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53화 (5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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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츠파파팟!

검은 로브를 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는 이렇게 또 은밀하게 시신을 입수했다. 그러고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사라져버리면서 중얼거렸다.

“흐흐흐. 나의 귀염둥아, 더 많은 실험 재료를 부탁하마.”

한편, 신나게 붉은 도끼 마적단을 공격하던 준은 ·······.

단장을 비롯한 지휘부는 전부 빠져나가버리고 이제 남은 자들은 그 수하들이었다. 약 500명 정도 되었지만 준은 전혀 두렵다거나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용감하게 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은 사실 공포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으며, 일부는 오줌을 지리는 자들도 있었다.

“흥, 너희들을 더 이상 죽이고 싶지 않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자들은 죽이지 않을 것이니 도망쳐라. 어서!”

“으아아, 난 살고 싶어!”

안 그래도 공포에 질려 있던 마적 한 명이 곧 도망쳤다.

“비…비겁한 놈! 에잇, 죽어라!”

투웅.

“커어억!”

그것을 쳐다보던 마적 한 명이 보우를 쏘자, 도망치던 자는 등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준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화살을 쏜 자에게 내공을 담은 장력을 날렸다.

퍼억!

“크아아악!”

그자는 가슴에 일장을 맞고는 피를 토하면서 6m 정도를 날아가 떨어졌다.

부르르.

잠시 몸을 떨어대던 그자는 잠잠해졌다.

두두두두.

마적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사방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꼭 몇 놈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남아 있었다.

‘꼭 이런 놈이 있다니까?’

슈가가각!

준은 번개의 검술로 그자들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끄으으!

“이…이게…….”

털썩.

준의 칼에 베인 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쓰러졌다.

주위에는 마적들의 시채가 즐비하고, 도망친 마적들은 벌써 수백 미터를 벗어나고 있었다.

휘이이이.

바람이 불어와 준을 지나쳐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준은 피 묻은 롱소드의 날과 자신의 손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음, 내가 살인마라도 된 것일까? 벌써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죄책감이나 망설임이 없어.”

정말 그랬다. 보통은 첫 살인을 하게 되면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준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또한 사람을 죽일 때도 전혀 망설임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덤덤했다.

“…왜 이런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만 할 것 같아. 노페르슈롱아, 그만 돌아가자.”

다가닥 다가닥.

준은 노페르슈롱의 말머리를 돌려 일행이 간 도시 올가를 향해 30m 정도를 나아가다가 다시 멈추었다.

“비록 내가 죽인 마적들이지만 이렇게 시신을 방치하게 되면 야생동물들이나 몬스터의 먹이가 될 것이니 묻어주고 가야겠다. 플라이(Fly)!”

슈슈슈슉!

허공으로 떠오른 준은 자신의 마력이 미치는 곳까지 마력을 퍼뜨려서 마적의 시신을 한곳으로 끌어 모았다. 염력과 비슷하지만 심장 옆에 있는 마나고리의 마력을 이용한다는 점이 약간 달랐다.

츠츠츠.

준이 양팔을 옆으로 벌렸다가 가슴 앞으로 끌어 모으는 듯한 동작을 취하자 시신이 모아졌다.

스윽.

시신의 맞은편에는 흙구덩이가 크게 만들어졌다. 시신을 그곳에 집어넣으려니 문득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력을 이용해서 소지품을 따로 끌어당겼다.

시신에서 소지품이 빠져나왔다. 주로 코인과 실버화가 많았지만 간간히 골드화도 나왔다. 워낙 죽은 마적들이 많았기에 단검류도 나왔으며, 특이하게도 여인들의 장신구나 보석류도 나왔다.

‘음, 여자에게 선물하려던 것인가 보군.’

“불의 뜨거움이여, 나의 의지대로 나타나거라. 인시너레이트(Incinerate)!”

츠츠츠.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하나 생성되었다.

화르르.

그 불길은 닫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스윽.

준의 손짓에 불길은 흙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화장이 준비되자 소지품을 수거한 시신부터 그 흙구덩이에 집어넣었다.

활활활!

불길이 더욱 거세어졌다.

마적들의 시신은 1, 2초 만에 완전히 재가 되어버렸다.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마적의 시신은 모아서 소지품을 수거하고는 화장시켜 주었다. 이렇게 이동하다가 드디어 마적들이 가장 많이 죽은 곳에 당도했다.

두리번두리번.

준은 주위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이 달려서 달아난 것도 아닌데 생각했던 것보다 시신의 수가 적었다.

“이상해. 뭔가 냄새가 나는데?”

그는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마적의 시신에서 소지품을 수거하고는 화장을 시켜주었다.

워낙 마적의 시신이 많아서인지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나?”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이곳에 야영을 해야 하지만, 시신을 화장했던 곳이라 찝찝했다.

준이 노페르슈롱의 등에 다시 내려앉아 말고삐를 흔들자 말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준은 약 2km를 더 달리다가 적당한 곳을 발견하고는 야영 준비를 하였다.

