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64화 (6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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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처음부터 이놈을 잡을 때 단검이나 가지고 있던 롱소드를 사용했으면 훨씬 쉬웠을 테지만, 조금 번거롭더라도 이렇게 상처 없이 때려잡으면 가죽의 손상이 없어서 팔더라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워낙 덩치가 큰 놈이라서 그런지 가죽도 상당히 컸다. 상아처럼 생긴 이빨 두 개도 제법 컸기에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 잘 챙겼다.

덩치가 커서 고기도 많았지만 부위별로 잘 나누어 잘랐다. 피와 내장은 물속에다 버리고 고기만 취하였다. 물고기와 잡은 괴물을 마법주머니 속에 잘 넣었다.

아이스랜드는 혹독한 추위를 가진 땅이라 사냥감이 그리 풍족하지 못했었는데, 이곳은 기후도 따뜻하고 환경이 좋아서 각종 물고기와 동물들도 많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며칠 더 머물면서 영양 보충도 하고 그것들을 잡아서 대륙으로 들어갈 때까지 식량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짹짹짹.

이곳에 온 이후로 아침이면 어김없이 산새들이 날아와 준을 깨워주었다.

새벽녘에 잠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 준은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떠나는 날이구나. 그동안 올가에 있으면서 아주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각종 아티팩트도 충분하게 만들고 말이야.”

보통 5서클 유저 이하의 마법사들은 실력 부족으로 아티팩트를 만들지 못하였다. 그 이상의 마법실력을 가진 자들도 마법연구에 집중하느라 자금이 부족할 때만 아티팩트를 만들어 팔아서 그것으로 마법재료를 구입하거나 해서 연구를 한다.

더욱이 7서클 정도 되면 왕국의 궁정마법사 정도 되는 높은 직위에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귀족이나 왕족의 요청으로 한 번씩 마법주머니나 공격마법이 걸린 마법무구를 만든다.

그렇기에 수요는 많은데 비해 아티팩트가 귀한 편이다.

하지만 준은 엘프의 도움으로 9서클급 마법사가 되었기에 마법의 아티팩트를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한 보통 마법사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만들었다.

마법사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자신의 마법실력으로 만들면 되었기에 굳이 힘들게 아티팩트 같은 것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준은 아니었다.

아티팩트 제작에 재미를 느껴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신물품을 이미 여러 개나 만들어두었다. 앞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었다.

준은 따뜻한 물이 채워져 있는 목간통에 들어가 때를 불린 후 나와 염력을 이용해 깔끔하게 벗겼다. 그런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겉에는 파란색의 로브를 차려 입었다.

칙칙한 회색 로브보다는 그게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후후, 이만하면 잘생기고 매력적이야.”

방을 나선 준은 글리아나, 패트릭과 세브리노는 루이 파블로 상단주와 함께 마지막 아침 식사를 했다.

“허허. 기사님, 이렇게 떠나신다고 하니 섭섭합니다.”

“루이 파블로 상단주의 호의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이곳에 오실 일이 있으시면 들러주십시오. 혹시 제가 상행으로 없더라도 하인들이나 집사에게 말해놓을 테니 안심하고 지내시면 될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렇게 이들은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미 이들이 타고 갈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준의 말인 노페르슈롱은 그동안 잘 먹고 지냈지만 마구간에서만 지내다보니 넓은 들판을 마음껏 달리고 싶어 했다.

그런 상황에 준이 모습을 보이자 반갑게 맞이했다.

이히힝, 푸르르!

“하하, 녀석도. 내가 그렇게 반가웠느냐?”

스윽, 슥슥.

노페르슈롱의 볼과 이마를 쓰다듬던 준은 말에 올랐다. 루이 파블로 상단주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다가닥 다가닥.

천천히 멀어지는 준과 그 일행을 루이 파블로 상단주는 바라보았다.

‘이제 저렇게 떠나면 두 번 다시는 보기 힘들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큰 인물이었어.’

도시 올가의 서문에서 약간 떨어진 길가에는 오도치 상단이 모여 있었다.

국경 영지인 브란스 남작령까지는 약 7일 정도 걸린다. 비록 아케비안 공작령과 나뉘어 있지만 인접한 곳이기에 아케비안 공작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영지라 할 수 있었다.

오도치 상단은 짐마차 15대와 용병 70명, 상단의 일꾼들까지 포함하면 전부 140명 정도 되었다.

준 일행은 그들에게 고용된 것이 아니고, 다만 목적지까지 동행할 뿐이었다. 그래서 야영할 때와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모든 것은 별도로 해야만 했다.

준의 곁으로 다가온 패트릭은 그 같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럼 자네의 말을 요약하면, 우리는 저들의 뒤를 따라만 갈뿐 모든 것은 별도로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만 가도 될 것을 괜한 짓을 한 건 아닌가?”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행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여러 가지 위험상황에 대처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위험에 처한다면 저들이지 우리는 아닐 테니. 다만 초행길이니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어.”

“사실… 저도 그 때문에 상단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간에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저들의 뒤를 따라 가보세.”

“예, 준 님. 이렇게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드디어 오도치 상단이 출발하였다.

