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41화 (4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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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도시 올가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오. 우연히 마주쳤고, 어려운 일을 당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었기에 잠시 나섰던 거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얼마 후 용병과 상단 일꾼들의 도움으로 시신이 모두 세 곳으로 모였다. 소지품이나 무기류는 전부 짐마차에 던져두었다.

파파팍!

상단의 일꾼들이 나서서 구덩이를 세 곳이나 팠다.

정말 열심히 하였기에 이마와 몸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려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들은 구덩이 세 곳에 시신을 잘 눕히고는 흙을 잘 덮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준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 이제야 모두 끝났군.”

“아, 너무 많이 죽었어.”

“글리아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제 그만 잊어버려.”

“그래야겠지? 하지만 저렇게 많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원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은 대부분 저렇게 해.”

준 곁으로 마일로가 다가와 말하였다.

“기사님, 시신을 모두 수습하였으니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았네. 그럼 떠나지.”

“예. 상단주님, 이제 떠나겠습니다.”

“수고했소, 마일로 대장.”

“자, 출발이다, 출발!”

쿠르르르.

마일로가 크게 외치자 용병들의 절반 정도는 말을 타고 이동하였고, 나머지는 상단의 일꾼들과 짐마차의 마부석이나 짐마차 위에 올라타고 그곳을 떠났다.

스스스스.

이들이 떠난 지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그곳의 공간이 이지러지면서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나타났다. 텔레포트(Teleport)마법으로 이동해온 것이다.

“흐흐흐,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실험 재료로 쓸 만한 것들이 이렇게 많으니까 말이야.”

스윽.

그의 손짓에 땅이 움푹 파였는데, 마법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름 20m 정도에 깊이가 무려 15m 정도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는 정확하게 시신이 묻혀있는 곳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두세 번에 걸쳐서 구덩이를 파내었다.

268명의 시신이 다시 땅위에 눕혀졌다.

그가 기이한 주문을 외우자 두 눈에서 푸르스름한 안광이 괴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크크. 생명이 없는 존재들이여, 너희들에게 다시 힘을 주리니 나의 의지대로 따를 지어다. 일어나거라, 어서!”

츠츠츠.

그의 외침에 시신들이 스르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두 일어났다.

스윽.

그는 검은 로브 속에서 수정구를 하나 꺼내어 팔을 내뻗었다. 그런데 투명한 수정구가 아니라 이물질이 섞인 것처럼 파란색이 약간 들어간 특이한 수정구였다.

스스스.

수정구에서 솟아나온 파란 연기는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뭉치더니 두 개의 뿔이 돋아난 악마의 얼굴 형상으로 변하였다. 그 악마 얼굴의 입이 쩌억 벌어졌고, 시신들이 그 입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아니, 악마의 얼굴이 시신들을 삼키는 듯했다.

몇 초 후 268명이나 되는 시신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크크크! 좋아, 아주 좋아. 시신들을 모두 봉인(Seal)했으니 이곳을 떠나야지.”

부우웅.

허공으로 떠오르던 그는 빛과 함께 그곳에서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다가닥 다가닥.

말을 탄 40여 명의 사람들이 앞장서자 그 뒤로 30대의 짐마차가 따라왔다.

말을 탄 자들은 대체로 경쾌하게 움직이는 반면, 짐마차는 짐이 가득 실려 있었기에 묵직해 보이면서 속도가 훨씬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다.

마부석과 짐마차의 위에는 일꾼들과 용병들이 뒤섞여 있었다.

쿠르르르.

서른 대의 짐마차가 길게 줄을 이어 움직이자, 메마른 땅이라 흙먼지가 많이 일어났다.

이들은 파블로 상단의 일꾼들과 이를 경호하는 용병들, 그리고 준 일행이었다.

상단의 일꾼들과 용병들은 모두 112명이나 되었다.

글리아나는 회색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눌러 썼지만 얼굴의 일부가 노출되었기에 말을 타고 옆에서 함께 이동 중인 용병들은 그녀의 미모를 옆에서 훔쳐보았다.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했기에 한 번만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대로 반해버렸다. 극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글리아나는 따가운 용병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약간 앞으로 나서면서 준 옆을 나란히 달렸다.

앞만 보고 말을 타고 이동하던 준은 글리아나를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글리아나, 무슨 일이야?”

“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스윽.

준은 고개를 돌려 주위에서 따라오는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용병들을 찔끔하면서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가더니 풀밭과 약간 경사진 언덕이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해가 벌써 서쪽으로 다 넘어갈 시간이었기에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할 모양이었다.

마일로가 뒤돌아 소리쳤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할 것이다. 용병들은 말을 한곳에 모으고, 일꾼들은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워라. 어서!”

“알겠습니다, 대장님!”

우르르.

용병들은 용병들대로, 상단의 일꾼들은 일꾼들대로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상단의 일꾼들은 워낙 야영에 익숙하다 보니 척척 모닥불을 피우고 냄비를 올렸다. 그 일부는 짐마차를 한곳에 잘 세우고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잘 고정시켰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야영준비가 모두 끝났다.

한쪽에서 쉬고 있는 준과 글리아나, 패트릭과 세브리에게 마일로가 다가왔다.