활활활!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빛의 유효거리가 넘는 곳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별이나 달도 하나 떠오르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다.

모닥불의 한쪽에 말뚝을 하나 박아 노페르슈롱의 고삐를 묶어놓았다.

말은 한가로이 맛있는 과일을 우물거리면서 씹어 먹고 있었다. 5가지 과일이 놓여 있는 은접시의 옆에는 목마를 때 마시라고 물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노페르슈롱은 주인을 잘 만나 잘 먹고 대우를 받았다.

준은 모닥불에서 5m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는 천막을 깔고 그 위에 모포를 두 장 깔았다. 그런 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가끔 모닥불의 불빛에 투명한 막이 반사되곤 했다. 이것으로 보아 결계가 쳐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준이 설치한 결계는 밖에서 보면 자연과 동화되어 있어서 그냥 풀밭으로 보인다.

누가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준은 철저하게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마법진을 직접 그려 넣은 결계라 사방 15m가 준의 고유 영역이 되어버렸다.

설사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은밀하게 침투하지는 못한다. 물리적으로 강력한 방법으로는 들어올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준이 알게 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는 방법이었다.

준은 그렇게 깊은 명상에 빠졌다.

‘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공포가 없는 것일까? 마치 수백 마리의 개미 중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인 것처럼 아무런 동요가 없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기가 힘들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이 세계로 건너오기 전에만 해도 몸이 연약해서 소심했었다. 그나마 사부님을 만나 천왕대심공을 익히면서 몸도 좋아지고, 약간씩 성격이 바뀌어 소심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계로 넘어오니 동굴 속이었다. 그곳에서 바로 천왕대심공을 높은 단계까지 끌어올리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지만, 그 정도로 살인을 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사실 따지고 보면 준이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가 이 세계로 차원이동을 할 때 혼돈의 기운이 몸에 일부 스며들었었는데, 준은 기절한 상태였기에 모르고 있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혼돈의 기운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라 서서히 준의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쳐 지금과 같이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천왕대심공을 운용하면서 사색에 잠겨 있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하단전에 있던 내공이 꿈틀거렸고, 심장 옆에 자리 잡고 있던 마나고리까지 휘돌기 시작하였다.

의지를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두 가지 기운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으응? 이것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두 가지 기운을 통제하려다가 어떻게 하는지 내버려두기로 했다.

원래 하단전을 내공으로 가득 채우게 되면 중단전이 열리면서 수련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준은 단계를 거치지 않고 혼돈의 기운의 영향으로 인해서 탈태환골 과정을 거치면서 몸이 재구성되었기에 심장 근처에는 마나고리와는 상관없이 혼돈의 기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왕대심공이 8성에 올랐어도 중단전은 아직까지 까마득하기만 했었다.

우우웅.

심해처럼 잔잔하던 하단전의 내공이 태풍을 만난 것과 같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하였고, 마나고리도 더욱 빠르게 휘돌면서 빛이 밝아졌다.

콰콰콰콰!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댐의 수문이 일시에 열린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면서 하단전에 고여 있던 내공이 중단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흘러나갔다.

콰쾅!

준의 내면에서 엄청난 위력의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자 가로막고 있던 것이 뚫리면서 막대한 내공이 중단전으로 흘러들어갔다.

콰콰콰콰!

너무 거센 내공이라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따라서 현 상태에서는 관조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단전의 내공이 엄청나게 중단전을 채우기 시작했고, 힘차게 휘돌고 있던 마나고리가 중단전의 내공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기이한 것이라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대로 두었다가 잘못되는 것 아냐?’

은근히 불안감도 밀려왔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우우우웅.

마나고리에서 더욱 눈부신 빛이 흘러나오면서 흐릿하지만 마나고리가 하나 더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느끼면서 준은 희열을 느꼈다.

‘아, 마나고리를 또 하나 생성시키게 되었구나.’

7개의 마나고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가 더 추가되어 8개가 되면서 8서클의 마법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열도 잠시, 이상한 현상은 계속되었다.

하단전에 가득했던 내공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면서 모두 중단전에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약간 어이가 없음과 동시에 상실감이 밀려왔다.

모공에서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자연의 기운을 강제로 끌어당기면서 흡수하기 시작했다.

‘어어, 이게 무슨 현상이지?’

천왕대심공상에도, 케르킨 엘프 부족장이 만들어준 마법의 공간 속에 들어 있던 마법서에도 이 같은 현상을 기록해놓은 것은 없었다.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묘한 느낌이었다.

모공으로 강제 흡수한 막대한 기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단전을 가득 채웠고, 그 기운들은 다시 중단전으로 흡수되었다.

중단전에도 기운이 가득 차자 이를 마나고리가 흡수하였다.

8개의 마나고리가 세차게 휘돌면서 빛이 한층 더 밝게 빛났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마나고리가 다시 하나 더 생성되려고 한 것이다.

‘이…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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