도시 올가의 서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옆으로 비키며 길을 내어주었다.

이들은 천천히 서문을 빠져 나갔다.

길은 제법 넓고 좋은 편이기에 이동하는데 그리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메마른 땅이라 흙먼지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되자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야영을 하게 되었다. 사방이 평지였고, 주변의 땅에는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오도치 상단은 용병을 포함해 140명 정도가 되었기에 짐마차를 한곳에 모으고 일부는 천막을 쳤다. 용병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한두 번 야영을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준도 야영을 하기 위해서 노페르슈롱의 등에서 내렸다.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는 잠시 준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준은 주위를 잠시 둘러본 뒤 마침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오도치 상단의 야영지와는 약 25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준이 마법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가볍게 던지자 그것은 땅에 떨어졌다.

촤라라라락.

금속음과 함께 뭔가가 솟아올랐다. 둥근 원형의 천막이었다.

그 모습에 패트릭과 세브리노, 글리아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무척 신기해 보였는지 패트릭이 준에게 물었다.

“준 님, 저게 뭡니까?”

“천막보다는 조금 더 좋은 일종의 이동식 집이라 생각하면 돼. 이름은 게르(Ger)라고 하지.”

“게르라고요?”

“그래. 안은 훨씬 넓으니 편하고 좋을 거야.”

“저것도 아티팩트 입니까?”

“그래. 원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설치해야 하는데, 그럼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서 도시 올가에 있을 때 만들어봤어.”

“아, 저런 획기적인 것은 처음 봅니다.”

“그럴 거야. 내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말이야. 말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지.”

“저 안에 말까지 끌고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지. 저래보여도 대방어마법진을 새겨 넣었기에 어지간한 물리적 공격에는 끄덕도 없어. 저 안에 들어가서 모닥불을 피우고 자면 얼마나 아득한데.”

“아!”

준이 앞장서서 노페르슈롱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라 들어가 보았다.

겉에서 보면 5m 정도의 지름 밖에는 안 되어 보이지만 안은 엄청나게 넓었다.

세브리노는 마법사라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걸 알았지만 패트릭은 미처 알지 못했다. 엘프인 글리아나는 마법을 배웠기에 잘 알고 있었다.

몽골의 이동식 집인 게르 안은 지름이 50m 정도로 아주 넓은 공간이었다. 한쪽에는 마구간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그곳에 말 네 마리를 묶어놓았다. 가운데에는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천장까지 굴뚝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장작이 잘 쌓여 있었기에 그걸 집어 와서 쌓은 뒤 불을 붙였다.

화르르.

불길이 타오르자 게르 안은 금방 훈훈해졌다.

비록 나무로 만든 침대였지만 그냥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준 님, 침대도 있었습니까?”

“그것뿐인 줄 아나?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용변을 볼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어. 또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도 있지.”

“아, 어떻게 이런 걸 다 만드셨는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패트릭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세브리노도 비록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준의 마법실력을 인정했다.

‘아! 나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없는 마법실력이구나! 정말 대단해!’

조금 특이하게 생긴 작은 천막 속으로 준 일행이 들어가 버리자 용병들과 상단의 일꾼들은 어떻게 말까지 전부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무척 신기해했다.

호기심에 한 용병이 걸어와 가죽으로 된 게르를 만졌다.

파지지직.

“아아악!”

전격계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을 모르고 그냥 만졌다가 감전되어서 그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재빨리 잡았던 손을 놓자 전기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지만 그는 겁을 먹었다.

스윽.

게르의 출입구가 젖혀지면서 준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오?”

“죄송합니다. 호기심에 그만 이것을 만졌더니 이렇습니다.”

“조심하시오. 이 게르는 보호막과 전격계 마법이 걸려 있어서 함부로 만지면 큰일 나오.”

“이젠 알았으니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겁먹은 용병은 뒤돌아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버렸다.

스윽.

준은 다시 게르 속으로 사라졌다.

준이 일행들에게 만들어준 요리는 밥과 갈비 소금구이였다. 샐러드와 과일도 준비해 테이블에 차렸다.

갈비 소금구이는 처음 보는 거라 패트릭이 물었다.

“이게 무슨 요리입니까?”

“이건 라이스라는 것이고, 이건 소의 갈비뼈와 그것에 붙어 있는 고기라네. 갈비라고 하지.”

“갈비요?”

“그래. 정식 명칭은 갈비 소금구이야.”

“구워서인지 맛있게 보입니다.”

“먹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맛있지.”

쩝쩝.

패트릭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준의 말대로 기가 막힌 맛이었다.

“우와, 정말 맛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겁니까?”

“후후, 별것 없어. 그냥 소금을 약간 뿌리고 구우면 돼.”

“단지 그것만으로 이렇게 맛있는 겁니까?”

“비법이라고 하면 장작에 있어. 지금 이 나무는 참나무라는 것으로, 고기를 굽게 되면 특유의 맛이 생겨나서 더 맛있지.”

“아아, 너무 맛있습니다.”

“준, 너무 맛있어.”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글리아나도 아주 맛있게 먹을 정도였으니, 세브리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은 밥과 갈비 소금구이로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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