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76화 (7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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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준은 손가락에 내공을 실어서 튕겼다.

츄웅!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제법 위력적인 지공이었다.

티잉!

철판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지공이 튕겨져 버리면서 석회암 벽에 맞아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으음… 역시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계였군.”

“준 님, 앞에 뭐가 있는 겁니까?”

패트릭의 말에 준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서 끄덕였다.

“강력한 결계가 설치된 것 같아. 돌파하기가 쉽지 않겠어.”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요?”

“그걸 거야. 잘 봐.”

준이 염력을 일으켜 바닥에 쌓여 있는 먼지를 일으키자 먼지가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더 이상 퍼지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결계막이 있군요.”

글리아나도 결계막을 쳐다보다가 말하였다.

“준, 보통의 결계막이 아닌 것 같아.”

“그래. 일단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 여기에서 좀 쉬었다가 가는 게 좋겠어.”

“또 쉰다고요?”

“이봐, 패트릭. 결계막을 뚫는다고 해도 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그럴 바에는 여기에서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하고 체력을 회복한 뒤에 이동하는 게 좋아.”

“그…그건 준 님의 말이 맞구나, 패트릭.”

“예, 스승님. 그럼 여기에서 쉬었다가 가죠.”

패트릭은 조금이라도 던전의 보물을 빨리 보고 싶었지만 준은 여전히 신중하기만 했다. 이에 마음이 더욱 급해졌지만 어쩔 수 없이 쉬었다 가기로 했다.

준이 과일을 꺼내어 내밀자 글리아나가 두 개의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패트리과 세브리노도 준이 내민 과일을 받아들고는 편안하게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먹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쉰 뒤 준이 결계막을 살펴보았다.

결계의 안쪽 벽면에 결계를 작동시키는 수정구가 박혀 있었다. 수정구의 표면에는 기이한 도형과 룬문자가 새겨진 마법진도 보였다.

‘음… 결계를 해체하는 게 쉽지는 않겠어.’

패트릭이 준의 곁으로 다가와 말하였다.

“준 님, 결계를 해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쉽지 않겠어. 결계 안쪽의 벽면에 수정구가 박혀 있는데 그걸 해제해야만 결계를 통과할 수 있어.”

“그렇다면 물리력으로 파괴해야겠습니다. 에잇!”

갑자기 패트릭이 롱소드를 꺼내들고 결계를 향해 내리쳤다.

놀란 준이 외쳤다.

“안 돼, 멈춰!”

준의 경고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롱소드는 결계를 내친 뒤였다.

파지지직.

“아아악!”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롱소드를 타고 전격계 마력이 흘러와서는 패트릭의 전신으로 번졌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다행이 롱소드를 놓았지만 이미 몸속으로 퍼진 마력에 의해서 부르르 떨다가 기절해버렸다.

땡그랑.

롱소드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세브리노가 패트릭의 곁으로 재빨리 다가와 살펴보았다.

다행이 가벼운 경상을 입고 기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우…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니고, 잠시 기절한 겁니다.”

“세브리노, 내가 그만큼 패트릭에게 주의를 주었건만 왜 이렇게 조급증을 보이는지 모르겠군요.”

“죄…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세브리노의 사과를 받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던전은 아주 위험한 곳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죽는 수가 있습니다.”

“깨어나면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만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이번까지만 세브리노의 얼굴을 보아서 참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중해야 하고, 조심에 조심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번번이 무모하게 나서서 이런 사고를 치다니…….”

준은 아공간 속에서 아이언 골렘을 꺼내었다.

“아이언 골렘아, 결계 속으로 들어가서 마법진이 새겨진 수정구를 벽에서 뜯어내어라. 가라.”

아이언 골렘은 두 눈을 번쩍거리면서 준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뒤돌아 결계 쪽으로 걸어갔다. 결계의 막에 아이언 골렘이 다가갔지만 전혀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아이언 골렘도 던전을 지키는 수호자였기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것이다.

골렘은 벽면에 박혀있는 수정구를 뜯어내었다.

스스스스.

투명한 결계의 막이 소멸되어버렸다.

준이 아이언 골렘에게 다가가자 골렘이 수정구를 내밀었다.

수정구를 받아든 준은 자세하게 살펴보고는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아이언 골렘, 수고했다. 그만 들어가 있거라.”

쩌어억.

준의 아공간이 공중에 생성되어 입구가 열리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입구가 닫히면서 아공간이 사라졌다.

결계가 사라진 이상 석회암 통로는 더 이상의 함정이나 공격은 없었다.

통로 끝에 다다르자 문이 없는 석실이 있었다.

이들이 석실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에는 라이트 마법이 걸린 수정구가 환하게 밝혀졌다.

약 200평 정도 되는 넓은 석실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돌을 깎아서 만든 책장이 있었으며, 약 800여 권은 될 것 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바닥에는 철궤가 12개나 놓여 있었는데, 그중 한 개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 그 속에는 골드화가 넘칠 듯 담겨 있었다.

세브리노는 기절한 패트릭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철궤를 열어보았다.

철궤 하나에 들어 있는 골드화만 해도 수만 골드는 될 것이니 전부 합한다면 수십만 골드는 될 것으로 보였다.

한쪽에는 각종 마법재료가 쌓여 있었는데, 상급의 마나석도 10여 개 정도 보였다.

누구의 던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보물들이었다.

800여 권의 책들 중에서 마법서는 200여 권이었고, 나머지는 학자들이 귀중하게 여길 책들이었다.

200여 권의 마법서는 기초적인 마법서에서부터 7서클까지의 마법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준에게는 그리 중요한 책들이 아니었지만 5서클에 있는 세브리노 에게는 중요한 마법서였다.

