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66화 (66/284)

0066 / 0284 ----------------------------------------------

제3권  이방인

스윽.

준의 손짓에 허공으로 떠오른 물건들은 고속으로 회전하였고, 다이아몬드를 표면에 살짝 갔다대자 고르지 못한 면이 깨끗하게 깎이면서 광택까지 났다.

별모양의 은과 톱니바퀴 모양의 금은 액세서리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그것을 다시 금속판에 내려놓고 마법약물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깃털펜으로 찍어서 두 가지 물건에 마법진을 새기는 정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후 18개의 물건에 모두 새겨 넣을 수 있었다.

나직하게 주문을 중얼거리자 18개의 물건에서 기이한 빛이 내뿜어지더니 거짓말처럼 순간 사라져버렸다. 각종 도형과 룬문자를 새겨 넣은 것들도 스며든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후후, 유용하게 사용될 공격마법 무기가 완성되었어.’

실험도 해보지 않고 그대로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향로 같은 모양의 쇠그릇 속에다가 여러 가지 재료를 집어넣었다. 향로 속에는 화염계 마법진이 새겨져 있어서 불길히 활활 타올랐고, 온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900도 정도가 되자 여러 가지 재료들이 녹아 액체로 변하였다.

준은 염력을 이용하여 액체를 공중으로 끌어당겨 의지로 형태를 만들었다. 물 컵과 맥주잔, 크기가 다른 접시와 각종 특이한 모양의 병이었다. 또한 손잡이가 달린 유리판과 원판, 직사각형도 만들었다.

뜨거웠던 열이 조금 식자 투명한 유리로 만든 것들을 금속판 위에 살짝 내려놓았다.

“마법서에 나와 있는 유리제조법대로 재료를 녹여서 만들어 보았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만들어졌어.”

원래 유리는 틀에 액체를 부어서 만드는 방법과 파이프와 같은 막대를 입에 대고 풍선처럼 불어서 만드는 방법이 있다. 기술이 없는 준은 좀 더 손쉬운 방법인 염력을 이용하였기에 생각한 모양대로 잘 만들어진 것이다.

유리판으로는 거울을 만들어야 하기에 은덩이를 가열해 녹인 다음 그것을 유리판 뒷면에 잘 칠하여 입혔다. 그랬더니 반사율이 좋아서인지 준의 모습이 잘 보였다.

“후후, 그런대로 쓸 만한 거울이 만들어졌군.”

준은 어지럽게 널어놓았던 것을 수거해 전부 아공간 속에 넣었다. 유리 공예품과 거울은 서서히 식혀야 하기에 책상에 그대로 두었다.

“글리아나, 오늘은 특별히 더 할일이 없으니까 술 한잔하는 게 어때?”

“술? 좋아.”

주우욱.

준은 술통의 술을 금속 잔에 부은 뒤 글리아나에게 내밀었다. 자신의 잔에도 채우고는 잔을 들어 마셨다.

벌컥벌컥.

“아, 시원해.”

“음, 역시 맥주는 시원한 게 맛있어.”

과일 안주를 하나 집어먹던 글리아나는 다시 잔을 들어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준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패트릭과 세브리노를 쳐다보았다.

“술 한잔하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게 있나요? 어서 와서 한잔씩들 하세요.”

글리아나가 나서서 대답해버렸지만 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락했다. 그러자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주우욱.

술을 부어주자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잔을 들어 마셨다.

“아, 정말 시원한 맥주입니다.”

“시원하니까 맥주가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한마디씩 하자 준이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맥주라는 술은 특히 온도가 중요한데, 이렇게 차갑게 해서 마시면 시원하고 더 맛있지.”

“온도가 뭡니까?”

“온도라는 것은 덥고 찬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야.”

“아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술이라는 것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어떤 술은 차갑게 마셔야 맛있고, 또 어떤 것은 따뜻하게 해야 더 맛있어.”

“준 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 들어가 보통 술집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면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지 못했거든요.”

“시원할 때 더 마셔.”

“예, 고맙습니다. 그럼 좀 더 마시겠습니다.”

맥주를 주고받자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밤이 늦은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하고 자는 게 좋겠는데?”

