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80화 (8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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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스스슷.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한 준이 나타난 곳은 아벨이 알려준 우디 숲이었다.

숲속이고 밤이었지만 달빛이 땅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기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아벨, 이곳이 맞나?”

[그렇다. 하지만 신의 선물이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고,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 정도만 되어도 정확하다 할 수 있겠어.’

“그럼 정확한 장소가 어디인지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군. 플라이(fly)!”

공중으로 떠오른 준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더블 캐스팅을 했다.

“내 모습을 감추어주소서. 인비지빌리티(Invisibility)!”

츠츠츠.

공중에 떠 있던 준의 모습이 투명술 마법으로 인해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슈우우우.

준은 북쪽을 향해 은밀하게 날아갔다.

신의 선물이 생성되는 곳은 다른 곳과 조금 달랐다.

깊은 숲속에 지름 20m 정도는 흔한 잡초조차 없었으며, 붉은 모래로 되어 있었다. 가운데에는 에메랄드빛의 경옥 덩어리가 솟아 있었다. 덩어리가 아니라 경옥 원석 바위라 해도 될 정도였다. 지름이 1.6m에 높이는 2.8m였다.

경옥(硬玉, jadeite)은 지하 깊은 곳에서 높은 압력을 받아 변성된 변성암에서만 발견된다고 알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지표면에 솟아 있었다.

준이 붉은 모래로 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려고 하자 하벨의 경고성이 들려왔다.

[붉은 모래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응? 갑자기 왜 그래?”

[붉은 모래 속에는 무언가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벨, 그게 뭔지 몰라?”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 했다.]

“쩝…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라도 살펴봐야겠어. 그런데 저렇게 거대한 경옥 원석은 처음 봐.”

[나도 말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저것을 팔아도 엄청나겠어.”

[저기에서 앞으로 90일 후에는 신의 선물이 생성된다.]

둥둥둥둥.

갑자기 북소리가 나면서 무엇인가가 접근해왔다.

준은 경옥 원석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싶었지만 하늘 높이 떠올랐다.

창이나 검, 도끼, 철퇴 등 각종 무기를 든 오크 무리가 모여 들었다.

나무들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략 10,000마리 정도 되었다.

오크들은 붉은 모래 바깥을 빙 둘러 쌌다.

둥둥둥.

북을 치면서 오크가 걸어오자 물결이 갈라지듯이 오크 무리가 길을 만들었다.

북을 치는 오크의 뒤로는 의자 밑의 양쪽으로 봉을 끼운 것 것이 등장했는데 꼭 사인교와 비슷했으며, 의자만 매달린 가마였다.

가마의 의자에는 에메랄드색의 로브를 입은 오크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바이킹들처럼 양쪽으로 뿔이 돋아나 있는 황금투구를 쓰고 있었다. 비록 오크지만 그 위용만은 왕의 신위에 버금갔다.

하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위용이구나. 오크 왕인가?’

지저분하고 미개한 오크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각각 5마리씩의 우람한 근육을 가진 오크들이 어깨에 가마를 지고 이동해 왔다. 그리고 붉은 모래가 있는 곳의 앞까지 오자 멈추었다.

스윽.

가마가 낮추어지자 의자에서 로브를 입은 오크가 일어났다.

머리에는 황금투구를 쓰고, 손에는 에메랄드빛의 경옥으로 만든 스테프(staff)를 들고 있었다.

오크가 그런 모습을 하였다고 말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스윽.

로브를 입은 오크가 스테프를 든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자 오크들이 야생소 2마리를 들고 왔다.

아직 살아 있는 소였는데, 다리가 끈으로 묶여 있었기에 도망치지 못하였다.

오크들은 야생소 2마리를 붉은 모래 속으로 던졌다.

쿠웅.

붉은 모래가 약간 튀자 갑자기 붉은 모래 속에서 문어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무려 6개나 튀어 나오더니 야생소를 칭칭 감았다.

야생소는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다리가 묶여 있기에 도망치지 못하였다.

문어 다리 하나의 두께만 해도 1m 정도 되었고, 그 길이는 붉은 모래 밖으로 드러난 것만 해도 10m나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붉은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놈이 밖으로 나온다면 그 크기가 수십 미터는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무시한 놈이 모래 속에 살고 있었군.’

문어 다리에 휘감긴 야생소는 붉은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오크 우두머리가 붉은 모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직 2개의 문어 다리가 모래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지만 어찌된 것인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크 우두머리는 경옥 원석으로 다가가더니 움푹 들어간 곳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으로 경옥 원석을 쓰다듬고는 고개도 살짝 끄덕였다.

이 점으로 보아 경옥 원석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오크라 생각되었다.

“저 오크가 경옥 원석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신의 선물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저 오크를 보니 나를 창조한 실버드래곤 나르시스의 기억 속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뭐? 그럼 혹시 저 오크가 쿠퍼란 말인가?”

[정황으로 보면 맞는 것 같다.]

“어쩐지 보통의 오크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했어.”

[쿠퍼는 골드드래곤 그랜트와 3천 년을, 그의 딸인 하트렛과 6천 년을 살면서 방대한 지식과 마법을 익혔다. 비록 그 후 드래곤의 손에서 도망쳐 숨어 살면서 1천 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살 수 있으니 아직 살아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럼 이번에도 신의 선물을 마시면서 1만 년의 수명을 더 늘리려고 한다는 말이군.”

