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62화 (6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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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이번에는 좀 더 오래 버텼지만 다시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 버렸다.

“그래, 준 님이 항상 하는 그 괴상한 앉은 자세를 취해보는 게 좋겠어.”

준이 취했던 가부좌를 따라해 보았지만 자세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결국 어렵게 자세를 잡는 데 성공하였지만 처음해보는 자세라서 그런지 불편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게 올바른 자세인 것 같아.”

가부좌가 조금씩 편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 쉬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히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보 수준이었지만 패트릭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휘이이이.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사방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이곳은 아이스랜드다.

처척.

누군가가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와 얼음의 언덕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백색 로브를 입은 자였는데,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키가 190cm 정도로 큰 편이며, 몸은 로브로 가려져 있었지만 호리하게 느껴졌다.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 양팔은 헐렁한 소매 속으로 교차해서 집어넣고 서 있었다.

“켈른 부족의 말로는 3일 정도만 더 가면 될 것이라고 했으니, 대륙에 다 와 가는군. 이제 대륙의 초입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아.”

하늘을 쳐다보자 저편에서 먹구름이 끼는 것처럼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날이 어두워지겠군. 적당한 곳을 찾아볼까?”

파팍!

그는 눈과 얼음이 뒤섞인 바닥을 발로 튕기면서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몸놀림이 무척 가벼운 것으로 보아서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슈우욱.

하늘을 날아가다가 공중제비를 하면서 얼음 언덕 밑의 경사면에 내려섰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원을 그리자 무형의 기운에 얼음구멍이 생기더니 점점 커졌다. 지름이 2m 정도 되는 큰 구멍이 생기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저벅저벅.

얼음 구멍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굴이 생겨났다.

그는 그렇게 약 7~8m 정도 들어가더니 멈추었다.

손으로 휘젓자 지름이 약 10m 정도 되는 얼음 동굴이 만들어졌다.

들어왔던 구멍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스르르 얼음이 다시 얼면서 입구가 사라지고 있었다.

스윽.

그는 허리춤에서 백곰 가죽을 꺼내었다.

자세히 보니 허리춤에는 검은 천으로 된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마법주머니인 모양이었다.

그는 얼음 바닥에 백곰 가죽을 깔고 그 위에 앉더니 이번에는 다시 따뜻한 모포를 한쪽에 내려놓고는 삼발이를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금속판이 가운데 부분에 있었는데, 각종 도형과 룬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금속 주전자를 마법주머니 속에서 꺼내더니 얼음벽면에서 적당하게 얼음을 뜯어내어 주전자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금속판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은 뒤 외쳤다.

“파이어(fire)!”

화르르.

금속판 위에 공간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생성되어 주전자를 달구었다.

열기가 상당한 듯 얼음동굴 안이 금방 훈훈해졌다.

그는 야외용 작은 나무 탁자를 꺼내어 놓고는 그 앞에 앉더니 모포로 무릎을 잘 덮었다.

주전자 속에 들어 있던 얼음은 이제 다 녹아서 물이 되더니 기포기 하나씩 생겼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물이 팔팔 끓을 것 같았다.

스윽.

그는 이내 주머니 속에서 작은 나무통을 하나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서 말린 잎을 조금 집어서 주전자 속에 넣었다. 차를 끓이려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주전자에서 김이 올라왔다. 손짓만으로 주전자가 공중에 떠서 날아오더니 나무잔에 찻물이 떨어졌다.

쪼르르.

찻물이 나무잔에 떨어졌지만 한 방울도 밖으로 튀지 않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은 염력 덕에 가능했다.

후루룩, 훅훅.

그는 김을 불어가면서 차를 조금씩 마시며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차를 한잔 다 마시고는 다시 찻물을 따르자 나직한 그의 독백이 이어졌다.

“아, 이제야 몸이 훈훈해지는군. 정말이지 이 혹독한 추위는 적응이 안 돼.”

우물우물.

그는 말린 고기를 꺼내더니 씹어 먹으면서 차도 간간히 마셨다.

스윽.

후드를 벗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머리카락은 흔하지 않은 검은색이었으며, 얼굴도 서양인들이 아니라 동양인, 즉 전형적인 중국 사람의 얼굴이었다. 머리카락은 뒤로 모두 넘겨 꽈배기처럼 꼬아 놓은 스타일로, 목을 휘감아놓았다.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남자다운 얼굴이었으며, 팔자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눈으로, 검은색 눈동자에 깊고 맑은 눈이었다.

전체적으로 무인의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강인함이 느껴졌다.

이런 얼굴은 대륙을 통틀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낯선 세상에 떨어진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 가는군.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그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어 그런 생각을 지워버리고 다시 따끈한 차를 마셨다. 주전자의 차를 한통 다 마시더니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다시 염력을 이용해서 얼음벽의 일부를 뜯어서 주전자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동굴의 끝으로 걸어갔다.

쪼르르.

그는 옷을 벗더니 소변을 본 뒤 다시 입었다. 소변은 얼음과 눈이 뒤섞여 바닥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는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양손이 드러났다. 특이하게도 왼손가락이 4개로, 하나 부족했다.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넷째 손가락, 즉 약지(藥指)라고 하는 손가락에는 푸른빛의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 있었다.

보통의 반지처럼 링에 보석이 박힌 것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사파이어를 깎아서 만들었는지 전체가 하나의 사파이어로 되어 있었다. 새끼손가락은 오래전에 잘렸는지 흉터가 아주 오래되어 보였다.

그는 입고 있는 로브를 벗어 한쪽에 내려놓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흐읍, 후욱, 훅.

