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74화 (7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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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화르르르.

고열의 불길이 바닥에서 활활 타오르는 복도가 나왔다. 너무나 뜨거워서 가까이 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으… 준 님, 이곳을 통과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봐 패트릭, 이 불길이 그렇게 뜨거운가?”

“아…아니, 이 뜨거운 불길이 안 보이시는 겁니까?”

“후후, 이 화염계 환상 마법진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나?”

“그…그럼 이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래. 생각해보게. 실제로 이곳에 저렇게 뜨거운 불길이 계속 치솟는다면 천장이 저렇게 깨끗할 수 있겠나? 또한 저런 고열에 벽면이나 천장이 녹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나?”

“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누군지 모르지만 제법 마법에 대하여 이해도가 높은 자가 설치했군.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번쩍!

준의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

천장과 벽면을 세밀하게 살펴보던 그는 어느 한곳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저쪽에 천장과 맞물린 벽면을 자세히 보면 화염계 환상마법진이 새겨져 있는데, 보이나?”

패트릭은 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아, 저기에 희미하지만 무엇인가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세브리노, 보이시오?”

“예, 준 님의 말씀대로 화염계 환상마법진이 새겨져 있습니다.”

“후후, 상급의 마나석이 두 개나 박혀 있으니 저것을 수거해야겠어요. 오늘 수지맞았다.”

준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움켜쥐는 듯한 동작을 보이자 마법진이 새겨진 곳에서 균열이 일어나면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후두둑.

벽면의 일부가 통째로 뜯기자 화염계 환상마법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내 평범한 복도로 변했다.

뜯겨진 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세하게 살펴본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실력이 8서클은 될 것 같군. 제법 수준이 높은 자가 설치했어.”

“허억! 준 님, 정말 8서클이 맞는 것입니까?”

“하하, 내가 8서클이라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 거요?”

“그럼 준 님은 도대체 몇 서클이십니까?”

“후후, 그건 말해줄 수 없으니 알아서 생각하세요.”

“믿을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9서클인 것 같군요.”

“으… 스승님, 그럴 리가요?”

“아니다. 분명 준 님은 9서클에 오른 분이시다. 혹시 위대한 분이십니까?”

“하하하, 내가 드래곤이냐고 묻는 건가요?”

“그…그렇습니다.”

“호호, 아니예요. 준은 틀림없는 인간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글리아나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그런 글리아나를 쳐다보았다.

“믿으세요. 틀림없는 인간입니다.”

두 사람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화염계 환상마법진을 꼼꼼하게 살펴본 뒤 두 개의 상급 마나석을 회수했다.

마법진이 새겨진 돌조각은 내력으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마법진이 알려지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자, 일단 여기에서 식사를 만들어먹고 다시 움직이는 것으로 하죠.”

“준 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른 것입니까?”

“하하. 패트릭, 자네는 더 가보고 싶은가 본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배불리 먹은 이들은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벽면과 천장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평범한 복도였다.

다만 정면의 벽면에는 사자 머리모양의 조각상이 붙어 있었는데, 양쪽 눈에는 루비를 박아 넣은 특이한 조각상이었다.

“멈춰. 느낌이 좋지 않아.”

준이 흙으로 만든 골렘을 먼저 보내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것을 본 패트릭이 한마디 하였다.

“준 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니 제가 먼저 앞장서 보겠습니다.”

준이 너무 신중하고 느리게 이동하였기에 갑갑한 것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선 것이다.

“후후… 패트릭, 온몸이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죽고 싶나?”

“골렘은 전혀 이상이 없었지 않습니까?”

“쯔쯧,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서긴… 잘 보게.”

준이 앞으로 5m 정도 튀어 나가더니 뒤로 튕겨 되돌아왔다.

그러자 양쪽 벽면에서 끝이 뾰족한 창이 수십 개나 튀어나와 맞은편 구멍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했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들 피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죄송합니다.”

“젊은 혈기만 믿고 나섰다가는 이곳에서는 죽는다. 명심해.”

“예, 알겠습니다.”

스윽.

준은 골렘을 의지대로 움직이게 하여 벽면에 붙어 있는 사자머리 상을 뜯어내었다.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골렘이 힘을 내면서 계속 잡아당기자 결국 사자머리 상이 떨어졌다.

골렘이 되돌아 걸어오자 갑자기 양쪽 벽면에서 창이 수십 발이나 발사되어 골렘의 몸에 박혔다.

와르르르.

골렘은 날아와 박힌 수십 개의 창의 위력에 그만 박살나버렸다.

데구르르.

사자머리 상도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다가 한쪽에 부딪히면서 멈추었다.

스스스스.

박살 난 골렘의 흙이 다시 스르르 한곳으로 뭉쳐지면서 형태를 다시 갖추어졌다. 이윽고 골렘이 다시 완성되더니 한쪽에 떨어져 있는 사자머리 상을 준에게 가져왔다.

“후후… 골렘아, 정말 수고가 많았다. 잠시 서 있거라.”

준의 말에 골렘은 알아들었다는 듯 한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역시나 사자머리 상에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두 눈에 박혀 있는 것은 루비였고, 사자머리 상 속에는 상급의 마나석이 하나 박혀 있었다.