[그런 것 같다. 드래곤에게는 소용없는 것이지만 나머지 생명체에게는 수명을 늘려주는 신물이다. 이미 한 번 마셔본 경험이 있는 쿠퍼이니 당연히 신의 선물을 마시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군. 신의 선물을 마셔본 유일한 녀석이며, 누구보다도 신의 선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니 당연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알려주었으니 이제는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알아.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신의 선물이 생성되는 90일 후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너를 풀어주겠다.”

[으음…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고작 90일인데 그것을 못 기다리나?”

[좋다. 네 말을 믿어보겠다.]

쿠퍼는 경옥 원석을 쓰다듬으면서 살펴보고는 뒤돌아 가마로 돌아왔다. 그가 의자에 앉자 오크들이 가마를 어깨에 메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오크 무리도 쿠퍼의 뒤를 따라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비록 밤이지만 준은 경옥 원석에서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의 공중 100m에 좌표를 확인해보고 지도에 잘 기록해두었다.

‘후후, 90일 뒤에는 바로 이곳으로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해오면 되겠어.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오크 무리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둬야겠군.’

은밀하게 하늘을 날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오크부족의 마을이 있었다. 경옥 원석을 중심으로 빙 둘러 싼 형국이었다.

5만 마리가 넘는 오크 무리가 철저하게 신의 선물을 보호하려고 곳곳에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크 부족의 마을이 많다는 사실에 준은 약간 당황했다.

‘아벨의 말로는 90일 후라고 했지만 오크부족을 상대하려면 5일 정도 앞당겨서 와야겠어. 여의치 않으면 오크부족을 작살내버리는 거야.’

약 1시간 정도를 하늘을 날며 오크부족을 꼼꼼하게 정찰했다.

“음… 이 정도면 충분하게 파악이 되었어. 그만 돌아가야지. 텔레포트(Teleport)!”

스스스스.

준은 순간이동 마법으로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글리아나는 게르 밖으로 나와 준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 어디에 간 걸까?’

그때 대기가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스스스스.

번쩍이는 빛과 함께 준이 텔레포트 마법으로 순간이동을 해왔다.

처척!

가볍게 땅에 내려선 준의 곁으로 글리아나가 달려와 그대로 가슴에 안겼다.

달려오는 사람이 글리아나라는 것을 알아본 준은 피하지 않고 가슴으로 안았다.

“글리아나, 무슨 일이야?”

“아, 걱정했어. 어디 갔다 온 거야?”

“응, 주변을 둘러보고 왔어.”

“다음부터는 말하고 가.”

“알았어. 그렇게 할게.”

글리아나가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키스해달라는 신호였기에 준은 고개를 숙이면서 양손으로는 글리아나의 허리를 껴안았다.

둘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키스였기에 달콤하고 기분이 좋았다.

서로의 입술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글리아나가 준의 가슴에 안겼으며, 준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밤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지?”

“아냐,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따뜻하기만 한데?”

“그런가?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일단 결계 안으로 들어가서 와인과 계란말이를 만들어 먹자.”

“계란말이가 뭐야?”

“아참, 그게 뭔지 모르지? 기대해보라고. 분명 깜짝 놀랄 테니까.”

준과 글리아나는 결계 안으로 들어가서는 탁자와 의자를 꺼내어놓았다.

글리아나는 준이 계란말이라는 걸 만들어 준다고 하였기에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였지만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았다.

먼저 식칼로 각종 채소를 잘게 다듬어놓고는 이번에는 그릇에 계란을 5개나 깨어 잘 풀었다. 그것들을 한곳에 넣고 잘 저었다. 그런 후 소금 간을 조금 하고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가열했다.

치이이이.

맛있는 소리가 계란이 익기 시작하여 반숙이 되자 돌돌 말아서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라운드 형태로 예쁘게 모양을 만들고는 완성시킨 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접시에 담았다.

노란 계란말이 속에 각종 색깔을 가진 채소를 잘게 썰어 넣었기에 알록달록한 것이 먹음직스러웠다.

“글리아나, 계란말이가 완성되었으니 맛을 봐.”

“응, 맛있을 것 같아.”

글리아나는 계란말이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맛있게 먹었다.

“와! 고소해!”

“그렇지? 금방 만든 거라 더 맛있을 거야.”

쪼르르.

준은 유리잔에 와인을 부어 내밀었다.

“와인도 마시면서 먹어봐.”

“응, 고마워.”

게르 밖으로 나온 헌트와 하그리는 모른 체하면서 조용히 게르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준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계란말이가 완성되었을 때 그들이 게르 밖으로 나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후후, 제법 눈치가 있어서 마음에 들어.’

둘은 달빛을 벗 삼아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와인을 즐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다음날 오전.

준과 그 일행은 브라이언 자작령의 영주성이 있는 벨리카로 향하고 있었다.

북동쪽에는 패트릭의 외가인 루베이스 자작령이 있었는데, 브라이언 자작령과는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고, 사이가 비교적 좋은 이웃 영지였다.

“헌트, 북동쪽이 패트릭의 외가인 루베이스 자작령인가?”

“그렇습니다. 브라이언 자작령과는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웃 영지입니다.”

“그렇군.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마 지금은 루베이스 자작령을 넘어가고 있을 겁니다.”

“알아서 잘하겠지. 이제 우리는 벨리카로 가는 일만 생각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헌트의 대답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색 들녘이 아름다웠다.

농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비록 농노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마케리안 대륙 전체가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준 혼자서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길이 잘 닦여 있었기에 이동하기엔 편했다.

서쪽 지평선 끝에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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