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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드드드드.
수십 톤은 될 것 같은 쇠공이라 가속력이 붙어서 좀처럼 멈추기가 힘들었지만 5서클 마스터의 실력을 가진 세브리노라 겨우 쇠공을 멈출 수 있었다.
“우와! 스승님, 쇠공이 멈추었습니다.”
“그런 것 같구나.”
“준 님은 잘 이동하고 있겠죠?”
“아마, 그럴 것이다. 일단 너무 지쳤으니 여기에서 좀 쉬었다가 가자.”
“예, 스승님.”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였다. 멈추어 있던 쇠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엇, 스승님, 쇠공이 다시 움직이려고 합니다.”
“이…이런 젠장, 안 되겠다. 앞으로 뛰어, 어서!”
세브리노의 말에 패트릭은 통로의 앞으로 뛰어나갔고, 그 뒤로 세브리노가 달렸다.
200m 정도를 달려 나가자 십자형 교차로가 나왔다.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무서운 속도로 쇠공이 굴러왔다.
“스승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일단 저 쇠공을 다른 통로로 날려버려야겠다. 에잇!”
세브리노는 거대한 마법의 손으로 굴러오는 쇠공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속도를 줄인 뒤에 옆 통로로 굴려버렸다. 또한 쇠공이 자신들이 있는 통로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예 양쪽의 벽을 박살내어 막아버렸다.
그들은 그제야 안심이 좀 되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세브리노는 마나를 한꺼번에 많이 써버렸기에 일단은 좀 쉬어주어야 했다.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한고비를 넘겼을 때, 준과 글리아나에게도 쇠공이 굴러왔다.
이미 예민한 준의 귀에 쇠공이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기에 손쉽게 위험에 대비할 수 있었다.
“골렘들은 굴러오는 쇠공을 막아라.”
준의 명령에 골렘 5기는 통로를 가로막고 서서는 굴러오는 쇠공을 몸으로 막았다.
하지만 워낙 가속력이 붙은 쇠공이라 첫 번째 골렘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에 두 번째 골렘까지 가세하여 쇠공이 더 이상 굴러오지 못하도록 했다. 쇠공의 속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도 느리게 굴러 오고 있었다. 세 번째 골렘이 앞을 가로막고서야 쇠공은 멈추었다.
잠시 쇠공을 살펴보던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쇠공의 표면 한쪽에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 속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상급의 마나석이 하나 박혀 있었기에 그것을 잡아 뽑자 마법진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마법약물로 그린 마법진이 드러났다.
“후후, 이제야 쇠공이 고철이 되었군. 일단 아공간 속에 넣어두었다가 나도 써먹어야지.”
츠츠츠츠.
갑자기 대기가 일렁이면서 요동쳤다.
쩌어억.
준의 아공간이 나타나더니 입구가 열렸다.
상급의 마나석과 고철이 되어버린 쇠공을 그 속에다가 집어넣고는 아공간의 문을 닫자 허공에서 사라졌다.
준은 혹시라도 뒤쪽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골렘 1기를 뒤쪽으로 배치해 따라오도록 했다.
전방에는 4기의 골렘이, 뒤쪽에는 1기의 골렘이 뒤따르자 그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석회암으로 된 통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준은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록 통로 속이지만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모래시계는 12시간 마다 한 번씩 뒤집어주면 되었다.
스윽.
방금 준은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으면서 글리아나를 쳐다보았다.
“글리아나, 우리가 이 통로 속에서만 3일을 보냈는데 아직도 통로 끝에 도달하지 못하였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생각해봐. 이 통로가 아무리 길다고 해도 며칠씩 가야될 정도로 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지. 특별하게 실효성도 없는 일에 이런 노력을 할까?”
“듣고 보니 그러네? 이상하긴 이상해.”
“특별할 것 없는 석회암으로 된 천장과 벽이야. 내 생각이 맞는다면 분명 여긴 미로야.”
“미로? 그럴 리가?”
“분명해. 우리가 지나간 후에는 벽이 스르르 움직여서 새로운 통로가 나타나도록 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거대한 미로 속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걸 거야.”
“정말 그럴까?”
“확인해보는 건 간단해. 일단 벽면에 표시를 해놓고 제법 이동한 후에 다시 되돌아 와서 확인해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아, 그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겠어.”