“후후, 이거 점점 던전이 마음에 드는데? 루비도 두 개나 얻었고, 아울러서 상급의 마나석도 입수했고 말이야.”

준의 옆에 서 있던 세브리노도 상급의 마나석을 가지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준이 그것을 내밀었다.

“세브리노, 이번에 획득한 상급의 마나석은 당신이 가져요.”

“저…정말 절 주실 겁니까?”

“가지시오. 난 이미 두 개나 가졌으니 말이오.”

“고…고맙습니다.”

상급의 마나석 하나의 가격만 해도 만 골드나 했기에 얼마나 비싼 것인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사자머리 상이 파괴되면서 창이 튀어 나오는 장치는 간단하게 해체되었다.

벽과 천장이 모두 석회암으로 된 길이 나왔다.

하나가 아니라 길이 2개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준의 눈치를 보았다.

“패트릭,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해봐.”

“음… 준 님, 어차피 길이 2개로 나뉜 이상 조를 이루어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패트릭은 던전을 탐험하는 중에 여러 번이나 위험에 처하였지만 준이 먼저 그걸 제거했기에 아직도 의욕이 앞서고 있었다.

이 던전을 만든 자는 심계가 깊은 모양인지 곳곳에 상상 이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준도 신중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패트릭의 말을 듣고는 한계에 왔다는 걸 느끼고는 대답했다.

“좋다.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조를 이루고 나와 글리아나가 조를 이루어가도록 하자.”

“준 님, 고…고맙습니다.”

“이왕 조를 이루었으니 패트릭, 자네에게 먼저 기회를 주겠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봐.”

“음… 저는 오른쪽 길로 선택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와 글리아나는 왼쪽 길로 가겠다.”

“준 님, 조심하십시오.”

“패트릭과 세브리노도 조심하길.”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하고는 먼저 오른쪽 길로 들어가 버렸다.

“마나여, 밝게 빛나게 해주소서. 라이트!”

세브리노의 외침에 공중에 빛의 구가 형성되더니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던 준은 그제야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의 등 뒤로 글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뒤따라왔다.

슈슈슝.

3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티티팅.

화살은 준이 펼쳐놓은 보호막에 가로막혀 튕겨져 버렸다.

통로에 설치되어 있는 함정이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지겨울 정도로 통로가 길었다.

“글리아나, 괜찮아?”

“휴우… 이 통로는 도대체 언제 끝나려는 걸까? 지겨워 죽겠어.”

“우리, 시원한 것 하나씩 먹고 갈까?”

“시원한 것 뭔데?”

“응, 과일빙수라는 것인데 시원하고 달콤한 게 맛있어.”

“좋아, 만들어줘.”

준은 아공간 속에서 각종 과일과 꿀, 유리그릇과 스푼을 꺼내었다.

과일하나를 즙을 내어서 거기에 꿀을 넣어 잘 섞었다. 그런 다음 빙계 마법을 이용해 서서히 살얼음이 얼도록 한 뒤 절반 정도를 그릇에 담고 나머지는 꽁꽁 얼렸다.

그것을 다시 공중에 띄워서는 고속으로 회전하도록 만든 뒤에 눈송이처럼 가는 얼음가루가 되도록 만들어서 그릇에 담았다. 또한 각종 과일을 깎아서는 그릇에 담았다.

“자, 다되었으니 먹어봐.”

“응,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달콤할 것 같아.”

한 스푼 떠먹어본 글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도 스푼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지하의 동굴 속이라서 그런지 온도가 일정하지만 답답한 감이 있었는데, 이렇게 시원한 것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니 다시 기운이 생겨났다.

“준은 이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만든 거야? 정말 대단해.”

“후후, 내가 좀 그렇지?”

“이거 말야, 시원하고 달콤한 게 너무 맛있어.”

“과일빙수라고 해. 언제든 먹고 싶으면 말만해. 만들어줄게.”

“응, 고마워.”

준과 글리아나가 이렇게 쉬고 있을 때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계속 통로를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공격을 받아 팔과 다리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지만 이 정도는 이동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스승님, 제가 잘한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느냐? 그만 잊어버리거라.”

“그래도 준 님이 계셨다면 이런 위험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건 맞다. 준 님이 앞장섰을 때에는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했기에 안전했다. 하지만 네 경솔한 행동이 이런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이 통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휴우… 그래, 나도 지치는구나. 일단 여기에서 좀 쉬었다 가자꾸나.”

“예,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우르르릉.

요란한 소리가 전방에서 들려왔다.

패트릭은 세브리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콰콰콰콰!

갑자기 전방에서 지름이 2m 정도 되는 거대한 쇠공이 굴러왔다.

통로는 한쪽 방향으로 쭈욱 이어져 있었기에 피할 곳이 전혀 없었다.

무조건 굴러오는 쇠공을 멈추게 해야만 했다.

“스승님,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일단 마법으로 막아볼 수밖에. 매직 핸즈!”

츠츠츠.

세브리노의 전방에 거대한 두 개의 손바닥이 생성되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굴러오는 쇠공을 막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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