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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이방인
아침을 알리며 날아가던 새가 결계의 막에 부딪히면서 기절해 땅에 떨어졌다. 산새로서는 아주 억울한 상황이었다.
소리에 민감한 준은 잠에서 깨어났다.
“어? 웬 산새지? 잘 되었어. 구워먹어야지.”
지글지글.
횡재했다 생각한 준은 산새 두 마리를 잡아서 털어 뽑고는 노릇노릇하게 불에 잘 구웠다. 기절한 놈들을 잡아서 구웠기 때문인지 쫀득쫀득한 게 아주 맛있었다. 워낙 작은 산새라 먹을 것이 별로 없었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쩝쩝,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워.”
입맛을 다시던 준은 아공간을 열어서 소갈비를 꺼내었다. 구워먹기 좋도록 적당한 크기의 모닥불을 다시 피우고는 소갈비에 칼집을 낸 뒤 석쇠에 넣고 소금을 조금 뿌렸다.
소갈비 소금구이를 해먹으려는 것이다.
지글지글.
비록 참나무는 아니었지만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장작을 이용해 석쇠에 소갈비를 구웠기에 아주 맛있었다.
“이야, 끝내주는데? 역시 소갈비가 최고야, 최고!”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떠들면서 맛있게 소갈비를 구워먹는 준.
이히힝, 푸르르.
준의 애마인 노페르슈롱도 소갈비 소금구이의 고소한 냄새를 맡고는 코를 벌름거리면서 울어대었다.
“이야, 이게 또 맛있는 건 기막히게 안다니까. 알았어, 조금 줄게. 그만 울어.”
준이 살짝 익힌 소갈비 소금구이를 노페르슈롱에게 던져주자, 그놈은 날름 그것을 받아먹었다.
준은 무려 10인분 정도를 먹어치웠고, 노페르슈롱은 5인분 정도를 받아서 먹었다.
“아, 배가 불러도 후식으로 과일을 먹어줘야 이게 또 소화가 잘되거든.”
아침의 싱그러운 공기를 맡으면서 소갈비 소금구이를 실컷 먹고 난 후 과일까지 먹으니 신선도 부럽지 않았다.
배가 올챙이처럼 뽈록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들판에 혼자 있으니 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준은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을 정리한 후 노페르슈롱의 등에 올라타고 도시 올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일행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두두두두.
준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사라져갔다.
얼마 후 고기냄새를 맡고 오우거 한 마리가 나타났다.
킁킁킁.
코를 벌름거리면서 소갈비뼈 냄새를 맡더니 뼈와 그것에 약간 붙어 있는 고기를 입에 넣어 씹어 먹었다. 오우거의 눈이 커졌다. 이토록 기막힌 맛은 처음이었다.
와드득, 빠지직.
오우거는 준이 먹고 버린 갈비뼈를 전부 집어먹었다. 워낙 식성이 좋고 강인한 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소갈비뼈 정도는 그냥 씹어 먹을 수 있었다.
소갈비뼈가 제법 많았지만 이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그렇게 쩝쩝 입맛을 다신 오우거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나버렸다.
파블로 상단의 사람들과 글리아나, 패트릭, 세브리노는 사방이 탁 트인 들판 중 풀이 길게 자란 곳에 숨어서 야영을 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천막은 치지 않고 그냥 풀밭에 천막을 깔았다. 그리고 냉기를 막기 위해 그 위에 모포를 펼치고 누웠다.
그들은 적들의 화살공격에 대비해서 짐마차로 은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사람을 반으로 나누어 2시간씩 교대로 잠을 자기로 했다. 간이 말뚝을 박아서 말고삐를 묶어두기도 했다.
10명의 용병들이 특별히 말 주변에 경비를 섰다. 마적들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말을 타고 도망쳐야 했기에 무엇보다도 말이 중요했다. 자신들의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밤사이에 마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사람은 마법사 세브리노였다.
파블로 상단주와 마일로는 세브리노의 말을 듣자마자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그의 말에 따라 들판에 풀이 길게 자란 곳에 숨었다.
날이 저물 시간이라 어둠이 몰려오고 있을 때였다.
세브리노의 말대로 한 지 30분도 안 되어서 1,000명 정도 되는 붉은 도끼 마적단이 빠르게 말을 몰아 그곳을 지나갔다. 조금만 선택을 잘못했다면 분명 저 마적들에게 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준에게 구입한 아티팩트가 있다고 해도 마적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불도 피우지 못하고 풀밭에 숨어 야영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 이들은 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식사를 한 뒤 야영했던 물건들을 다시 수거했다. 그러나 바로 출발하지 않고 정오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역시 세브리노의 의견이었다.
분명 조금만 가면 마적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들이 도시 올가로 가는 것을 마적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기다리면서 준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준과 15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출발하기로 했다.
루이 파블로는 매직애로우 아티팩트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이 있어야만 1,000명이나 되는 마적들과 마주치더라도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아티팩트를 받아 쥐자 조금은 더 안심이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는 이미 한 번 사용해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용병 10명과 상단의 일꾼 5명은 도시 올가로 향하던 중 1,000명의 붉은 도끼 마적단의 마적들과 맞닥뜨려 싸웠지만 모두 죽고 말았다.
