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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마법주머니 속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살펴보던 중 현재 자신의 약지에 끼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와 마법서 한 권을 찾아내었다. 7서클까지의 마법수식과 공식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마법서였다.
아놀드는 툰그족에게서 마케리안 대륙어뿐만 아니라 마법의 문자인 룬문자까지 배울 수 있었다. 그에게 글을 가르쳐준 이가 바로 3서클의 경지에 있는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마법을 익힌 그가 어떻게 툰그족에서 함께 살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에 마법서를 읽기 시작했고, 마법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무공과 다른 점이 많았지만 마법을 익혀두면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마법서를 보면서 익힌다는 게 그만 눈보라가 그쳐도 동굴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동굴 속에서 마법을 익히면서 6개월 정도를 보내고 밖으로 나왔더니, 툰그족은 떠나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놀드는 마케리안 대륙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무조건 남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남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부족들을 만나면 약간의 식량과 길을 물을 수 있었기에 지난 2달간 이곳까지 온 것이다.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 난 후부터는 이상하게 힘이 넘쳤다. 건곤신공의 수련도 날로 높아졌고, 여러 가지 면으로 아주 유용했다.
사파이어 반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기에 아놀드는 그냥 반지를 손가락에 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것만으로도 염력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외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지난 두 달간의 성취는 건곤신공의 수련이 6성에서 7성으로 높아졌으며 내공도 두 배나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또한 마법은 이제 겨우 3서클에 불과하지만 8개월을 익힌 마법이기에 3서클이면 초스피드의 성취라 할 수 있었다.
아놀드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끼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는 신의 기운이 들어 있는 아티팩트였다.
바로 바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알려진 벤뵤르그였다.
준이 도시 올가에서 머문 지는 오늘로 15일째다.
처음에는 열흘 정도만 머물다가 떠나려고 했지만 특별히 바쁠 것도 없었으며, 아티팩트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여행을 떠날 줄 몰랐다.
글리아나라도 독촉해서 여행을 떠나야 했지만 그녀도 느긋한 성격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동화책에 빠진 것도 이유지만 파괴되거나 죽어가는 것을 소생시키는 벤겔미르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르니 더욱 급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패트릭은 그동안 체력을 회복하고, 검술수련에 빠져 날이 가는 줄 몰랐으며, 세브리노 또한 몸을 추스르는 한편으로 아티팩트를 제작하느라 정신없었다.
패트릭은 정신을 차리고는 먼저 스승인 세브리노를 찾아가서 이제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준도 그곳에 데려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고민에 빠졌다.
오전 내내 고민하던 패트릭은 이윽고 준을 찾아갔다.
새로운 아티팩트를 제조하는 데 성공한 준은 즐거운 표정으로 아공간 속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준 님, 저 패트릭입니다.”
“패트릭이 웬일이지? 들어오게.”
“고맙습니다.”
패트릭은 준의 방으로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인가?”
“저, 다름이 아니라 스승님과 저는 곧 도시 올가를 떠나 오이란트 왕국의 국경을 넘어서 러셀 왕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준 님께서는 어찌하실 겁니까?”
“나도 같이 갈 수 있냐고 묻는 건가?”
“그렇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시다면 같이 갔으면 하는데요.”
“특별히 향하는 곳도 없지만… 그곳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약 10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멀지는 않군?”
“예, 도시 올가에서 국경까지가 약 7일 정도 걸리고, 국경을 넘어 다시 3일 정도 걸리는 거리니 그리 먼 곳은 아닙니다.”
“알겠네. 같이 가겠네.”
“고…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상단이나 용병단이 국경까지라도 가는 게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게. 아무래도 같이 가는 게 여러 모로 좋겠군.”
패트릭이 나가서 알아보니 국경 영지인 브란스 남작령까지 가는 상단이 하나 있었다. 출발은 내일모레 아침에 하는데, 오도치 상단이었다.
짐마차 15대와 용병 70명, 상단의 일꾼들까지 포함하면 전부 140명 정도 되었다.
