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72화 (7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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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예, 스승님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십니다.”

“9명의 식솔이 생겼으니 그만큼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아졌어. 그런데 패트릭, 목적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해줄 수 있나?”

준의 말에 패트릭은 세브리노를 쳐다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패트릭이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나직이 말하였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와 스승님은 어머니가 남겨주신 양피지에 새겨진 지도를 보고 어느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양피지의 지도?”

“예, 양지피의 지도에는 비밀의 던전에 대한 위치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러셀 왕국으로 가는 건가?”

“예, 저의 외가는 루베이스 자작가문입니다. 자작령에 비밀의 던전이 있지만 은밀하게 발굴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처음에는 저와 스승님만 가려 했으나 이렇게 준 님과 인연이 생겼고, 믿을 수 있는 분이라 생각되어 말해드리는 겁니다.”

“그리 생각해줘서 고맙군.”

“처음에는 저와 스승님만으로 비밀의 던전을 발굴하려고 했습니다만, 준 님이 도와주시면 비밀의 던전을 발굴하기가 그만큼 손쉬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도 던전 발굴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자신이 없는데…….”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저를 도와주시면 던전의 보물 중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내일이면 브란스 남작령에 도착하고, 국경을 넘어서 3일 거리이니… 그리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니 도와주겠네. 더구나 던전의 보물 중 절반을 준다고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지.”

“고…고맙습니다, 준 님.”

“던전의 보물을 발굴하여 자네도 베른 왕국으로 돌아가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지 않겠나?”

“스승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으니 반드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던전을 발굴하려면 준비를 충분히 할 필요가 있겠어. 던전 발굴에 얼마의 기간이 걸릴지 모르니 말일세.”

“예, 그래서 저도 스승님의 마법주머니에 충분한 식량과 식수를 준비해서 가려고 했습니다.”

“잘 생각했네. 나도 이번에 9명의 종들이 생겼으니 그들이 먹을 식량도 충분하게 구입해가는 게 좋겠군.”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글리아나도 침대에 기대어 동화책을 읽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준은 책상과 의자를 아공간 속에서 꺼내었다. 혼자서 고민하다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더니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이 되자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브란스 남작령을 향해 출발하였다.

길은 복잡한 것이 없는 외길이었기에 이동할 때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급할 것이 없었기에 일행들은 그만큼 여유로웠다.

9명의 종들도 짐마차에 타고 이동하게 되었기에 교대로 마차를 몰았다. 나머지는 뒤에 앉아서 편안하게 이동했다.

해가 머리 위에 머무는 것으로 보아 정오가 된 모양이었다.

갑자기 선두에서 이동 중이던 준이 크게 외쳤다.

“점심시간이 된 것 같으니 점심을 먹고 이동하도록 한다!”

“예!”

준이 먼저 길에서 벗어나 풀밭에서 말을 멈추었다.

일행들도 말에서 내렸고, 종들도 짐마차를 세운 뒤 내렸다.

점심 식사 준비는 준이 했고, 하그리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소고기 등심과 갈비에 소금을 적당하게 뿌리고는 석쇠에 놓고, 맛을 더하기 위하여 참나무 숯을 피워 구웠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나자 고기 굽는 냄새에 모두들 침을 삼키면서 기다렸다. 양은 충분했지만 너무나 먹음직스러웠기에 난리였다.

이윽고 다 구워진 고기를 준이 접시에 담아서 내밀자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는 한입 먹어보고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준 님, 너무 맛있습니다.”

“너무 맛있어. 먹어봐, 준.”

글리아나가 고기 한 점을 내밀자 받아먹은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들도 석쇠에 고기를 굽고는 접시에 담아서 맛있게들 먹기 시작했다.

이들은 야영을 하거나 의뢰를 받아서 일할 때에도 이렇게 고기를 맛있게 마음껏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서로 주인을 정말이지 너무 잘 선택한 것 같다고 인정했다.

준의 애마인 노페르슈롱과 나머지 말들에게도 충분하게 먹이를 잘 먹였다. 잘 먹이고 혹사시키지도 않아서인지 말들도 아주 건강했다. 이동을 천천히 하였기에 신나게 한번 달렸으면 하는 게 말들의 속마음이었다.

이들은 배불리 먹고 조금 쉬었다가 브란스 남작령을 향해 출발했다.

지평선 끝에 누렇게 익은 밀밭과 농노들의 집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브란스 남작령에 접어들었지만 브란스 남작의 영주성은 몇 시간 더 가야만 나온다.

헌트가 준을 향해 외쳤다.

“준 님, 저기에 보이는 농노들의 집이 브란스 남작령에 속해 있는 것들입니다.”

“그럼 벌써 브란스 남작령에 접어들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준이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피비린내가 지독했기 때문이다.

집 앞에는 농노로 보이는 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패트릭은 심각해진 준의 얼굴을 보고 말하였다.

“준 님, 무슨 일 있습니까?”

“저기에 보이는 농노들의 집 앞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어.”

“예? 그…그게 무슨 말입니까?”

“농노로 보이는 자들이 죽어 있다는 말일세.”

밀밭을 지나 농노의 집 앞에까지 도달해보았더니 집의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고, 마당에는 농노로 보이는 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죽은 지 하루 정도는 지난 모양이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요?”

준과 일행은 이상하게 생각되어 주변의 집들을 살펴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한 집에 2~3명씩 쓰러져 있었는데, 집의 일부가 파손된 곳도 여러 곳이었다.

준은 여러 집중에서 한곳에서 죽은 오크를 발견했다. 2마리의 오크는 녹색의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는데, 죽은 지 하루 정도는 된 것으로 보였다.

