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42화 (4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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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글리아나, 어때 읽을 만한 거야?”

“응, 이렇게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이야.”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보기에도 재미있습니까?”

“예, 정말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창작하신 겁니까?”

패트릭의 물음에 준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침 어젯밤에 시간도 남고해서 예전에 틈틈이 생각해오던 것을 책으로 만들어본 겁니다.”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는 처음입니다.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한 번 더 읽고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건 그냥 가지세요. 나에게 몇 권 만들어둔 것이 있으니까 아예 한 권씩 드리죠.”

준은 아공간 속에 넣어두었던 9권의 그림 동화책을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패트릭과 세브리노도 좋아했지만 글리아나가 더 좋아했다.

“자,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저녁 먹으러 가자.”

“알았어. 식사하고 난 뒤에 다시 읽지 뭐.”

글리아나는 로브의 후드를 눌러 쓰면서 일어났다.

이들이 천막 밖으로 걸어 나오자 마침 용병대장인 마일로가 다가왔다.

“기사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상단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 됩니다.”

“알았다. 글리아나, 가자.”

마일로의 뒤를 따라가면서 보니 십여 명씩 짝을 이룬 용병들과 상단의 일꾼들은 빵과 스프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루이 파블로 상단주의 천막도 준 일행의 천막처럼 넓었다.

테이블 위에는 10여 가지가 넘는 요리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빵과 스프, 샐러드, 각종 과일까지 놓여 있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기사님, 어서 오십시오.”

“초대해줘서 고맙소.”

“큰 은혜를 입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식기 전에 드십시오.”

준이 자리에 앉아 옆에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가 앉았다. 맞은편에는 용병대장인 마일로가 앉았다.

우물우물.

식사가 시작되었고, 준은 아주 맛있게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음, 연하고 부드러운 게 맛있군. 상단에 요리사가 있는 모양이네?’

글리아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샐러드와 각종 과일을 먹기 시작했는데, 루이 파블로와 마일로는 멍한 표정으로 글리아나를 쳐다보았다. 너무 뚫어지도록 쳐다보았기에 시선이 따가워서 식사를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크흠흠.”

준의 헛기침에 정신을 차린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요리를 먹는 데 열중하였다. 그제야 글리아나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기사님,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분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외가 쪽의 친척이오.”

“그러셨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루이 파블로가 말하자 글리아나가 대답하였다.

“호호, 반가워요.”

글리아나가 아주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답해주자 루이 파블로의 얼굴이 환해졌다.

“과일만 드시지 말고 요리도 좀 드십시오.”

“예, 고마워요.”

글리아나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연하고 맛있네요.”

“그러실 겁니다. 이번 상행에 요리사가 따라왔거든요.”

“어쩐지, 요리가 훌륭하다 했어요.”

“과찬이십니다. 많이 드십시오.”

“예, 알겠어요.”

요리가 훌륭했기에 모두들 정말 맛있게 먹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빈 접시들이 치워지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가 놓였다. 그제야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루이 파블로가 준에게 물었다.

“기사님, 제가 보기에는 마법에 아주 능하신 것 같은데 검술은 어떤 것을 배우셨습니까?”

준은 대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3대 검술인 스네이크 검술과 대지의 검이라는 검술, 번개의 검이라는 검술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눈으로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술을 펼치는 번개의 검술을 약간 익혔소.”

“아, 3대 검술 중 하나라는 그 번개의 검술 말이군요.”

“그렇소.”

“그럼 소드익스퍼트에 오른 것입니까?”

“소드익스퍼트 중급이라오.”

“정말 대단하십니다. 검술도 훌륭하시고 거기에 마법까지 익히셨으니 영웅이 되실 겁니다.”

“영웅이라니. 하하하,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소.”

“아…아닙니다. 저가 보기엔 틀림없이 그렇게 되실 분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 얼굴이 다 화끈거리니 그만 하시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옆에 계신 분들도 마법사십니까?”

루이 파블로 상단주가 패트릭과 세브리노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물었다.

준이 대답해주려 했으나, 패트릭이 먼저 나서서 말하였다.

“준 님, 제가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패트릭이 설명하였다.

“제 스승님만 마법사입니다. 저는 약간의 마법과 검술을 익혔습니다.”

“그렇습니까?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익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이렇게 식사에 초대한 것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기 위해 섭니다. 무례인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일단 들어주십시오.”

준이 동료들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다름이 아니라 마적들에게 저희 상단이 전멸 당할 뻔하였는데, 지금의 용병들 인원으로 도시 올가까지 가기에는 매우 불안한 실정입니다. 언제 또 마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크게 혼이 나서 도망친 마적들인데 또 오겠습니까?”

패트릭이 끼어들자, 세브리노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눈치를 주었다. 그제야 패트릭이 찔끔거리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도 지금의 상황에서 끼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마적들 말고 다른 마적과 도적들 때문에 걱정입니다.”

“도시 올가까지는 6일 정도면 도착하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는 겁니까?”

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루이 파블로가 대답했다.

“제가 알고 있는 마적단과 도적무리만 해도 4곳이나 됩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서는 얼마나 더 마적들이 늘어났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음, 그럼 어떻게 해달라는 것이오?”

“기사님과 일행 분들이 어차피 올가로 가신다고 하셨으니 저희 상단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음, 우리는 겨우 4명인데 그들을 막을 수 있겠소?”

