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78화 (7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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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스스스.

준은 이미 보법으로 이동해버린 후라 패트릭은 헛 칼질만 하게 되었다.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파지지직!

“끄아아아!”

번개공격에 격중된 패트릭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부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그러나 준은 패트릭의 곁으로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말하였다.

“후후, 나에겐 그런 속임수가 안 통해. 일렉트릭 스파크(electric spark)!”

파지직!

“아아악! 크으으!”

이번에는 전기 불꽃이 패트릭의 몸에 격중되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학질이 걸린 사람처럼 몸을 마구 떨었다.

전격계 마법을 두 번이나 맞았기에 패트릭의 몸에서는 김이 약간 피어올랐다. 온몸은 불꽃에 그슬렸다. 또한 머리카락은 폭탄 맞은 꼴로 변해버렸다.

그때였다. 패트릭의 머릿속에서 검은 액체가 스르르 빠져 나오더니 도망쳤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준이 아니었다.

스윽.

염력을 이용해 검은 액체를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끈적거리는, 마치 젤리 덩어리 같은 것이 꿈틀거리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공중이라 도망칠 곳이 없었다.

“후후, 이것이 패트릭의 머릿속에 들어가 조종했던 거구나.”

츠츠츠.

준이 검은 액체에게 살기를 내뿜자 말과 몸짓 등을 통하지 않고 무엇인가 전달되어 왔다.

그것은 바로 정신감응인 텔레파시(telepathy)였다.

[나를 살려다오. 난 살고 싶다.]

“넌 누구냐?”

[나…나는 생명력이라는 뜻을 가진 아벨(Abel)이라 한다.]

“아벨이라고?”

[그렇다. 난 실버드래곤 나르시스가 만든 존재다.]

“그럼 드래곤이 만든 자아를 가진 생명체라는 말인가?”

[그렇다. 난 살고 싶다.]

“혹시 던전 속에서 살았더냐?”

[그렇다. 그 속에서 나는 혼자서 2천 년이 넘게 있었다.]

“그렇다면 실버드래곤 나르시스가 나타나지 않은 지 2천 년이 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쩐지 던전도 오래된 것 같았어. 드래곤이 레어에도 없더라니… 그 실버드래곤 나르시스는 죽은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오랫동안 유희를 떠날 수는 없어.’

준은 마법주머니 속에서 뚜껑이 있는 유리병을 꺼내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직 정체를 잘 모르는 존재이기에 뒤로 물러나서는 염력으로 아벨을 이동시켜 유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준이 꺼낸 유리병은 단순한 유리병이 아니라 결계가 설치되어 있는 유리병으로, 일단 뚜껑을 닫아 놓으면 절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망칠 수 없는 그런 아티팩트였다.

“일단 유리병 속에 넣었으니 널 죽이지는 않겠다.”

[알고 있다. 날 살려줘서 고맙다.]

츠으, 츠츠츠.

준은 투시력을 펼쳐서 패트릭의 몸속에 혹시라도 다른 것이 들어 있나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제법 내상을 입었지만 치료마법으로 간단하게 고칠 수 있었다.

“마나여, 나의 의지대로 치료하여주소서. 리스토레이션(restoration)!”

츠츠츠츠.

치료마법인 힐(heal)보다 강한 치료 마법이었다.

패트릭은 약간의 화상도 입었었지만 간단하게 치료가 되었다.

“으으, 머리야.”

패트릭은 머리가 아픈지 한손으로 머리를 누르면서 눈을 떴다.

불게 물든 눈이 아닌 정상적인 눈이었다.

푸른 하늘이 보이고, 아울러 준의 얼굴도 보였다.

“어? 준 님 아닙니까?”

“패트릭, 이제야 깨어났나?”

“제가 언제 정신을 잃은 거죠?”

“던전 속에서 이미 정신을 잃었는데, 이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군.”

“아, 머리가 심하게 아픈데요?”

“그런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나?”

“예, 던전 속에서 결계를 내려친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다음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계로 돌아가자.”

“어? 여긴 던전의 밖인 풀밭이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결계에 들어가서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결계 속으로 준과 패트릭이 들어오자 헌트와 하그리는 패트릭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아직 그 이유를 모르는 패트릭은 저들이 왜 저러나 했지만, 준은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한마디 하였다.

“헌트와 하그리,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만 잊어버리거라.”

“크흐… 준 님, 그래도 너무 억울합니다.”

“저희들이 복수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건 안 된다. 그는 귀족이니 너희들이 처벌할 수 없다.”

준의 단호한 말에 헌트와 하그리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통곡했다.

세브리노가 패트릭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패트릭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무고한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죄책감에 그도 괴로웠다. 그래서인지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단검으로 자신의 왼손가락 중에서 넷째 손가락인 약지(藥指)와 다섯째 손가락인 소지(小指), 일명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주루룩.

