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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그그그긍.
쇠사슬로 이어진 성문이 굉음을 내면서 내려왔다.
언덕 위에 있던 동료들도 어느새 준의 뒤에 다가와 있었기에 이들은 개선장군처럼 성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와아아아!”
외성 안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저분이 오크를 물리치셨어.”
“우리의 영웅이시다.”
준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당당하게 지나갔다.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브란스 남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준에게 다가왔다.
“브란스 남작님이십니까?”
“그렇소. 날 아시오?”
“아니오. 오늘 처음 뵙는 겁니다.”
“오크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는데, 도와줘서 고맙소.”
“제가 힘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크들이 쳐들어온 것입니까?”
“식량을 약탈하러 일 년에 한두 번씩 습격해오긴 하는데, 이번처럼 이렇게 많은 오크들이 몰려온 것은 처음이오.”
“오크들의 무력이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걱정이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골치라오. 보기엔 검사 같은데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보니 마법사인 거요?”
“기사이긴 하지만 마법도 좀 할 줄 압니다.”
“대단한 마법실력이었소. 오크들이 도망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오.”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당연히 도와야지요.”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떻소?”
“감사하게 응하겠습니다.”
“하하, 고맙소이다. 그럼 나중에 성에서 봅시다.”
“예.”
영지병사들과 영지민들은 대거 외성 밖으로 나가서 죽은 사람과 오크 사채를 분류해서 한곳으로 모았다. 화장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신이 부패되어 각종 전염병이 일어난다. 그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둘렀다.
화르르.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장작을 잘 쌓아놓은 곳에 시신을 눕히고는 경건하게 화장을 했다.
외성 안에서 살고 있는 영지민들은 다시 일상생활로 되돌아갔다.
시장이 열리자 준과 그 일행은 필요한 식량과 고기도 대량으로 구입했다.
상점의 주인들은 준을 알아보고는 저렴한 가격에 넘겼다. 양장점에도 들러 9명의 종들이 입을 옷과 글리아나가 입을 옷도 몇 벌씩 구입했다. 아공간 속에서 꺼낸 거대한 식수통에도 물을 가득 채웠으며, 던전 발굴이 얼마나 걸리게 될지 몰라서 최대한으로 많이 구입해두었다.
저녁이 되자 브란스 남작의 성에 초대되어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는 에린 상단을 운영하던 둘째 아들인 제이드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준에게 짐마차 한 대로 폭리를 취한 것을 떠올리고는 미안해했다.
브란스 남작은 고마움의 표시로 준에게 1,000골드를 주었다. 준은 받지 않으려다가 자꾸만 내미는 것을 거절하기도 어려웠기에 결국 받았다.
브란스 남작의 호의에 그날은 영주성에서 묵고 다음날 길을 떠났다.
브란스 남작은 성에서 준 일행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동한 이들은 오이란트 왕국의 국경 검문소에서 기사 신분패를 내밀어 간단하게 그곳을 통과했다.
얼마 후 러셀 왕국의 국경검문소에 도착한 준과 그 일행은 역시 기사 신분패를 보이고 간단하게 그곳을 통과했다.
드디어 러셀 왕국령에 들어선 것이었다.
말을 타고 3일 거리에 있다는 패트릭의 외가인 루베이스 자작령을 향해 나아갔는데, 별다른 사고 없이 무난하게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수 있었다.
언덕 위에 도착한 이들은 잠시 멈추었다.
“패트릭, 저 지평선 너머에 비밀의 던전이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습니다.”
“음… 그럼 다시 가볼까?”
“네… 설레는군요.”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고생을 하면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준도 비밀의 던전에 어떤 보물이 들어 있을지 기대되었다.
패트릭이 가지고 있는 양피지 지도에는 분명 던전의 입구가 잘 나와 있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보니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약간 경사진 언덕의 중간 부분에 작은 바위굴이 하나 있기는 했는데, 높이는 3m가 조금 넘고 넓이도 2m 정도로 좁은 편이었다. 더구나 동굴 속은 약 5m 정도였다. 더 이상 들어가려고 해도 막혀 있어서 더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패트릭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의 스승인 세브리노도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러나 준은 미세하지만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있는 것 같으니 뒤로 물러나보게.”
“혹시 뭔가를 발견하신 겁니까?”
“그래, 그러니 일단 뒤로 물러나봐.”
패트릭이 뒤로 물러나자 준은 정신을 집중해서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후후후, 여기에 던전의 입구가 있었군.”
“그…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니 모두들 뒤로 물러서 있어.”
준도 방어막을 펼친 뒤 살펴보았던 한곳을 응시하고는 마나를 흘려보냈다.
쩌어억.
동굴이 약간 흔들거리더니 암벽이 갈라지면서 던전의 입구가 드러났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느닷없이 갈라진 암벽의 입구 위쪽에 있던 작은 구멍 속에서 매직 미사일이 연속으로 10발이나 발사되어 날아왔다.
티티티팅.
다행이 준이 펼쳐두었던 방어막에 가로막혀 튕겨져 소멸되어 버렸다.
“휴우… 준 님, 위험했습니다.”
“후후, 입구에 뭔가 장치해두었을 거라 생각해서 방어막을 펼쳐두길 잘했군.”
“던전의 입구가 열렸으니 안으로 들어가시죠.”
