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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츠츠츠.
갑자기 포박 마법에 말이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공기 중에 함유되어 있는 수분을 끌어 모았다. 처음에는 손톱 크기만 한 물방울이었지만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지름이 3m 정도 되는 거대한 물방울이 되었다.
이히힝!
말도 놀라서 발버둥 쳐보려고 하였지만 몸이 마비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스르르.
말의 머리 위로 거대한 물방울이 이동하더니 그것이 터지면서 말의 몸을 흠뻑 적셨다.
준은 마법주머니 속에서 비누를 하나 꺼내고는 염력으로 비누를 날아가게 해서 말의 몸에 골고루 거품이 일어나도록 잘 문질렀다.
처음에는 말이 겁을 집어 먹었지만 준이 목욕을 시켜주는 걸 알게 되었기에 놀라서 커졌던 눈이 다시 작아졌다.
충분하게 비누거품을 내고 문지른 후 물방울을 다시 생성시켜 헹궜다. 그리고 물기를 말리기 위해 마법을 시전하였다.
휘이이이.
윈드마법을 약하게 시전해서 드라이어처럼 물기를 잘 말렸다. 그런 후 포박 마법을 풀어주고는 빗으로 말의 털을 잘 빗겨주었다.
이히힝, 푸르르.
노페르슈롱도 기분이 좋은지 머리를 준에게 들이밀면서 애교를 부렸다.
“하하, 녀석이 애교도 다 부리네?”
말의 몸 상태를 살펴보니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피부병이 있었다.
“피부병이 있으면 안 되지. 큐어 디지즈(Cure disease)!”
츠츠츠.
노페르슈롱의 몸에서 빛이 확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말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마법을 시전했던 것이다.
살펴보니 피부병은 깨끗하게 치료가 되어 있었다.
“하하, 이제야 최상의 몸 상태가 되었구나.”
준은 말안장을 다시 채우고는 말 등에 올라탔다.
“자, 시원하게 달려보자꾸나. 이랴!”
두두두두.
노페르슈롱은 신나게 달려 나갔다.
붉은 도끼 마적단은 도시 올가에서 3일 거리에 있는 야산에 둥지를 틀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15년째였다.
인근에서는 가장 세력이 크며, 길목만 지키고 있으면 상단이 지나가면서 통행세 명목으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갔기에 수입이 짭짤했다.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왔기에, 이들은 체계적으로 마적들을 훈련시키고 각지에서 노예들이나 유민들을 확보하여 세력을 키웠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200명으로 시작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9천 명까지 인원이 늘어났다.
이들도 처음 몇 년간은 토벌대를 걱정해야 했다.
일찍부터 이들은 올가에 첩자들을 침투시키거나 올가에 살고 있는 자들을 포섭해두었기에, 토벌대가 준비되면 먼저 이를 알고 자리를 피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세력이 점점 커지더니 7년이 지난 후에는 토벌대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붉은 도끼 마적단이 이렇게까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단장인 클리프와 군사(軍師)인 마법사 보노의 영향 때문이었다.
붉은 도끼 마적단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바로 마법사 보노가 찾아낸 던전이었다.
누가 왜 이런 야산의 지하에 던전을 만들어 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리적인 위치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산이 높고 수려한 것도 아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야산에 불과한 곳이었다.
그런 곳의 지하에 던전을 만든 게 일단 신기했다. 두 번째로 신기한 것은 아주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무려 3천 년 정도 되었는데, 이것은 던전을 탐험하면서 획득한 물건들을 감정해본 결과 알게 된 것이다.
이 던전은 거의 대부분 탐험이 완료되어 제법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문자가 벽에 새겨져 있었다. 제법 학식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보노였지만 이런 문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나름대로 책을 찾아보거나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이런 문자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지하의 비밀 던전을 들어가면 폭이 3m에 천장의 높이가 4m정도인 통로가 나오는데, 그 길이가 약 50m 정도 되었다. 일단 이곳을 통과하면 9곳의 비슷한 통로의 입구가 펼쳐져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통로가 전부 복잡한 미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하라 어두워서 기름을 묻힌 횃불을 들고 가야 하는데, 워낙 길고 복잡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해도 이곳을 통과하려면 오래 걸렸다.
이 길고 복잡한 미로를 벗어나면 폭과 천장이 5m나 되는 통로가 100m 정도 이어진다. 문제는 이 통로에는 2m의 신장을 가진 인간형 금속골렘이 8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는 것인데, 무려 18명이나 되었다. 이곳을 통과해야만 홀 같은 거대한 공동이 나온다.
공동은 지름 500m에 천장의 높이가 100m는 된다. 이런 넓은 지하 공동을 만든 것은 마법의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천장에는 라이트 마법이 걸려있는 마법의 아티팩트가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 전혀 어둡지 않았다. 아마 이 아티팩트가 스스로 마나를 보충해서 빛을 내는 것 같았다. 무려 3천 년이 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빛을 내는 것을 보면 그것이 분명했다.
넓은 지하 공동에는 인간의 몸에 머리만 동물의 모습을 한 석상이 12개 배치되어 있었다. 높이는 무려 9m나 되었으며, 갑옷을 입고 한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으며, 평평하게 깎은 듯했은데, 아마 이것도 마법으로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바닥에는 오각형의 큰 도형에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 넓은 공동이 이 던전의 전부였다.
처음 붉은 도끼 마적단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이곳까지 도착해보니 바닥에는 200골드가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보석함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두 주먹 정도 되는 각종 보석이 들어 있었다. 지하 던전의 규모를 생각하면 초라할 정도의 보물이었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제법 재미를 보았다.