처음에는 매직애로우 아티팩트의 영향으로 제법 잘 싸웠지만 얼마 후 모두 소진해버렸기에 더 이상 마적들과 싸울 수가 없었다. 마법이 발휘되지 못하는 한 그들은 마적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걸까? 상단주와 글리아나 일행은 1,000명의 붉은 도끼 마적단의 마적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쿠르르르.
짐마차 4대의 바퀴가 굴러가면서 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과 불과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붉은 도끼 마적단이 야영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척후 활동을 위해 날랜 마적들만 뽑아 사방으로 20명씩 조를 짜 내보냈다. 이들은 추적술에 능한 자들이었다.
얼마 후 그들이 돌아와 보고한 바로는 아직 이곳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짐마차의 바퀴 자국이 하나도 없고, 이곳에서 불과 반나절도 안 되는 거리에는 제퍼슨 마적단이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코비는 붉은 도끼 마적단 1,000명의 임시 대장이었는데, 그에게는 마법통신구가 있었다. 그것으로 클리프 단장과 통신을 주고받았기에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크크크! 이놈들, 나타나기만 해봐라. 모조리 목을 잘라버릴 테다.”
말을 탄 용병 10명이 일행보다 150m 정도 앞쪽에서 주위를 살피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한 손에는 매직애로우 아티팩트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허리에는 롱소드가 걸려 있었다.
“마적 놈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잘 살펴야 돼.”
“알았어, 넌 그쪽이나 잘 살펴.”
사방이 온통 평지였지만 길을 제외한 길의 양족에는 잡풀이 크게 우거져 있었다. 바위가 많고 울퉁불퉁한 지형이라 은신할 곳도 많았다.
붉은 도끼 마적단은 여기에서 2.5km 정도 떨어져 모여 있었지만 척후활동을 위해 나온 마적들이 제법 되었고, 지금도 잡풀 속에 150명이나 숨어 있었다.
“크크, 이제야 나타나는군.”
“킬킬, 이번에는 내가 저놈들의 목을 잘라버릴 거야.”
다가닥 다가닥.
10명의 용병들은 빨리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위에 마적들이 있는가에 중점을 두었기에 천천히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기 잡풀이 의심스러운데?”
“그래? 그럼 매직애로우를 한 방 쏘아보자고. 아니면 마는 거고.”
“좋아, 매직애로우 발사!”
슈웅!
한 발의 매직애로우가 날아갔다.
쉐에에엑!
제법 묵직한 소리에 마적들은 당황했다. 소리만 들어도 그 위력이 대단할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이런 젠장, 들켰어. 공격해!
“와아아아!”
잡풀 속에 숨어 있던 마적들이 일제히 튀어나오자 용병들은 깜짝 놀랐지만 재빨리 매직애로우를 발사하였다.
슈슈슈슈슝!
달려오던 마적들은 손방패를 들어 매직애로우를 막았다.
터텅! 파사삭!
매직애로우를 잘 막은 마적들은 계속 달려왔지만 잘못 막은 마적들은 손방패가 박살나면서 넘어졌다.
하지만 직격을 당하지는 않았기에 다시 일어나 뛰어왔다.
일부 마적들은 화살을 쏘았다.
티티팅!
보호막이 펼쳐져 있었기에 용병들 중 어느 누구도 화살을 맞지 않았다.
“마적들이 접근해온다! 공격해!”
“죽어라, 마적 놈들아! 5발 발사!”
슈슈슝, 슈슝!
매직애로우는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허공에서 약간 휘어지면서 날아가는 것이기에 막아내기가 더 힘들었다.
퍼퍼퍽!
마적들은 손방패를 들어 막는다고는 했지만 워낙 빨라 막아내기가 힘들었다. 거리가 가까웠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아악!”
“커억!”
털썩!
가슴에 매직애로우를 맞은 마적은 피를 흘리면서 뒤로 날아가 떨어졌다.
마적들은 불을 보고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용병들에게 달려 왔지만 이미 몇 번의 전투로 인해 요령이 생긴 용병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말을 맞추어라.”
이히힝!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적들이 용병들이 타고 있는 말을 맞추어 쓰러뜨렸다.
말이 쓰러지면서 같이 넘어진 용병들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달려온 마적들의 칼에 죽어갔다.
채채챙!
파팍!
역시 근접전에서는 마적들이 한 수 위였다.
용병들도 제법 잘 싸우고는 있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마적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펼쳐놓은 보호막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되었고, 남은 매직애로우를 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이때 뒤쪽에서 접근하고 있던 일행이 매직애로우를 발사하였다.
마적들은 10명의 용병들을 죽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미처 이것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커억!”
“아아악!”
매직애로우에 맞은 마적들은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이…이런 젠장! 도망쳐!”
마적 3명이 뒤돌아 도망쳤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자들은 더욱 매직애로우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등을 보이면서 도망치던 마적들은 등에 매직애로우를 맞으면서 고꾸라졌다.
얼마 후 150명의 마적들은 전멸하였다.
용병들은 10명 중 4명이 칼에 맞아 쓰러졌다. 이들은 다시 전진을 시작하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적들 100명 정도가 땅에 엎드려 숨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무모하게 달려들다가 죽는 것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상단이 자신들이 있는 곳을 지나가면 뒤에서 기습하기로 한 것이다.
마적들은 상단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보호막을 펼칠 수 있는 것이라 그 틈을 주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쿠르르르.
짐마차 4대가 그렇게 마적들이 숨어 있는 곳을 지나치자 마적들은 일제히 보우를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