사할 때는 와인을 많이 마시는 건 좋지 않아. 적당하게 마시면서 음식을 먹으면 아주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아. 뭐든 적당한 게 최고 거든.”

“…….”

글리아나와 헌트, 하그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준의 말을 인정했다.

준비했던 퐁듀는 4사람이 먹기에는 충분했기에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땡땡땡땡!

갑자기 알람마법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 게르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준은 마법으로 투시력을 발휘해서 게르 밖을 살펴보았다.

비록 달빛이 비추는 밤이라고는 하지만 말을 타고 이동하기엔 조금 위험했는데, 30명이 말을 타고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2명은 백색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다.

두두두두.

30마리의 말들이 달리고 있었기에 말발굽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고요한 밤이라 더욱 크게 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잘 달리던 그들이 말의 속도를 늦추면서 게르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결계 밖에서는 보통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들 중에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은 완전히 멈추었다.

준이 설치한 게르와는 약 70m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는 자의 손짓에 가죽갑옷을 입은 기병이 보우를 겨누더니 화살을 쏘았다.

슈우웅.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온 화살은 결계에 부딪쳤다.

티잉!

화살이 튕겨져 바닥에 떨어지자 다시 2발의 화살이 날아와 결계에 격중되었다.

티팅!

이번에도 결계를 뚫지 못하고 튕겨졌다.

백색 로브를 입은 2명 중에서 한 명은 10대 후반의 아름다운 여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손에 든 마법지팡이를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불길이 이글거리는 구가 형성되어 날아갔다. 파이어 볼이었다.

쿠앙!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결계에 파이어 볼이 격중되었지만 얼마나 강력한 결계인지 파이어 볼로도 파괴하지 못하였다.

파이어 볼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으로도 안 되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좀 더 강력한 공격마법을 시전하기 위하여 다시 캐스팅했을 때였다.

준의 내공이 담긴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데 감히 소란스럽게 하는 것이냐?”

그런데 소리가 사방에 울리도록 함으로써 어디에서 말하는지 찾을 수 없도록 했다.

육합전성(六合傳聲)의 수법이었다.

가죽갑옷을 입은 자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어디에서 들려온 소리인지 파악하려고 했지만 마법지팡이를 든 자는 결계만 쳐다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결계 안에서 들려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내보내지 말고 모습을 보여라.”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굳이 나를 자극하는 건 무슨 심보냐?”

“다만 지나가는 중에 마법적인 기운이 느껴져서 확인해본 것뿐이오.”

“이제 확인이 되었으니 그냥 가거라.”

“흥,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군. 블레이즈(blades)!”

마법지팡이를 손에든 자가 마법을 캐스팅 한 후 결계를 향해 손짓을 하였다.

휘리리릭!

고속으로 회전하는 3m 정도 되는 칼날이 형성되어 결계로 날아왔다.

쿠아앙!

요란한 소리가 터졌지만 얼마나 강력한 결계인지 여전히 깨어지지 않았다.

“으음… 엄청난 결계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냥 지나간다면 용서해주겠다.”

“흥, 그게 더 의심스럽다. 어디 이번에도 견디는지 보자. 인시너레이트(incinerate)!”

슈아앙.

단일 목표에 대해 초고열의 불덩이를 쏘는 마법이 시전되어 날아왔다.

콰앙!

치이이이.

초고열의 불덩이가 결계에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 김이 피어올랐지만 결계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공격마법이 통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못난 놈들, 그토록 기회를 주었건만.”

스윽.

준이 결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준을 본 이들은 이국적인 외모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호리한 몸에 제법 큰 키를 가진 준이 강인해 보였기에 긴장했다.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마법지팡이를 든 중년인이었다.

그는 준을 노려보면서 말하였다.

“보기엔 용병 같은데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나?”

“그건 너희들이 알 필요 없다. 가던 길이나 가거라.”

준의 도발적인 말에 기병 한 명이 화살을 쏘았다.

예상하지 못한 기습공격이었기에 모두들 화살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준은 상체를 약간 흔들면서 가볍게 화살을 피해버렸다.

“대단하군.”

“화…화살을 피했어.”

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흥,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놈들이구나!”

준은 귀찮게 하는 파리를 쫓기라도 하듯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살랑살랑 흔들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화살을 날린 그 기병은 입에서 피를 내뿜으면서 뒤로 날아가 말에서 떨어졌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기절해버렸다.

“어엇, 세인트가 당했어.”

“저…저럴 수가!”

이들이 놀라고 있을 때 준의 공격이 이어졌다.

퍼퍼퍽!

준이 공격하는 것도 보지도 못하였는데 무형의 공격에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3명이 말에서 떨어졌다.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그들은 모두 기절해버렸다.

“어엇, 또 당했어! 저자를 공격해!”

“공격하라!”

슈슈슝.

3발의 화살이 준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준은 몸을 틀어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이동했다. 금잉어가 엄청난 파도를 넘는다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잉어의 몸놀림을 본 따 만든 경신법인 금리도천파(金鯉倒千波)를 시전하였다.

너무 빨라서 눈이 미처 따라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접근한 준은 권법을 펼쳤다.

퍼퍼퍼퍽!

“크악!”

“커억!”

준의 권법을 허용한 자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날아가 떨어졌다.

백색 로브를 입은 여성에게도 준이 접근하여 권법을 펼치자 즉각 방어마법을 외쳤다.

“흥, 그 따위 공격에 내가 당할 것 같으냐? 에어 실드(air shield)!”

스스스.

압축된 공기로 전방에 공기의 방패 형성하여 준의 권법공격을 막았다.

쿠아앙!

폭음이 터지면서 에어 실드가 깨어졌다.

또한 그 위력에 의해서 말과 함께 옆으로 넘어지고 있을 때 재빨리 말에서 도약해 안전하게 땅에 내려섰다.

신속한 판단으로 다행히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그 위력적인 권법공격에 놀라기엔 충분했다.

쉬쉬쉭!

바람 소리를 내면서 준이 기병들에게 접근했다.

말 등에 타고 있던 기병들은 즉시 허리에 메어놓았던 검을 꺼내들고는 휘둘렀다.

하지만 워낙 몸놀림이 빠른 준이었기에 공격이 빗나갔다.

오히려 그들이 준이 빠르게 내뻗은 권에 맞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마치 3살 먹은 어린아이가 어른과 싸우는 격이었기에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28명의 가죽갑옷을 입은 기병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말에서 떨어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2명으로, 백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었다.

나란히 옆에 선 그들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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