검붉은 피가 분수같이 흘러나오자 세브리노가 즉시 치료 마법을 펼쳤다.

“마나여, 상처를 치료해주소서. 힐(heal)!”

츠츠츠츠.

패트릭의 잘린 두 개의 손가락 끝이 아물면서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헌트와 하그리는 비록 몰락한 귀족이라고는 하나 귀족인 패트릭이 자신의 손가락을 두 개나 자르자 눈이 커졌다.

“내가 비록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동료 7명을 죽인 죄는 손가락 두 개로 대신하겠습니다.”

귀족인 패트릭이 그렇게까지 성의를 보이자 헌트와 하그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정했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게르가 거두어졌다.

준은 죽은 자들을 한곳에 모은 뒤 그 밑에 장작을 쌓았다.

화르르.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면서 7명의 종들은 화장되었다.

패트릭은 잘린 두 개의 손가락을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모두들 그렇게 타오르는 불길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도 어느덧 줄어들었다.

치이이이.

준은 마력을 이용해서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강제적으로 끌어 모아서는 불을 껐다.

연기가 거세게 피어올랐지만 곧 줄어들었다.

쩌쩌쩌쩍.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화장하고 남은 뼈들과 숯이 모두 그 속으로 묻혀버렸다.

얼마 후 땅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마그마 블래스터(Magma Blast)!”

콰아아아!

뜨거운 고열로 뭉쳐진, 사람 상반신 정도 크기의 마그마탄이 던전 속으로 날아가서 폭발해버렸다.

파이어 볼에 비해 파괴력이 몇 배나 강하며 관통성과 폭발성을 동시에 갖춘 뛰어난 공격마법이었다.

쿠콰쾅!

마그마탄이 폭발하면서 땅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렇게 던전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준이 손을 내밀자 패트릭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패트릭, 꼭 가문을 일으켜 세우길 빌겠어.”

“고맙습니다. 이 모든 것은 준 님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들었는데 세브리노, 패트릭을 잘 돌보아주세요.”

“예, 제 힘이 미치는 데까지 도와줄 겁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준 님.”

“어디로 갈 건가?”

“일단은 러셀 왕국에서 자리를 잡아보려고 합니다.”

“세브리노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꼭 성공하길 빌겠네. 그럼.”

준과 글리아나는 말에 올랐고, 헌트와 하그리는 짐마차의 마부석에 앉았다.

다가닥 다가닥.

준 일행은 다시 북쪽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서쪽을 향해 떠나갔다.

패트릭, 세브리노와 헤어진 준 일행은 북쪽을 향해서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준과 글리아나는 말을 타고, 종인 헌트와 하그리는 짐마차를 몰면서 뒤따라왔다.

벤겔미르를 찾아서 무작정 북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보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 중국인은 무술을 익힌 자였어.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는데 운이 좋았어.’

준이 생각에 빠져 있자 글리아나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준, 무슨 생각해?”

“으응? 아…아무것도 아냐.”

“아니긴. 뭔데? 말해봐.”

“무작정 북쪽으로만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막막해서 그래.”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알아. 그건 그렇고 헌트와 하그리.”

“예, 준 님.”

“부르셨습니까?”

“혹시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고 있나?”

하그리는 이곳이 초행길이라 헌트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이에 반해 헌트는 알고 있는지 대답했다.

“지금 여기는 브라이언 자작령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외곽지점이라 영지민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반나절만 더 가면 봉고(bongo)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봉고? 이름이 특이하네?”

“그렇습니다. 30여 가구에 150명이 조금 넘게 살고 있는 마을인데, 밀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헌트는 어떻게 이곳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이지?”

“제가 어릴 때에는 브라이언 자작령에서 살았었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용병생활을 한다고 러셀 왕국과 오이란트 왕국을 왕래하면서 떠돌아다니다 보니 두 왕국에 대해서는 좀 압니다.”

“그렇군. 그럼 브라이언 자작령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는 없나?”

“브라이언 자작령 중 영주성이 있는 벨리카(Velika)가 가장 규모가 큰 곳이며, 봉고 마을보다는 약간 더 큰 마을이 20여개 있습니다.”

“그럼 영지민들이 많지 않겠네?”

“그건 아닙니다. 200~500명 정도가 거주하는 마을이 20여 개 정도 되지만 영주성이 있는 벨리카 성벽 안에는 2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벽의 바깥에서 살고 있는 영지민들이 5만 명 정도 되니 대부분의 영지민들이 벨리카 안이나 밖에서 살고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군. 헌트 때문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어.”

“아…아닙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조금 일찍 야영을 하도록 하지. 생각할 것도 있으니 말이야.”

“봉고 마을에서 묵고 가지 않으시고요?”

“봉고 마을보다는 이곳에서 야영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급할 것 없으니 오늘은 이 근처에서 하고 내일 떠나는 걸로 하지.”

“예.”

일행은 길에서 약간 벗어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게르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 뒤 자유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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