“기사님, 천막이 준비되었습니다. 잠시만 그곳에서 기다려주시면 저녁 식사를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알았다.”

준 일행이 준비된 천막으로 들어가 보니 천막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넓었다. 30인용 천막이라서 이렇게 넓은 것이다. 그런 곳을 겨우 4명이서 묵게 된 것이다.

천막 안의 오른쪽에는 준이, 왼쪽에는 글리아나가, 가장 안쪽에는 패트릭과 세브리노가 각각 자리를 잡았다.

“글리아나, 여기에 책을 둘 테니 읽어봐. 재미있을 거야.”

“이건 어디서 난 책이야?”

“심심해서 내가 어젯밤에 만든 거야.”

“언제 이런 것도 만들었어? 준, 정말 대단해.”

“이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

“책을 만들었는데, 대단한 일이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스윽.

준이 팔을 들어 원을 크게 한 번 그리자 마법막이 생성되었다. 사방 3m에 높이도 2m나 되었다.

츠츠츠.

처음에는 투명하다가 점점 막 안에 있는 준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거울처럼 사물이 반사된 것인데 밖에서는 막 안을 볼 수 없었지만 안에서는 밖이 잘 보였다.

이 마법도 준이 응용하여 만든 것이다.

거울처럼 사물이 반사되는 것과 보호막, 결계의 세 가지 장점만을 취합해서 만든 이 마법은 아주 유용했다.

“준, 이 마법은 뭐야?”

“일명 거울 보호막이라고 하는 것인데,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유용한 거야.”

“이게 그리 쓸모가 있겠어?”

“쓸모야 많지. 가령 내가 정신을 집중해서 연구를 한다고 가정하면,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기에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난 밖이 잘 보이기에 좋고, 보호막 기능이 있기에 밖에서 물리적인 공격을 해도 부상을 입지 않아. 게다가 마법진의 일부 기능을 넣었기에 나의 마나가 직접적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피로하지도 않아.”

“아, 듣고 보니 대단한 걸 개발했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제법 쓸모가 있어. 지금부터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방해 말아줘. 연구할 게 있거든.”

“알았어.”

준은 아공간 속에서 작은 책상과 의자를 꺼내 앉더니 80여 가지 유리병을 꺼내었다. 그것의 뚜껑을 전부 열고는 티스푼으로 병마다 약간의 분말이나 액체를 집어넣어 잘 휘저었다. 눈대중으로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정신을 집중하면서 신중하게 작업하는 걸로 봐서는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든 준은 신중하면서 세심하게 빈 유리병을 채우더니 뚜껑을 닫고는 잘 흔들어 서로 섞이도록 했다. 그러고는 다시 뚜껑을 열어 투명한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치이이이.

얼마나 강한 액체인지 독기운이 스민 연기가 약간 피어오르더니 허공으로 흩어졌다.

“후후, 이제 주문만 외우면 완성되겠군.”

흐읍.

준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액체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노려보았다.

“마나를 포용하는 자가 이르노니 충실한 법칙에서 벗어나 나의 의지대로 새로운 법칙을 행하여주소서!”

츠츠츠.

간단한 주문 같았지만 준의 의지를 담은 주문에 마나를 불어 넣었기에 유리병 속에 든 액체에서 기이한 빛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색이 점점 탈색되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투명하게 변하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투명하던 액체가 휘돌기 시작하더니 약간씩 색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노란색이더니 점차 짙어졌고, 결국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끝이 났다.

“후후후, 이로써 당분간 쓸 마법약물을 만들어두었으니 안심이 되는구나.”

준은 책상에 어질러놓은 것들을 잘 정리해서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마법약물은 저녁에 쓸 것이라 일단 마법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

스스스.

그는 펼쳐둔 거울 보호막을 거두었다.

글리아나와 패트릭, 세브리노는 준이 어젯밤에 만들어두었던 그림 동화책을 읽어보고 있었다. 책이 재미가 있는지 아주 푹 빠져 있었다.

‘후후, 미녀와 야수인데 제법 재미있을 거야.’

준은 주인공의 이름만 살짝 바꾸어서 그림 동화책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들은 감동에 푹 빠져 있었다.

밤에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준은 우연히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이 떠올라 마법을 동원하여 기억을 그대로 끄집어내었다.

원작 그대로 하기엔 양심에 찔려서 주인공의 이름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명을 바꾸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색상까지 넣어서 그림 동화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곳에는 그림 동화책이라는 것이 아직 없었다.

‘후후, 이 세상에는 없는 동화인데 내가 창작했다고 한들 누가 시비를 걸겠어?’

준은 뻔뻔하게도 자신을 미녀와 야수의 저자로 표기해두었다. 한 권이 만들어지자 마법을 이용하여 일단 열 권을 더 만들어두었다.

칼라 그림 동화는 준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서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나타나도록 한 후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약간 수정했다. 그러고는 마법펜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글과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표절인데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라 상관없었다.

시작한 일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아예 동화책을 만들어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팔아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다른 이야기도 시간이 있을 때 만들어두었다.

미녀와 야수,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이렇게 4편을 만들었고, 한국의 전래동화로는 금도끼 은도끼, 토끼와 거북이, 선녀와 나무꾼, 콩쥐팥쥐, 혹부리 영감. 이렇게 5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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