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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화르르.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준의 요리 실력이 발휘되었다.
원래 주인과 종은 같은 식탁에서 같이 먹지를 못한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두 개의 식탁을 놓고 먹는 것이었다.
각종 과일과 빵, 샐러드를 식탁에 차리고 특별식으로 밥을 준비해 지난밤 만들어두었던 유리그릇에 담았다. 또한 갈비 소금구이를 준비했는데, 이건 즉석에서 구워야 맛있기에 두 곳에 준비했다.
준은 9명의 용병들을 식탁의 의자에 앉도록 한 뒤 시범으로 갈비 소금구이를 하나 구웠다.
“이것이 갈비라는 것인데 소를 잡으면 옆구리 쪽에 있는 부위다. 그리고 이것은 석쇠라는 것인데 여기에 갈비를 놓고 소금을 약간 뿌려서 구워먹으면 된다.”
준이 내민 석쇠는 직사각형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이었다.
참나무로 만든 참숯에 갈비 소금구이를 구워 먹더니 용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나 맛있는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본 준이 한마디 하였다.
“양은 충분하니 너무 급하게 먹지 마라.”
그제야 9명의 용병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준의 말대로 갈비가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먹어본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 역시 여유 있게 먹고는 있었지만, 처음에 그들도 용병들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그만큼 갈비 소금구이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로브의 후드를 벗고 식사를 하는 글리아나를 본 용병들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이 되었다. 태어나서 글리아나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본적은 없었다. 보통의 아름다움이 아닌 미의 극치였기에 이들이 이렇게 충격을 받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 용병들은 놀라움의 연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준이 눈치를 주자 그제야 그들은 카펫으로 돌아가서 앉았다. 배도 부르고 마음이 편하니 식곤증이 몰려와 곧 잠에 빠져들었다.
준은 혼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그렇게 밤은 점점 깊어갔다.
날이 밝아오자 준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9명의 용병들을 깨웠다. 잘 먹고 푹 자고 일어나서인지 상태가 다들 양호했다.
“너희들은 너무 지저분하니 수염을 다듬고 머리카락도 단정히 해라. 목욕까지 해야 한다. 그러기에 앞서서 너희들이 입었던 옷과 신발부터 당장 빨도록 한다. 이것은 비누라는 것인데 이걸로 거품을 내어 사용하면 때가 잘 빠질 것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가죽갑옷은 이제 필요가 없으니 상ㆍ하의와 신발만 깨끗하게 빨아라.”
“예, 준 님.”
그들은 준의 명대로 옷과 신발부터 깨끗하게 빨았다. 그 다음으로 수염을 깎거나 다듬었다. 머리도 손질해야 하는데 그건 서로 도와주어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목간통이 3개나 마련되어 있어 목욕하기 편했다.
준은 마법을 이용하여 옷과 신발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물기를 탈수시켰다. 그런 다음에 윈드마법으로 옷과 신발을 말렸다.
씻지 않아서 거지꼴이었던 9명의 용병들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깨끗하게 목욕하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다듬었기에 훨씬 인물이 살아났다.
준은 용병들이 목욕할 동안 아침 식사를 준비해두었다.
모두들 어제처럼 두 곳에 식탁을 마련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들은 글리아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쳐보다가 준과 눈이 마주치자 찔끔거렸다.
식사가 끝나자 준은 준비해두었던 별모양의 브로치 13개를 보여준 뒤 자신부터 왼쪽 가슴에 달았다. 은을 녹여서 만든 별모양의 브로치였다. 그런 뒤 나머지를 나누어주었다.
“모두들 잘 들어. 방금 나누어준 브로치는 실드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다. 5서클 마법사의 공격마법까지 막아낼 수 있으니 방어력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용병들은 그제야 준이 가죽갑옷을 수거해간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방어력이라면 화살공격이나 마법사의 공격마법에도 끄떡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패트릭은 검사였기에 보호막이 걸려 있는 브로치가 아주 유용했다. 글리아나와 세브리노는 마법을 익혔기에 필요 없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실드마법이 걸려 있는 브로치 아티팩트는 자동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작동되는 것이기에 위급할 때 아주 유용하다.
아티팩트는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지만 9서클의 마법실력을 가진 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준, 고마워.”
“준 님, 정말 고맙습니다.”
“허허, 저는 마법사인데도 불구하고 이걸 받으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고맙게 받겠습니다.”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의 고맙다는 말에 준은 기분이 좋았다. 꼭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칭찬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힘이 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였다.
“너희 9명은 당분간 좀 불편해도 참아라. 브란스 남작령까지 가면 너희들의 옷과 말을 구입해주마.”
“예.”
“자, 그럼 길을 떠나야 하니 모두들 밖으로 나가자.”
이들이 모두 게르 밖으로 나오자 준은 게르를 다시 수거하기 위해서 마법주문을 중얼거렸다.
촤르르륵.
설치와 마찬가지로 수거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변하자 그것을 집어 마법주머니 속에 넣었다.
“출발!”
준과 글리아나,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말을 타고 이동했지만 9명의 용병들은 말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걸었다.
급할 것이 없었기에 이들은 천천히 브란스 남작령을 향해 이동했다.
준과 그 일행은 해질녘이 될 때까지 이동했지만 오도치 상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야영지를 잡아야 하기에 준은 길가에서 100m 정도 벗어난 풀밭에 자리를 잡았다.