“세브리노에게는 마법서가 중요할 테니 그걸 가지고, 나는 나머지 책을 가지겠소.”

“저…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나에게는 마법서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고…고맙습니다, 준 님.”

“골드화는 반으로 나누면 될 것 같고, 마법재료와 상급의 마나석도 반씩 나눕시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이들이 보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기절해 있는 패트릭에게로 한 모금 정도의 검은 액체가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이동하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은 액체는 패트릭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부르르.

패트릭이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잠시 후 패트릭이 잠잠해졌다.

이미 패트릭이 던전의 보물을 반으로 나누기로 약속했기에 세브리노도 큰 불만은 없었다.

비록 절반씩 던전의 보물을 나누었지만 세브리노가 마법서를 가졌기에 좀 더 이익을 봤다고 생각했다.

준은 아공간을 열어서 절반씩 나눈 보물을 집어넣었다.

세브리노도 마법주머니 속에 던전의 보물을 넣었다.

“으응? 저게 뭐지?”

골드화를 치운 자리에서 못 보던 것이 발견되었다.

마법진이었는데, 보통의 마법진이 아니라 장거리 이동 마법진이었다.

준은 처음에는 이것을 무시해버리려고 했으나 운명적으로 아주 중요한 느낌이 들었기에 자세하게 장거리 이동마법진을 살펴보았다.

“이런 것이 왜 여기에 그려져 있는 걸까?”

“뭔데 그래?”

글리아나가 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이동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그래? 어디로 이동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가자.”

세브리노도 어느새 다가와 글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글리아나 님의 말이 맞습니다. 던전의 보물도 모두 나누었는데 그만 나가죠.”

“그럼 모두들 먼저 나가서 기다려. 난 잠시 살펴보고 나갈 테니까.”

준은 글리아나와 세브리노에게 그냥 이동마법진이라고만 했지 장거리 이동마법진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들이 알았다면 분명 말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준은 장거리 이동마법진 위에 서서 외쳤다.

“이동!”

번쩍!

빛과 함께 준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글리아나와 세브리노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어디 근처로 이동되었겠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리아나 님, 우리도 이제 밖으로 나가죠.”

“그래요, 가요.”

세브리노는 기절해 있는 패트릭을 업고 석실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소리 없이 패트릭의 눈이 떠졌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 붉게 물든 눈빛이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러나 글리아나와 세브리노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들부들.

쪽지를 쥐고 있는 손이 마구 떨렸다.

웬디 마을의 원주민이면서 촌장인 니콜라스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샤비, 거기 있느냐?”

“예, 촌장님.”

스스스.

대답과 함께 촌장 니콜라스의 뒤쪽에 백색의 로브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후드를 눌러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 수 없었지만 몸이 호리한 것이 분명 여자였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척후병의 보고로는 제이런 백작이 9천 명의 대병력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구나.”

“그럼 롤링스라는 자가 백작에게 보고한 것이군요?”

“아마 그런 것 같다. 우리도 대비를 해둬야겠다.”

“그럼… 전쟁입니까?”

“그래. 우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마을 밖에 나가서 은신해 있다가 기습공격을 퍼부어 시간을 끌어라.”

“얼마나 저지시키면 되는 것입니까?”

“최대한으로 저지시키면 좋겠지만 최소 하루 정도만 시간을 끌어줘도 된다.”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마을에서 10명을 데리고 가고, 세 번째 마을에서 200명을 차출하여 가거라.”

“기습공격을 하는데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아니다. 일처리는 확실한 게 좋아. 앞으로 3일 정도면 드래곤 레어가 발굴될 것이다. 네가 하루의 시간을 벌어주고, 다시 이곳에서 2일 정도만 시간을 끌어주면 드래곤 레어를 발굴하여 이곳을 떠나면 된다. 그동안만 백작의 병력을 저지시키면 된다.”

“아…알겠습니다. 반드시 하루의 시간을 끌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래. 샤비, 너를 믿으마. 가라.”

“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스스스.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샤비라는 여자는 촌장의 등 뒤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흐흐흐, 3일 정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드래곤의 레어를 발굴할 수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일족도 세력을 키울 수 있다. 허나 백작 놈 때문에 희생자가 많이 나오겠어.’

한편, 웬디 마을 근처에 숨어서 지켜보던 아놀드는 은밀하게 원주민들이 발굴하고 있는 곳을 알아내고 소리 없이 은밀하게 잠입했다. 은신법을 펼쳤기에 들키지 않은 것이다.

지하의 통로는 엄청나게 넓었다. 폭이 50m 정도 되고 천장의 높이도 그 정도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아놀드는 이 동굴이 말로만 들었던 드래곤의 레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로 곳곳에 함정과 기관장치가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그런 곳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자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더니 거대한 미로진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석회암 벽이 곳곳에 많이 무너져 있는 걸 보니 미로진이 파괴된 모양이었다.

‘으음… 드래곤이 아니고선 이런 규모의 미로진을 만들 수 없어. 정말 대단해.’

곳곳에 웬디 마을의 원주민들 모습이 보였기에 아놀드는 더욱 조심해서 이동했다.

미로진을 통과해 통로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아이언 골렘이 서 있었다.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크기가 5m나 되었기에 그 중압감만으로도 겁을 먹을 정도였다.

원래는 아이언 골렘이 3기나 있었지만 웬디 마을의 원주민들과 싸워 1기가 파괴되었다.

지금은 2기가 남아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으며, 원주민 20명과 아이언 골렘 1기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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