“음… 아직은 아니야. 일단 밖으로 다시 나가서 이곳에 누군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결계를 설치해두는 것이 급선무야.”
“아…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준과 일행이 뒷걸음질 치면서 입구에서 멀어지자 굉음을 내면서 입구가 다시 스르르 닫혔다.
준과 패트릭, 세브리노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게르가 설치되었다.
동굴의 입구에 게르를 설치하였기에 더욱 은밀해졌다.
주위에 강력한 결계막도 설치하였다.
루베이스 자작령의 외곽에 자리 잡은 언덕이었기에 영지민들조차 관심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던전 발굴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마냥 안전장치도 없이 던전 발굴을 할 수 없었기에 일단 게르를 설치하고 주위 30m 범위를 강력한 결계로 보호하게 되었다.
7서클 이하의 마법사는 절대로 결계를 뚫고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해두었다.
또한 영지민들 눈에는 이곳을 그냥 암벽으로 보이게 환상마법을 추가로 펼쳐두었기에 안심이 되었다.
게르 안에서 이들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패트릭에게는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들어가기로 말해두었다.
종들에게는 게르에 있으면서 준과 그 일행이 던전에서 나올 때까지 대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밤사이 준은 짐마차 3대 분량을 넣을 수 있는 마법자루를 하나 만들어 말과 종들이 먹을 식량을 넣어두었는데, 그것을 헌트에게 내밀었다.
“이 안에는 너희들과 말이 2달은 충분하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들어 있다. 또한 게르 한쪽에는 1달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식수도 놓아두었다. 만약 내가 식량이 떨어지려고 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이곳을 떠나도 좋다.”
“그…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입니까?”
“그건 나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자루 속에는 너희들이 쓸 수 있도록 1,000골드를 넣어두었다.”
“으음… 알겠습니다.”
“게르 밖에는 강력한 결계를 설치해두었다. 결계 밖으로는 그냥 나가면 되지만 일단 한 번 나가면 내가 없이는 안으로 절대 들어올 수는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없는 동안에 말들을 잘 돌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스네이크 검법을 익혀라.”
“스네이크 검법을요?”
“그렇다. 이것이 스네이크 검법서다. 받아라.”
준이 스네이크 검법서를 내밀자 헌트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9명의 종들은 얼마 전까지 용병이었기에 스네이크 검법이 얼마나 강한 검법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들 9명은 C급 실력을 가진 용병들이었지만 스네이크 검법만 익힌다면 A급을 넘어 S급의 용병도 바라볼 수 있었기에 흥분했다.
“이해하기 쉽도록 써놓았기에 익히기엔 큰 무리가 없을 거다.”
“준 님께서 나오실 때까지 열심히 스네이크 검법을 익히겠습니다.”
“좋아,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발전이 있다. 모두들 열심히 수련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친 준은 9명의 종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는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가 긴장하면서 뒤따랐다.
안전을 생각한 준은 아공간을 열어 그 속에서 흙으로 만든 골렘 5기를 꺼내었다.
드래곤의 레어를 지키는 강력한 골렘은 아니었지만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골렘이었다.
다만 골렘은 라이트 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를 가슴에 박아 넣었기에 횃불처럼 동굴 속이 밝아졌다.
골렘을 조명등 용도로도 사용한 것이다.
준은 일단 의심스러우면 골렘을 먼저 보내보았다. 그러고 나서 천장과 벽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어서야 움직였다.
정말이지 지루할 정도로 신중하고 완벽하게 위험에 대비했다.
“준 님, 이런 것으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것 아닙니까?”
“이봐, 패트릭.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던전 속에서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죽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예, 하지만 이건 너무 느려서 말씀드렸던 겁니다.”
“알아. 그러나 아직까지 전혀 피해가 없잖아? 아무리 던전이 깊고 함정이 많아도 이렇게 신중하게 한다면 충분하게 발굴할 수 있어.”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위험스러운 던전은 비록 느리더라도 안전한 게 제일이야.”
“패트릭, 그건 준 님의 말씀이 맞다. 성급하게 일처리를 하다가는 죽기 쉬운 곳이 던전이다.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갑자기 선두에서 천천히 나아가던 골렘에게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와 격중되었다.
골렘은 순식간에 화살의 벌집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패트릭은 눈이 커졌다.
‘아… 내가 정말 경솔했구나.’
골렘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화살 공격에 당했지만 움직이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준은 화살이 날아온 벽과 천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천장과 벽에 화살이 쏘아지도록 장치가 되어 있으니 그걸 파괴한 후 이곳을 통과할 것이니 그리 알아.”
“예, 그게 좋겠습니다.”
패트릭이 대답하자 준은 손가락에 내력을 끌어 모아서는 지공을 쏘았다.
티잉.
한쪽 벽면에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미세하게 그려진 마법진에서 순식간에 빛으로 휩싸였다.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저 빛이 마법진을 보호하는 모양이었다.
“후후, 그럴 줄 알았지. 그럼 이번에는 좀 더 강력한 것을 보여주지.”
우우웅.
준의 주먹 쥔 손에 막대한 내공이 흘러들었고, 그걸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콰앙!
마법진이 그려진 곳에 내공이 실린 권이 작렬했고, 벽면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엄청난 위력이야.’
‘저토록 위력적인 것은 처음 봐.’
각자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준이 한마디 했다.
“자, 함정이 설치된 마법진이 파괴되었으니 이동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준이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