사방 3km 정도는 평지였지만 그것을 넘어가면 약간 경사진 언덕들이 보였다.
“오늘은 여기에서 야영한다.”
“예.”
종이 된 9명의 용병들 중 헌트가 대표로 대답했다.
노페르슈롱에서 내린 준은 게르를 꺼내어 주문을 중얼거렸다.
게르가 설치되자, 모두 말을 끌고 들어갔다.
오늘 저녁 식사 준비는 이번에 종이 된 9명의 용병들 중에서 제법 음식 솜씨가 좋은 하그리라는 자가 하게 되었다.
준은 식재료와 부엌칼, 냄비를 비롯해 각종 식기까지 아공간 속에서 꺼내주고는 게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게르를 중심으로 정삼각형의 꼭짓점인 25m 지점에 쇠말뚝을 박았다.
쇠말뚝은 손가락 세 개 정도의 굵기에 길이가 약 30cm 정도 되었다. 그것을 25cm 정도 박아 넣었다. 쇠말뚝은 알람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였다. 침입자가 500m 내로 접근하면 알람이 울리도록 되어 있었다. 마치 소형 레이더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불청객들이 은밀하게 접근하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어.’
해는 어느덧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준은 뒤돌아 게르로 걸어가더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닥불이 타오르고는 있었지만 아직 저녁 식사를 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했고, 별달리 하는 일이 없었기에 지루함이 느껴져서 뮤직폰을 꺼내었다. 나팔꽃 모양의 확성기를 끼우고는 소리버튼을 돌렸다.
따라라라, 딴따라라.
음유시인의 경음악이 먼저 흘러나오자 모두들 놀라면서 준을 쳐다보았다. 다시 책상위에 놓인 신기하게 생긴 뮤직폰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었다.
경음악이 나오다가 여자 음유시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들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글리아나도 호기심으로 준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음유시인의 음악과 노래 말이야.”
“어때, 괜찮아?”
“응.”
“이게 그렇게 좋아?”
“이런 물건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너무 좋아.”
“후후, 내가 만든 거야. 세상에는 아직 없는 물건이지.”
“정말? 와!”
“그렇다니까, 다른 것도 보여줄까?”
“다른 것도 있어?”
“그럼. 이번에는 특이한 것을 보여주지.”
준이 아공간 속에서 꺼낸 것은 히터였다.
글리아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외형이 고급스러운 게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뭐야?”
“이건 히터라는 물건인데 여기에서 따뜻한 바람이 솔솔 나와서 실내 공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정말이야?”
“그래. 그럼 직접 틀어줄 테니 잘 봐.”
준이 히터의 버튼을 옆으로 돌리자 그의 말대로 온풍구 속에서 따뜻한 바람이 솔솔 나왔다.
모닥불 때문에 그리 쌀쌀하지는 않았지만 히터 때문에 실내 공기가 금세 훈훈해졌다.
“우와, 정말이잖아? 너무 신기해.”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다보니 어느덧 하그리가 식사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이들은 아름다운 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으면서 즐거운 식사를 했다.
세브리노는 마법사답게 히터와 뮤직폰에 호기심이 일어 살펴본다고 여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글리아나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동화책을 읽으면서 귀로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다.
준은 글리아나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글리아나, 선물이니 받아.”
“선물? 뭔데?”
“거울이라는 건데 너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 아주 요긴한 물건이야.”
글리아나는 준이 내민 것을 받았다. 그것은 보석함이었다. 보석함을 열었더니 손거울이 있었다.
“어머, 너무 예뻐!”
거울을 바라보다가 아름다운 얼굴이 보이자 깜짝 놀랐다.
그러자 준이 말하였다.
“겁먹지 마. 그건 네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거야.”
그제야 조심스럽게 손거울을 다시 보았다. 그 거울 속에는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이…이게 정말 나야?”
“그래, 예쁘지?”
“…….”
글리아나는 세수를 할 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처럼 깨끗하게 본 적은 없었다. 손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자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 이래서 인간족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거였어.’
글리아나는 자신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는 자신에게 반해버렸다. 그래서 준에게서 손거울을 선물 받은 이후 수시로 손거울을 보면서 즐거워하게 되었다.
준은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만들어보나 고민했다. 그때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로 우산이었다.
비가 올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평상시에 손에 들고 다니다가 공격무기나 방어마법을 새겨 넣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우산이 완성되었다.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체크무늬가 들어간 옷을 한 벌 찢어서 사용했다. 물이 스며들면 안 되기에 방수기능을 위해서 마법약물을 약간 사용했다. 우산의 살에는 금을 녹여서 칠하였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손잡이였는데, 여기에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까지 사용했다.
단순하게 보석을 박는 게 아니라 마법의 시동어를 외치고 누르면 작동하게 되어 있는 버튼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손잡이에는 마법약물을 주입해 각종 마법을 새겨 넣었다.
우산이 조금 큰 편이었기에 세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후후후, 가지고 다니면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겠어.”
이로써 준의 비밀 무기인 아티팩트가 또 하나 만들어졌다.
일단 마법주머니 속에 우산 아티팩트를 집어넣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아침이 되려면 2~3시간 정도 남았기에 약간이라도 자두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