이렇게 해서 준은 일단 벽면에 표시를 해두고는 그곳을 벗어났고, 약 30m 정도마다 표시를 하면서 수백 미터 정도 이동한 후에 다시 돌아와 보았다.
역시나 준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표시를 해둔 것 중에서 처음 것과 그 이후의 몇 개가 사라져 있었다.
“글리아나, 처음과 그 이후의 몇 개가 사라졌어.”
“어머, 정말이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것으로 통로를 그냥 이동하는 건 무의미해졌어. 이 통로의 벽부터 부숴버릴 거야. 골렘들아, 이 벽을 부숴버려라.”
준의 명령을 받은 골렘들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골렘들은 주먹을 휘둘러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흙으로 만든 골렘이지만 마법으로 탄생시킨 것이라 파괴력이 강력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석회암으로 된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워낙 넓은 곳이라 5기의 골렘만으로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아공간 속에 넣어두었던 쇠공을 꺼내었다. 표면에 새겨진 마법진을 약간 수정한 뒤에 상급의 마나석을 박아 넣었다.
스윽.
준의 손짓에 의해 쇠공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벽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콰쾅!
벽이 박살나면서 새로운 통로들이 나타났지만 그걸 무시하고 계속 벽을 박살내는 것에 집중했다.
준의 주위 100m 정도가 박살났지만 아직도 벽은 많이 남아 있었다.
우우우웅.
벌떼가 날갯짓을 하며 내는 소리 같은 것이 나더니 무너졌던 벽이 스르르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원상복구가 되기 시작했다.
“후후후, 역시나 그랬었구나. 이 미로진을 만든 자는 정말 대단해.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야.”
준의 말대로 미로가 설치되어 있는 곳의 바닥은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미로진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인 양 무너져도 원상복구 되고 벽면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움직여 새로운 통로를 계속 만들었다. 그러니 일단 이 미로진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 속에서 죽어야 하는 무서운 미로진이었다.
준은 염력을 이용하여 쇠공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후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쾅!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바닥이 움푹 파였다.
몇 번이나 그렇게 하자 곳곳의 바닥이 움푹 파이면서 마법진의 일부가 깨어져버렸다. 스르르 원상복구 되던 벽면은 힘이 점점 약해지다가 이내 멈추었다.
효과를 확인한 준은 계속 쇠공으로 바닥을 박살내버렸다.
원상복구 되던 벽이 그 힘을 잃고는 와르르 다시 무너졌다.
마법진의 힘이 떨어지자 벽면도 훨씬 약해졌다.
쇠공을 날려 벽을 깨부수자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미로진의 마법진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되어버리자 모든 벽면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졌다.
준은 약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주저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세브리노, 패트릭, 괜찮나?”
준의 말에 그들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아, 준 님이셨군요?”
“어떻게 된 일이야?”
“통로를 이동하는데 각종 공격이 있어서 그걸 막느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입고 있는 옷이 여기저기에 뜯어지고 헐어 있었으며, 작은 상처가 많았다. 지난 3일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통로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날아오던 화살공격도 중지되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준 님 덕분이었군요.”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상거지 꼴이 되었는데, 준과 글리아나는 상처하나 없었다. 옷도 깨끗한 게 방금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하, 우리가 너무 깨끗한 게 이상한 모양이로군. 우린 3일 동안 잘 먹고 하루에 한 번씩 목욕도 하면서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이동했거든.”
“대단하십니다.”
“저기에 다음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나왔으니 가볼까?”
준이 앞장서고 그 뒤를 글리아나가 뒤따랐다.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이후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짧은 통로를 나오자 그들의 앞에는 지름이 100m 정도 되는 공동이 나왔다.
지하 공동은 천장이 30m 정도로 높았으며, 천장에는 라이트 마법이 걸린 구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박혀 있었기에 안이 환하였다.
지하 공동의 끝에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있었는데, 그 앞에는 철을 녹여서 만든 은색의 아이언 골렘이 하나 서 있었다. 키도 5m나 되었다. 골렘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손에는 거대한 검을 들고 있었는데, 준 일행이 공동으로 들어서자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눌릴 정도로 거대한 아이언 골렘이었다.
스윽.
준의 손짓에 흙으로 만든 골렘 5기가 아이언 골렘을 향해 달려갔다.