준이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를 돌아가면서 바라보자 글리아나가 대답했다.

“알았어. 나도 그만 마시고 싶어.”

“준 님, 잘 마셨습니다.”

“허허, 저도 모처럼 맥주를 많이 마셔본 것 같습니다.”

“술이라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 기분 좋게 마시는 게 제일이지. 내가 치울 테니 침대로 가.”

“준 님, 제가 치우겠습니다.”

“아냐, 패트릭. 내가 할 테니 모두 가서 자.”

“알겠습니다. 그럼.”

술자리를 치운 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천왕대심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술기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기에 몸속에는 알코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책상위에 놓인 것들은 이제 전부 열이 식어 있었다.

‘음, 이 정도면 쓸 만하겠어.’

준이 만든 유리 공예품과 거울은 생각했던 것만큼 괜찮았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들처럼 완벽하지는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수공예품이라 생각하면 좋았다.

스스스스.

아공간이 공중에 나타나더니 입구가 열렸다.

스윽.

준의 손짓에 따라 유리 공예품과 거울, 책상까지도 전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아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츠파파팟.

아공간의 문이 닫히면서 사라져버리자 준은 약간이라도 잠을 자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3일째 날이 밝았다.

채채챙, 파팟.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에 준은 잠에서 깨어났다.

“으응, 무슨 소리지?”

소리를 들어보니 용병들끼리 대련하는 모양이었다.

전혀 다급하거나 적들과 싸우는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두 명이 서로 무기를 휘두르면서 간간히 부딪히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준은 호기심에 게르 밖으로 나와 보았다. 어젯밤에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고,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자다보니 평소보다 약 1시간 정도 늦은 모양이었다.

오도치 상단의 일꾼들은 아침을 준비 중이었고, 용병들은 각자 몸을 풀고 있었는데, 그들 중 두 명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고 대련 중이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롱소드를 휘둘렀지만 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의 칼싸움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쩝, 별일도 아닌 일에 잠만 깨운 꼴이군.’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뒤돌아 게르로 돌아가려는데, 그의 귓가로 무엇인가 날아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퍼억, 부르르.

한 발의 화살이 풀밭에 박혀 끝을 약간 흔들거리고 있었다.

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상체를 흔드는 것으로 화살을 피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의 용병들이 서 있었다. 그중 오른쪽에 서 있는 자의 손에 보우가 쥐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자가 쏜 것이었다.

“아, 미안합니다. 실수였어요.”

역시 준의 예상대로였다. 말로는 사과했지만 표정에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흥, 이것들이 감히 나에게 도발을 해?!’

화살을 수거하러 온 그자가 화살을 집어서 뒤돌아서자 준이 앞을 막고 섰다.

“흥, 감히 네놈이 기사인 나에게 화살을 날렸느냐?”

“마법사인줄 알았는데 기사였어요?”

말투부터가 아주 건방진 자였다.

준은 따끔한 가르침을 내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쉬잇, 퍼억!

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느끼기도 전에 그자는 가슴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뒤로 튕기듯 4~5m를 날아가 떨어졌다.

“크으으, 뭐…뭐였지?”

그자는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났다.

“미안, 나도 모르게 팔을 휘둘렀는데, 왜 앞을 막고 있었어?”

그제야 용병은 준이 자신을 공격했음을 알게 되었다.

“으, 사람이 앞에 서 있는데 팔을 휘두르면 어떻게 합니까?”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는데, 네놈이 감히 기사인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냐?”

“아…아니, 그게 아니라…….”

“닥쳐라! 감히 변명이나 하려하다니. 혼 좀 내주어야겠군.”

쉬이잇.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준은 용병의 가슴에 주먹을 두 방 날렸다. 마무리는 발차기였다.

퍼퍼퍽!

용병은 준의 공격이 워낙 빨라서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모두 맞았기에 입에서 피를 내뿜으면서 쓰러졌다.

“크으으, 으으.”

고통스러운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그때 두 명의 용병들이 다가와 그를 살펴보았다. 그중 한 명이 준을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까불면 맞는다는 교훈을 내려준 것뿐이다.”