준의 뒤에 들어온 패트릭이 놀라면서 중얼거렸다.

“준 님, 오크가 죽어 있는 것을 보니 오크들이 습격해온 모양인데요?”

“그런 것 같아. 어제 용병대와 기병들이 바쁘게 달려간 게 오크 때문인가 봐.”

“아직 단정 짓기에는 이른 것 같으니 좀 더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대지의 기억 마법을 펼치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지. 마법을 당장 펼쳐보겠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일행들이 모여들자 준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나여,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보여다오. 대지의 기억!”

츠츠츠츠.

허공에 이곳의 영상이 나타나더니 필름을 되돌리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이르자 다시 정상적으로 재생되었다.

시간은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농사를 짓고 있는 농노들이 사는 이곳이 보였다. 그때 갑자기 오크 무리가 쳐들어왔다.

300여 마리나 되는 오크들은 각자 손에 검을 비롯해 창, 전투도끼, 철퇴까지 들고 제법 잘 무장하고 있었다.

무장이 전혀 안 되어 있는 농노들을 무참하게 죽이다가 기병들이 몰려오자 충돌하였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기병들이 후퇴하였고, 오크 무리가 뒤쫓아 가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세브리노가 심각해진 얼굴로 준에게 다가왔다.

“준 님, 제 생각으로는 오크 무리가 브란스 남작의 영주성이 있는 곳으로 공격하러 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찌된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직접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당장 가봅시다.”

이들은 말에 올라 속도를 조금 더 높여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가지 못했는데, 길가에 영지병들과 오크가 하나 둘씩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이동하면 할수록 죽은 시신과 오크의 사채가 늘어났지만 영지병이 더 많이 죽어 있었다.

패트릭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크들보다 영지병이 더 많이 죽은 걸로 봐서 오크의 힘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지평선 끝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어엇? 저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가서 확인해보는 게 좋겠군.”

두두두두.

준이 노페르슈롱의 속도를 높이자 일행들도 말의 속도를 높였다. 종들도 짐마차의 속도를 높여 뒤따라 달렸다.

언덕위에 도착한 이들은 멈추고 전방을 내려다보았다.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브란스 남작의 영주성이 있었다. 외성에서는 오크 무리와 영지병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오크 무리는 600여 마리는 되어 보였다. 외성벽 위에는 무장한 영지병이 있었으며, 성 밖에는 무장한 기병 200명이 검을 휘두르면서 오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채채챙, 파팟!

서로의 무기가 충돌하면서 불꽃이 튀고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곳곳에는 영지병들과 오크들이 제법 많이 쓰러져 있었는데, 오크들보다는 영지병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물러서지 마라! 오크들을 죽여라!”

“취익… 인간을 죽여라, 취익.”

밀집되어 있는 오크 무리에 기병들은 특유의 돌파력을 발휘할 수 없어서 오히려 희생자들만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언덕 위에 있던 준은 어찌된 상황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두들 잘 들어. 내가 저들을 좀 도와주어야 할 것 같으니까 여기에 있거나 천천히 오도록 해. 내가 먼저 가서 오크를 물리쳐야겠어.”

“알겠습니다.”

“조심해, 준.”

“걱정 마, 글리아나. 내 실력 알잖아?”

두두두두.

노페르슈롱이 빠르게 전장을 향해서 달려 나갔다.

전장이 가까워져오자 준은 말고삐를 놓고 양손을 천천히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놈의 오크들아, 뜨거운 맛 좀 봐라. 마그마 블래스터(Magma Blast)!”

콰아아아!

뜨거운 고열로 뭉쳐진, 사람 상반신 정도 크기의 마그마탄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오크 무리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콰쾅!

“크악!”

“케에엑!”

오크 무리 속에서 비명이 크게 들렸다.

몇 마리의 오크는 몸에 불이 붙으면서 발버둥 치다가 쓰러졌고, 폭발의 위력에 날아가 떨어진 오크도 제법 많았다. 워낙 엄청난 화염계 마법이라서 그런지 오크들은 겁을 집어 먹었다.

오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자들은 바로 마법사였다.

강력한 마법 한 방에 전장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오크들이 조금만 더 밀어붙였다면 외성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텐데 운이 좋은 건지 때마침 준이 나타나 마법을 날린 것이었다.

준은 마법주머니 속에서 매직 미사일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꺼내어 앞으로 내밀었다.

슈슈슈슝.

매직 미사일 10발이 오크를 향해서 날아갔다. 1초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10발의 매직 미사일이 쏘아졌다. 재미를 붙였는지 이번에는 아예 양손에 아티팩트를 꺼내들고는 마구 난사했다.

유도기능이 있는 매직 미사일은 오크들에게 날아가 죽음을 선사했다.

“크악!”

“케에엑!”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오크들은 우수수 쓰러졌다.

뒤쪽에서 달려오면서 마법을 마구 퍼붓는 준의 활약으로 오크들은 공포에 젖어 들었다.

“취익… 인간 마법사다. 도망쳐라, 취익!”

“취익… 도망쳐, 취익.”

인간 혼자서 수백 마리의 오크 무리를 공격해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무력이 전체 오크 무리보다 더 강력했기에 오크들은 겁을 먹고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외성벽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영지병들은 크게 환호했다. 공포스러웠던 오크 무리가 한 명의 마법사에 의해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에 매직 미사일을 맞고 쓰러지는 오크가 있었지만 오크 무리는 도망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준의 공격마법에 10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죽었다. 나머지 오크들은 정신없이 사방으로 도망쳤기에 추격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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