수적으로 우세한 준의 골렘이었지만 무력에서는 아이언 골렘의 상대가 아니었다. 크기도 흙으로 만든 골렘은 2.5m 정도였지만 아이언 골렘은 두 배인 5m였다. 5대1이었지만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 골렘이 날린 발차기에 흙으로 만든 골렘이 날아가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달려들었다.
아이언 골렘이 이번에는 가지고 있던 거대한 칼을 휘둘러서 흙골렘을 파괴했다. 하지만 역시 스르르 원상복구 되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아이언 골렘의 무지막지한 힘에 의해 핵이 파괴되면서 준의 골렘들이 흙덩이로 돌아가 버렸다.
제법 잘 싸웠지만 역시나 아이언 골렘의 상대는 아니었다.
5기의 흙골렘이 전부 파괴되는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인상을 찡그린 준이 직접 앞으로 나섰다.
아이언 골렘의 두 눈이 좀 더 붉게 물들이더니 준을 향해 달려왔다.
준은 달려오는 아이언 골렘을 향해서 우측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단순한 동작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언 골렘이 뒤로 튕기듯 10m 정도를 날아가 떨어졌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아이언 골렘의 가슴 한쪽에는 손바닥이 하나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준의 2차 공격이 이어졌다.
콰앙!
이번에도 내력을 실은 장력공격이었다.
가슴에 움푹 들어간 손바닥 자국이 생겨났지만 아이언 골렘은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호오?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강력한 아이언 골렘이다만, 나를 만난 것은 큰 불행이야.”
후우웅.
내력을 실은 강력한 발차기가 이어졌다.
콰앙!
아이언 골렘의 배에 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면서 뒤로 날아가 떨어졌다.
“꼼짝 못하도록 포박해버리겠다. 홀드 퍼슨!”
츠츠츠츠.
준이 빛으로 생성된 마법의 줄로 아이언 골렘을 꽁꽁 묶어버렸다. 하지만 워낙 강력한 골렘이라서 그런지 마력을 일으켰다.
투두둑.
마법의 줄이 뜯어지면서 결국 포박 마법을 벗어나 버렸다.
“으음… 역시 대단한 골렘이야. 투시(Clairvoyance)!”
츠츠츠.
아이언 골렘의 핵을 찾기 위해서 투시 마법을 펼쳤다.
아이언 골렘의 핵은 이마에 한 개가 박혀 있었으며, 가슴 한쪽에도 역시 하나 더 있었다.
두 개의 상급 마나석으로 움직이는 골렘이었다.
마력을 일으키자 움푹 들어갔던 부분도 스르르 다시 원상복구가 되었다.
‘이마와 가슴에 새겨진 두 개의 마법진을 파괴해야만 끝나겠군.’
준은 천왕대심공 상에 있는 신법을 이용하여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이언 골렘을 공격했다. 언제나 한 박자 늦은 대응으로 일관하는 아이언 골렘은 결국 준의 집중적인 공격에 쓰러졌다.
다시 원상복구가 될 것이지만 그러기 전에 준은 서둘러서 이마와 가슴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의 일부를 망가뜨렸다.
아이언 골렘의 붉게 물든 두 눈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두 개의 루비가 박혀 있었다.
“마력이 루비에 스며들면 더욱 붉게 물들이게 되는 것이었구나.”
준은 잘 만들어진 아이언 골렘을 그냥 버려두고 가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약간 수정하기로 하고는 마법약물을 꺼내어 도형과 룬문자를 꼼꼼하게 잘 새겨 넣었다.
그런 후 한 걸음 물러나자 아이언 골렘이 다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공격하지는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준은 기이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점점 아이언 골렘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준의 긴 마법주문이 끝나자 아이언 골렘이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공간을 열었다.
아이언 골렘은 순식간에 아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공간이 사라지자 뒤돌아서 통로로 향하였다.
패트릭과 세브리노, 글리아나는 준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그가 통로로 향하자 뒤따라갔다.
이들은 석회암 통로에 들어섰다.
천장에는 라이트 마법이 걸린 구가 5m의 간격을 두고 박혀 있었는데, 통로의 길이가 약 20m 정도 되어 보였다.
앞장서서 나아가던 준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언 골렘까지 무찌르고 획득한 그가 멈추자 일행들은 자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