“준 님, 내일모레 아침에 출발하는 오도치 상단으로 국경 영지인 브란스 남작령까지 간다고 합니다.”
“규모는 어떻게 된다고 하던가?”
“예, 규모는 용병 70명에 상단의 일꾼까지 포함하면 전부 14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알겠네. 그렇게 알고 떠날 준비를 하겠네.”
“감사합니다. 저도 떠날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응해주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준은 루이 파블로 상단주와 글리아나에게도 내일모레 아침에 떠난다고 말해주었다.
슈슈슈슉.
바람을 가르면서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놀드였다. 눈과 얼음의 땅인 아이스랜드를 벗어나고자 대륙을 향해 계속 남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 높은 언덕위에 도착한 그는 전방을 내려다보았다.
온통 눈과 얼음인 데 비해 한곳에는 푸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열기에 녹색식물들이 자라나 있었다.
아이스랜드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 어떻게 눈과 얼음의 땅에 저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
아놀드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곳은 엄청난 기운을 날린 준의 작품이었다.
대륙의 북쪽 끝과 경계인 아이스랜드의 초입에는 얼마 전에 지각의 변동으로 인해서 땅이 솟아올라 거대한 섬이 하나 생성 되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약 10km 까지는 크게 변하였다.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유독 한여름의 날씨를 유지하게된 것이다. 눈과 얼음의 땅은 전부 녹아버려 따뜻한 수온을 유지했기에 생태계가 크게 변하였다. 물고기들이 대거 몰려와 살게 되었으며, 각종 동, 식물이 대거 이동해 와서 살게 되었다.
아이스랜드의 혹독한 추위에도 물은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
지각변동으로 솟아 있는 봉우리를 가진 섬 쪽으로 다가갈수록 공기가 더 따뜻하고 수온도 약간씩 높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놀드는 옷을 벗고 물에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모처럼 만의 목욕을 즐기려는 것이다.
물속에 있어서인지 때가 잘 불었고, 그것을 벗기느라 2시간 정도 물에서 목욕을 하였다. 입고 있었던 옷가지도 이미 전부 빨아서 한쪽에 잘 널어놓았었다.
마법주머니 속에서 가죽으로 된 수통 3개를 꺼내어 깨끗한 물을 가득 담아 다시 넣었다.
물속을 보니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아놀드는 그것을 잡아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스윽.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천천히 위로 치켜들자 신기하게도 팔뚝만 한 물고기 두 마리가 무형의 기운에 의해 물 밖으로 스르르 튀어나왔다. 염력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두 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그는 얼음 바닥에 내려놓았다.
물고기 두 마리가 펄떡거리면서 요동쳤지만 물 밖으로 나온 거라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곧 가만히 있었다. 다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인지 입만 움직였다.
스윽, 슥슥.
그는 단검을 하나 꺼내 능숙한 솜씨로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과 피를 제거했다.
한 마리는 포를 떠 회처럼 집어먹었고 한 마리는 칼집을 넣고 소금을 뿌렸다.
그는 오각형의 금속판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고 외쳤다.
“불길이여, 일어나라. 파이어(fire)!”
화르르.
오각형 금속판 위로 이글거리는 불길이 생성되었다.
그는 태연하게 그 불길 위에 석쇠에 올리더니 간간히 뒤집으면서 노릇하게 굽기 시작했고, 얼마 후 물고기 살에서 기름이 나오면서 맛있게 구워졌다.
쩝쩝, 후룩.
제법 큰 물고기라 회와 구이로 먹으니 배가 든든해졌다.
“고소한 게 정말 맛있군.”
두 마리의 물고기를 먹어치운 아놀드는 주전자에 물을 붓고 금속판 위에 올려놓았다.
물이 끓으면 차를 넣어 마시려는 것이다.
“이럴 게 아니라 물고기를 좀 잡아서 대륙으로 들어가기까지 식량으로 충당하는 게 좋겠어.”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두 눈을 감았다.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더 정확하게 감지하려는 것이었다.