깊고 가는 숨을 깊숙하게 들이 마신 뒤 그것을 천천히 나누어서 다시 내뿜었다. 무인들이 말하는 심법을 운용중인 것이다.

우우우웅.

약지에 끼고 있던 사파이어 반지에서 갑자기 푸른빛이 내뿜어지면서 얼음동굴 속을 온통 푸른빛으로 뒤덮었다. 그 푸른빛에서 강력한 바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없는데 벽면과 천장의 얼음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심법을 운용 중인 무형의 강기막에 가로 막혀서 얼음 가루가 튕겨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계속 심법을 운용했다.

사파이어 반지가 내뿜는 푸른빛은 그의 손을 타고 이동하더니 하단전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스르르.

신기하게도 그는 공중으로 가부좌를 한 상태로 떠올랐다.

약 1m 정도의 공중에 떠오르다가 멈추었다.

그런 상태로 한참을 보내다가 스르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떠졌다.

“하하하, 대기에 기가 충만해선지 나날이 건곤신공(乾坤神功)의 성취가 높아지는군. 이 정도라면 7성 정도의 경지겠어.”

기분이 좋아진 그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는 산등성의 한 야산에서 화전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화전민의 마을은 30가구 정도가 밭을 일구면서 살았는데, 그곳에서는 그냥 편하게 ‘룡(龍)’이라 불렸다.

그 마을에는 예전에 선비였던 사람이 살고 있었기에 그에게서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어느 날 약초를 캐러 야산을 돌아다니다가 절벽가의 약간 밑에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 깊지 않은 작은 동굴이었는데, 죽은 지 오래된 백골 한구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미 옷가지는 모두 삭아서 누더기처럼 변해 있었고, 그의 것으로 보이는 칼도 녹이 슬고 이가 군데군데 빠져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백골의 옷가지에서 삐죽 튀어나온 것이 있어 살펴보았더니 낡은 책 한 권이 있었다. 룡이 그걸 집으려고 하자 백골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약간의 미안함이 느껴졌지만 물이 이미 엎질러져버린 뒤였다.

그냥 나오려다가 호기심에 이끌려서 책을 살펴보았더니 그림과 글씨가 가득한 무경인 건곤신공(乾坤神功)이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제법 두꺼운 무경이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앞부분만 약간 남아 있었다.

그것도 군데군데 떨어지고 곰팡이가 슬어서 전혀 쓸모가 없어 보였지만 한창 글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 있었던 룡은 그것을 읽어 보았다.

기본 심법인 건곤신공(乾坤神功), 도법인 건곤탈백도(乾坤奪魄刀), 신법인 건곤신풍(乾坤神風), 보법인 건곤신보(乾坤神步), 장법인 건곤신장(乾坤神掌)과 혼원장(混元掌), 권법인 건곤구벽신권(乾坤九劈神拳)의 초식과 설명이 쓰여 있었을 뿐 그 뒷장은 떨어져나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총명한 룡이라 이것이 무경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건곤신공을 익혔다. 모르는 글은 선비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독학으로 익힌 건곤신공의 영향으로 날이 갈수록 머리가 더 좋아졌고, 무공도 높아졌다.

어느덧 약관(20세)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운명이었을까? 산적들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약탈했다.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산속에서 수련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집으로 갔더니 화전민 마을 사람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부모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분노에 몸을 떨던 룡은 그때부터 은밀하게 산적들의 뒤를 추격해 무공으로 그들을 잔인하게 전부 죽여 버렸다.

그때는 실전이 처음이라 아직 제대로 된 초식을 능숙하게 펼치지 못했다. 때문에 새끼손가락이 하나 잘려버렸던 것이다.

그때부터 약 14년 정도 무림을 떠돌면서 나름대로 잔인한 손속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무림에서 활약할 때, 사람들은 그를 구지혈마(九指血魔)라 불렀다.

그를 노리는 구대문파의 일대제자 세 명의 협공을 당하면서 결국 패하였다. 순순히 끌려가기는 싫었기에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기절해 다시 깨어나 보니 눈과 얼음의 땅이며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아이스랜드였다.

추운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심한 내상을 입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툰그족에게 발견되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나마 인복이 있는 것인지 툰그족 중 마케리안 대륙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천막에서 머물면서 상처를 치료하고, 마케리안 대륙어를 배울 수 있었다.

건곤신공을 익힌 그라 머리는 매우 총명했기에 툰그족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그는 지난 4년간 툰그족과 생활하면서 이전의 이름을 버리고, 돌아갈 때까지 아놀드(Arnold)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약 3달 전에 사냥을 나갔다가 심한 눈보라로 인해서 길을 잃었고, 우연히 동굴을 발견해 그 속에서 기연을 만났다.

동굴 속에는 마법사로 보이는 자의 시체가 있었다. 심한 상처를 입은 흔적이 있었고, 죽은 지 몇 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워낙 극한의 날씨를 가진 아이스랜드라 시신은 썩지는 않았지만 꽁꽁 얼어 냉동인간이 되어 있었다.

죽은 시신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더니 소지품이 전혀 없었다.

옷과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있는 게 전부였는데, 로브를 펼치자 허리춤에 자신과 같은 마법주머니를 메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아놀드는 그 마법주머니에서 미세하지만 기를 느꼈다. 마법주머니 속을 살폈더니 짐마차 한 대 분량의 각종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식량과 각종 마법재료들이었다.

어떻게 작은 주머니 속에 이렇게 엄청난 물건이 들어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보라가 그쳐야 나갈 수 있는데, 한 번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열흘 정도는 계속되는 곳이었기에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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