붉은 도끼 마적단의 아지트 옆에 있는 지하 던전이라 그냥 두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보노는 이곳을 붉은 도끼 마적단의 지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하에 있었기에 비밀유지에도 좋았다. 붉은 도끼 마적단은 이곳에 마적들이나 신입들을 들여보내 훈련을 시켜오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마법사이며 군사(軍師)인 보노는 500명의 마적들을 던전에 투입시켰다.
쿠르르르.
파블로 상단의 짐마차가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면서 도시 올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말을 타거나 짐마차의 마부석이나 위에 올라타서 이동 중인 사람들이 모두 67명이었다. 그중에서 용병들이 24명이고, 나머지 43명이 파블로 상단의 사람들이었는데, 루이 파블로 상단주와 요리사 사이먼, 그리고 5명의 주방보조를 제외하면 나머지 36명이 상단의 일꾼이었다.
용병대장 마일로와 패트릭, 세브리노는 같이 앞쪽에서 말을 타고 이동 중이었고, 준과 글리아나는 상단주 루이 파블로와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이동했다.
루이 파블로는 자꾸만 눈을 힐끔 거리면서 회색 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눌러쓴 글리아나를 훔쳐보았다.
준이 그런 그를 쳐다보자 그는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말하였다.
“기사님, 지난 이틀간은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4일 정도만 더 가면 올가가 나오는데, 걱정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소.”
“허나 곧 붉은 도끼 마적단이 있는 곳에 당도하게 됩니다.”
“붉은 도끼 마적단? 일개 마적단을 왜 그리 두려워하시오?”
“붉은 도끼 마적단은 일개 마적단이 아닙니다. 알려진 바로는 무려 9천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으음, 마적들의 수가 그렇게 많소?”
“예, 가장 세력이 크기 때문에 토벌대도 쉽게 그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행료만 지불하면 대부분 그냥 통과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럼 신경 쓸 것 없지 않소?”
“그건 그렇지만 통행료가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그러는 거요?”
“보통은 1인당 1실버를 받고 있으며, 상단은 짐마차 한 대 당 3실버를 더 받습니다.”
“그럼 우리는 짐마차가 30대에 인원이 114명이니까 2골드 4실버밖에 안 되니 걱정 없지 않소?”
“그런데 문제는 통행료가 6개월 전부터 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기에 그리 걱정하시는 거요?”
“사람은 그대로 1인당 1실버이지만 상단의 짐마차는 한 대 당 5실버로 올랐으며, 짐마차가 5대를 넘길 경우 1대를, 10대에는 3대를, 20대를 넘길 경우 5대를, 우리처럼 30대면 10대를 내놓아야만 통과시켜줍니다.”
“뭐라고요?”
‘이건 그냥 강탈해가겠다는 거잖아?’
“이런 상황이니 제가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럼 그 붉은 도끼 마적단인가 뭔가 하는 마적단은 얼마나 배치가 되는 것이오?”
“보통은 백 명 정도가 길목을 지키는데, 만약 이들과 전투를 벌이고 통과하게 되면 곧 천 명의 마적들이 뒤를 추격해오기 때문에 함부로 이들과 전투를 벌이지 못합니다.”
“그 천 명을 물리친다 해도 더 많은 놈들이 몰려오겠구려.”
“아직까지 그런 상황은 한 번도 없었기에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허, 이거야… 아예 놈들을 토벌해버릴까?”
“기사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올가에 있는 4만의 병사들을 전부 동원하지 못하는 한 붉은 도끼 마적단을 토벌할 순 없습니다.”
“그럼 이들 마적단 말고도 더 있소?”
“예, 비록 이들 붉은 도끼 마적단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두 곳에 마적들이 있고, 도적 무리도 3곳이나 더 있습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제대로 상행위를 할 수 있겠소?”
“그렇다고 다른 것을 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케비안 공작각하께서도 이런 상황을 알고 계실 텐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니 이해가 안 가는군.”
“공작령의 도시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게 없고, 일부 상단만 피해를 입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대규모의 토벌대나 병력을 움직이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적단이 이를 모를 리 없죠.”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놔두면 마적단들이 더 극성이지.”
“귀족들은 저희 같은 상인들이나 평민들의 생활에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호화로운 생활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죠.”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소.”
“무슨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신지…….”
“내게는 아공간이 있는데, 이런 짐마차 30대는 충분하게 들어가오.”
“그…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소. 다만 살아 있는 말들은 그곳에 넣을 수 없습니다. 5대가 넘으면 1대를 빼앗는다고 하니 식량을 실은 짐마차 4대만 남기고, 나머지 26대의 짐마차는 말을 분리하여 나의 아공간 속에 넣은 후 이곳을 통과하는 것이오.”
“아, 그런 기가 막힌 방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당장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블로 상단은 잠시 멈추어 짐마차에 끄는 말들을 분리하였다. 말들의 수가 30마리로 늘어났지만 용병들과 마부들이 타자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하하하, 어떻소?”
“기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하실 줄이야. 그런데 걱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뭔지 말해보시오.”
“마적 놈들이 글리아나 님을 보면 그냥 통과시켜주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으음,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나의 일행은 상단의 가장 뒤쪽에서 따라가는 걸로.”
“우리와 동행하는 것으로 위장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그래야만 상단에 피해가 없지 않겠소?”
“그렇지만 저희들만 안전하자고 기사님과 그 일행분들을 모른 척한다는 게 도의가 아니라서…….”
“괜찮소. 우리는 무력이 뛰어나니 놈들과 싸우더라도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상단주는 용병들과 상단의 일꾼들을 모아놓고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사람들이 짐마차를 끄는 말을 분리하자, 준은 짐마차 26대를 아공간 속에 간단하게 집어넣었다.
아공간을 처음 보는 상단의 일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자, 다시 출발이다! 출발!”
쿠르르르.
4대의 짐마차가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