무공과 하단전에 내공도 풍부해지고 넘치는 기운으로 인해 염력을 사용하는 능력까지 향상되었기에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잡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놀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물고기를 감지했는지 이번에도 양손을 천천히 가슴 위로 치켜들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전방의 지름 20m 정도의 물이 보이지 않는 기운에 의해 출렁거렸다. 이내 그 범위 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물고기가 무려 27마리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닥파닥.
물고기들은 요동쳤지만 소용없었다.
아놀드의 손짓에 따라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온 물고기는 얼음바닥에 놓여졌다.
그때 갑자기 그의 감각에 물속에서 빠른 속도로 헤엄쳐오고 있는 무엇인가가 감지되었다.
츄와아악!
그것은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 나오면서 아놀드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그런 허접한 수법에 당할 그가 아니었다. 가볍게 허공으로 도약해 공격을 피한 뒤 공중제비를 하면서 바닥에 내려섰다.
“이렇게 큰 놈은 처음 보는군.”
아놀드를 공격한 것은 몸체가 크고 물개나 바다코끼리와 유사하게 생긴 놈이었다. 육중한 몸체에 머리는 둥글고 눈은 작았다. 코는 짧고 넓으며 강하고, 바늘 같은 수염으로 덮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흰색이지만 어깨에는 주름이 져 있고 짧은 갈색털이 있었다. 4.3m로 거의 불곰의 두 배 정도였다.
무게도 엄청나게 나갈 것으로 보였다.
상아 같은 이빨이 두 개가 있고 가죽도 제법 좋아 보였다. 뒷지느러미가 있었고, 네 다리로는 육상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동물은 처음 본 아놀드는 그래도 굶주린 배를 채우고 싶은 건지 먼저 잡아 놓은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고기와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나 보군, 쯧쯧.”
일단은 물고기부터 먹으려고 그쪽으로 기어가자 아놀드는 양손에 내력을 끌어 모으더니 장력을 날렸다.
퍼억!
퀴에에에!
녀석은 장력을 한 방 맞더니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지르면서 고개를 돌려 아놀드 쪽으로 달려왔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빠른 몸놀림이었다.
아놀드는 가볍게 뒤로 공중제비를 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며 양손바닥을 앞으로 주욱 내밀었다.
“건곤구벽신권!”
푸르스름한 주먹 모양의 강기가 괴물에게 날아가 격중되었다. 워낙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퍼퍼퍼퍽!
퀘이에에엑!
녀석은 괴성을 다시 한 번 지르다가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물속으로 도망치려고 방향을 틀었다.
“흥! 그냥 보내줄 것 같으냐!”
스윽.
양손을 들어 올리자 1t은 훨씬 넘을 것 같은 괴물의 몸체가 스르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괴물은 깜짝 놀라면서 몸부림쳤다.
그 때문에 허공으로 떠오르는 게 주춤거릴 정도였지만 염력을 더 사용하자 5m 정도로 떠올랐다.
물과 반대 방향으로 손짓하자 그쪽으로 괴물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졌다. 이때 내력을 담은 아놀드의 발차기가 날아갔다.
퍼억!
쿠워어어어!
괴물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괴성과 붉은 피가 튀어나오며 얼음바닥에 떨어졌다.
쾅!
얼음바닥이 흔들렸다.
괴물은 아직은 살아 있는 모양인지 꿈틀거렸다.
아놀드는 허공으로 도약해 건곤구벽신권을 날렸다.
퍼퍼퍽!
괴물의 몸에 건곤구벽신권을 세 방 격중시켰기 때문일까?
괴물은 잠시 부르르 떨다 잠잠해졌다. 내장이 파열된 것인지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괴물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단검으로 먼저 잡아놓은 27마리의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제거했다.
물고기 손질이 모두 끝나자 이번에는 물개 괴물의 가죽을 조심스럽게 벗기기 시작했다.
툰그족과 4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사냥술을 배웠고, 지금과 같이 잡은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법도 배웠다. 이미 여러 번 해본 일이기에 능숙한 솜씨로 괴물의 가죽을 벗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