“뭐…뭐라구요?”

“허, 이놈이 기사인 나에게 감히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대꾸를 하네?”

퍼퍽, 빠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준은 감히 말대꾸한 용병에게 매서운 주먹연타를 먹였다. 이에 그 용병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옆에 멍청하게 서 있는 놈에게도 가볍게 손가락으로 콕콕 찍는 듯한 공격을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슴에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주저앉아버렸다.

“크으, 가만히 있는 나는 왜!”

“흥, 동료이니까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지.”

준은 뒤돌아 게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위에 있던 용병들이 달려왔다.

준에게 얻어맞은 세 명의 용병들은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몇 시간은 휴식을 취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크리슨과 용병대장인 큐브릭은 같이 차를 마시고 있다가 수하들의 보고를 받고는 조금 황당해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단의 뒤에서 따라오는 블루 로브를 입은 이상한 자에게 먼저 화살로 도발했다가 개같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명에게 용병 세 명이 말이다.

더욱 웃기는 건 풍기는 분위기가 마법사 같아 보였는데, 기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믿기 힘들었다. 자신이 아는 한 절대로 준과 같은 특이한 복장을 하는 기사는 없기 때문이다.

“이거야 원, 믿지 않을 수도 없고.”

“큐브릭 대장, 일단은 수하들이 먼저 도발한 일이니 이쯤에서 마무리 하는 게 좋겠소. 그자가 기사라고 신분을 밝힌 상황에서 또다시 도발한다면 수하가 죽을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다.”

“하하, 그자가 기사였다니. 재미있군.”

휘이이이.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굵고 탐스러운 함박눈을 토해내고 있었다. 보이는 건 온통 눈으로 뒤덮인 대지였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니 일을 잊어버리겠는데?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는 게 좋겠어.”

그는 백색 로브에 후드를 눌러쓴 아놀드였다.

아이스랜드와 대륙의 경계지점까지 다다랐는데, 정확하게는 마케리안 대륙의 북부 제국인 모르칸 제국의 국경과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스윽.

손을 앞으로 내밀자 눈으로 쌓인 언덕의 한 지점에 구멍이 생기면서 점점 넓어졌다. 인공적인 굴로 아놀드가 가진 염력의 힘이었다.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되었기에 둘레가 2m 정도에 깊이도 3m 정도로 얼음 동굴을 만들어 들어갔다.

아놀드는 마법주머니 속에서 두꺼운 동물의 가죽을 꺼내어 바닥에 깔고 앉았다. 그리고 삼발이를 꺼내놓고 다시 주전자를 꺼내어 깨끗한 눈덩이를 집어넣은 다음 위에 올려놓았다.

“뜨거운 불길이여, 일어나라. 파이어(fire)!”

화르르르.

삼발이에서 불길이 일어나면서 주위가 훈훈해졌다. 주전자에 들어 있던 눈덩이도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했다.

1분 정도 지났을까?

벌써 주전자의 물에 기포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끓어오르려고 했다. 그제야 아놀드는 마법주머니 속에서 꺼낸 찻잎을 넣고 차를 끓였다.

후루룩.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차를 마시니 추위에 절어 있던 몸이 풀리는 듯했다.

“이제 마케리안 대륙이 나타날 때도 된 것 같은데… 조금 더 가야하나?”

시간이 흘러 주전자에 들어 있는 차를 다 마셔도 함박눈은 그칠 줄 몰랐다. 그래서 아예 식사까지 해결하자는 생각에 마법주머니 속에서 식재료를 꺼내어 솥에 기름을 두르고 요리를 만들었다. 일종의 고기볶음 요리였으며, 제법 맛있었다.

“쉽게 그칠 눈이 아니구나. 건곤신공의 심법을 운용해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기를 더 흡수하는 게 낫겠어.”

그냥 가부좌를 틀어서 심법을 운용하다가 기습공격을 당한다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지만 아놀드는 걱정하지 않았다. 건곤신공을 운용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기막이 펼쳐져서 물리적인 공격에도 몸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놀드의 건곤신공의 단계는 높았기에 강기막이 한층 더 두터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