“검술과 마법에 능하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용병은 아니시지만 의뢰비는 충분하게 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준은 패트릭과 세브리노를 쳐다보았다. 세브리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상단주의 말을 잘 알겠소. 어차피 올가로 가야 하니까 최대한으로 상단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도와드리겠소.”

“아, 감사합니다.”

루이 파블로는 밝아진 얼굴로 테이블 위에 가죽으로 된 돈주머니를 두 개 올려놓았다.

“이 돈주머니에는 한 개당 백 골드가 들어 있습니다. 한 개는 마적들을 물리쳐주신 데 대한 성의로 제가 드리는 것이고, 이건 이번에 의뢰를 맡아주셨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올가에 도착하면 백 골드를 더 드리겠습니다.”

“그럼 3백 골드라는 말인데… 그렇게 주고도 괜찮소?”

“무사히 올가까지만 들어간다면 그리 손해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받겠소.”

준은 두 개의 돈주머니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도 뒤따랐다.

준과 그 일행이 천막을 벗어나자 그동안 가만히 있던 용병대장 마일로가 한마디 하였다.

“상단주님, 의뢰비가 너무 많은 게 아닙니까?”

“허허, 자네는 잊었나? 짐마차 중에는 미스릴 원석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네.”

“그…그거야 그렇지만…….”

“자네의 부하들이 마적들에게 많이 죽었기에 그들이 받아야 할 돈의 일부가 기사님에게 돌아간 거야.”

“그래도 3백 골드는 너무 많습니다. 2백 골드만 주었어도 충분 했습니다.”

“물론, 자네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난 아니네.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익힌 기사는 드물어. 그와 이번 기회에 친분을 쌓아두면 훗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걸 감안한다면 3백 골드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 그렇군요. 제가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자네의 용병 부하들이 앞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하게. 기사님의 동료들이 분명 전면에 나서실 거야.”

“예,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이것으로 올가까지는 마적들과 도적들로부터 습격을 당한다고 해도 큰 걱정 없겠습니다.”

“그래. 이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푹 쉬도록 해.”

“예, 상단주님.”

한편, 천막으로 돌아온 준은 패트릭과 세브리노에게 백 골드가 들어 있는 가죽 돈주머니를 하나 내밀었다.

“저희들은 한 일이 전혀 없는데도 주시는 겁니까?”

“내일부터 앞에 나서서 하면 되지.”

“그…그렇다고 해도 백 골드는 많습니다.”

“그래도 넣어둬.”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

고개를 끄덕인 준은 거울 보호막을 다시 펼치고 앉았다.

글리아나는 준이 만든 동화책을 읽느라 정신없었다. 패트릭은 세브리노에게 돈주머니를 맡기고는 역시 동화책을 집어 들고 상체를 한쪽에 기대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 패트릭을 내려다보던 세브리노도 어깨를 으쓱하더니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짹짹짹.

천막의 지붕에 흰털과 파란털이 섞인 작은 새 두 마리가 날아와 내려앉아 알람시계처럼 시끄럽게 지저귀더니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에 들어 있던 준은 두 눈을 떴다. 그러고는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굳어진 몸을 풀었다.

스스스.

그는 거울 보호막이 소멸되자 성큼 한 발 내딛으면서 천막 안을 살폈다.

글리아나는 동화책을 읽다가 잠들었는지 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었으며, 패트릭과 세브리노도 옆에 책이 펼쳐져 있는 걸로 보아서는 책을 읽다가 잠든 것 같았다.

“후후, 동화책이 그리 재미있었나?”

스윽.

천막을 젖히면서 밖으로 나와 보니 날이 밝아 지평선 끝에 맞닿아 있는 하늘이 환하였다.

“곧 해가 떠오르겠군.”

모닥불은 조금 전에 꺼졌는지 흰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용병들과 상단의 일꾼들은 담요를 덮고 아직 자고 있었다. 보초를 서던 용병들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음, 이렇게 안일하게 보초를 서다가는 언제 마적이나 도적에게 기습을 당할지 모른다. 오늘부터는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준의 코로 음식 냄새가 들어왔기에 그곳으로 걸어가 보았다.

파블로 상단의 요리사 사이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상단의 일꾼들과 용병들이 먹을 아침 식사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5명의 주방보조들이 열심히 음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스윽.

준이 나타나자 모두 긴장했다. 준이 검술과 마법실력이 뛰어난 기사란 걸 두 눈으로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나 계속해. 맛있는 냄새가 나서 한번 와본 것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준은 잠시 식사준비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돌아 그곳을 떠났다.

용병들과 상단의 일꾼들이 그제야 일어난 것인지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준은 말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준의 말인 노페르슈롱은 주인이 다가오자 소리치며 반갑게 울었다.

이히힝, 푸르르.

“하하, 녀석. 내가 그렇게 반갑더냐?”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과일을 입에 넣어주었다. 달콤한 과즙이 많은 과일이라 말이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과일을 세 개나 먹인 후 고삐를 잡고 산책 겸 근처로 이끌고 갔다.

준은 야영지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고 말안장을 풀었다.

스윽, 슥슥.

말 등에 돋아난 갈기를 쓰다듬던 준은 5m 정도 말에서 떨어지더니 마법을 캐스팅했다.

“홀드 퍼슨(Hold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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